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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묵지/책 더하기 · 리뷰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박웅현의 창의성과 소통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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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하나 듣고 시작하실까요? 


"Jim Reeves - He'll have to go" 


짧은 멜로디로 시작한 박웅현 CD의 강연은 "그가 왜 떠나야 하는지(He'll have to go)"에 대해 가사를 읽어 주는 것으로 이어졌다.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사랑하는 여자에게 전화를 걸어 가슴 절절하게 그가 떠나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멜로디와 가사를 소개하며, 소름이 돋는다고 했다. 잠시 후 그는 '파문(波紋)'이라는 키워드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지난해 '여덟 단어'라는 책을 선물로 받고 처음 접한 박웅현의 글은 나에게 파문이었다. 그런 그의 강연을 회사에서 들을 수 있다니, 오롯이 내 것에만 집중하느라 주변을 둘러보지 못했었는데, 글로 만난 박웅현보다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으니 감동과 파문은 더 물결쳤다.  


이야기를 이어가며 그가 받았던 감동의 순간들을 시와 클래식 음악으로 우리에게 조금 더 나누어 주었다.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中 몰다우(Smetana, Moldau),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Tchaikovsky - Violin Concerto),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Schubert, Arpeggione Sonata), 베토벤의 월광(Beethoven - Moonlight Sonata), 돈 맥클린의 빈센트 반 고흐에게(Don McLean, Vincent).


손글씨로 간결하게 만들어진 파워포인트 자료를 시작으로, 감동의 순간들을 그와 함께 나누며 마지막까지 몰입할 수 있는 명강의였다.   


세상에 강변에 달빛이 곱다고 전화를 다 주시다니요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픈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 밖에


뭐니 뭐니 해도

호수는

누구와 헤어진 뒤

거기 있더라


배추는

속에 있는 아기가 춥다고

이불을 덮어 준다


'무엇을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감동" 받는 것이다.' 라는 그의 이야기처럼 매 순간순간 놓치고 지나가는 많은 기억해야 할 순간들. 달은 어디에나 떠 있지만, 보려는 사람에게 보이는 것처럼, 삶의 아름다운 순간들을 조금 더 담아내도록 노력해야겠다. 오늘부터 작은 바람소리, 후드득 빗방울 소리, 향긋한 풀 내음, 밤 하날의 달빛, 흐드러지게 핀 봄날의 벚꽃. 하나하나 흘려보내지 말아야겠다. 그의 강연으로 받은 벅찬 감동을 짧은 리뷰로 남기기는 쉽지 않지만 '박웅현' 그는 나에게 '파문'을 일으켰고, 나를 '호들갑'스럽게 만들었다. 그야말로 소름 돋는 강연이었다.


마지막으로 그가 던진 파문. 삶은 찬란한 순간의 합이다.  



■ 본문 중에서


# 오늘 아침은 나의 보물입니다 – 4~5p.


5시 40분, 원하는 시간에 정확히 울려준 나의 알람은 나의 보물입니다.

그 알람 소리에 벌떡 일어나준 나의 몸은 나의 보물입니다.

그 몸을 수영장까지 데려다 준 평범한 나의 차와

그 차의 창으로 잠깐 느낀 신선한 아침 공기는 나의 보물입니다.

뛰어들 때마다 저절로 “아, 좋다” 말하게 만드는 수영장의 찬물과

그 물을 헤칠 때 온몸으로 느껴지는 물살은 나의 보물입니다.

그리고 식탁에서 마주한 따뜻한 두부 한 모는 나의 보물입니다.

출근길 차 안에서 들은 파바로티의 목소리는 나의 보물이고

그 목소리의 선율을 만들었던 베르디라는 사람은 나의 보물입니다.

구름 사이로 내리비치는 햇살, 장마로 약간 불어난 중랑천의 물길, 

삭막한 시멘트 벽면을 부드럽게 덮어가는 담쟁이덩굴의 부지런함,

그 담쟁이덩굴에서 볼 수 있는 총천연색 연두색의 향연,

천변에 아무렇게나 핀 노란 들꽃, 그 들꽃을 살짝살짝 흔드는 바람,

그 바람을 헤치는 자전거의 풍경, 그 위를 나는 이름 모를 새의 날개짓,

물새들이 가끔 보여주는 이륙과 착륙의 경이적인 몸짓,

거기에 간지러운듯 반응하는 개천 물의 흰 포말…

출근길에 만나는 이 모든 풍경은 나의 보물이고, 천천히 달리며

이런 풍경을 즐길 수 있게 만들어준 교통 정체는 나의 보물입니다.

사무실에서 내가 직접 내려 마시는 녹차 한잔은 나의 보물입니다.

그 녹차와 함께 업무 모드로 바뀌는 나의 머리와

오늘 처리해야 할 열한 가지 일들은 모두 나의 보물입니다.

늘 그 자리에서 별문제 없이 내 명령을 기다리는 내 노트북과

바탕화면에 깔아놓은 보물 1448호 백자 사진의 단아함은

나의 보물입니다. 그리고 이 원고를 써야 한다는 스트레스와

이렇게 원고를 쓰고 있는 이 순간은 나의 보물입니다.

오늘 아침은 나의 보물입니다. 나의 일상은 나의 보물입니다.



#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박웅현 – 25p.

감동에서 시작되었다. 사실은. 박웅현이 만든 광고 시리즈 <사람을 향합니다> 가운데 하나를 보고 놀랐다. 이건 시(詩)구나!
카피는 이렇다.
왜 넘어진 아이는 일으켜 세우십니까?
왜 날아가는 풍선은 잡아주십니까?
왜 흩어진 과일은 주워주십니까?
왜 손수레는 밀어주십니까?
왜 가던 길은 되돌아가십니까?
사람 안에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을 향합니다.

이 글에 등장하는 장면은 조금도 극적이지 않다. 우리 둘레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감동스럽다.



“아리스토테레스는 틀렸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소통은 ‘발신자 → 메시지 → 수신자’라는 경로를 거친다는 겁니다. 그러나 오히려 ‘수신자 → 메시지 → 발신자’라는 경로가 옳습니다. 제대로 소통하기 위해서는 발신자가 하고 싶은 말을 한다고 되질 않습니다. 수신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소통이 쉬워집니다.”

그렇다. 소통은 내가 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오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이 내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귀가 열리는 법이다. 그러려면 내가 먼저 수신자에게 다녀와야 한다. – 36p.



# <토지>는 히까닥하지 않았다 – 53~54p.

광고는 팀의 작업이다. 박웅현은 그래서 내가 했다,가 아니라 우리가 했다,고 말하길 좋아한다. 말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말로만 ‘우리’라고 하면 금방 알아챈다. 알아채는 순간 ‘말로만 우리’가 남을 뿐이다. 인터뷰를 하면서 만나본 박웅현의 팀에는 수많은 내가 톡톡 튀며 살아 있으면서도 ‘우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 카피 누가 썼어?”
“몰라, 네가 쓴 것 같아.”
“아니야. 네가 이 줄 이야기를 했잖아.”
“그러면 앞줄은?”
이런 식이었다. SK브로드밴드 광고의 밑그림 분위기는 누군가가 ‘앙리 루소’ 그림 이야기를 했고, 디자인팀에서 ‘이런 거?’ 하면서 만들기 시작했고, 생각들을 뒤섞었다고 했다.
사실 이 책도 우리가 쓴 것이다. 진작에 출판사는 박웅현의 ‘소통과 소통을 위한 창의력 기술’에 반해 있었고, 나는 박웅현의 광고에 공감했기 때문에 자주 떠벌리고 다녔다. 그리고 박웅현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공감했다. 우리는 비슷한 데가 많았다. 사실 비슷하다는 말은 다르다는 뜻이다. 그냥 ‘다르다’라는 말과 다른 점은 온도 차이일 뿐이다. 다르다는 낱말을 따뜻하게 만들면 비슷하다가 된다. 다르기 때문에 할 말도 많고, 궁금한 것도 생기는 것이다. 비슷하다는 말은 다르기 때문에 갈라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인터뷰가 거의 끝나갈 때쯤 박웅현이 말했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강 선생님이 가장 많이 한 말이 뭔지 아세요?”
“창의성… 인가요?”
“녹음을 들어보시면 알겠지만, ‘맞아요, 그럼요, 그래요’ 였어요.”


# 촛불이라는 이름의 광고 - 100~101p.


믿지 못할 일이었다.
월드컵 16강
거리는 기쁨에 넘쳤다.
같은 시각
또 하나의 믿지 못할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두 명의 여중생이 죽었다.
미군 장갑차에 깔려서
친구의 생일잔치에 가던 길이었다.
언론은 크게 다루지 않았다.
미군은 책임이 없다는 발표를 했고
정부는 침묵했다.
두 명의 소녀가 죽었는데
세상은 조용하기만 했다.
한 네티즌이 있었다.
죽은 이의 영혼은 반딧불이 된다고 합니다.
촛불을 준비해주십시오.
저 혼자라도 시작하겠습니다.
작은 제안이었다.
한 개의 촛불이었다.
그것으로 무엇을 밝힐 수 있을까?
상대는 미국의 군대였고
모든 이의 시선은 월드컵을 향해 있었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기적이 일어났다.
촛불이 옮겨 붙었다.
그해 한국은 월드컵 4강에 진입했다.
모두들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해 한 개의 촛불이
세상을 환하게 밝혔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 창의성이란 무엇인가? – 110~113p.

“인생은 무엇인가라고 정의하고 사는 사람은 없다. 문학은 무엇인가 정의를 해놓고 시를 쓰고 소설을 쓰는 사람은 없다” (<디지로그>, 생각의 나무, 2006, 154쪽) 그리고 창의성은 인간의 손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창의성의 실체는 생각이 아니라 행동에서 실처럼 풀려나온다는 것이다.
우리가 저문 여름 뜨락에 
엷은 꽃잎으로 만났다가

네가 내 살 속에, 내가 네 꽃잎 속에
서로 붉게 몸을 섞었다는 이유만으로 

열에 열 손가락 핏물이 들어
네가 만지고 간 가슴마다
열에 열 손가락 핏물자국이 박혀

사랑아 너는 이리 오래 지워지지 않는 것이냐
그리움 손끝마다 핏물이 배어
사랑아 너는 아리고 아린 상처로 남아 잇는 것이냐.

- <봉숭아>, 도종환 
세상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2연에서 묘사하고 있는 것은 봉숭아 꽃물을 들이는 이미지이기도 하지만 또한 섹스 장면이기도 하다. “그랬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랑은 열 손가락에 핏물자국으로 박혀서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다는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새로운 시선은 새로운 답을 보여준다. 그 답이 아름다운 시가 되었다. 그러고 보면 창의성은 새로운 시선을 찾아내는 능력이다.


# 창의성은 천재들의 전유물인가? – 147p.

박웅현의 생각에 따르면 사실 천재라는 것이 별 의미가 없다. 빛은 어둠 속에서 빛나고, 사랑은 미움 때문에 아름답고, 기쁨은 슬픔 때문에 더 기쁜 것과 마찬가지다. 모두가 천재라면 굳이 천재라고 부를 필요도 없다. 그러므로 아이큐로 서열화될 일도 없고, 이유도 되지 않는다.


# 박웅현의 창의성 - 170~171p.


미친 사람들에게 바친다.
부적응자들, 반항아들, 사고뭉치들. 네모진 구멍에 박힌 동그란 못 같은 이들. 세상을 다르게 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규칙을 싫어하고 현실에 적응하려 하지 않는다. 당신은 그들을 칭찬하거나, 반대하거나, 인용할 수 있고 그들을 불신하고, 찬양하거나, 비방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은 그들을 절대로 무시할 수는 없다. 그들이 세상을 바꾸기 때문이다. 그들은 발명하고, 상상하고, 치유하고, 그들은 탐험하고, 창조하고, 영감을 준다. 인류를 진보시키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들은 미쳐야만 했는지 모른다. 어떻게 빈 캔버스에서 예술 작품을 볼 수 있는가? 어떻게 고요함 속에서 한 번도 작곡된 적이 없는 노래를 들을 수 있는가? 어떻게 실험실의 회전운동 속에서 붉은 행성을 볼 수 있는가?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위한 도구를 만든다.
사람들은 그들을 미쳤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천재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미쳤고,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Here’s to the crazy ones.
The misfits. The rebels. The troublemakers. The round pegs in the square holes. The ones who see things differently. They’re not fond of rules. And they have no respect for the status quo. You can praise them, disagree with them, quote them, disbelieve them, glorify or vilify them. About the only thing you can’t do is ignore them. Because they change things. They invent. They imagine. They heal. They explore. They create. They inspire. They push the human race forward.
Maybe they have to be crazy. How else can you stare at an empty canvas and see a work of art? Or sit in silence and hear a song that’s never been written? Or gaze at a red planet and see a laboratory on wheels?
We make tools for these kinds of people.
While some see them as the crazy ones, we see genius.
Because the people who are crazy enough to think they can change the world, are the ones who do.


# 뒤집어 보기의 아름다움 - 187~188p.

“대학교 때 읽은 <광장>에서 이런 구절을 보았어요.

보고 만질 수 없는 사랑을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게 하고 싶은 외로움이 사람의 몸을 만들었다.

저는 이 구절을 읽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어요.”
나는 감동하면 잘 운다. 박웅현은 눈물은 잘 나지 않는데 소름이 돋는다고 한다.
“최인훈은 사람의 몸이 먼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사랑이 먼저 만들어졌다는 겁니다. 그런데 김훈의 글을 읽다가 이 글을 완전히 뒤집어버리는 한 구절을 보았어요.

인간은 기본적으로 입과 항문이다. 나머지는 그것들을 위한 부속기관들이다.

정말 충격적인 메시지였어요.”


# 맥락 속의 싱크 디퍼런트 - 219~220p.

사실 Think는 IBM 사의 창업주나 다름없는 토머스 왓슨(Thomas J. Watson)에게서 시작된 것으로 IBM 사의 오래된 슬로건이고 미국 사람들은 Think를 보면 IBM 사를 떠올렸다. IBM Think는 많은 상품을 거느리고 있다. 노트북은 Thinkpad고, 데스크탑은 ThinkCentre, 모니터는 ThinkVision, 액세서리는 ThinkAccessories였고, 서비스는 ThinkServices였다! Think different 광고가 시작될 때만 해도 아직 PC는 IBM PC 호환기종이었고, IBM은 Think였다. 그것과 다른 매킨토시를 강조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게 읽으면 Think different는 또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 가치지향적인 광고 - 265~266p.

이 광고는 마지막 장면에 작게 들어간 e-편한세상이라는 회사 로고를 빼면 아파트 건설회사 광고가 아니라 환경보호를 위한 공익광고처럼 보인다. 광고는 제작자의 인식 수준이기도 하지만 광고주의 인식 수준이기도 하다. 제작자가 아무리 좋은 메시지를 담았다고 해도 광고주의 승인이 없다면 나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불리한 전쟁을 시작합시다.
적이 우리보다 수만 배쯤
강하다고 생각합시다.
우리에겐 식량도
무기도 부족하고 여론도 시간도
우리 편이 아니라고 생각합시다.
가장 용맹한 백곰마저 
얼음 조각 위에서 죽어갔으며
돌고래의 함대는
해변에서
전멸을 당했다는
불리한 전황들을 직면합시다.
어처구니없는 전쟁을 시작합시다.
거실에도 자동차에도
버젓이 들어와 번지고 있고
서서히 지구의 온도를 높여가는
적들과 싸워나갑시다.
그들의 야유와 멸시에도
굴하지 않고
새까만 씨앗들이
겨울을 견디어내듯
조금씩 이겨나갑시다.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전쟁을 시작합시다.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박웅현, 강창래

알마, 2009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국내도서
저자 : 박웅현,강창래
출판 : 알마 2009.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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