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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묵지/책 더하기 · 리뷰

[파피용] Le Papillon des étoi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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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 뷰


아프리카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봉순이 언니> 다음으로 읽은 두번째 책은 <파피용> 이었다. 자칭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팬이라 말하면서도 그의 책 중에 아직 읽지 못한 것들이 많은 것이 부끄러운 팬. 매번 그의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지만 정말 뛰어난 공상가이자 천재 작가이다. 프랑스 최고의 일러스트레이터 뫼비우스의 그림까지 더해진 이번 책을 읽으면서 나는 또 한 번 그에게 감탄했다.


지난해 화제가 되었던 거장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지구 종말을 앞두고 인류의 마지막 사람들이 타고갔던 초대형 우주선은 파피용호에서 따온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인터스텔라에서는 지구의 사막화, 황사로 인해 식량난이 생기고 더 이상은 인류가 살 수 없는 환경오염에 의해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고자 한다. 반면 파피용에서는 지구에서 지속되는 전쟁과 폭력에 지쳐 언젠가는 멸망해 버릴 것이라고 생각하고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이들의 의해 새로운 프로젝트로 14만 4천명이 탑승하는 거대한 파피용호를 제작한다. 흡사 노아의 방주를 연상시키는 이 범선.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식물 종을 탑승시키고 각 종들을 수정란 상태로 냉동 보관도 해두었다. 또한 각자 전문적인 재주를 가진 폭력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파피용호에 탑승한다. 단 정치인, 군인, 목사는 제외되었다. 


정부도 군대도 종교도 없는 태초의 사회, 유토피아를 꿈꾸며 새로운 삶의 터전을 향해 약 천 년의 항해를 시작한 파피용호. 몇 세대가 지나가면서 파괴자로서의 인간의 본성이 서서히 드러나게 된다. 권력자에 의지하고, 독재와 지배, 전쟁과 싸움이 반복되었다. 세대를 거듭하며 점점 더 폭력적이고, 잔인해지고, 파피용호의 인류들은 피폐해져만 갔다. 그리하여 남게 된 6인, 그 중에서 마지막 행성에 착륙한 최후의 2인 남녀. 최후의 2인 마저도 싸움을 이기지 못해 여자가 죽고 난 후 남자 홀로 남았다. 


여기서 천재 이야기꾼 베르베르의 진가가 발휘된다. 아담과 이브 야훼의 이야기로 매듭지어진 결론. 결말에 이르기 전까지는 책장을 넘기면서 현대 이 시대의 TV 뉴스를 도배하는 폭력과 범죄가 파피용호에서 동일하게 반복되는 장면에 우울해졌고, 아프리카를 여행하며 마주친 흑인들의 슬픈 눈, 혹은 복수심에 가득찬 눈을 마주치며 돋아났던 나의 염세주의가 다시 솟아났었다. 그러나 탁월한 이야기꾼의 결론에 나의 염세주의는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마침표를 찍고 말았다. 꿈을 꾸게 만드는 그의 언어와 글. 오늘도 새로운 희망과 꿈을 그리며 그의 다음 책을 기다린다.



■ 본문 중에서


6. 어두워지는 길 - 25p.

이렇게 지내면서 그녀는 뉴스를 통해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세계, 그 동안 늘 바다로 달아나면서 회피해 왔던 세계와 마주하게 되었다.

참으로 강렬한 이미지들이었다.

그녀의 세계는 전쟁이었다.

그녀의 세계는 종교적 맹신이었다.

그녀의 세계는 끊임없는 환경오염이었다.

그녀의 세계는 인구 과잉이었다.

그녀의 세계는 가난과 기아와 빈곤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부유층이 출현했다. 이들은 다수의 고통을 외면하며 파렴치하게 살아남았다.


7. 어둠 속의 빛 - 27p.

텔레비전을 보면 쉽게 기분을 바꿀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불행을 지켜보면 자기 자신의 불행을 잊을 수 있었따.

거울 속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나는 두렵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보고 있으면 안심이 된다.

바깥 세계의 상황이 심각하면 할수록 자신의 처지는 상대적으로 볼 수 있었다.


11. 첫 번째 솥: 도가니 - 49p.

새로운 시도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세 가지 적과 맞서게 되지. 첫 번째는 그 시도와 정반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야. 두 번째는 똑같이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지. 이들은 자네가 아이디어를 훔쳤다고 생각하고 자네를 때려눕힐 때를 엿보고 있다가 순식간에 자네 아이디어를 베껴 버린다네. 세 번째는 아무것도 하지는 않으면서 일체의 변화와 독창적인 시도에 적대적으로 반응하는 다수의 사람들이지. 세 번째 부류가 수적으로 가장 우세하고, 또 가장 악착같이 달려들어 자네의 프로젝트를 방해할 걸세.


20. 소금의 승화 - 92~93p.

밀폐 공간에 모인 인간들은 본능적으로 현재 우리 인간의 불행한 모습을 초래한 삶의 도식들을 그대로 재현하고 말았어요. 구성원들과 상관없이 인간 집단은 결국 착취자와 피착취자, 자유 의지가 있는 인간과 학대받는 자를 양산하게 되어 있습니다. 집단의 규모가 클수록 우두머리는 더 혹독해지고, 피학대자들의 고통도 커집니다.


21. 14만 4천 개의 불꽃 - 96~98p.

1) 자율성. 즉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자기 일을 해결하는 능력

2) 사회성. 즉 개인의 이익을 초월하여 집단과 공공의 이익을 생각할 줄 아는 능력

3) 동기 부여. 즉 D.E. 프로젝트의 성공을 바라는 의지.

4) 건강. 흡연자, 알코올 중독자, 마약 중독자, 장기간 약을 복용하는 사람도 안 됩니다. 

5) 젊음. 나이를 20~50세 사이로 제한했다.

6) 가족이라는 구속 요소가 없을 것. 탑승객은 독신이어야 하며 부양할 자녀나 부모가 없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7) 탑승객은 한 가지 전문 분야, 즉 특별한 재주가 있어야 한다. 아드리앵은 우주선 안에서는 먹이 사슬 뿐 아니라 사회적 망도 재구성되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의사, 생물학자, 화학자처럼 상호 보완적인 전문 지식을 갖춘 사람들도 필요하지만 <농촌 같은> 우주선 내부의 환경을 고려해 농부, 제빵 기술자, 요리사, 대장장이, 직조공, 건축가, 석공, 장인(匠人)도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제 생각에 꼭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정치인, 군인, 목사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정부도 군대도 종교도 없는 최초의 사회를 건설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권력과 폭력, 신앙 이 세가지야말로 대표적인 의존형태지요.


22. 침전 - 102p.

화를 잘 내는 사람들.

타인의 문제에 무관심한 사람들.

반사회적인 행동 양식을 가진 사람들.

개인의 자유 의지를 무시하고 지도자를 추종하기만 하는 사람들이 탈락했다.

43만 3천 명이던 사람들이 1주일 만에 31만 명으로 줄었다.


38. 비밀 - 188p.

이것으로 밤이 시작하고    Cela commence la nuit.

이것으로 밤이 끝난다    Cela finit le matin.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달을 쳐다볼 때 보인다.    Et on peut le voir quand on regarde la lune.


42. 설탕이 된 소금 - 215p.

실수를 저질로 놓고도 굳건한 모습을 보이는 게 진실을 확보해 놓고도 흔들리는 것보다 낫지. 회의를 품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누구도 귀 기울여 듣지 않거든.


47. 캐러멜화의 위험 - 244~245p.

우리 모두는 타인에 대한 편집광적인 인식 체계를 지니게 되었어요. 젊은 시절에 우리 부모들, 학교, 일터, 텔레비전이 우리를 눌러서 거푸집에 넣어 버린 결과죠. 거기서 쉽게 벗어나는 건 불가능해요. 여러 해 동안 우주여행을 해도 그렇게 우리 의식 속에 뿌리를 내린 것들을 뽑아 내기는 어려워요. 그러니까 이제는 그것을 잊어버리도록 나비인들의 뇌를 세척해야 해요. 깨끗해질 수 있게, 지금까지 보고, 당한 폭력들을 떨쳐 버릴 수 있게 말이에요. 모두의 기억 속에서 어린 시절에 볼기짝을 맞았던 기억까지도 다 지워질 수 있게. 어둠에 대한 두려움도, 늑대에 대한 두려움도 기억 속에 남아 있지 않게.


55. 휴식의 시간 - 278p.

「자연은 논리적으로 움직여. 자연이 우리가 빠른 속도로 진화해서 아주 강력한 동물이 되게 한 것은 우리 인간에게 <자기 제한적인> 유전자가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기 때문인지도 몰라. 우리 스스로 자연을 완전히 정복했다고 믿지만, 사실은 우리보다 앞서 멸종한 다른 종들과 비교하면 특별히 그렇다고 할 수도 없어. 자연은 질병, 유성, 기후 변화를 동원해서 그들의 멸종을 유도했지. 그러니까 우리 인간에게, 우리들 유전자 속에 입력된 시나리오에도 이미 종말이 예정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거야.」

「그럼 당신 말은, 어떤 종이 탄생할 때 자연은 미리 그 종의 종말을 에견하고 있단 거야?」

「적어도 그 종의 <제한자>가 무엇인지는 알지. 어떤 종들의 경우에는 그 제한자가 포식자일 수도 있어. 인간의 경우는 자기파괴 충동이 바로 그 제한자야.」

「과연 그럴까? 우릴 봐, 우린 그런 충동이 없는걸.」

「우리가 정상이 아닌 거야. 아이들을 봐. 누가 뭐라고 이야기를 해준 것도 아닌데 아이들이 제일 먼저 하는 놀이가 바로 전쟁놀이야.」

「사내아이들이나 그렇지. 여자 아이들은 아니야.」

「여자 아이들도 그래. 여자 아이들은 말로, 서로를 비방하면서 할퀴고 물어뜯지. 결국 인간이란 존재는 서로 잘못되기만을 바라는 거야. 전혀 모르는 사람을 그저 본능 발산의 차원에서 죽여도 된다면, 그것도 어떤 처벌도 받지 않고 말이야, 그럼 누구라도 서슴지 않고 살인을 저지르게 될걸. 경찰과 군대라는 또 다른 형태의 집단적인 폭력만이 개개인이 이런 파괴의 열망을 분출하지 못하도록 제지할 수 있지.」


60. 천 년 동안의 숙성 - 307p.

평화 다음에는 전쟁.

중앙 집권화 다음에는 분권화.

대도시들 다음에는 작은 마을들.

의회 체제 다음에는 독재 체제.

안정 다음에는 광란.

무정부 상태 다음에는 전체주의.

학살 다음에는 출생.

화려한 패션 다음에는 경직된 패션.

파피용호의 탑승자들은 이렇게 후세 사람들이 <인간 무리의 역사적인 호흡>이라고 정의한 순환을 겪고 있었다.

숨 들이쉬기 다음에는 숨 내쉬기.


그리고 세대가 계속 이어졌다. 부모 세대의 잘못을 반복하고, 해결책을 모색하고, 새로운 삶의 방식과 새로운 종교, 새로운 철학, 새로운 법, 새로운 독재자, 새로운 지도자, 새로운 유행을 시험했다. 과거로 회귀할 때마다 고통은 가중되었다. 전염병으로 더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 독재자는 더 잔인해졌다. 무정부 상태는 더 파괴적인 결과를 낳았다.


감사의 말 - 391p.

파피용을 집필하는 동안 들었던 음악:

- 베토벤의 「교항곡 6번」과 「교향곡 7번」

- 비발디의 「사계」(조 새트리아니의 하드록 버전)

- 사무엘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

- 영화 「갈매기으 꿈」 사운드 트랙 (닐 다이아몬드)

- 영화 「듄」 사운드 트랙 (그룹 토토)

- 영화 「우리 친구 지구인」 사운드 트랙 (알레스 자프레, 로이크 에티엔)



<파피용>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 지음, 전미연 옮김

열린책들, 2007



파피용
국내도서
저자 :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 / 전미연역
출판 : 열린책들 2007.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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