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기억하는 가장 낯선 _아이슬란드, 생선 김동영 


하루종이 지지 않던 여름의 태양 그리고 절대 떠오르지 않던 겨울의 태양, 그 하늘에 슬그머니 뜬 희미한 달과 치맛자락처럼 펄럭거리는 오로라, 북극에서 낮게 불어오는 바람 그리고 그 바람을 묵묵히 맞으며 견디고 서 있는 양들, 구불구불 이어지는 작은 언덕들과 그 위로 양탄자처럼 깔려 있는 이끼, 눈 덮인 산과 거친 바다와 검은 모래사장, 너무 빠르게 흘러가는 구름, 천 개의 폭포와 호수, 아직도 끓어오르고 있는 땅, 어디론가 날아가는 기러기들, 서서히 녹아내린다는 빙하, 어디가 음절의 시작이고 끝인지 모르는 낯선 언어 그리고 그곳에 살고 있는 과묵하고 고독해 보이는 사람들... ...

이런 곳에서 나는 어디서부터 오는지 알 수 없이 밀려 오는 고립감과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무기력한 나 자신으 느꼈다. 아이슬란드는 그런 나라다. 그렇다고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다. 별것 없는 나라지만 사람을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계속해서 낯선 곳으로 떠나고 싶게 만든다.

사람들은 달나라 같은 아이슬란드에 가보고 싶어한다.

모든 곳이 그러하겠지만 여행자들이 몰려오면 그곳은 여행자들의 색으로 물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아이슬란드는 그러지 않을 곳이다. 오히려 반대로 여행자들을 아이슬란드 특유의 고독한 분위기로 물들일 것이다. 그것이 어쩌면 아이슬란드의 특별한 점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 동안 다닌 수많은 곳 중에서 여태까지 아이슬란드 같은 곳은 없었다. - 7~8p.


나는 예전 자리로 돌아와 다시 현실에 끼워맞춰졌다. 솔직히 돌아오자마자 내가 기억하는 가장 먼 곳 아이슬란드를 잊고 살았다. 아주 가끔 회색 비와 우박이 창문을 때리는 소리를 떠올리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그런 일이 내게 진짜 일어났었는지 실감이 되지 않는다. 분주하기만 한 현실을 버텨내는 것도 버겁기 때문이다. - 12p.



# 묘지와 광장 _그리스, 소설가 김성중


기억이란 참으로 놀라운 현상이다. 기억이 생생해지면 과거는 더이상 과거형으로 쓸 수 없게 된다. 현재 속에 다시 풀린 그 시간은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그 순간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모래시계의 알맹이는 맹렬히 빠져나가고, 나는 세 겹의 시간 속에 서 있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책장을 처음 넘기던 순간, 피레우스 항에 서 있던 순간, 그리고 시간여행의 편도 티켓을 들고 있는 현재, 이렇게 말이다.

편도 티켓은 아주 간단히 구할 수 있다. 책장에서 『그리스인 조르바』를 꺼내 첫 장을 펼치기만 하면 되니까. 첫 줄부터 나는 아테네로 소환된다. 그리고 또다시 행복의 안개에 휩싸이는 것이다. - 18p.



# 펭귄과 편견 _케이프타운(남아프리카공화국), 시인 오은


여행은 흔히 견문을 넓혀준다고 한다. 견문은 비단 여행지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다. 여행 과정에서 내가 지금껏 보고 들어왔던 것들이 얼마나 편견에 가득차 있었는지 깨닫는 데서도 찾아온다. 그 편견을 마주하지 않으면, 깨려고 애쓰지 않으면 견문은 그저 추억담에 불과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나 자신을 직면하고 내 내면의 소리에 가만히 귀기울이기 위해서 여행을 하는지도 모른다. - 68p.



# 두고 온 것 _루앙프라방(라오스), 소설가 정이현


그렇지 않아도 해가 갈 때마다 순수함이 사라져가는 곳인데 이제 한국의 단체여행객이 떼로 몰려가 다 버려놓을 게 분명하다고 했다. 다른 친구가, 그렇게들 망가지는 거지, 라고 했다. 나는 한마디도 거들지 못했다. 순수하다는 것과, 사라져간다는 것과, 버려놓는다는 것과 망가진다는 것. 그 말들 사이에 숨어 있는 날카로운 파편들에 대하여 생각할수록 마음속 어딘가가 따끔거렸다.

이제 질문에 대답할 시간이다.

라오스에는 무엇이 있나요? 저도 잘 모릅니다. 일주일여를 보낸 적이 있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시간이었을 뿐입니다. 두고 온 것이 있지만 되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 92p.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국내도서
저자 : 무라카미 하루키(Haruki Murakami) / 이영미역
출판 : 문학동네 2016.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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