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10AM 요하네스버그 OR탐보 공항에(O.R. Tambo international airport) 도착했다. 3개의 줄로 나뉘는데, ① 남아공 여권 소지자, ② 비자(Visa)필요 여권, ③ 도착 비자(Visa) 여권이다. 대한민국 여권은 도착비자를 받을 수 있으므로 3번으로 향하면 된다. 입국 수속을 금방 마치고 짐을 찾아 게이트 밖으로 나오니 게스트하우스 사장님께서 휴대폰에 내 이름을 넣어 전광판 모드로 들고 나를 반기신다. 


차로 15~20분을 달려 숙소인 한아름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하니 사모님께서 나를 반겨 주시며 남자가 아니고 언니였어(?) 라며 놀라신다. ^^ 남자 이름을 가진 덕에 남자로 오해를 많이 받는 터라 이번에도 그랬나보다. 오히려 더 반겨주시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기내식을 두 번이나 먹어 배가 많이 고프지는 않았지만, 도착하자 마자 아침 한상을 푸짐하게 차려주신 덕에 밥 한공기를 뚝딱 비웠다.


△ 한아름 게스트하우스 뒷마당. 수영장과 바비큐 그릴이 있는 아늑한 공간.



샌톤 모닝사이드에 위치한 아늑한 숙소. 한아름 게스트하우스


한아름 게스트 하우스는 이번 아프리카에서 첫 번째로 묵는 숙소이다. 아프리카 여행을 계획하고 난 후, 비행기를 예약하려고 보니 한국에서는 아프리카 어느 곳을 가더라도 요하네스버그 공항을 거쳐야 했다. 언젠가 한번은 썸머 크리스마스(Summer Christmas)를 보내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터라 크리스마스 전으로 급히 일정을 앞당기고 잠비아의 리빙스턴으로 가는 비행기 탑승 전까지, 크리스마스를 포함한 3일을 요하네스버그에 머무르기로 마음을 먹었다. 


일사천리로 비행 스케줄은 정했지만 숙소는 쉽사리 정하지 못하고 망설여졌다. 요하네스버그의 치안은 세계 최악으로 악명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돈을 조금 아끼려고 다운타운 근처의 숙소를 잡았다가 강도를 당하거나 낭패를 보기 십상이라는 온라인의 수 많은 리뷰들을 읽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남아공 현지에서 오래 거주한 한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 묵기로 결정을 했다. 요하네스버그는 한인 규모가 많지 않아서 인터넷으로만 정보 찾기가 녹록하지 않았는데 몇 날 며칠을 찾아 헤맨 끝에 어렵사리 한아름 게스트하우스 정보를 찾고 사장님께 메일을 드렸다.


숙소, 비용, 일정, 가이드투어 등 여러가지 정보들을 사전에 확인하느라 10여 차례 메일이 오고갔다. 그 와중에도 사장님은 귀찮은 내색 한 번 없이 일사천리로 답변을주신다. 아니나 다를까 만나뵈니 역시 인상이 좋은 분이셨다.


△ 정문으로 들어서면 형형색색 꽃과 나무가 심어진 확트인 정원이 눈에 들어온다.


△ 내가 묵었던 방은 왼쪽에 보이는 창문. 방에서 창 밖을 보며 갈대 지붕을 또르르 굴러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고 있을때면 사바나의 초원에 온 것 처럼 마음이 평온해졌다.


얼마전 이 곳으로 이사를 오셨다고 하는데, 탁트인 앞마당의 정원과 야자수가 갈대 지붕과 어우러져 멋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갈대 지붕은 몇 년에 한번씩 햇볕에 바래지고 비를 많이 맞은 윗부분을 걷어 내고 다시 덮어주는 수고로움이 있고, 번개에 대비해서 꼭 피뢰침을 설치해야 한다고 한다. 만약 한국에서도 갈대 지붕을 엮어 집을 지을 수 있다면, 알콩달콩 갈대 지붕을 엮은 집에 앞마당을 텃밭으로 꾸며 멋스럽게 살아보고 싶어졌다.


△ 방이 여러개지만 서로 분리되어 있어 간섭이 없고 조용하다. 개인 방으로 통하는 복도.


첫 날 저녁. 하루종일 땀을 흘리고 다닌 옷과 양말을 저녁에 손 빨래 해서 책상에 널어 놓았는데, 다음날 아침까지 빨래가 마르지 않았다. 우기라서 한차례씩 비가 오기 때문에 빨래가 안마르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는데, 외출을 하고 돌아와보니 메이드 비키가 모든 빨래들을 깔끔하게 세탁한 뒤 바싹 말려 곱게 접어서 책상 위에 정리를 해놓았다. Thank you Vicky! :)


△ 혼자 쓰기에 충분히 넓은 방에 넉넉한 2인 침대. 그래서 마음껏 어지르고 편하게 쉴 수 있었다. 



12월은 아프리카의 우기. 그래서인지 하루에 한차례씩은 꼭 소나기가 퍼부었는데, 특히 천둥 소리가 무척 무서웠다. 한국에서 듣던 천둥소리보다 더 크고 더 가깝게 들렸다. 시원하게 갈대 지붕을 타고 흐르는 빗소리를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또 무엇을 얻으려고 이 먼 곳엘 혼자 왔을까.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이 모두 아프리카로의 여행을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설득에 설득을 거듭해서 나선 여행길. 아프리카의 무엇이 나로하여금 그들을 설득하게 하고, 그토록 간절하게 이 곳에 오고싶게 했을까. 아직까지는 답을 찾지 못했는데, 남은 여정 동안 아프리카에게 답을 물어야 겠다.


△ 갈대 지붕을 또르르 타고 흐르는 빗방울. (한아름 게스트하우스)


△ 갈대 지붕을 또르르 타고 흐르는 빗방울. (한아름 게스트하우스)


게스트하우스 곳곳에는 한국적인 장식품과 가족들의 아늑한 일상이 녹아있었다. 타지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자니 사랑하는 가족들과 소중한 사람들이 보고싶어졌다.


△ 게스트하우스 구석구석 한국적인 장식품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았다.


△ 새벽녘. 가족을 위한 아늑한 거실에 햇살이 드리운다.


△ 단란한 가족. 아원, 상원 남매와 사장님 내외분 사진 액자들이 고풍스런 피아노 위를 장식하고 있다.


아침마다 따뜻한 국과 밥을 꼭 곁들여 푸짐한 아침상을 차려주신 안주인. 집 밥과 같이 정성도 가득 담아 주셨을 뿐만 아니라 맛도 있어서 이 곳에 머무르는 3일만에 살이 금방 쪘다. 또 한국으로 인터넷 전화도 걸 수 있도록 해주시고, 묵는 동안 내 집처럼 편안하게 배려해주셨다. 게스트하우스를 떠나는 날에는 내 손을 꼭 붙잡으며 알로에 젤을 선물로 주셨는데, 선물받은 '알로에 젤'은 이번 여행의 보물 중의 보물이었다. 여행하는 내내 아프리카의 뜨거운 햇살에 화상을 입은 피부가 욱신거리고 쓰라렸는데 밤마다 알로에 젤을 발라두니 그 다음날 아침이 되면 그나마 견딜만 해진 것이다. 


△ 게스트가 모두 둘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하던 식탁. 미닫이 문을 열면 뒷마당과 이어져 있다.


△ 메이드 비키가 항상 뽀송뽀송한 수건을 주었다.


△ 수영장이 있는 뒷마당. 수영장 뒤로는 안주인께서 떡을 만들때 사용하는 떡을 위한 주방이다.


△ 고급 주택들이 즐비한 샌톤 모닝사이드(SANDTON MORNINGSIDE) 전원 마을에 위치한 한아름 게스트하우스. 

정문을 들어서면 높게 뻗은 아름드리 야자수가 정원을 덮고 있다.


남아공으로 이주하신지 27년이 되신 사장님 내외분. 이 곳에서 아이들을 다 키우고 행복한 가족으로 두런두런 살아가는 모습이 화목하고 따스해 보였다. 안주인은 음식 솜씨가 최고였고, 바지런하셨고, 입담도 재미있으셔서 늘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사장님은 가장의 무게감이 느껴지는 멋진 분이면서도 자상한 아버지의 모습을 겸비하셨다. 한아름 투어를 운영하고 계셨고, 나와는 라이온파크(Lion Park), 레세디 민속촌(Lesedi Cultural Village), 몬테카지노(Montecasino), 한인교회 등 요하네스버그의 많은 곳들을 직접 가이드 투어로 함께 해주셨다. 내가 시티 투어 버스를 타고 혼자 시내 투어를 하겠다고 숙소를 나설 때에는 걱정 된다며 예전에 딸이 사용하던 휴대폰을 손에 꼭 쥐어 주시며 무슨일 있으면 전화하라고 당부하시던 사장님. 짧은 기간을 함께 했지만 그새 정이 들어, 작별 인사를 하는데 눈물을 참느라 혼이 났다. 사장님 내외분 모두 건강하세요! : )


△ 한아름 투어, 한아름 게스트하우스, 한식당 대장금, 서울떡집을 모두 운영하시는 사장님 내외분.


아름이네 민박은 서울의 강남에 해당하는 요하네스버그 sandton morningside에 위치하고 있어 주위 환경, 편의시설(체육관-Gym,쇼핑,교육,골프), 안전문제 등 모든 면에서 남아공 최고의 위치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거기에 넓은 집안 내부와 수영장, 샤워시설, 식사 면에서 최고의 서비스를 자신하고 현지 메이드에 의한 청소, 세탁 등 모든 일절 편의를 모드 제공해 드리고 있으며 인터넷이 낙후된 남아공에서 ADSL을 통한 초고속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민박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위성TV(DSTV)를 설치하여 교육프로 및 골프 프로 시청이 가능하여 여가를 알차게 보낼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 한아름 투어 홈페이지中


INFORMATION


- 주소 : 4 winston ave rivonia sandton

- 전화번호 : +27-11-234-2006 (사장님 휴대폰) +27-82-413-2313 (한국에서) +82-70-4001-4909

- 홈페이지 : http://www.hanarumtour.co.kr/

- 이  메 일 : tonyhansa@hotmail.com

- 기타사항 : 숙박 예약시 공항 픽업 및 드롭 서비스, 조식/석식, 무료 인터넷 포함





[중국, 북경] 3박 4일 자유여행 일정


[중국, 북경] 3박 4일 자유여행 일정


천안문 광장과 자금성은 언제나 사람이 많다. 또 월요일엔 자금성이 닫기 때문에, 주말과 월요일을 피하는 일정으로 자금성을 방문하는 일정으로 날짜를 조정할 수 있다.


Day 1. 아침 비행기로 북경으로 출발~* 간단히 북경 시내 둘러보며 여독 풀기



08:40   김포 공항 출발 - 아시아나 항공 OZ3315

09:45   북경 수도국제공항 (北京首都国际机场, Beijing Capital International Airport) 도착

            ↓ 택시 40분

11:00   숙소 - 한지붕세가족 민박 at 왕징(望京, Wangjing)

            ↓ 지하철 80분, 서원(西苑, Xiyuan)역 하차

13:00   점심 식사 - 훠궈(火锅, Hot Pot)

                          at 시아부 시아부(呷哺呷哺, Xiabu Xiabu) on 천천가(天泉街, STARRY STREET)

            ↓ 도보 5분

14:30   이화원(頤和園, Summer Place)

            ↓ 버스 40분, 375번

17:00   북경대(北京大學, Peking University)

            ↓ 버스 20분, 332번

18:30   마트, 까르푸(Carrefour) on 중관촌(中关村, Zhongguancun)

            ↓ 택시 20분

19:30   저녁 식사 - 위샹로스(漁香肉絲, Yuxiang rousi), 북경오리(카오야, 北京烤鸭, Kaoya) 

                           at 곽림(郭林, Guolin) on 오도구(五道口, Wudaokou)

            ↓ 지하철 80분, 왕징(望京, Wangjing)역 하차

22:00   숙소




Day 2. 현지 투어로 하루에 돌아보는 북경 외곽지역 & 북경의 밤거리



            ↓ 도보 5분

08:00   투어 시작 - 홍투어 집결 at 왕징 한국성 뚜레쥬르 앞

            ↓ 전용 버스로 이동

08:40   명13릉(明十三陵, Ming Dynasty Tombs)

10:20   만리장성, 팔달령장성(八达岭长城, The Great Wall at Badaling)

12:00   점심 식사 - 현지식

13:00   용경협9龍慶峽, Long Qing Xia) 빙등제(氷燈節)

16:00   투어 종료

          숙소에서 한 시간 휴식

            ↓ 지하철 60분, 첸먼(前门, Qianmen)역 하차

18:20   저녁 식사 - 만두/딤섬(點心, Dimsum) at 도일처(都一處) on 치엔먼따지(前門大街, Qianmen)

            ↓ 도보 3분

19:00   따스란 쇼핑 거리(大栅栏商业街, Da Shi Lan Shang Ye Jie)

            ↓ 도보 5분

18:00   라오서 차관(老舍茶馆, Lao She Teahouse)

            ↓ 지하철 60분, 왕징(望京, Wangjing)역 하차

22:30   숙소




Day 3. 북경의 뒷골목 스케치~*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이맛, 길거리 음식!



            ↓ 버스 60분, 궈마오(国贸, Guoamo)역 하차

09:30   건외소호(建外SOHO)

            ↓ 지하철 15분, 왕부정(王府井, Wangfujing)역 하차

11:00   점심 식사 - 꼬치요리, 아이스크림 튀김(油炸 冰淇淋, Fried Ice-cream)

                           at 왕부정 거리(王府井, Wangfujing Street)

            ↓ 지하철 20분, 천단공원(天, Tiantandongmen)역 하차 

13:30   천단공원(天壇公園, Temple of Heaven)

            ↓ 지하철 30분, 북해북(北海北, Beihai North)역 하차

16:00   스차하이(什刹海, Shi cha hai) & 후퉁(胡同, Hutong) 인력거 투어

            ↓ 도보 3분

17:30   저녁 식사 - 일창찬관(日昌餐館, Richang Restaurant) 

            ↓ 도보 10분

18:30   난뤄구샹(南锣鼓巷, Nanluogu Xiang)

             - 츄러스 아이스크림 at 지스궈 츄러스(吉事果, JSC CHURROS) 

             - 문우요거트(原味奶酪, Yogurt) at 문우치즈가게(文宇奶酪店 ; Wenyu Nailaodian)

            ↓ 지하철 60분, 왕징(望京, Wangjing)역 하차

21:00   숙소




Day 4. 북경의 심장 천안문 광장 & 자금성! 다시 한국으로 ~*



            ↓ 지하철 60분, 천안문동(天安门東, Tian'anmen East)역 하차

09:30   천안문 광장(天安门广场 , Tian'anmen Square)

            ↓ 도보 5분

10:00   자금성(紫禁城/故宮, The Palace Museum)

            ↓ 도보 5분

12:30   경산공원(景山公园, Jingshan Park)

            ↓ 버스 10분, (609번) 북해북(北海北, Beihai North)역 하차

               지하철 50분, 왕징(望京, Wangjing)역 하차

14:30   숙소, 짐 챙겨서 공항으로 이동

            ↓ 지하철 20분, 

               공항철도 30분

17:30   북경 수도국제공항(北京首都国际机场, Beijing Capital International Airport) 출발

20:30   인천 국제공항 도착 - 아시아나항공 OZ336



FEB 2014

Liah


△ 치엔먼따지에 (前門大街: 전문대가, qián mén dà jiē)


황궁앞에 위치한 치엔먼 따지에(前門大街, 전문대가), 1920년대 베이징을 만나다


치엔먼은 우리나라의 광화문 같은 상징성을 지닌다. 고궁 밖 남문 앞으로 난 약 1.3킬로미터 거리의 큰길을 치엔먼따지에(前門大街, 전문대가)라 부르는데, 과거 황궁에서 행차하는 황제와 고관대작들이 모두 이 길을 통과해서 다녔다고 전해진다. 이 큰길을 따라 양옆으로 수백 개의 크고 작은 후퉁(골목)이 늘어서있다. 예로부터 상점과 식당들이 사람을 따라 이 길에 모여들었고, 현재에는 1920~30년대를 연상케 하는 근대 건축물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청나라 때 가장 번화했다던 이 상점 거리는 요즘도 여전히 매일 30여만 명이 다녀가는 베이징 최고의 번화가로 남아있다.


400년 전통의 베이징카오야 전취덕(全聚德)도 이 거리에 위치하고, 건륭제가 반했다는 만두집 도일처(都一處)도 이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 치엔먼따지에 (前門大街: 전문대가, qián mén dà jiē)


명나라 가정(嘉靖) 29년(1550)에 지은 외성 앞은 황제가 톈탄(天坛, 천단) 또는 산촨탄(山川坛, 산천단으로 출궁 할 때 이용했던 길로 외성을 지은 후에는 외성의 남북 방향 주요 도로였으며, 시민들은 이를 첸먼다제로 불렀다.


전체길이 1,660미터에 차도 너비가 20미터인 첸먼다제는 명, 청나라를 거쳐 국민당 통치 시기까지 정양먼 다제(正阳门大街, 정양문대가)로 불렸으며, 1965년에 정식으로 첸먼다제라는 명칭이 정해졌다.


명나라 시대의 첸먼다제는 정둥팡(正东坊, 정동방)과 정시팡(正西坊, 정서방)의 분계선에 위치해 있었으며, 거리 중간을 기준으로 동쪽은 정둥팡에, 서쪽은 정시팡에 속했다. 그리고 정양먼이 수도의 정문이었기 때문에 고대 첸먼다제 일대는 다른 성문보다 넓었다. 명나라는 도시 재건축 과정에서 원나라 시대의 ‘전대의 것을 후세에 물려준다’는 고정관념을 탈피해 정양먼(正阳门, 정양문) 주위 및 남쪽으로 셴위커우(鲜鱼口, 선어구), 랑팡후퉁(廊坊胡同, 랑방호동)까지 이어지는 일대를 대규모 상업거리로 조성했다. 


청나라 시대에는 대로 양측면에 끊임없이 정육점, 생선가게, 과일과게, 곡물점, 보석점, 채소가게 등과 같은 수많은 전문 시장을 개설했다. 부근 골목 내에는 공예가들의 작업장, 화물창고, 숙박시설, 회관 등을 비롯해 칭러(庆乐, 경락), 싼칭(三庆, 삼경), 화러(华乐, 화락) 등의 극장이 있었다. 대로변에 막으로 둘러쳐진 가게들은 점차 벽돌과 나무로 지어진 정식 건축물로 바뀌어갔으며, 이로 인해 대로변 동서 양쪽에 가게들 뒤쪽으로도 거리가 생기면서 총 3개의 거리가 형성되었다. 동쪽 내부 거리에는 정육점, 옷가게, 과일과게가 있었으며, 서쪽 내부 거리에는 보석점, 곡물점이 있었다. 


- 출처: 베이징관광국


△ 따스란 쇼핑 거리(大柵欄街, 대책란가)


베이징의 가장 오래된 시장 골목, 따스란 쇼핑 거리(大柵欄街, 대책란가)


따스란 쇼핑 거리(大柵欄街, 대책란가)는 치엔먼따지에(前門大街, 전문대가)와 연결된 길로, 1644년 청나라가 건립된 후 번성하기 시작한 베이징의 가장 오래된 시장 골목이다. 청나라 때에는 매일 저녁이면 고궁의 안전을 위해 베이징 내의 모든 성문을 닫아버렸다고 한다. 결국 외지인들은 성문 밖에서 잠을 자야 했고, 이로 인해 치엔먼 밖으로 또 다른 상업 거리가 조성되었다. 이곳 상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후퉁 입구에 거대한 울타리를 세웠는데, 자란(柵欄)은 경계를 표시하는 울타리라는 뜻으로, 이에 따라 이곳이 바로 따스란(大柵欄, 따자란)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100년이 넘는 전통을 가진 상점들이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어 무척 고풍스런 분위기를 풍기는데, 현대식의 간판들도 곳곳에 들어서서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1702년에 개업한 약국 동인당(同仁堂), 200여 가지의 찻잎을 파는 장일원(張一元), 서태후에게 사랑을 받았다는 구부리(狗不理) 만두집, 1905년 문을 연 중국 최초 영화관인 대관루(大觀樓) 등 전통이 가득한 상점들을 모두 이 곳에서 만날 수 있다. 


따자란의 상권을 쥐고 있는 이들은 물론 베이징 상인(징상 京商)들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징상뿐만 아니라 중국 팔대상(八大商)이 활발하게 교류하던 공간이다. 팔대상 가운데도 가장 이름 높은 상인이 후이상(徽商)과 진상(晋商)이다. 후이상은 지금의 안후이성 시셴(歙縣) 등에서 형성된 상단을 말한다. 호설암 등이 이곳이 배출한 대표적인 상인으로 이들은 쑤저우, 항저우 등까지 영향을 넓히며 중국 내 최고 상단이 됐다. 이들은 주로 소금이나 금융, 비단 등으로 세계적인 상단이 됐다. 진상은 좀 특이하다.


이들은 산시성이라는 어려운 조건을 갖고 있지만 표국이나 표호를 통한 금융업 등으로 부를 축적했다. 그밖에 풍부한 물산과 국제 교류로 부를 거머쥔 저장성 상인(浙商)이다. 현재 세계를 흔드는 상권을 가진 화교들의 모체인 광둥성 상인(粤商)은 무역과 장사를 통해서 부를 축적했다. 그밖에 비단과 진주 등으로 부를 축적한 쑤저우 출신의 쑤상(苏商)과 음식과 곡식으로 부를 얻는 산둥성 상인(鲁商), 실크로드를 통한 교류로 부를 얻은 친상(秦商)이나 수도의 힘으로 돈을 번 베이징 상인 등을 8대 상인으로 꼽는다.


따자란의 끝은 메이스지에(煤市街)다. 이곳은 서쪽으로 리우리창과 연결되고 남쪽은 과거 빠다후통(八大胡同)이다. 빠다후통은 베이징의 가장 대표적인 매음장소다. 장사 중심의 상인들이 있던 따자란과 식자(識者)들과 상인들이 있던 리우리창의 중간에 빠다후통이 있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사회주의와 성(性)은 상극 같지만 중국이라고 해서 이쪽에 무감하지 않다.


- 네이버 지식백과 : 치엔먼, 살아있는 베이징 문화의 현장 中


△ 이름 장식. 4개 60元


한자(漢字)를 하나하나 골라서 즉석에서 멋진 이름 장식을 만들어준다. 저렴한 가격에 선물하기에도 좋아서 온 가족 이름으로 하나씩 장식을 구입했다.  4개 60위안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온 가족 선물을 구입하고는 기분이 좋아졌다. 


△ 따자란 (大柵欄)


△ 따스란 거리에서 팔고 있는 이름모를 화과자


INFORMATION


- 주소 : 北京市 前门大街, Qian Men Da Jie, Dongcheng Qu, Beijing Shi

- 찾아가는 길 : 지하철 2호선 전문역(前门) 하차





FEB 2014

Liah

△ 이색 먹거리 천국, 왕푸징다제(王府井大街, Wangfujing Street)의 왕부정소흘가(王府井小吃街)


이색 먹거리 천국, 왕부정대가(王府井, 왕푸징다제)의 왕부정소흘가(王府井小吃街, 왕푸징샤오츠지에)


왕부정대가는 베이징 최고의 번화가로 우리 나라의 명동과 비슷한 쇼핑거리이다. 대형 백화점과 상점, 음식점들이 밀집하고 있는 왕부정 거리에는 차 없는 문화거리로 지정되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청(淸)대 이곳에는 10여 곳의 왕부(王府: 친왕의 저택)가 모여 있었는데 이 왕부들이 사용했던 우물을 왕부정(王府井)이라고 하였고, 왕부정이 있는 이 거리를 '왕부정대가'라고 부르게 되었다.

왕부정대가의 흥성은 왕부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돈과 권력을 갖춘 친왕들이 살던 이 거리는 청대부터 남다르게 발전해 있었고, 청의 몰락은 왕부정거리가 더욱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청이 몰락하자 친왕과 그들의 식솔들은 생계 걱정을 해야 했는데 마땅한 수단이 없자 그들은 집안의 물건들을 내다 팔았다. 각기 작은 박물관 정도씩은 되었던 왕부 10여 곳이 집안의 골동품이며, 서적, 공예품 등을 내다 팔았고, 좋은 물건을 얻으려는 사람들과 상인들이 몰려 이 거리는 오래지 않아 골동품을 거래하는 상권이 형성되었다. 왕부정대가의 골동품 상가는 해방(1911년 중화민국 건립)과 함께 점차 사라졌지만 기존의 상권에 대형 백화점들이 들어서면서 지금과 같은 베이징 최고의 상가가 되었다.


- 고집불통 남경연의 베이징에서 본전뽑기 中


그중에서도 먹자골목 왕부정소흘가(王府井小吃街, 왕푸징샤오츠지에)는 관광객 뿐만 아니라 현지인들도 즐겨 찾는 곳으로 100여 종이 넘는 음식을 팔고 있다. 초입에는 각종 꼬치류가 시선을 끄는데, 아직 튀김이 되지 못한 전갈들이 꼬치에 꽂혀 살기위에 몸을 바둥바둥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다소 충격적이었다. 이색 먹거리 천국인 이곳에는 사진기를 들고 음식 사진을 찍어대느라 정신을 놓고 다니는 관광객이 유독 많은데, 때문에 소매치기도 기승을 부리니 소지품을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 꿈틀꿈틀 살아 움직이는 전갈꼬치, 씨에즈 (蝎子: 갈자, xiē zi)


△ 전갈꼬치를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해마꼬치, 하이마(海马: 해마, hǎimǎ)


△ 다리가 4개 달린 것은 다 튀겨 먹는다는 중국, 발이 5개도 예외는 아니다. 불가사리 꼬치, 하이옌 (海燕: 해연, Haiyan)


△ 진열대에서 관광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꼬치구이 재료들


△ 각종 번데기도 예외는 아니다. 누에번데기 꼬치, 찬용 (蚕蛹: 잠용, cányǒng, Silkworm Chrysalis)


△ 참새가 영양 만점이라고 계속 권하는 가게 주인. 비주얼이 충격적인 나머지 먹어보진 못했다. 참새꼬치 마취에 (麻雀: 마작, máquè)


대부분의 꼬치 요리들이 다소 충격적인 비주얼을 자랑하는 가운데, 가장 달콤해 보이는 꼬치요리를 만났다. 땅꾸얼러는 런닝맨 북경레이스에서도 소개가 되었던 달콤한 간식으로, 베이징의 겨울 대표 간식이다. 꼬치 요리는 먹고 싶은데 다소 혐오스런 모습에 쉽사리 먹어볼 용기가 나지 않아 망설이고 있었다면, 달콤한 땅꾸얼러를 맛보자. 각종 과일이나 산사나무 열매에 설탕물이나 엿을 발라 굳힌 달콤한 맛이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맛이다.


△ 과일을 꼬챙이에 꿰어 설탕물, 엿 등을 발라 굳힌 새콤달콤 과일꼬치, 탕꾸얼러 (糖葫芦: 탕호로,  tánghúlu)


△ 겨울에 먹으면 더 맛있는 베이징 대표 간식 새콤달콤 과일꼬치, 탕꾸얼러(糖葫芦: 탕호로,  tánghúlu)


△ 겨울에 먹으면 더 맛있는 베이징 대표 간식 새콤달콤 과일꼬치, 탕꾸얼러 (糖葫芦: 탕호로,  tánghúlu)


서민들에게는 인기 만점인 빠오두 요리. 멀리서 보면 볶은 국수 가락처럼 보이는 빠오두는 소나 양의 위를 끓는 물에 데친 것으로 청 황실에서도 즐겨먹던 고급 요리라고 한다.


△ 청 황실에서 즐겨 먹었다던 천엽요리, 빠오두 (爆肚: 폭두, Baodu)


△ 청 황실에서 즐겨 먹었다던 천엽요리, 빠오두 (爆肚: 폭두, Baodu)


△ 소나 양의 천엽을 깨끗이 씻어 길게 잘라 끓는 물에 데친 후 기름, 참깨장, 식초, 고추기름, 파 등과 버무려 먹는 요리.

청 황실에서 즐겨 먹었다던 천엽요리, 빠오두 (爆肚: 폭두, Baodu)


현지인들이 가장 많이 사 먹는 베이징 요구르트 쑤안나이. 맛은 플레인 요거트 맛인데, 현지인들도 아침 대용으로 즐겨먹는 음료이다. 한국의 플레인 요거트도 맛있지만 베이징의 쑤안나이가 조금 더 맛있게 느껴지는 건, 목축을 하는 유목민족들이 중국 내 소수민족으로 남아있기 때문일까. 믿거나 말거나 한국의 요거트보다 더 맛있다는 말씀. 쑤안나이는 베이징에 들르면 꼭 먹어봐야 할 음식으로 4~5元 정도의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고, 병을 돌려주면 1元을 환불해주는 가게도 많다.


△ 빨대를 꽂아 쪽쪽 빨아먹는 길거리 음료, 베이징 요구르트 쑤안나이 (酸牛奶: 산우내, suānniúnǎi)


△ 우리와도 친숙한 만두 역시 대표 길거리 음식이다. 군만두 지엔지아오 (煎饺: 전교, jiānjiǎo)


△ 형형색색 만두피에 뽀얀 속살이 일품인 찐만두, 쩡지아오(蒸饺: 증교, zhēngjiǎo)


△ 새우튀김, 양꼬치 튀김, 생선 튀김. 없는 것이 없는 꼬치 백화점


△ 아이스크림 튀김 가게 주인이라며 재벌 부럽지 않다는 익살스런 청년. 겉은 바삭바삭 속은 차가운 아이스크림이 사르르~ 

한입 베어 물면 입에서 살살 녹는 아이스크림 튀김, 요자우 삥치린 (油炸冰淇淋: 유작빙기림, yóuzhá bīngqílín)


△ 겉은 바삭바삭, 한 입 베어 물면 속에는 차가운 아이스크림이 사르르 녹는맛이 일품인

아이스크림 튀김, 요자우 삥치린 (油炸冰淇淋: 유작빙기림, yóuzhá bīngqílín)


△ 중국식 파인애플 볶음밥, 쁘어루오판(菠萝饭: 파라반, Bo Luo Fan)


△ 한류 열풍을 타고 한국드라마와 함께 중국에 상륙한 떡뽂이(?), 떡볶이 라 차오 니엔 까오 (辣炒年糕: 랄초년고, là chǎoniángāo)


△ 깨,쌀 등 가종 곡물을 기름에 튀겨 조청을 발라 튀밥이나 깨고물을 입힌 조과, 중국식 강정 유미구어 (油蜜果: 유밀과, yóumìguǒ)


△ 만국 공통 인기 간식인 군밤, 차오리쯔 (炒栗子: 초율자, chǎolìzi)


△ 장인이 후~ 불어서 만든 설탕과자, 엿사탕 췌이탕런 (吹糖人: 취당인,chuī táng rén)


아침, 점심을 모두 거르고, 조금 늦은 점심 무렵에 공복으로 왕푸징샤오츠지에에 도착했는데, 먹고 싶은 음식들을 하나씩 사 먹는 재미로 골목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바퀴 쭈~욱 둘러보고 나니 제법 배가 부르다. 너무 배가 불러서 더 이상은 물도 못 마실 지경이 되었는데, 다시 베이징을 찾는다면 가장 먼저 가보고 싶은 곳은 당연히 이 먹자골목이다. 아직 먹어보지 못한 꼬치 요리가 너무 많은데, 다음에 베이징에 들르면 며칠을 두고 여러 번 들르면서 여러 가지 음식들을 고루 맛봐야겠다.


△ 이색 먹거리 천국, 왕푸징샤오츠지에(王府井小吃街: 왕부정소흘가)


INFORMATION


   - 주소 : 北京市西城区王府井大街, Wang Fu Jing Da Jie, Dongcheng Qu, Beijing

   - 홈페이지 : www.wangfujing.net.cn

   - 찾아가는 길 : 지하철 1호선 왕푸징(王府井, Wangfujing)역에서 하차 후 도보 1분. C2 또는 B출구로 나오면 그곳이 왕부정 거리의 시작 부분




[중국, 북경] 이색 먹거리 천국, 왕푸징다제(王府井大街, Wangfujing Street)의 왕부정소흘가(王府井小吃街)

FEB 2014

Liah


야생동물 스테이크와 맛있는 맥주를 즐길 수 있는 조 아저씨 호프집(Joe's Beerhouse)


아프리카에 오면 꼭 먹어보아야 하는 것이 야생동물 음식들이다. 오릭스, 쿠두, 얼룩말, 악어, 타조 등의 다양한 고기들을 먹을 수 있는 맛 집, 게다가 맥주 맛도 일품인 Joe's Beerhouse. 나미비아에서 마지막 밤을 행복한 파티와 함께 마무리하기 위해 가이드 De Wat 이 자그마한 파티를 마련했다. 호텔에 짐을 풀어두고 모두 함께 저녁을 먹으로 택시를 타고 음식점으로 이동을 했다. 


Joe's Beerhouse에 들어서니 규모가 엄청나다. 550석 규모의 넓은 실내에 아기자기한 장식들과 멋들어진 바(Bar). 이곳이 과연 아프리카란 말인가. 수도 빈트후크(Windhoek)에 오니 빈부 격차를 더욱 체감할 수 있었다. 호텔, 레스토랑 모두가 깨끗하고 잘 정돈된 모습이지만 손님의 대부분은 관광객 또는 백인들이었다. 즐겁게 식사를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한 생각이 가시질 않았다.


△ Joe's Beer House 입구.


△ 550석 규모의 넓은 내부는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이 꽉 들어차 있었다.


조 아저씨 호프집의 역사(Joe's Beerhouse History)


1991년 문을 연 Joe's Beerhouse는 2001년 6월 현재의 위치로 자리를 옮겼다고 한다. 가게 주인인 조 아저씨(Joachim Gross)는 독일에서 태어난 유명한 요리사로 1986년 나미비아에 왔다고 한다. 나미비아가 과거 독일의 식민지여서 그런지 빈트후크에서는 유독 독일계 나미비아인들이 많은 것 같다.


△ 아기자기한 장식으로 꾸며진 Joe's Beerhouse 실내.


△ 우리의 완벽한 가이드 데빗(De Wat) 이 일찌감치 예약해둔 자리에 앉았다.


Joe's Beerhouse의 메뉴는 에피타이저(Appetisers), 수프(Soups), 샐러드(Salads) 등의 스타터(Starters)와 다양한 메인(Mains), 그리고 사이드 음식, 디저트(Dessert) 등 없는 것이 없이 다양했다. 음료도 가벼운 탄산음료부터 커피, 맥주까지 모든 것을 갖추고 있으니 빈트후크에서 파티를 하려거든 이곳이 적격이다.


메인(Mains)은 채식(Vegetarian and Light Dishes), 생선류(Fish), 닭고기(Chicken), 양고기(Lams), 돼지고기(Pork), 소고기(Beef), 그리고 야생동물(Game) 등으로 다양한 음식들이 있었다. 아프리카에 왔으면 야생고기를 시도해봄 직하지 않은가. 나는 가이드 De Wat 이 추천해 준 오릭스(Oryx Fillet) 고기를 주문하고 Kudu를 주문한 Rachel 과 한 입씩 나누어 먹기로 했다. 혼자 여행을 할 때면 아무리 맛있는 레스토랑에 들르더라도 음식을 많이 주문할 수 없어서 아쉬운 마음이 컸는데, 친구들과 함께 하니 여러 가지 음식을 주문하고 조금씩 맛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래서 혼자보단 둘이, 둘보단 여럿이 좋은 모양이다.


△ 메인 메뉴 중, 야생동물(Game) 가격과 맥주 가격 (2015년 1월 기준). 추천 메뉴는 오릭스와 쿠두, 얼룩말 스테이크

오릭스 스테이크(Oryx Fillet) - N$148, 쿠두 스테이크(Kudu Loin Steak) - N$123, 얼룩말 스테이크(Zebra Steak) - N$123


우리 그룹은 그동안 여행을 함께 한 멤버 10명에 새로 조인한 멤버 4명을 더해 14명으로 대그룹(?) 이었는데, 주문을 받는 직원이 무척이나 산만하다. 인원이 많은 만큼 주문을 하는데도 시간이 꽤나 걸렸는데, 이 직원은 주문이 끝나기도 전에 "잠시만!"을 외치며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와서는 아까 말한 다음부터 주문하란다. 주문을 다 받은 후에도 그 직원은 무려 예닐곱 번을 왔다 갔다 하며 우리가 주문한 음식들을 여러 차례 확인했다. 


맥주를 시작으로 음식들이 하나 둘 서빙되고, 내가 주문한 오릭스 스테이크(Oryx Fillet)도 서빙되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일행 중 한 명의 음식, 쿠두 스테이크(Kudu Loin Steak) 하나를 깜빡 빠뜨렸단다. 워낙 손님이 많아서 바쁘다는 도도한 사과와 함께 미안해하는 내색도 없이 기다리란다. 우리는 마지막 파티로 한껏 기분이 들떠있었기 때문에 그냥 너그럽게 기다리기로 했다. 아니, 우리는 누구 하나도 불평하지 않고 서로 음식을 조금씩 덜어주며 즐겁게 음식을 기다렸다. 너무 빠르게만 사는데 익숙해진 삶의 속도 탓에 지금처럼 음식이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컴플레인을 해야만 하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지는 요즘. 이곳 아프리카에서 나는 천천히 걷고, 천천히 세상을 바라보는 느림의 미학에 자연스럽게 동화되었다.


△ 미디엄(Medium) 굽기의 오릭스 스테이크 (Oryx Fillet)


△ 오릭스 스테이크(Oryx Fillet). 고기 굽기를 미디엄(Medium)으로 주문했는데, 적당히 익어서 고기 누린내도 없었고 먹기 딱 좋게 부드러웠다.


쿠두(Kudu)와 얼룩말(Zeebra) 스테이크를 주문한 친구들과도 고기를 조금씩 나누어 먹었는데, 쿠두는 약간 비릿한 맛이 느껴졌고, 내 입맛엔 오릭스가 제일 맛이 있었다.



빈트후크(WINDHOEK)에서 마지막 밤. Saturday Night Party~!


이번 아프리카 여행에서 밤마다 빠지지 않은 것이 바로 맥주였다. 마지막 밤에도 역시 좋은 사람들과 맥주 한 잔씩 기울이며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웠다. 허니문 여행을 왔던 테일러와 레이첼이 맥주를 한 잔씩 대접하고 싶다고 One Meter Beer(340ml 맥주 13잔 세트)을 주문하고는 수줍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여행 허니문을 즐겁게 함께 보내게 되어서 반가웠고,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어서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우리는 2년 후 미국의 버닝 맨 축제(Burning Man Festival)에서 다시 만나기를 기약하며, 앞으로 2주 동안 이제 단둘만의 여행에서 진짜 허니문(!?)을 즐기라고 안전한 여행을 기원해주었다.


△ One Meter Beer(340ml x 13)


△ 2014년의 마무리와 2015년의 시작을 함께한 아프리카 여행에서 만난 소중한 친구들. 왼쪽부터 데빗, 패트릭, 존, 제닌, 니콜, 헬리, 마티아스, 테일러, 레이첼.


행복한 2주를 함께 보낸 캠퍼(Camper)들. 2014년의 마지막 밤을 함께 지새우고, 2015년의 첫 아침을 함께 보낸 소중한 친구들. 이들을 만난 것이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큰 수확이 아닐까 한다. 영국 금발 미녀는 도도하다는 편견을 깨고 살갑게 나를 대해준 사랑스러운 룸메이트 제닌. 우리는 캠핑을 하며 룸이 아닌 텐트에서 매일 잠을 잤으니 텐트메이트라고 하는 게 맞겠다. 감기에 걸려 고생을 하면서도, 밤늦게 화장실을 갈 땐 꼭 나와 함께 해주던 자상한 언니 니콜. 제닌과 니콜 둘이 7월에 한국에 들른다고 하니 그때는 내가 가이드가 되어주기로 약속을 했다. 


모두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Bon voyage!



INFORMATION


- 메뉴 : 스테이크, 버거, 치킨, 맥주, 디저트 등 다양함 (★ 추천메뉴 : Oryx Fillet, Kudu Loin Steak)

- 가격대 : 메인 메뉴 N$100~160, 맥주(330ml 기준) N$15~30

- 운영시간 : 월~목 - 16:30 ~ 늦게까지(새벽 1시 무렵), 금~일 - 11:00 ~ 늦게까지

- 주소 : 160 Nelson Mandela Avenue, PO Box 5040, Windhoek, Namibia

- 연락처 : +264 61 23 2457

- 이메일 : info@joesbeerhouse.com

- 홈페이지 http://www.joesbeerhouse.com/ (메뉴 확인 및 예약 모두 홈페이지 가능)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JoesBeerhouse



△ 타운십(Township) 카투투라(Katutura)에 위치한 하바나(Havana) 마을


사람이 삻기 싫은 곳, 타운십(Township) 카투투라(Katutura)


아프리카 여행의 마지막 날. 카투투라(Katutura)라고 불리는 타운십(Township, 인종분리 정책이 있던 시절의 흑인 거주 구역) 엘 방문했다. '카투투라'란 '살기 싫은 곳'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인종분리 정책이 있던 독립 전, 핍박받던 흑인들의 감옥이자 불운한 삶의 현장인 이곳 카투투라의 타운십 하바나(Havana) 마을은 여전히 나미비아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 극빈곤층의 참혹한 생존 구역으로 남아있다.


혼자 가면 총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는 빈민촌에, 나는 레드아프리카의 고급 JEEP를 타고 우아하게 들어왔다. 양철 지붕 위에선 모락모락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경사진 비탈에 창문도 전기도 없는 삶의 터전. 창문을 하나 내는데 우리 돈으로 3~4만 원 정도의 비용이 필하기 때문에, 창문이 있는 집은 거의 없다고 한다. 한인 선교사가 운영하는 Smart Kids 유치원과 주일학교만이 유일하게 창문이 있을 뿐이었다.


'저 뜨거운 태양에 양철 집안은 얼마나 더울까?', '화장실은 어떻게 갈까?'


△ 레드아프리카 대표님의 빨간 JEEP. 마을 한 가운데 주차된 고급차가 마치 다른 세계에서 온 것처럼 어색해 보인다. 


△ SMART KIDS 유치원 옆 벽에 장식된 태극기와 나미비아 국기 스티커.


△ 박진호 선교사가 운영하는 SMART KIDS 유치원


양철 지붕 아래서 희망을 꿈꾸는 하바나의 아이들


이번 아프리카 여행은 약 2주간의 캠핑을 마친 후, 이곳 나미비아에 도착해서 하바나를 둘러보기로 했다. 2주 동안 국경을 여러 차례 넘으며(남아공→잠비아/짐바브웨→보츠와나→나미비아) 캠핑을 해야 했기에 짐을 최소화했는데, 때문에 아이들에게 건네줄 선물 하나 준비를 하지 못 했다. 참 궁색한 변명이 아닐 수 없고, 부끄러웠다. 다행히 하바나 아이들과의 만남을 주선(?) 해주신 레드아프리카의 엄 대표님께서 알록달록한 새 연필을 나에게 건네주시며, 아이들에게 선물로 전해주고 친해지라고 말씀하신다. 감사합니다!  


SMART KIDS에도 나름의 규칙이 있었는데, 학교를 다니는 초등부 아이들은 왼편, 아직 학교에 가지 않는 유치부 아이들은 오른 편으로 나뉘어 앉아있었다. 나는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초등부 아이들에게 연필을 한 자루씩 나누어 주었다. 여학생들에게는 단연 핑크색과 노란색이 인기가 있었고, 남학생들에게는 파란색 연필이 인기 있었다. 여학생의 핑크 사랑은 만국 공통인가 보다. 


△ 주일학교 예배가 시작되기 전, 초등부 아이들에게 선물로 새 연필을 나눠 주며 대화를 나누었다.

 

△ ABCD... 영어 공부 중에도 주의가 산만한 아이들.


검은 대륙 아프리카. 식민지 시대를 거치고, 인종 차별 정책 등의 어두운 과거를 빠져나오는 동안 빈부 격차는 심해졌고, 흑인들은 빈민으로 전락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양철집의 마을 하바나. 빈민층의 아이로 태어나 양철 지붕 아래 살면서 꿈조차 꿀 수 없었던 아이들을 위해, WE LOVE AFRICA는 꿈마저 메말라 버렸던 이 척박한 땅에 희망의 씨앗을 심었다. 박진호 선교사는 WE LOVE AFRICA라는 단체를 만들고 하바나의 아이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교육을 위해 힘을 쓰고 계셨다. 나의 소박한 응원이 하바나 아이들에게 희망의 거름으로 쓰이기를 바라본다.


△ WE LOVE AFRICA FOUNDATION 이라는 단체를 만들고 이 곳 하바나의 아이들을 후원하고 계신 박진호 선교사님.


영어 공부가 끝나갈 무렵 몇몇 아이들이 그동안 준비한 노래와 춤이 있다며 보여주겠다며 앞으로 나선다. 수줍게 노래를 부르고, 앙증맞은 춤을 추면서도 새 연필을 손에 꼭 쥐고 놓지 않는다. 작은 연필 하나로도 행복해하고 기뻐하는 아이들이 사랑스러웠다. 



△ 뜨거운 태양 아래 아지랑이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양철 지붕을 수리 중인 하바나의 소녀.


△ (좌) 하바나의 화장실. (우) 마을 공용 수도에서 카드를 넣고 물을 받아 사용한다. 카드로 사용료를 지불하게 된다고


어느덧 예배가 시작되고, 나는 슬그머니 유치원을 빠져나와 동네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놀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지만, 천주교인인 나는 예배 시간 동안 이방인이 된 기분 탓이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양철 지붕 위에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내 집, 네 집의 경계가 모호한 마당을 끼고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나무판자들을 이어 붙여서 공용 화장실을 만들어 두고 있었다. 그나마도 밤에는 어둠으로 덮여 사용하기 여의치 않아 보였다. 마을의 공용 수도 시설에는 물 구입을 위한 카드를 이용해서 물을 구입한다. 카드를 통해 물 사용료를 지불하게 되는데, 예전에는 물 공급을 위한 시설이 없었는데 지금은 이 시설 덕분에 깨끗한 물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 하바나의 아이들은 사진 찍는걸 무척 좋아한다. 승용차에 기대서고 본인 사진을 찍어 달라며 멋들어지게 포즈를 취한다.


△ 미소가 아름다운 하바나의 청년. 하얀 이를 수줍게 드러내고 미소를 지어 보인다.


하바나에서 만난 청년, 소녀, 아이들의 공통점. 하나같이 미소가 아름답다. 인위적으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행복한 표정을 짓고 친절하게 말을 건네온다. "Good Morning!", "What's your name?" 사진 찍기를 좋아하고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며 본인의 사진을 보고는 수줍어한다.


△ 폐 타이어에 사슬을 묶어 만든 그네.


△ 폐 타이어에 사슬을 묶어 만든 그네


짧은 시간이었지만 하바나 아이들과의 만남은 나에게 진한 향기를 남겼다. 풍요롭고 물질이 넘쳐나는 도시(서울)에 살면서 우리는 작은 것의 소중함을 너무 잊고 살아가곤 한다. 수도꼭지만 돌리면 콸콸 쏟아지는 물, 똑딱하고 스위치만 누르면 켜지는 밝은 형광등,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누리고 사는 것들이 하바나에서는 너무도 귀한 것들이다. 하바나의 아이들은 작은 교육의 기회에도 감사하며 꿈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우리는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쉴 새 없이 공부하고 스스로를 닦달하지만, 내 꿈이 무엇인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잊은 채로 그저 앞을 향해 달려가기만 하는 것은 아닐까. 누구에게나 잠시 달리는 것을 멈추고 어느 방향을 향해 달려가야 할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생각할 시간조차도 없다는 주변의 많은 이들. 그들을 에워싼 무거운 삶의 무게가, 빠른 삶의 템포가 안타까울 뿐이다.

# 공부란, 인간 다음의 일이다

'무슨 일을 하고 싶으냐?'고 물으면, '모르겠다' 혹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정말 웃기는 일이다. 하고 싶은 일을 대답할 수조차 없는데 취직을 하려고 한다니. 면접 때 그들이 내뱉는 대답은 기껏해야 "무슨 일이든 맡겨만 주시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는 것이다. 시켜만 주면 그게 뭐든 일의 종류를 가리지 않겠다는 말이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아직 뭘 잘하는지는 잘 몰라도 취직만 시켜달라는 뜻이다. 일단 취직만 하고 보자는 것이다. 삶의 방향을 정하지 않고 주입식 교육을 통해 성장한 사람의 표본이다. 30대, 40대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 역시 하고 싶은 게 없다. 그러다 보니 어쩌다 시작한 일을 계속하게 되고, 그게 익숙해지니 별생각 없이 시작한 일을 평생 지속하게 된다. 이 얼마나 허무한 인생인가. 그들에게 묻고 싶다. 대체, 태어난 목적이 무엇인가? 


나(김종원)는 사람의 인생을 자동차에 비유한다. 뒷바퀴를 돌리는 것은 엔진이지만 앞바퀴를 굴려 가야 할 곳의 방향을 정하는 것은 내 두 눈으로 바라본 후 내린 판단이다. 가야 할 곳을 정하지 않고 액셀을 밟는 사람은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닌 방향이다. 


- 가장 낮은 데서 피는 꽃 中


INFORMATION


- 위치: Katutura, Namibia

- 후원 정보 : ① 레드아프리카 (http://blog.naver.com/redafrican/140200477438) ② 위 러브 아프리카 (http://cafe.naver.com/weloveafrica)





2주간의 여정이 어느덧 끝나가고, 나미비아에서의 마지막 날을 보낼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 사파리(Hotel Safari)는 빈트후크 도심의 주요 관광지 크라이스트처치, 독립기념 물관에서도 인접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무려(!) 샤워실과 화장실이 방에 딸려있고, 수영장과 자쿠지, 무선 인터넷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이 숙소는 그야말로 최상급이었다. 우리는 그동안 캠핑 사이트의 텐트에서 생활을 했기 때문에 독립된 화장실과 샤워실, 그리고 전기와 인터넷 시설에 목말라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너무 당연히 누리던 것들이 자연으로 돌아오니 무척 소중한 것들이었다. 어쨌거나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넓고 깨끗한 시설에 반해버린 나와 룸메이트 제닌.


△ 호텔 사파리 빈트후크(Hotel Safari Windhoek) 입구. 호텔에 도착한 G adventures 트럭, 존이 트럭 위에서서 호텔 전경을 촬영하고 있는 중이다.


Tip. 아프리카에 대한 오해! 아프리카 상식 바로알기


① 아프리카는 덥다!? 

아프리카도 여름이지만 해가 떨어진 아침저녁으로는 서늘하고, 비가 올 땐 가끔 춥기까지 하다. 내가 여행한 12월 1월은 우기, 여름 시즌임에도 불구하고 새벽녘에는 긴 팔을 꺼내 입어야 할 정도로 서늘했다. 또 남아공의 케이프타운은 겨울이면 눈이 내릴 정도로 기온이 떨어지고, 남부 아프리카에는 우기, 건기 외에도 여름/겨울의 계절이 존재한다.


② 아프리카는 위험하다!? 

아프리카는 가난한 곳이어서 불량배들이 돈을 뺏으려고 총으로 사람을 그냥 쏴 죽인다는데 정말일까? 우리가 뉴스와 신문 등의 미디어에서 만나는 아프리카는 내전, 해적, 가난 등으로 인해 무척 폭력적인 곳으로 비치기 일수다. 그러나 특정 국가와 지역에 국한된 이야기다. 소말리아 해변이나, 요하네스버그의 다운타운을 혼자 거닐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내가 며칠을 보낸 요하네스버그의 치안은 세계 최악의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여행 안전 수칙을 잘 지키고 우범지역인 다운타운을 혼자 어슬렁거리고 돌아다니지만 않는다면 안전하다.


③ 아프리카는 더럽다 !?

"에볼라(Ebola) 조심해!" 내가 아프리카에 여행을 간다고 하니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에볼라는 서북부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발발한 전염성과 치사율이 높은 질병이다. 기니,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 등을 거쳐온 여행객들은 아프리카에서도 국경(Border)을 통과할 때에는 철저한 검문을 거쳐, 입국을 할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여행한 남부 아프리카에서 한참 에볼라가 기승을 부리는 기니,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까지의 거리는 1만 km에 육박한다. 이들 국가에서 스페인까지의 거리는 약 4,500km에 불과한 것을 고려하면 오히려 유럽이 더 위험한 지역이라 말할 수 있겠다. 물론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비롯한 일부 남부 아프리카 국가들의 에이즈 감염율이 세계 최대 수준이고 문화적인 부분에서 우리 정서와 다른 부분이 존재하지만 상식(?) 수준의 휴가를 즐기러 온 단순 여행객에게 해를 끼칠 만큼 위험한 문화는 없다.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관광객이라면 호텔이나 레스토랑을 한 번쯤은 들러보았을 텐데, 관광객을 상대하는 숙박 시설이나 음식점들은 깔끔한 위생 상태를 자랑한다. 나 역시 캠핑 사이트에서만 머무르다가 처음으로 이곳 빈트후크에서 호텔에 묵게 되었는데, 내가 머무른 호텔 사파리(Hotel Safari)는 3성급 호텔이지만 시설도 좋고 서비스도 웬만한 동남아 호텔보다도 일품이었다.


④ 아프리카는 가난하다!?

2014년 GDP를 기준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세계 34위로 싱가포르, 홍콩, 뉴질랜드 보다도 상위에 랭크되어 있다. 아프리카에도 부유층은 매일 여유롭게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고, 세금에 대해 불평을 하는 중산층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러나 절대 빈곤층의 비율이 높고 빈부 격차가 큰 문제는 여전히 풀어야할 숙제로 존재한다.


△ 호텔 사파리 빈트후크(Hotel Safari Windhoek). 타조알과 고슴도치 털로 만든 호텔 로비의 장식물.

수돗물이 콸콸 나오고, 밝은 불빛과 인터넷을 마음껏 쓸 수 있는 이곳 숙소는 문명의 상징과 같이 느껴졌다. 문명에 어울리는 화려한 네온사인이나 현대적 장식물이 아닌 자연의 소박한 아이템인 타조알과 고슴도치 털이 어우러져 오히려 멋스러움을 더한다.


△ 호텔 사파리 빈트후크(Hotel Safari Windhoek)의 커피 코너(Coffee Corner). 아프리카의 커피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먹어도 맛있다!


△ 호텔 사파리 빈트후크(Hotel Safari Windhoek). 가족들이 한가로이 휴가를 즐기고 있는 호텔 수영장.


△ 호텔 사파리 빈트후크(Hotel Safari Windhoek). 해 질 녘 호텔의 자쿠지.


△ 호텔 사파리 빈트후크(Hotel Safari Windhoek) 제닌과 나를 위한 24호 Room.

우기에 야외 취침을 하느라 2주 동안 비가 쏟아지는 텐트 안에서 벌레를 피하며 침낭을 똬리 틀고 잠을 자던 우리. 오늘은 실내에서 에어컨을 틀어놓고 뽀송뽀송하게 잠이 들었다. 


△ 호텔 사파리 빈트후크(Hotel Safari Windhoek). 부드러운 빵, 따끈한 스튜, 잘 손질된 상큼한 과일이 일품인 조식 뷔페.


△ 호텔 사파리 빈트후크(Hotel Safari Windhoek). 호텔 입구 옆의 우체통.


해외로 여행을 할 때면 꼭 엽서를 써서 한국의 나, 그리고 가까운 친구들에게 보내곤 했었다. 우표와 엽서 자체가 기념품이 될 뿐만 아니라, 엽서를 받고 나면 여행의 추억이 되살아나기 때문이었다.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면 보통은 한 달 정도 지날 무렵 엽서가 도착하곤 했는데, 이때쯤이면 보통 여행의 여운이 가실 무렵이고,'나에게 쓴 엽서'를 읽고 있으면 새록새록 여행지에서 느낀 감정들이 고스란히 전해지곤 했다. 


지난밤에도 한국으로 보내려고 엽서를 써두었는데, 우표 구입을 깜빡해서 결국 엽서를 붙이지 못 했다. 호텔 로비의 기념품 점에서 우표를 구입하려고 했는데, 아뿔싸! 주말에는 닫는단다. 결국은 다음날 시내의 부시맨 기념품점에서 우표를 구입하고,(안타깝게도 시내에서 우체통을 찾지 못한 나는) 레드아프리카의 엄 대표님께 엽서를 부쳐주십사 부탁드렸다. 


△ 호텔 사파리 빈트후크(Hotel Safari Windhoek). 호텔 입구에서 한가로이 손님을 맞이하는 고양이. 

우리는 잠비아의 Waterfront Campground 숙소에서 만난 고양이와 같은 이름 '빅보이'라 불렀다.


△ 호텔 사파리 빈트후크(Hotel Safari Windhoek) 입구. 

이튿날 아침 또 다른 여행지를 향해 떠날 준비를 하는 G adventures 트럭. Good bye Great adventures! Great tourist! :)



INFORMATION


- 주소 : Hotel Safari, Corner of Auas and Aviation Streets, PO Box 3900, Windhoek, Namibia

- 체크인 14시, 체크아웃 12시(정오)

- 시설 : 무료 아침식사 제공, 무료 무선인터넷, 주차장, 수영장 이용 가능, 에어컨, TV, 헤어 드라이어, 티 포트 및 커피와 간단한 티

- 연락처 : (대표번호) +264 61 296 8000, (예약용) +264 61 296 7180

- 이메일 : safari@safarihotelsnamibia.com / reservations@safarihotelsnamibia.com

- 홈페이지 http://www.safarihotelsnamibia.com/




JAN 2015

Liah


국제공항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규모가 아담한 호세아 쿠타코 공항. 규모는 작지만 빠진 것 없이 다 갖춘 깔끔한 모습이다.


빈트후크의 호세아 쿠타코 국제공항 (WDH)


인천 공항이었다면 3시간은 먼저 공항에 도착해서 발권, 출국 수속을 마쳤을 테지만. 이 곳 공항은 규모도 작고 이용 승객이 많지 않기 때문에 비행기 출발 1시간 반을 앞두고 공항에 도착했다. 나미비아에서 한국까지 돌아가려면 " 나미비아(빈트후크, WDH) → 남아공(요하네스버그, JNB) → 홍콩(HKG) → 인천(ICN) " 이렇게 3번의 비행기를 탑승해야 했는데, 나는 '대한항공'으로 예약된 (홍콩→인천) 구간의 비행편을 바꾸고 싶었다. 아시아나를 주로 이용하는 나에게 마일리지 면에서도 득이 되지 않고, 대기 시간이 긴 홍콩에서 라운지 또한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매우 불편했기 때문이다. 발권을 하면서 상담을 했더니, SA항공사 티켓 오피스로 가보라고 했다. 


SA항공사 티켓 오피스는 작은 창구 하나에 직원이 혼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천.천.히. 일처리를 하고 있었다. 줄이 길지 않았지만, 일처리 속도는 너무 느렸다. T.I.A (This is Africa!). 아... 여기 아프리카였지! 15분쯤 지났을까? 여전히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발권 데스크 직원이 나에게 와서 말을 건넨다. 수하물 게이트 이제 닫으려고 하는데, 지금 당장 발권을 하지 않으면 비행기 탑승을 보장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항공편 바꾸기는 포기하고 발권을 했다. 발권을 하고 보니 보딩 타임까지 10분도 채 남지 않았다. 출국 수속을 하고 보딩 게이트를 빠져나가니 탁 트인 탑승장에 비행기가 승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 아프리카의 일 처리 속도를 실감하게 해준 SA항공(남아프리카 항공) 티켓 오피스


△ 발권을 위해 대기 중인 승객들. 공항의 규모도 작지만 이용객도 많지 않아 한산한 모습이다.


여행과 모험 사이, 아프리카! 안녕!


나는 왜 여기 아프리카에 왔을까? 여행의 끝자락에 서니 여러 생각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여행에서 만난 친구들이 늘 묻는 질문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면 무엇을 하게 되니?" 그들의 질문에 나는 웃음기 쫙 뺀 얼굴로 루틴 라이프(Routine Life) 라고 힘없이 대답하곤 했다. 이제 해가 바뀌어 8년차 직장인이 되어 스스로 나를 돌아보니 즐거움은 잃었고, 때로는 삶의 무게에 짓눌려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스스로 선택한 일이었다. 지난 7년간 가까운 친구들, 동료들이 세계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창업에 도전을 하기도 하고, 그렇게 하나 둘 직장을 떠나 새로운 삶을 찾았다. 그들의 용기에 박수를 쳐줄 때도 있었고,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 그저 부러워 하기만 한 때도 있었다. 최근엔 나는 이런 저런 이유로 무척 힘이 들었다. 툭하면 눈물이 맺혔고, 매 순간 느닷없이 눈물이 났다. 나도 모르게 펑펑 울었다. 


여행자 신분인 나에게 아프리카에서의 시간은 느리게만 흘러갔고, 이 곳에서 나는 치열했던 내 일상에서의 그 당혹스러웠던 눈물의 이유를 찾았다. 긴 시간 나에게 가장 필요한건 '위로' 였다. 하루종일 흙 먼지를 뒤집어 쓰고, 해가 떨어진 뒤에는 텐트 옆에 따스한 불을 피워두고 아프리카에서 만난 친구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밤이면 새소리, 벌레 소리를 음악 삼아 침낭에서 잠이 들었다. 나는 해가 뜨고 지는 것과 같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의 평범함 속에서 위로를 받았다. 다시 한국에 돌아가서 일상을 마주할 자신은 없는데, 비행기는 야속하게도 하늘로 날아올랐다. 아마도 나는 평범한 '위로'가 그리워 다시 아프리카를 찾지 않을까. 안녕! 아프리카!


△ 나미비아(빈트후크, WDH) → 남아공(요하네스버그 OR 탐보, JNB)까지 운항하는 SA0071편. 비행 시간은 1시간 30분이다.


△ 호세아 쿠타코 국제공항 탑승장. 비행기까지 도보로 이동한다.


INFORMATION


- 주소: Hosea Kutako International Airport, Khomas, Namibia

- 전화번호 : +264 61 295 5600

- 홈페이지 : http://www.airports.com.na/hkia.php

- 운항노선 

 항공사

 목적지

 에어 베를린

 베를린

 에어 나미비아

 아크라, 케이프타운, 프랑크푸르트, 가보로네, 하라레, 

 요하네스버그(OR 탐보), 루안다, 루사카, 빅토리아폭포, 마운

 [국내] 카티마물리오, 오단가와, 월비스베이

 컴에어

 요하네스버그(OR 탐보)

 남아프리카 항공

 요하네스버그(OR 탐보)

 남아프리카 익스프레스

 케이프타운, 요하네스버그(OR 탐보)

 TAAG앙골라항공

 루안다, 루반고














JAN 2015

Liah


카투투라 타운십(Katutura Township)에 들렀다 나오는 길에 근처 소웨토 마켓에 들렀다. 역시 일요일이라 문을 연 가게가 많지 않다.



가난한 이들의 장터 소웨토 시장(SOWETO MARKET)


가난한 이들의 삶의 터전은 곧 시장이다. 일요일 오후라 문을 연 가게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기대했던 치열한 삶의 현장을 만날 순 없었지만 파랗게 늘어선 가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빈민들의 삶의 애환이 느껴졌다. SOWETO가 낯설지 않게 느껴진 것은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 들렀을때 그곳의 타운십 소웨토 지역(요하네스버그 남서부의 흑인 거주 지역)을 둘러보았기 때문일테지. 가이드인 엄 대표님께 남아공에서도 SOWETO에 들렀다고 말씀을 드리니 SOWETO MARKET은 그 곳과 같은 스펠링을 쓴다고. 아마도 시장 이름이 슬픈 타운십의 역사를 가진데에는 이유가 있을터였다.


△ 파란 하늘을 닮은 파란 담벼락의 소웨토 시장(SOWETO MARKET) 입구.


△ 상점들은 모두 동일하게 파란 페인트 칠을 했다. 입구 간판으로 가게 고유의 개성을 표출한다.


음식점, 뷰티살론(미용실), 세탁소 등등. 생활 밀착형 상점들이 자리잡고 있다. 흡사 TV 드라마에서 보던 구치소의 모습과 같이 한 평 남짓한 좁은 가게가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모든 상점이 똑같이 푸른 페인트 칠을 하고 하얀 철조망 벽을 가지고 각각의 번호표로 구분된다.


△ 한산한 일요일 오후의 소웨토 마켓(SOWETO MARKET)


아프리카 스타일로 머리를 땋고 싶다면 소웨토 시장(SOWETO MARKET)에서


직장을 쉬는 주말에 여자들이 머리를 하는 것은 만국 공통인가보다. 한국에서도 주말이면 미용실이 붐비는데 이곳 나미비아의 여성도 일요일에 미용실을 들리는 모양이다. 대부분의 가게가 닫았지만 몇몇 뷰티살론(미용실)에는 머리를 땋고 한껏 멋을 부리는 손님들이 앉아있다. 사진을 한장 찍어도 되겠냐고 정중히 물으니, 미용실 언니는 당연히 고객이 OK를 해야 한다고 손님께 직접 물어보라고 한다. 머리를 양손에 휘어 잡힌 채(?) 고개를 돌릴 수도 없는 손님의 귀에 대고 사진 한 장 찍어도 괜찮겠냐고 소리를 쳤다. 다소 예의에 어긋나지만 이런 재미있는 모습은 꼭 담아두고 싶은 욕심이 발동했다. 손님은 흔쾌히 사진을 찍으라 답을 한다.


△ 한가로운 일요일 오후. 붉은색 가발을 이어붙여 머리 손질을 하고 있는 나미비아 신여성


△ 사진 촬영을 하려면 손님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예의 있는 미용실 언니들. 뷰티살론(미용실) 가게 안은 의자 하나와 선반 하나가 전부이다. 손님이 앉아 있고 두 명의 직원이 머리를 붙잡고 있으니 가게가 꽉 들어찬다.


△ 장난꾸러기 청년들. 대부분의 상점들은 문을 닫았지만 이곳에 나와 친구와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다.


INFORMATION

- 주소 : Soweto market, Independence Avenue, Katutura, Namibia

- 운영 시간 : +264 61 290 2092 (※ 포스트 스트리트 몰에 위치한 빈트후크 시티 정보 사무실에 연락해 볼 것)





빈트후크(Windhoek)는 나미비아의 수도로 명실상부한 상업, 공업의 중심지이다. 독일의 정교한 도시계획에 의해 세워진 도시인 만큼 깨끗하게 잘 정비되어 있고 교회, 도서관, 미술관 등 중세 독일풍의 건물이 도시를 꾸미고 있다. 나미비아에 머무를 시간이 너무 부족했던 나는 빈트후크를 떠나는 일정의 마지막 날 오전 반나절 동안 짧게 시내와 카투투라 타운십을 둘러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나미비아의 수도이자 가장 발전한 도시인 빈트후크 이지만, 대중 교통이 거의 없는 아프리카에서 역시 혼자 투어를 하기는 역부족 이었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나미비아 현지의 한인 여행사 레드아프리카(RED AFRICA)의 가이드 투어를 예약했다. 레드아프리카 대표님 내외분은 먼 타지에서 나미비아를 찾는 손님을 위해 070인터넷 전화뿐만 아니라 카카오톡으로도 실시간 고객 상담을 해주셨고, 덕분에 나는 인터넷 연결이 어려운 아프리카 여행 중에도 빈트후크 투어를 예약할 수 있었다. 엄지족 세대의 마음을 사로잡는 편리한 예약 방법이 아닐 수 없다.



레드아프리카(REDAFRICA)와 함께한 빈트후크(Windhoek) 다운타운 투어

레드아프리카(REDAFRICA) 빈트후크 다운 타운 투어 루트

- 소요 시간 : 약 4.5 시간 (8:30 ~ 13:00)

- 비용 : 5만원

- 이동 경로 : ① 독일 루터 교회(Christuskirche), ② 베른 힐 공원 쇼핑몰(Wernhill Park), ③ 부시맨 기념품점(Bushman Art),  ④ 카투투라 타운십(Katutura Township)의 하바나 마을(Havana), ⑤ 소웨토 마켓(Soweto Market), ⑥ 독립기념 박물관(Independence Memorial Museum)

- 특이 사항 : 일요일에는 대부분의 상점들이 문을 닫기 때문에 시내 상점들을 둘러보는 대신에 빈트후크 인근 카투투라(KATUTURA)에서 한국인 선교사가 운영하는 하바나 빈민촌의 주일 학교에 들르기로 했다. 비행기 출발 시간이 오후 2시 25분이었기 때문에 1시까지는 공항에 가기로 하고, 오전 8시 반부터 반나절 동안 바지런히 빈트후크 구석구석과 카투투라에 다녀왔다. 일요일이 아닌 평일에 방문한다면 시내에서 더 많은 상점과 기념품 가게들을 둘러 볼 수 있으니 참고할 것.


약속한 8시 반이 되자 빨간 JEEP를 타고 대표님이 호텔 앞에 나타났다. 역시 먼저 건네신 말은 "여자분이셨네요 !!" 이쯤 되면 앞으로 모든 투어 예약할 때 메일에 꼭 여성이라는 표시를 해두어야겠다. 보이시한 이름을 가진 덕분에 나야 늘 겪는 일이라 익숙하지만, 상대방은 가끔 당황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대표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차에 올랐다. 엄주환(UM Jay) 대표님은 지난해 가족들과 함께 이곳 나미비아에 정착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무척 젊은 분인 줄 알았는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초등학생 아들이 둘이나 있으시다고. '대표님 동안이세요~!' 혼자 여행길에 나섰다가 머나먼 타지에서 삶을 꾸려가는 한국인들을 보면 괜스레 정이 가고, 평소보다 말이 많아져서는 조잘조잘 이런 저런 질문들을 하곤 한다. 이번에도 예외 없이 어떻게 나미비아에 오시게 되었는지, 이곳에서의 생활을 어떠한지 폭풍 질문을 쏟아내는 와중에 벌써 첫 번째 목적지에 도착했다.


△ 빈트후크의 상징. 독일 루터교 교회 크리스투스키르헤(Christuskirche)


대부분의 상점들이 9시가 되서야 문을 여는데, 오늘은 일요일이라 그나마도 문을 연 곳이 없을 거라고 한다. 아직 9시가 되지 않은 이른 아침 가장 먼저 들른 곳은 독일 루터교 교회인 크리스투스키르헤(Christuskirche)이다.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있는 교회 건물이 무척 웅장해보였다. 고개를 젖히고 하늘 높이 솟은 지붕을 바라보고 있자니 머리가 핑그르 돈다. 여행 내내 먹었던 말라리아 약 부작용이 사라진 줄 알았는데 아직도 적응이 안되었나 보다. 교회 맞은편에는 독립기념관이 위치하고 있었는데, 독립기념관이 오픈하기 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서 잠시 후에 다시 들르기로 하고 자리를 옮겼다.

독일 루터 교회 크리스투스키르헤(Christuskirche)

- 주소 : Robert Mugabe Avenue, Windhoek, 나미비아

- 위키피디아 : http://en.wikipedia.org/wiki/Christ_Church,_Windhoek

- 빈트후크 하늘을 찌를듯 높이 솟아있는 교회(Christuskirche)는 신 고딕과 아르누보 양식으로 독일의 신교파인 루터 교회에 의해 1910년에 건설되었다. 


빈트후크에서 기념품을 사시려면 부시맨 기념품점에서~!


빈트후크(Windhoek) 시내에 위치한 부시맨 기념품점(BUSHMAN ART) 전경. 대부분의 상점이 닫은 일요일이지만 홀로 문을 열고 관광객을 맞는다. 덕분에 저렴한 가격에 나미비아 기념 자석과 엽서, 우표를 구입했다. 여행 중에 써놓은 포스트카드를 한국으로 보내려고 우표를 구입하니, [BY AIR MAIL PAR AVION] 표시를 함께 챙겨주신다. 국제 우편에는 이 스티커를 함께 붙이면 더 빨리 도착한다고 친절한 설명과 함께.


△ 빈트후크(Windhoek) 시내에 위치한 부시맨 기념품점(BUSHMAN ART)


△ 빈트후크(Windhoek) 시내. 부시맨 기념품점(BUSHMAN ART) 앞에 익살스럽게 자리한 부시맨 동상


부시맨 아트 기념품점 (BUSHMAN ART)

- 주소 : 187 Independence Ave (P.O.Box 20165), Windhoek, Namibia

- 전화 : +264 61 22 8828

- 이메일 : bushmanart@iafrica.com.na

- 홈페이지http://www.bushmanart-gallery.com/

- 운영시간 : 매일 09:00~17:00 (※ 일요일의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았는데 오픈한 거의 유일한 기념품점 이었다.)


쇼핑의 거리 베른힐 공원(Wernhill Park) 초입에 위치한 기베온 운석(Gibeon Meteorites)


△ 포스트 스트리트 스트리트몰(Post Street Mall)에 전시된 기베온 운석(Gibeon Meteorites). 1938년 제임스 알렉산더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그 중 33개의 운석이 이곳에 전시되어 있었다. 대단한 도둑이 운석을 훔쳐간 덕에 현재는 30개만 남아있다. 기베온 운석은1950년 국가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베른 힐 공원 쇼핑몰 (Wernhill Park)

- 주소 : Wernhil Park Shopping Centre, Corner Fidel Castro and Mandume Ndemufajo Street, Windhoek (P.O. Box 16) Namibia

- 전화 : +264 61 37 45 45

- 홈페이지http://www.wernhilpark.com/


마트에서는 재미있는 상품도 판매하고 있다. 초와 액자에 정치인의 사진을 새겨 판매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돈으로 초는 약 3천원, 액자는 5천원 정도이다. 이름을 찾아보니 대통령은 아니었는데, 그의 얼굴이 새겨진 상품이 이렇게 마트의 가장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대단한 정치인인 모양이다.


△ 정치인(Kuaima Riruako)의 얼굴이 새겨진 액자와 초. 


△ 주소가 없는 빈민촌의 집들은 대형 마트 앞의 우편함을 연간으로 구입해서 사용한다고 한다.


카투투라 타운십(Katutura Township), 하바나 마을소웨토 마켓(Soweto Market)을 다녀오니 어느덧 해가 중천에 걸렸다. 잠시 햇살이 드리운 교회에 들러 사진을 찍고, 다시 독립기념관으로 향했다. 



북한에서 건설한 나미비아의 독립기념관(Independence Memorial Museum)


△ 북한에서 수주해서 건설한 나미비아 독립기념 박물관


△ 벽화나 동상도 북한 느낌이 물씬난다.

나미비아 역사 이야기


남아프리카에서 살기 시작한 최초의 거주민은 가장 혹독한 지형에서조차 적응할 수 있었던 대가족집단으로 구성된 유목민인 산(San)족이었다. 나중에 산족은 코이코이(Khoi-Khoi)족에게 몰리게 된다. 코이코이족은 사냥을 하기보다는 가축을 기르는 부족이었으며 고고학적인 기록에 따르면 최초로 도자기를 제조한 부족의 하나였다. 그들은 남쪽에서부터 와서 점차 산족을 몰아내고 AD1500년경까지 나미비아지역을 통치하게 된다.코이코이족과 산족의 후예들이 여전히 나미비아에 살고 있지만 그들의 전통적인 생활양식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2천3,4백년전에 처음으로 반투족이 나미비아 남중부의 고원지대에 나타나게 된다. 반투족이 등장함으로써 남아프리카 사회에 최초로 부족의 구조가 형성된다. 다른 부족들은 사막이나 오카방고 삼각주(Okavango Delta)의 늪지대로 쫓겨나거나 반투족의 노예가 된다. 나미비아에는 세계에서 가장 메마르고 황량한 해안선이 있기 때문에 유럽의 개척자들은 대부분 나미비아 지역을 무시하게 된다. 이곳에 도착한 첫 번째 유럽인은 15세기말에 인도로 가는 길을 찾던 포르투갈의 선원들이었지만 항해의 길잡이로서 해안을 따라 일정한 지점에 석조 십자가를 세우는 것으로만 활동이 한정된다. 


19세기말이 되어서야 나미비아는 1878년에 영국이 점령한 콜로니곶(Cape Colony)이었던 월비스만(Walvis Bay)을 제외하고 독일에 합병된 마지막 식민지 각축장이었다. 1904년 반투어를 사용하며 소를 기르던 헤레로(Herero)족이 폭동을 일으키지만 잔인하게 진압되고 만다. 한편 남부에서는 남아프리카 노동자들이 뤼데리츠(Lüderitz)에서 다이아몬드를 발견하게 된다. 모른척하면서 독일당국은 뤼데리츠와 오렌지강(Orange River)사이의 전지역을 슈페르게비트(sperrgebiet) 즉 '금지구역'으로 지정한다. 독일의 지배는 1차 세계대전동안 독일군이 연합군을 위해 싸우던 남아프리카 원정군에 항복하였을 때 끝나게 된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남아프리카는 국제연맹이 정한대로 나미비아지역(그후 서남아프리카(West South Africa)로 알려짐)을 지배하는 위임통치를 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후에 유엔이 남아프리카에 위임통치를 계속하게 하지만 남아프리카가 나미비아를 노골적으로 합병한 것은 승인하지 않는다. 아무런 저항도 없이 남아프리카 정부는 나미비아지역에 대한 지배를 강화하게 되며 1949년 백인인구에게 의회선출권을 부여하기에 이른다. 남아있던 나미비아 대부분의 농장이 백인 정착민이 소유한 6000여곳의 농장에 분배되는 한편 흑인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은 법에 의해 '소유제한'으로 금지된다. 독일에 합병된 이래로 대부분의 나미비아인들은 강제노동자로 전락하였으며 이것은 1950년대 말 대중시위와 민족주의가 등장하는 주요한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즈음에 여러 정당이 형성되고 파업이 조직화된다. 


1960년까지 대부분의 정당이 남서 아프리카 인민단체(South West Africa People's Organisation (SWAPO))을 형성하기 위해 합병되고 남아프리카의 점령문제는 국제재판소에 뜨거운 안건이 된다.국제재판소의 재판결과는 결론에 이르지 못하지만 1966년 유엔회의는 남아프리카의 위임통치를 끝맺는 것에 대해 가결하고 나미비아 지역을 관리하기 위해 남서아프리카 의회(Council for South West Africa)를 세우게 된다. 그와 동시에 SWAPO는 게릴라 전법을 채택하지만 유엔이 나미비아에 국내정부를 세우지 못함으로써 남아프리카가 지배권을 주장하기가 더 쉽게 된다. 남아프리카는 약 1만9천명의 쿠바군이 이웃국가인 앙골라에서 철수하지 않으면 나미비아의 독립에 대하여 유엔이 감독하는 어떤 프로그램에도 협조하지 않을 것이라고 거부했다. 이에 대응하여 SWAPO는 나미비아 북부지역으로 활동을 엄하게 제한하면서 게릴라활동을 강화하게 된다. 나미비아 국민들은 전쟁에 지치게 되고 경제는 심하게 악화된다. 1985년까지 남아프리카 역시 돈에 쪼들려 고생하고 있었으며 자체내의 내부문제로 정신이 없었다. 유엔이 지원한 협약으로 남아프리카군이 나미비아에서 떠나면 쿠바군도 앙골라에서 떠날 것을 보증하게 된다. 


유엔의 감시하에 1989년 11월에 선거가 실시되고 SWAPO가 막대한 다수표를 얻게 된다. 헌법이 1990년 2월에 채택되고 다음달에 SWAPO의 지도자인 샘 누요마(Sam Nujoma)가 대통령직을 맡으면서 독립을 하게 된다. 누요마는 1994년에 재선되고 혼합경제와 민간부분과의 협력을 유지하면서 나미비아의 재건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누요마는 1998년 3월에 나미비아의 통화를 남아프리카의 랜드화와 제휴하게 된다.


- 신발끈여행사 발췌


△ (좌) 독립기념 맥주 (우) 김일성 주석과 나미비아 독립 후 초대 대통령이 함께 찍은 사진


△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시절 핍박받는 원주민들.


△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독립기념관(Independence Memorial Museum) 전경

나미비아 독립기념관(Independence Memorial Museum)
- 주소 : Robert Mugabe Ave City Centre (P.O. Box 1203), Windhoek, Namibia
- 전화 : +264 61 293 4362
- 운영시간 : 9:00 ~ 18:00(월~금), 10:00~12:00(토~일)
- 2014년 3월 24일 공식적으로 개관한 나미비아 독립기념관은 북한에서 수주하여 2013년 완공한 건축물이다. 동상이나 벽화 등 북한풍 장식품을 박물관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전시품은 1층에서는 식민 통치 시대(Colonial Repression), 2층은 해방 전쟁(Liberation War), 3층은 독립 역사관(Road to Independence history panorama)으로 자료가 구성되어 있다.


독립기념관을 둘러보고 공항으로 향하려는데 한 청년이 손에 쥐고 있는 열쇠고리를 보여준다. 가이드를 하는 내내 상세한 설명을 해주시던 엄 대표님께서 이름을 불러주면 열쇠고리에 이름을 직접 새겨주는데 그 솜씨가 무척 좋다고 기념품으로 권해주신다. 마칼라니 야자 열매(Makalani Palm Nut)에다가 아프리카의 동물들과 관광객의 이름을 새겨 판매하는 것인데, 아이디어도 좋을 뿐 아니라 보기에도 예뻤다. 하나를 구입하기로 하고 즉석에서 스펠링을 불러주니 곧바로 이름을 새겨주는데 솜씨가 기가 막힌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가족들 것을 하나씩 선물로 구입할 걸 그랬다. 


△ N$35(한화 4,000원)의 저렴한 가격의 열쇠고리를 기념품을 하나 더 구매하기로 했다. 


△ 이름 (LIAH.CHA)를 새기고 있는 청년.


나미비아의 기념품! 마칼라니 야자 열매(Makalani Palm Nut)를 깎아 만든 열쇠고리

- 가격 : N$ 30~50 (한화 3,000~5,000원)

- 제작 시간 : 5분미만

- 구입 장소 : 독립기념관 앞 (교회 앞에도 있다)에서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열쇠고리를 들고 접근해온다. 


△ 독립기념관(Independence Memorial Museum)에서 내려다본 빈트후크(Windhoek) 시내


빈트후크를 떠나려는데 여전히 하늘엔 구름 한 점 없다. 우기인 탓에 여행 내내 하루 한차례 씩은 소나기가 퍼부었는데, 여행의 마지막 날 하늘은 맑기만하다. 

레드아프리카(RED AFRICA) INFORMATION


- 주소 : PO BOX 90854 WINDHOEK, NAMIBIA

- 전화 : +264 81 347 2156 (한국에서) +82 70 4655 6149 (카카오톡) redafrica

- 이메일 : redafrican@naver.com

- 블로그http://blog.naver.com/redafrican

- 홈페이지http://www.redafrica.co.kr/

- 투어비용 : 빈트후크 City & Township 투어 5만원, 공항 픽업/드롭 서비스 1인-3.5만원/2인-5만원  (2015년 1월 기준)

                  (시내 상점이 대부분 문을 닫는 일요일은 빈민촌 투어 등으로 변경 가능)

 



한아름게스트하우스에서 숙박을 하게 되면 조식과 석식은 따끈한 한식이 제공된다. 그 중에서도 석식은 사장님께서 운영하시는 한식당인 대장금을 이용하게 되는데, 다양한 메뉴에 먹고 싶은 한국음식을 마음껏 고를 수 있다.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도 음식 솜씨 좋기로 소문난 대장금 사모님은 <서울떡집>도 운영하신다고. 떡집(?)은 게스트하우스 뒷마당에 터를 잡고 직접 떡을 뽑아내신다. 대장금은 식당 규모가 작지 않아 직원도 꽤 여러 명이 있었는데, 마침 내가 방문했던 날은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사모님은 크리스마스 이브 머니(일명 보너스)를 직원들에게 직접 나누어 주시며 덕담을 아끼지 않는다. 사장님 내외분은 이 먼 곳에서도 한국의 훈훈한 인심을 널리 알리는 애국자가 아닌가.


남아공에서 한국의 맛을 그리다. 한식당 대장금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날이 날이니 만큼 혼자 숙소에서 보내기 싫었던 나는 식사를 마치고 함께 사장님 내외분을 따라 한인 교회 성탄절 축하행사에 가기로 했다. 사장님은 요하네스버그에서 약 200km 떨어진 곳에서 좋은 일을 하고 계신다는 서대경 선교사님 가족을 만나 함께 저녁 식사를 하신다고 했다. 그 일정에 감사하게도 나를 초대 해주셨는데, 덕분에 나는 오늘 하루 일정을 함께하며 게스트하우스에서 함께 묵게 된 "아부다비에서 아들과 휴가를 보내러 오신 이 집사님 가족", "어여쁜 세 딸과 함께하신 선교사님 부부", "대장금 사장님 부부" 이렇게 좋은 분들과 함께 풍성한 저녁 식사 자리를 함께 했다.


△ 한식당 대장금(Korean Restaurant DAE KANG KUM) 전경. 치안이 좋지 않은 요하네스버그지만, 안전한 동네 샌톤(SANDTON)에 위치하고 있다.


대장금에는 내가 상상도 못할 만큼 다양한 한국 음식이 있었다. 가히 모든 한국 음식을 섭렵한 대단한 주방장이다 싶었는데. 사모님께서도 직접 음식을 하시고 현지에서 고용한 친구가 한국 음식을 꽤 잘한다고 한다. 한국에서 주방장을 모시고 오면 비용이 만만치 않은데, 이 친구가 한국 음식을 잘 하는 덕분에 사모님이 한시름 놓인다고 했다. 얼마나 잘하느냐 하니, 사모님이 감자탕을 하려고 돼지고기 뼈를 사놓으면 이 친구가 물에 담가 핏물을 빼놓고, 김치찌개며 순두부찌개며 한국의 얼큰한 맛을 그대로 낸다고. 내가 주문한 순두부 찌개도 얼큰하고 맛이 있었다. 게다가 짜장면, 짬뽕, 순대볶음, 나오는 음식마다 모두 맛이 있었다. 내 입맛에는 간이 조금 세게 느껴졌지만 내가 싱겁게 먹는 편인걸 감안하면 한국에서 먹는 음식 맛과 진배없이 훌륭했다. 식당 안에서 만큼은 한국에 돌아와 있는 기분이었다.


△ 그리운 집밥이 생각나는 따끈한 한식 메뉴. 된장찌개, 김치찌개, 순두부 찌개, 감자탕까지!! 없는게 없다.


△ 다양한 분식. 김밥, 라면, 떡볶이에 이르기까지 한국에서 맛볼 수 있는 모든 분식들 뿐만 아니라 

짜장면, 짬뽕, 군만두 등의 중식도 먹을 수 있다. 그야말로 남아공 만능 식당.


하루종일 이곳 저곳 관광을 하고 다닌 터라 몹시 배가 고팠는데, 밑반찬부터 정갈하게 준비되었다. 그 중에서도 오이김치와 감자채 볶음은 어렸을때 엄마가 해주시던 반찬 맛 그대로였다. OMG! 메인 요리가 나오기도 전에 반찬으로 배를 채우고 있는데, 아이들이 많으니 계란 반찬이 역시 인기가 있었는데, 계란 반찬 그릇이 깨끗이 비워지니 금방 계란이 가득 담긴 반찬 접시를 새로 내온다. 해외에 나오면 야박한 인심(?) 때문에 한국이 그리워 진다는데, 한국에만 있는 반찬 무한 리필 문화를 해외에서 만나니 반갑기 그지 없었다.


△ 한식당에서만 만날 수 있는 푸짐한 밑반찬. 밑반찬 만으로도 밥 한 공기 뚝딱 비울 수 있을 만큼 푸짐했다.


잠시 기다리는 동안 지루하지 않게 사장님께서 한국 TV 프로그램들을 틀어주셨는데, 곧 음식들이 나왔다. 꿀 맛이었다. 그 중에서도 순대볶음은 정말 일품이었는데, 향긋한 깻잎향과 달콤한 소스의 순대 맛에 시원한 맥주 한 잔이 자꾸만 떠올랐다. 나는 여행을 다니면서 한식 보다는 현지 음식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래도 언제 한식을 또 만날 수 있을지 모르니 먹을 수 있을 때 맛있게 먹어두자는 기분으로 공기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나의 아프리카 여행 중에서 이날 대장금에서의 저녁식사와 그 다음날 게스트하우스에서의 아침식사가 마지막 한식이었다.


△ 사장님이 주문하신 순대볶음


△ 내가 주문했던 얼큰한 순두부찌개


조벅(요하네스버그, Johannesburg)에는 대장금 외에 아리랑이라는 한식당도 있다. 이 곳에 나와 있는 한국 기업들 삼성, LG, 현대 등의 주재원이나 지역전문가들은 이 곳 대장금 식당을 자주 이용한다고 한다. KOTRA에서 발행한 남아공 출장가이드, Business정보에서도 한식당으로 대장금을 1번으로 소개하고 있다. 푸근한 인심으로 덤을 잔뜩 얹어 주시는 사모님 덕분에 나 또한 망설임 없이 요하네스버그 최고의 한식당으로 대장금을 추천한다.


INFORMATION


- 메뉴 : 한식, 분식, 중식 등 다양한 메뉴 

- 주소 : SHOP 22 EARLY DAWN MALL No.20, 9th AVE RIVONIA, EDENBURG SANDTON 2128, SOUTH AFRICA

- 전화번호 : +27 - 11 - 234 - 7292 (한국에서) +82 - 70 - 4064 - 4909

- 운영시간 : 10:00 ~ 22:00 (일요일은 15:00 ~ 22:00)

- 이  메 일 : tonyhansa@hotmail.com





2014년을 마무리하고, 2015년을 맞이하게 될 이번 여행. 


조금 이른 퇴근을 하고 인천 공항행 리무진에 4시 쯔음 탑승했는데 6시가 넘어서도 공항에 도착하지 못했다. 퇴근길 서울 시내 교통체증을 예상은 했지만 마음이 점점 초조해졌다. 비행기 출발 시간 1시간 30분을 남겨 두고 공항에 도착해서 헐레벌떡 발권을 하러 갔다. 내가 마지막으로 발권을 한 고객이라고 한다. 점심도 먹지 못했던 터라 배가 많이 고팠다. 비행기에 탑승하면 곧 바로 저녁을 먹을테지만 라운지에 들러서 죽과 간단한 샌드위치로 요기를 했다. 


아시아나 항공 A380 비즈니스 스마티움의 고품격


항공기에 들어서니 친절한 스튜어디스가 좌석 번호를 확인하고 2층으로 안내를 해주었다. 아시아나 항공 A380의 비즈니스 스마티움 좌석은 모두 항공기의 2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비즈니스 스마티움 탑승은 이번이 처음이다. 예전에 탑승했던 비즈니스보다 확실이 넓고 편리했다. 180도로 수평으로 펼쳐지는 침대형 좌석은 다리를 쭉 뻗고 잠을 잘 수 있었고, 옷걸이 등 편의 시설도 모두 편리했다. 


△ 아시아나 항공 A380 (인천-홍콩). 아시아나 항공의 비즈니스 스마티움 좌석은 지그재그로 배치되어 있고, 모니터 아래 부분으로 다리를 쭉 뻗을 수 있게 되어 있다. 모니터는 편리한 리모콘과 터치스크린으로 모두 조작이 가능하다.


△ 아시아나 항공 A380(인천-홍콩) 비즈니스 스마티움.


비즈니스 스마티움은 처음이었기에 사진을 좀 찍어두려고 했는데, 거의 마지막으로 비행기에 탑승을 한 덕분에 다른 승객들이 많아 사진 찍는건 자제하기로 했다. 비행기에 탑승하자마자 벌써 잠이 든 승객들도 있었기 때문에 민폐가 될 것 같았다. 조용히 책을 꺼내들고 앞으로 2주 동안의 여정을 사전 학습(?) 하기로 했다. 이번 여행은 사전에 준비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긴 비행 시간을 이용하기로 했다.


△ 좌석을 다양한 각도. 180도까지 수평으로 조절할 수 있는 버튼.


책을 읽기도 잠시, 제공되는 기내식을 먹고 나서 잠시 눈을 붙이니 벌써 홍콩에 도착했다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조벅(요하네스버그)까지 환승구간 시간이 1시간 20분으로 짧았기 때문에 서둘러 짐을 챙겨 탑승동으로 향했다. 홍콩 공항에 도착하니 요하네스버그행 항공편(SA287) 탑승까지 짧은 연결 시간으로 인해 SA항공사 직원들이 직접 마중나와 승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에서 출발해서 SA287편으로 환승할 승객들은 약 10명 정도 되었다. 직원이 발걸음을 재촉하며 우리들을 인솔해 이동했다.


△ 요하네스버그행 항공편(SA287) 탑승 고객을 위한 SA항공사의 친절한 안내문구.


곧바로 요하네스버그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대부분의 승무원들은 흑인이었고, 중국어를 할 수 있는 홍콩 직원이 한 명 보였다. 키가 큰 스튜어디스가 나를 반기며 "You have beautiful skin !" 을 외친다. 좌석으로 나를 안내하는 내내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인다. '아름다운 미소를 지어보이던 그녀'가 나에게는 아프리카에 대한 첫 인상이었다.



아프리카에 여행하기로 하니 예방접종과 비자 사전발급이 필수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도착 비자이지만 나미비아는 입국 전 비자를 반드시 준비해야 했는데, 우리나라에는 나미비아 대사관이 없기 때문에 가까운 국가 중국, 일본 등의 대사관을 이용하여 나미비아 비자를 발급받아야 했다. 아프리카 여러 나라를 여행하는 경우라면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손쉽게 발급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케이프타운이 아닌 요하네스버그에 머무르게 되는데 요하네스버그에서 나미비아 비자를 받으려면 워킹데이로 3일이 필요하다고 한다. 내가 머무는 기간 중 12월 25일, 26일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공식 휴일이므로, 아프리카에 도착해서 비자를 받기도 녹록치 않은 상황이었다. 


결국 여행사의 도움을 받기로 하고 G Adventures의 국내 에이전시인 신발끈여행사에 SOS를 요청했다. 국내에서 나미비아 비자 발급 받을 수 있는 곳을 직접 알아봐 주셨는데, 양재동 뱅뱅사거리에 있는 나미비아 비자 발급대행 사무소를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무려 20만원이나 하는 비용을 요구했지만, 출국일까지 2주 밖에 남아있지 않아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 주한 나미비아공화국 대표부라는 안내가 부착된 나미비아 비자 대행 사무실 입구.


여권을 맡기고 20만원을 입금한 며칠 후, 일본측 대사관이 일주일 동안 휴일에 들어간다는 다소 황당한 핑계를 대며 10만원 급행 비용을 더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후회가 막심이었지만 시기적으로도 다른 대행사를 이용할 수 없을 만큼 늦었고, 무엇보다 내 여권을 쥐고 있는 건 그쪽이었다. 여권을 맡긴 여행자는 약자일 수밖에 없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10만원을 더 입금하고 며칠이 지나 나미비아 입국이 가능한 도장이 찍힌 여권이 다시 내 손에 돌아왔다.


△ 무려 30만원짜리 나미비아 입국 비자.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나미비아 비자를 발급을 받으면 470랜드(한화로 약 5~6만원)면 받을 수 있다. 나는 무려 다섯배나 비싸게 비자를 받은 셈이다.   


여러 예방접종을 한꺼번에 한 탓에 몸도 힘들고, 나미비아 비자 사건으로 정신도 힘들고, 아프리카 여행은 준비단계부터 예전의 여행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번 여행에서 나미비아 일정은 단 이틀 뿐이었다. 이틀의 여행을 위해 30만원의 거금을 주고 비자를 발급 받은 셈이다. 비자를 비싸게 받은 김에 휴가 며칠 더 내고 나미비아 일정을 늘려볼까 하는 욕심도 났지만, 일정 조정도 어려운 실정이라 (그냥 좋은 공부 한 셈치고 , 기분이 썩 좋진 않았지만 여행 전에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아) 그냥 잊기로 했다. 


[2015. 1월 추가] 드디어 나미비아 입국. 나와 함께 여행하는 다른 국가의 친구들 (미국, 영국, 스위스, 벨기에, 핀란드, 남아공, 케냐)은 나미비아 입국심사대에서 모두 도착 시 비자를 발급 받았다. 도대체 왜 대한민국만 비자 협정이 되지 않아 사전 비자가 필요한 건지 속상하고 서운한 마음은 감출수가 없었다. 

나미비아 비자 발급 Tip


① 한국에서 나미비아로 바로 입국 한다면

- 만약 꼭 한국에서 나미비아 비자를 사전에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레드아프리카(나미비아 현지 여행사)를 이용하자. 조금 더 저렴한 비용으로 비자 발급이 가능하다.  - http://blog.naver.com/redafrican/220241332973


② 한국에서 아프리카 인접국을 거쳐 나미비아로 입국 한다면

- 남아프리카공화국(케이프타운) 일정을 3일 정도 추가하여 비자 발급을 받자. 


③ 위의 ①, ②의 방법이 모두 어려운 경우라면 서울에서 발급받는 방법(아래)이 있지만 추천하지는 않는다. 


나미비아 비자 발급 대행 사무소 @서울


- 주소 :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1340-12 고베르 빌딩 2층

           서울시 서초구 강남대로길 47길 14(서초동)

           나미비아 공화국 비자 신청 서비스 사무소

- 전화 : 02-3487-3103 / 02-522-0728

- 이 메  일 : namibia_visa@naver.com

- 업무시간 : 월~금 오전 10시~오후 5시 (점심시간 제외)

- 준 비 물 : 여권, 여권사진 2매, 항공티켓, 투어 바우처, 신청 서류

- 비용 : 20만원. (급행일 경우 30만원 요구)

- 비자 승인 소요 시간 : 주중 약 14일, 급행일 경우 7일 미만




△ 용경협(龍慶峽, Long Qing-Xia)의 등룡비폭


■ 북경 16경, 산과 물의 걸작 용경협(龍慶峽, Long Qing-Xia)


   - 주소 : 中国北京市北京延庆县龙庆峡风景区, Longqingxia Scenic Area, Guchengcun, Jiuxianzhen, Yanqing, Beijing, 102109

   - 전화 : +86 10 6919 1020

   - 홈페이지 : http://www.bjlongqingxia.com.cn/

   - 입 장  료 : 40元, (유람선 포함가격 140元)

   - 운영시간 : (4月10日~11月15日, 1月15日~2月末) 07:30 ~ 16:30

   - 찾아가는 길 : 지하철 2호선 지수이탄(积水潭, 적수담)역 내려 더성먼(德胜门, 덕승문) 장거리 버스정류장에서 919번 탑승

                        → 옌칭셴청(延庆县城,, 연경현성)에서 내려서 920번(소형)버스로 환승



베이징에서 북동쪽으로 85km 떨어진 곳에 있는 협곡으로, 1973년 댐이 건설되면서 인공호수가 만들어지면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북경 16경[각주:1]의 하나로 북경의 소계림(小桂林) 또는 장강소삽협(長江小三峽)이라도 일컬어지기도 한다. 서늘한 기후 덕분에 한여름에는 북경 시민들의 최고의 피서지로, 한겨울에는 빙등제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


용경협이 가장 아름다운 계절은 역시 여름이다. 북경보다 약 6도 정도 낮은 온도로 깊은 협곡의 맑은 물과 웅장한 산세는 피서지를 찾은 관광객들에게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겨울에는 호수가 얼어붙어 협곡을 돌아보는 유람선을 탈 수 없다. 대신 하얼빈 빙등예술축제와 함께 손꼽히는 용경협 빙등제가 1월 중순부터 2월말까지 열린다. 다양한 주제로 오색찬란한 불빛을 머금은 아름다운 얼음 장식은 마치 우주 공간에 떠 있는듯한 착각마저 느끼게 한다.


△ 용경협(龍慶峽, Long Qing-Xia)에 새겨진 '용경협 강택민(龍慶峽 江澤民)'

1992년 5월 당시 강택민 주석이 이곳을 방문해 이름을 용경협으로 명명하고

용경협 입구 건너편 산과 계곡에 붉은 글씨로 ‘龍慶峽 江澤民’을 암각해 놓았다.


△ 용경협(龍慶峽) 매표소 - 입장료 40元 (유람선 포함가격 140元)


△ 용경협(龍慶峽) 입구에 들어서자 마자 관광객을 맞이하는 조형물


■ 룽칭샤(龍慶峽, 용경협) 소개 (출처: 베이징관광국)


베이징 시내에서 8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룽칭샤(龙庆峡, 용경협)은 국가 4A급 관광지로 베이징시 풍경 명승지이며, 옌칭셴청(延庆县城,, 연경현성) 북부에 위치해 있다. 바다링(八达岭, 팔달령)고속도로를 타고 옌징셴청까지 가서 순환선(环线)으로 갈아타면 도착할 수 있다. 1987년에 개방되었으며, 현재까지 방문한 관광객 수가 약 80만 명에 이른다.

전체 길이는 7킬로미터에 수면의 너비는 30~50미터에 이르는 룽칭샤의 양쪽에는 가파르고 험준한 벼랑이 높이 우뚝 솟아 있으며, 독특하고 험준한 산 형태와 함께 큰 댐으로 가로막힌 계곡 입구가 관광객들을 반긴다. 물이 산 주위를 둘러싸고 있어 수려한 풍경의 천연 협곡을 자랑하고 있으며, 베이징 교외 3대 협곡 중의 하나로 "샤오싼샤(小三峡, 소삼협)", "샤오리쟝(小漓江, 소리강)"으로 불린다.


높이 72미터, 길이 90미터의 철근 콘크리트 이중 구조로 되어 있는 룽칭샤 협곡 입구에 있는 댐은 내부에 850만 세제곱미터의 물을 저장할 수 있으며, 수면 면적은 34만 평방미터에 이른다. 저수지에 물이 가득 차면 주변에 있는 여수로(溢洪道)를 통해 밖으로 내보내게 되는데 급류가 밑으로 하강하면서 구름과 안개가 자연스럽게 형성돼 아름다운 폭포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댐 양끝에는 남쪽과 북쪽으로 갈 수 있는 터널이 각각 있는데, 약 300미터 길이의 남쪽 터널은 산 바깥으로 갈 수 있고, 약 100미터 길이의 북족 터널은 베이촨타이(北船台, 북선)로 갈 수 있다.


험준한 산벽 위에 지어진 258미터 길이의 텅룽(腾龙, 등룡) 에스컬레이터는 룽칭샤 관광지 내부로 들어가는 용(龙) 형태의 통로로 아시아에서 제일 큰 실외 밀폐식 롤러 에스컬레이터이다. 에스컬레이터를 타면 바로 유람선 부두에 도착하는데, 이 곳에서 룽칭샤의 깊숙한 골짜기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수려한 풍경을 자랑하는 협곡 내부는 거울과 같이 깨끗한 물, 깎아지른 듯한 절벽, 험준한 봉우리 및 괴석(怪石) 등이 있으며&nbsp;산봉우리, 돌에 새겨진 흔적(石锥), 석검, 돌기둥, 종유동굴 등도 있다.


룽칭샤는 북방산맥의 웅장함과 남방풍경의 수려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주요 경관으로는 구청옌수(古城烟树, 고성연수), 다바슝리(大坝雄立, 대파웅립), 전산루라이(镇山如来, 진산여래), 쳰포선칸(千佛神龛, 천불신감), 셴런두이이(仙人对弈, 선인대혁), 모야오구수(磨腰古树, 마요고수), 진강구차(金刚古刹, 금강고찰), 펑관다오(凤冠岛, 봉관도), 위황딩(玉皇顶, 옥황정), 선셴위안(神仙院, 신선원), 바이화둥(百花洞, 백화동) 등 40개가 넘는다.


서늘한 기후를 자랑하는 한여름의 룽칭샤는 공기가 맑고 상쾌하며, 기온이 베이징 시내보다 6도, 베이징 북부에 위치한 청더(承德, 승덕)의 비수산좡(避暑山庄, 피서산장)보다 0.8도가 낮다. 겨울에는 날씨가 매우 추워 결빙기간이 비교적 긴 편이어서, 1987년부터 매년 1월부터 2월말까지 빙등예술제(冰灯艺术节)를 열어 왔으며, 현재까지 20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룽칭샤 빙등예술제는 하얼빈(哈尔滨)의 빙등유원회(冰灯游园会)에 이어서 중국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빙등예술전시회이며, 세계 여러 곳에서 열리는 대규모 옥외 빙등예술제 중 위도가 제일 낮다.


관광지 내부에는 크고 작은 유람선이 200여 척 가까이 있으며, 그 중 환경보호 연료를 사용하는 중대형급 유람선이 35척, 소형 유람선은 150척이 넘는다. 현재까지 이 곳을 방문하는 관광객 수는 하루 평균 18,000명에 이르며, 음식점, 숙소 등 관광 서비스에 부합하는 시설들이 갖추어져 있다.


△ 용경협(龍慶峽)의 용 에스컬레이터.

입구에서 유람선 선착장까지 오르는 길을 무려 258m 길이의 용(龍) 모양의 에스컬레이터로 만들어 놓았다.

덕분에 다리 아프지 않게 선착장까지 오를 수 있다.


△ 용경협(龍慶峽)의 케이블카.

1998년 준공된 용경협의 케이블카는 총 길이 465m로 아찔한 절벽 위를 이동한다.


△ 용경협(龍慶峽)의 유람선 선착장과 얼어붙은 호수.

깍아지른듯한 절벽에 둘러쌓인 한겨울의 얼어붙은 호수는 스산하다.

여름철에는 유람선을 타고 호수를 돌아볼 수 있는데, 

호수 위를 유유히 떠서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고 있자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유람선을 타고 호수를 둘러보는 데는 30분 정도 소요된다.


△ 선착장 반대편으로는 뛰어넘기 금지라는 익살스런 안내문구가 눈길을 끈다.

천길 낭떠러지와 같은 높이인데, 정말 여기를 뛰어넘고 싶은 사람이 있는걸까. 누구를 위한 안내 표지인걸까.

절벽 아래로는 빙등제의 하이라이트 얼어붙은 얼음계곡을 구경하는 관람객이 개미처럼 작게 보인다.


△ 용경협(龍慶峽)의 빙등축제 출입구 전경.

빙등제 구역은 용경협 호수 아래, 두 협곡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러한 지리적 조건 덕분에 낮은 기온과 바람이 많이 불지 않아 빙등제를 위해 얼음이 녹지 않는 최적의 조건이 된다.

또한 협곡 사이에 자연낙수로 형성된 얼어붙은 얼음 폭포는 빙등제의 하이라이트로 손꼽힌다.


△ 용경협(龍慶峽)의 빙등제(氷燈節)


■ 용경협(龍慶峽, Long Qing-Xia)의 빙등제(氷燈節, Ice Lantern Festival)


해마다 빙등제를 하는데 올해로 21년이 되었다. 2014년 빙등제의 주제는 대한민국과 제17회 인천아시아경기 대회였다. 색동저고리, 동대문(혹은 남대문), 첨성대 등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상징물들을 아름다운 빛깔의 얼음 조각으로 전시해 놓았다.


△ 2014년 용경협(龍慶峽) 빙등축제의 테마는 "제17회 인천아시아경기대회"


■ 17회 인천아시안게임 


2014년 아시안 게임(제17회 아시안 게임, 인천아시아경기대회,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 2014 아시안게임)은 2014년 9월 19일에서 10월 4일까지 대한민국 인천광역시에서 열릴 예정이다. 이번 대회에서 개최할 종목은 총 45종목이며, 2007년 4월 쿠웨이트 쿠웨이트시티에서 개최지가 정해졌다. 대한민국에서는 서울(1986년), 부산(2002년)에 이어 세 번째로 개최되는 아시안 게임이다. (출처 : 위키피디아)


△ 용경협(龍慶峽) 빙등축제의 아름다운 얼음 조각


△ 용경협(龍慶峽) 2014년 빙등축제를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는 동대문 얼음조각



△ 2014년 용경협 빙등제를 아름답게 수놓은

한국의 아름다운 한복과 첨성대, 동대문, 복조리



■ 홍투어(Hongtour)의 1일 북경외곽투어


    - 홍투어(Hongtour) : www.hongtour.com/ (북경외곽투어 ☞ 바로가기)

    - 포함사항 : 만리장성 왕복케이블카, 명13릉 정릉 입장료, 용경협(빙등제) 입장료, 전 일정 전용버스 및 가이드, 중식(현지식)


베이징 외곽은 지하철, 버스 등의 대중교통으로 이동이 쉽지 않고 중국내에서는 영어도 통하지 않기 때문에 홀홀단신으로 외곽지역 투어를 하기는 쉽지 않다. 이 때문에 현지 투어를 이용하는 것이 효율적이며, 베이징 시내부터 베이징 외곽 북서부 용경협으로 이동하는 길에 위치한 나란히 위치한 "명13릉의 정릉 → 만리장성(팔달령장성) → 용경협" 을 하루 코스로 다녀오는 투어를 이용하자. 홍투어의 1일 북경외곽투어는 위의 순서로 이동하며, 왕징시에서 출발하여 명13릉까지는 버스로 40분, 그리고 투어를 모두 마치고 용경협에서 다시 북경 시내까지는 약 2시간 정도의 이동 시간이 소요된다.



[중국, 북경] 산과 물의 걸작 용경협(龍慶峽, Long Qing-Xia)과 빙등제(氷燈節, Ice Lantern Festival)

FEB 2014

Liah

  1. 북경 16경 : ① 팔달령장성 (八达岭长城, 빠따링창청), ② 명십삼릉 (明十三陵, 밍쓰싼링), ③ 천안문광장 (天安门广场, 티엔안먼꽝창), ④ 고궁 (故宫, 꾸오궁), ⑤ 이화원 (颐和园, 이허위엔), ⑥ 천단공원 (天坛公园, 티엔탄꽁위엔), ⑦ 북해공원 (北海公园, 베이하이꽁위엔), ⑧ 주구점북경인유지 (周口店 北京人遺址, 쩌우커우띠앤 베이찡런이즈), ⑨ 노구교 (卢沟桥, 루거우챠오), ⑩ 향산 (香山, 샹싼), ⑪ 십도 (十渡, 쓰뚜), ⑫ 용경협 (龙庆峡, 롱칭쌰), ⑬ 대종사 (大钟寺, 따쭝쓰), ⑭ 백룡담 (白龙潭, 빠이룽탄), ⑮ 모전욕장성 (慕田峪长城, 무티앤위창청), ⑯ 대관원 (北京大观园, 따관위엔) [본문으로]


△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손꼽히는 만리장성(萬里長城), 

만리장성 중 최고봉이라 불리는 팔달령장성(八达岭长城, The Great Wall of Badaling)


■ 베이징 수도를 지키는, 팔달령장성(八达岭长城, The Great Wall of Badaling)


   - 주소 : 北京市延庆县 八达岭长城,, Great Wall of Badaling, Yanqing, Beijing

   - 전화 : +86 10 6912 1363, +86 10 6912 1226

   - 입장료 : 성수기(4月~10月) 45元, 비수기(11月~3月) 40元, 케이블카 왕복100元

   - 홈페이지 : www.badaling.gov.cn

   - 운영시간 : 성수기 09:00 ~ 16:30, 비수기 09:00 ~ 16:00

   - 찾아가는 길 : 지하철 2호선 지수이탄(积水潭, 적수담)역 내려 덕승문 장거리 버스정류장에서 919번 탑승

                        → 팔달령장성 케이블카 승강장 근처에 내릴 수 있다.

                        (또는) 베이징북역에서 팔달령역까지 기차 탑승



전체 길이가 3.7km에 달하는 팔달령장성(八达岭长城, 빠다링창청)은 가장 높은 곳은 해발 1km가 넘는 높고 험준해 장성의 최고봉으로 불린다. 춘추전국시기 북방 민족의 침략을 방지하기 위해 지어졌다가 명(明)나라 홍치제(弘治帝) 18년(1505)에 다시 건축되었다. 가정제(嘉靖帝) 18년(1539)에 동문을 수리하고, 39년(1551)에 3리 정도 거리에 병영을 지어 병력을 주둔시켰다고 전해진다. 만력제(萬曆帝)까지 80여 년의 보수 기간을 거쳤고, 최근에는 1953년과 1957년 두 차레에 걸쳐 수리되었다. 1981년에는 팔달령특구로 지정되어 1991년까지 복원공사를 시행한 덕분에 장성 중 복원 상태가 가장 좋고, 1995년에는 조명을 설치하여 여름철에는 야간에도 개방하고 있다.


베이징 시내에서 약 60km 떨어진 연경현에 위치하고 있으며, 베이징에서 가깝고 1998년 개통된 팔달령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교통이 편리하여 만리장성을 찾는 관광객 중 가장 많은 관광객이 팔달령장성을 찾는다. 1952년 일반 관광객들에게 개방된 이후 지금까지 약 1억 3천만 명이 넘는 사람이 방문했다고 하니, 장성 중 관광객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곳임에 틀림이 없다. 


팔달령장성을 오르는 방법은 첫째, 걸어서 오르는 방법, 둘째, 슬라이딩 카를 타고 오르는 방법, 마지막으로 케이블 카를 타고 오르는 방법으로 3가지 방법이 있다. 시간과 체력이 허락한다면 걸어서 오르며 장성의 웅장함을 느껴보길 권하지만 시간이 부족한 관광객이라면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는 것을 추천한다. 시간이 넉넉하더라도 팔달령장성은 산세가 높고 험하니 인내심이 부족하거나 사서 고생을 하고 싶지 않은 베짱이(?) 관광객이라면 역시 케이블카나 슬라이딩카를 이용할 것.


△ 팔달령장성(八达岭长城, The Great Wall of Badaling) 매표소

매표소 왼편으로 줄을 따라 입장하면 케이블카 승강장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팔달령장성으로 오를 수 있다.

매표소 오른편으로는 공중화장실이 있는데, 말로만 듣던 대륙의 문 없는 화장실이 관광객을 맞이한다.


홍투어의 1일 북경외곽 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한 나는 오전에 명13릉을 거쳐 두번째 코스로 이곳 팔달령장성에 도착했다. 장성투어는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다가 각자 관광을 마치고 정해진 시간까지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와 매표소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중국어에 능통한 가이드에게 화장실을 뜻하는 단어를 물으니 '시셔우찌엔(厕所, 처소)'이라고 친절히 알려준다.


시간이 넉넉했던 턱에 관광을 마치고 화장실에 들러야지 하고 머릿속으로 '시셔우찌엔'을 되뇌이고 다니다가, 일찌감치 관광을 마치고 내려와 매표소 직원에게 '시셔우찌엔'을 물었더니 우측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아! 그런데 이게 말로만 듣던 대륙의 화장실이다. 적잖이 당황하며 멀뚱멀뚱 서있는데, 노랑머리를 한 관광객이 태연하게 화장실을 이용한다. 나도 주춤주춤 이용하려니 영 어색해서 결국은 화장실 안의 모든 사람들이 나가고 나 혼자 남을때까지 기다려서야 볼 일(?)을 볼 수 있었다. '시셔우찌엔'에서 시간이 지체된 탓에 같이 투어에 참여했던 일행들이 나를 기다려야 했다. 겸연쩍은 나머지 화장실에 대해 설명을 해주니 다들 '중국에 왔으면 그 정도 각오는 했어야지' 라는 표정으로 미소를 지어보인다. 어찌됐든 팔달령장성에서 잊지 못할 기억을 하나 남겼다. 시셔우찌엔!

△ 팔달령장성 매표소 옆 화장실


△ 팔달령장성 매표소에서 대여 가능한 오디오 가이드와 스마트 가이드 디바이스

중국어, 영어, 프랑스어의 3개 국어로 서비스가 제공되는데,

중국어는 20元, 영어는 40元 (Deposit 200元)에 대여가 가능하고, 스마트 디바이스는 각 10元씩 더 비싸다.


△ 팔달령장성을 오르는 케이블카. 20년이 넘어 무척 낙후되었다.

케이블카는 장성에 오르기까지 두 서너번을 멈춰서는데, 모두 연결된 재래식(?) 케이블카인 탓에 

손님들이 내리고 탈 때마다 이동중인 케이블카가 모두 함께 멈춘단다.


비수기인 겨울(2월)에 방문한 턱에 관광객이 많지 않아 바로 케이블카에 탑승할 수 있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북경의 겨울 바람이 무척 매섭고, 게다가 장성에 오르면 칼바람이 분다고 다들 걱정을 해주셨는데 다행히 오늘은 바람도 잔잔하고 해도 쨍하게 떠서 겨울답지 않게 따뜻한 날이다. 더욱이 북경 시내 어디서나 나를 숨쉬기 곤란하게 만들었던 맹렬한 기세의 스모그도 외곽 지역인 장성에서는 한풀 꺾인 탓에 방진 마스크 없이 관광을 할 수 있었다. 이번 여행, 특히 오늘은 일진이 좋은 모양이다. 북경 여행길에 오르면서 가장 기대하던 것이 만리장성에 오르는 것 아니었던가. 관광객도 적고 날도 좋은 오늘은 웅장한 장성의 기운을 느끼기엔 그야말로 금상첨화! 최고의 날이다. 아! 화장실만 빼고...


△ 팔달령장성(八达岭长城)의 케이블카 왕복 티켓.

탑승시에 승차장 직원이 티켓의 우측에서 표를 뜯어낸다.


△ 팔달령장성(八达岭长城) 정상의 케이블카 승·하차장


케이블카 승·하차장 역시 세월의 흔적에 많이 낡고 낙후한 모습이다. 겨울이라 앙상한 나뭇가지까지 옆에 있으니 스산하기 짝이 없다. 케이블카가 너무 낙후한 탓에, 최근 새로운 케이블카 노선을 새로이 공사하고 있다고 한다. 다음번에 방문할 때는 새로운 케이블카 시설 또는 슬라이딩카를 이용해봐야지.


△ 장성(長城) 중간 요새와 같이 아늑한 장소가 있고, 곳곳에서 계단을 만날 수 있다.


△ 팔달령장성(八达岭长城, The Great Wall of Badaling)


■ 만리장성(萬里長城, The Great Wall)


세계 7대 불가사의[각주:1] 중 하나로 손꼽히는 만리장성(萬里長城)은 진(秦)나라 31대 시황제(始皇帝) 때 북방 민족의 침임을 막기 위해 세워진 거대한 성곽이다. 이후 명(明)나라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역대 왕조들은 장성(長城)을 보수하고 확장하여 현재까지 남아있으며 중국(中國)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유적으로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동쪽의 산해관(山海關)에서부터 서쪽의 간쑤성(甘肅省) 자위관에 이르기까지 총 길이가 6,351km, 약 12,700리에 이르며 만리장성이란 이름은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한때는 달에서도 유일하게 보이는 지구 최대의 건축물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우주 공간에서 육안으로 지구의 건축물을 확인할 수는 없으며 이는 사실이 아님이 알려졌다. 장성을 맞닥뜨린 관광객이라면 그 웅장한 규모에 압도되는데, 이러한 재미있는 루머 역시 장성의 웅장함과 거대함 때문에 퍼진 소문이 아닐까 한다. 모택동(마오쩌둥)은 '장성에 올라보지 않으면 사나이가 아니다(不到長城非好漢)'라는 말을 남겼는데, 지금은 그의 말이 팔달령장성(八达岭长城) 위에 석비로 세워져 관광객들을 맞고 있다.


  • 진한(秦漢)대의 장성

장성의 기원은 춘추 시대의 제(齊)에서 시작되어 전국 시대에 들어오면 초(楚)·위(魏)·연(燕)·조(趙)·진 (秦) 등 북방의 이민족과 국경을 접하고 있던 중원(中原)의 제국(諸國)이 모두 국경에 북방의 방어를 위해 이를 세웠다. 한, 제 등의 국가는 다른 국가를 막기 위해 국경에 장성을 쌓았다. 기원전 222년에 진의 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한 후 중국 안에 있던 장성은 파괴하고 흉노를 방어하기 위하여 북쪽에 만들어졌던 여러 성들을 보수하고 서로 연결시켜 장성을 쌓았는데, 기록에 따르면 몽염 장군에게 장성을 쌓도록 명하여 기원전 214년 경에 완성하였으며 동쪽으로는 요동(현재의 랴오닝 성)에 이르렀고 서쪽은 임조(臨洮, 현재의 간쑤 성 민 현)에 이르렀다고 한다. 최근에 발견된 츠펑 시 등지의 유적으로 미루어 보아 당시의 장성은 현재보다는 북방에 위치하였다. 이후 한나라의 무제는 흉노를 몰아내고 영토를 확장하면서 장성을 서쪽의 옥문관까지 확장시켰다. 후한 시기에는 흉노의 세력이 크게 약화되어 이후 수백년 동안 장성의 개축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시기의 장성은 현존하는 장성과는 위치도 전혀 다르고 쌓는 방법도 달랐다. 현재의 장성보다 더 북쪽에 위치하며, 대부분 흙으로 쌓은 것이기에 현재의 만리장성과 달리 높이도 낮았다. 이 당시의 만리장성은 긴 장벽 형태의 성벽뿐 아니라, 국경 초소나 보루, 요새 등으로만 이루어진 구간도 다수 존재했으며, 성벽이 끊긴 곳도 있었다. 북방민족과의 경계가 아닌 요동 남부 등에 설치된 만리장성은 본격적인 성벽이라기 보다는 전진기지 성격의 요새가 대부분이다.


  • 장성의 개축

남북조 시대에 화북을 통일한 북위는 북방의 유연을 방어하기 위해 원래 장성의 위치보다 남쪽에 새로운 장성을 쌓았다. 이것이 현재 남아 있는 만리장성의 기초가 되었다. 수나라는 통일 이후에 만리장성을 보수하고 오르도스 지방 남쪽에 새로운 장성을 쌓았다. 그러나 당대에는 북방을 경영하고 북방의 이민족을 지배하면서 만리장성은 유명무실해졌다. 이후에는 반대로 이민족인 거란, 여진, 몽골 등이 지속적으로 공격해와 장성 너머에 영토를 가지게 되면서 만리장성은 무력화되고 방치되었다. 그러나 거란의 요나 여진의 금은 다른 북방 이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대싱안링 산맥 등지에 새롭게 장성을 수축하기도 하였다.


원을 몰아내고 명이 세워진 뒤 원의 재침입을 막기 위해 장성을 강화하고 신축하여 지금 형태의 장성이 되었다. 영락제 때부터 건설을 시작한 만리장성은 북위 및 북제의 장성이 기초가 되었으며, 오르도스 남쪽 수나라의 장성도 활용되었다. 주로 북경 인근의 동단을 중심으로 축성된 명나라의 만리장성은 가정제 연간에 몽골의 침입이 가속화되면서 더욱 견고하게 건설되었으며, 서쪽의 장성들도 지속적으로 개축되어 16세기 말에 비로소 지금의 장성이 모두 완성되었다.


(출처 : 위키피디아 - 만리장성)

 

△ 한겨울 2월의 추위에도, 팔달령장성(八达岭长城)을 오르는 관광객들.

여름 성수기에는 팔달령장성 정상에 오르는 관광객들로 발디딜틈이 없다.


■ 주요 장성(長城)


  • 베이징 동쪽: 노룡두 장성(老龍頭長城), 산해관(山海關)
  • 베이징 주변 : 사마대 장성(司馬台長城), 금산령 장성(金山嶺長城), 반용산 장성(蟠龍山長城), 고북구 장성(古北口長城), 대진욕 장성(大榛峪長城), 황화성 장성(黃花城長城), 모전욕 장성(慕田峪長城), 전구 장성(箭扣長城), 팔달령 장성(八達嶺長城), 수관 장성(水關長城), 거용관, 거용관 장성(居庸關・居庸關長城), 삽전령 장성(挿箭嶺長城)
  • 베이징 서쪽 : 노우만 장성(老牛灣長城), 임유진 북루(楡林鎭北樓), 삼관구 장성(三關口長城), 텐겐사막 장성(톈겔砂漠長城), 단협구 장성(丹峽口長城), 가욕관(嘉峪關), 하창성(河倉城), 옥문관(玉門關), 양관(陽關)


베이징의 동쪽 산해관(산하이관)에서 시작되는 만리장성은 서쪽 으로는 자위관, 간쑤성에까지 이른다. 이 중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베이징 주변의 팔달령장성과 거용관장성이다. 베이징의 동쪽 노룡두장성과 산해관에서는 바다와 맞닿은 장성의 동쪽 끝을 볼 수 있다. 2009년과 2012년 중국이 만리장성의 길이를 연장해서 발표한 바 있다.


△ 만리장성(萬里長城)길이 (출처 : 동아일보)


△ 장성(長城) 돌담에 새겨진 이름과 낙서들.


낯부끄럽게도 종종 한국어 낙서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세계 어느 유적지엘 들러도 낙서로 인상이 찌푸려지곤 한다. 낙서에 속수무책인 유적이 안타깝기도 하면서 재미있는 문구들이 실소를 자아내기도 한다.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암스트롱이 가장 먼저 한 일이 '깃발 꽂기'이고, 아문센도 남극 대륙을 탐험하며 루트 내내 깃발을 설치하고, 안나푸르나를 정복한 오은선 대장도 해발 8,000m 고지에 깃발을 남긴 것을 보면... 내가 이 곳에 왔다갔음을 다른 누구에게 알리려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 걸까. 생각해보니 유명한 곳에 들르면 사람들은 낙서보다 조금 더 고급스러운 방법으로 흔적(?)을 남기기 위해 기념 사진을 찍는다. 이러한 사람들의 모습으로 유추해보건데 그 표현 방법이 깃발 꽂기 이거나, 낙서를 남기거나, 사진을 찍는 것이거나 또는 그 어떤 다른 방법으로 이 시간, 이 장소에 머물렀음의 의미를 되새기고 싶은 것은 아닐까.


△ 팔달령장성(八达岭长城, The Great Wall of Badaling)


■ 홍투어(Hongtour)의 1일 북경외곽투어


    - 홍투어(Hongtour) : www.hongtour.com/ (북경외곽투어 ☞ 바로가기)

    - 포함사항 : 만리장성 왕복케이블카, 명13릉 정릉 입장료, 용경협(빙등제) 입장료, 전 일정 전용버스 및 가이드, 중식(현지식)


베이징 외곽은 지하철, 버스 등의 대중교통으로 이동이 쉽지 않고 중국내에서는 영어도 통하지 않기 때문에 홀홀단신으로 외곽지역 투어를 하기는 쉽지 않다. 이 때문에 현지 투어를 이용하는 것이 효율적이며, 베이징 시내부터 베이징 외곽 북서부 용경협으로 이동하는 길에 위치한 나란히 위치한 "명13릉의 정릉 → 만리장성(팔달령장성) → 용경협" 을 하루 코스로 다녀오는 투어를 이용하자. 홍투어의 1일 북경외곽투어는 위의 순서로 이동하며, 왕징시에서 출발하여 명13릉까지는 버스로 40분, 그리고 투어를 모두 마치고 용경협에서 다시 북경 시내까지는 약 2시간 정도의 이동 시간이 소요된다.



[중국, 북경] 세계 7대 불가사의 만리장성(萬里長城), 팔달령장성(八达岭长城, The Great Wall of Badaling)

FEB 2014

Liah


  1. ※세계 7대 불가사의 : ① 치첸이사(유카탄, 멕시코) ② 구세주 그리스도상(리우데자네이루, 브라질) ③ 콜로세움 (로마, 이탈리아) ④ 만리장성(중국) ⑤ 마추픽추(쿠스코, 페루) ⑥ 페트라(마안 주, 요르단) ⑦ 타지마할(아그라, 인도) [본문으로]

△ 천단공원의 상징, 푸른 기와의 기년전(祈年殿, Hall of Prayer for Good Harvest)



■ 천단공원(天壇公園, Temple of Heaven)


    - 주소 : 北京市东城区天壇東路1号, Tiantan Road, Dongcheng District, Beijing 100050, China

    - 전화 : +86 10 6702 8866

    - 입장료 : 자유이용권 - 성수기 35元, 비수기 30元, 오디오 가이드 40元(보증금 100元)

    - 홈페이지 : www.tiantanpark.com

    - 운영시간 : (3~6월) 8:00 ~ 17:30, (7~10월) 8:00~ 18:00, (11~2월) 8:00~17:00, (공원입장) 06:00~22:00

    - 찾아가는 길 : 지하철 5호선 티엔탄둥먼(天坛东门, 천단동문)역 하차



천단공원(天壇公園)은 베이징 충웬 구에 위치한 공원으로, 명(明), 청(淸) 시대에 제천 의식을 행하는 제단으로 사용되었으며 현존하는 세계의 고대 제단 건축물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는 곳으로 대지면적은 황궁인 자금성의 4배(273만㎡)에 이른다. 자금성의 남쪽에는 천단(天壇), 북쪽에는 지단(地壇), 동쪽에는 일단(日壇), 서쪽에는 월단(月壇)을 두고 각각 하늘, 땅, 해, 달에게 제를 지냈다고 전해진다. 황제는 매년 세 차례 이 곳에서 제사를 지냈는데, 음력 정월에 풍년을 기원하고, 4월 경 비가 오지 않으면 기우제를 지내고, 10월경에는 하늘에 감사의 제를 지냈다. 


명(明)나라 3대 황제 영락제(永樂帝) 4년(1406)부터 18년(1420)까지 약 14년에 거쳐 천지단(天地壇)으로 건축이 되었다가, 11대 황제 가정제(嘉靖帝) 9년(1530)에 동쪽의 지단(地壇), 동쪽의 일단(日壇), 서쪽의 월단(月壇)이 추가로 건축되며, 천지단은 하늘에만 제를 지내는 천단(天壇)이 되었다. 1918년 대외 개방이 이뤄지면서 공원으로 변모하여 북경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었고, 199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 천단공원 입장티켓- 환구, 황궁우/회음벽, 기년전 세 곳을 입장할 수 있는 자유이용권 (30元)

티켓을 구매하면 공원 투어맵(지도)이 포함된 영문버전 가이드를 함께 받을 수 있다.


■ 천단공원 안내도(Tourist Map)


△ 천단공원 투어맵(출처 : www.tiantanpark.com)


지하철 5호선 천단동문(天坛东门) 역에서 하차하면 천단의 동문으로 입장하게 된다. 동문에서 관람을 시작해서 다시 지하철을 타기위해 동문으로 나와야 한다면 다음의 루트로 이동하며 주요 건축물을 둘러보면 된다. [동문] → [기년전] → [황건전] → [단폐교] → [황궁우]&[회음벽] → [환구] → [재궁] → [쌍환정] → [기년전] → [동문]


투어맵에서도 볼 수 있듯이 천단의 북쪽은 높고 타원형, 남쪽은 낮은 방(方)형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사상과 '하늘은 높고 땅은 낮다'는 천고지저(天高地低)의 사상을 담아 건축한 것이다.


△ 동문진입로(東門進入路)를 따라 걷다보니, 장랑(長廊)에 장기판을 가운데 두고 어르신들이 모여계신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게임과 스포츠의 세계에서 승부욕은 어쩔수 없는 모양이다.

장기판을 가운데 두고 옹기종기 모여들어 왁자지껄 훈수를 두고

옥신각신 설전이 벌어졌다가 이내 한바탕 웃음으로 한 수가 마무리 된다.


베이징 시민들의 휴식처이니 만큼, 드넓은 공원 곳곳에는 산책을 나온 시민들로 붐빈다. 어르신들은 장기와 바둑으로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고, 아주머니들은 중국 고유의 음악에 맞춰 댄스를 즐기기도 하고, 단체로 모여 에어로빅(?)으로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계신다.


△ 천단공원의 상징, 푸른 기와의 기년전(祈年殿, Hall of Prayer for Good Harvest)


■ 천단공원의 상징, 기년전(祈年殿, Hall of Prayer for Good Harvest)


기년전(祈年殿)은 제천행사를 위해 지은 제단으로 천단공원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천안문, 자금성과 함께 베이징의 상징으로 손꼽힌다. 기년전(祈年殿)은 천단에서 가장 먼저 건립된 건축물로, 명(明) 영락제(永樂帝) 18년(1421)에 대사전(大祀殿)이라는 명칭으로 초건되어 장방형의 모습이었다. 가정제(嘉靖帝) 24년(1545)에 하늘과 황제와 백성을 의미하는 청색, 황색, 녹색으로 원형의 삼색 기와를 얹은 대향전(大享殿)으로 탈바꿈하였다가 청(淸)나라 건륭제(乾隆帝) 16년(1751)에 중건을하며 기와를 전부 청색으로 고치고 지금의 기년전(祈年殿)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다. 광서제(光緖帝) 15년(1889) 낙뢰를 맞아 소실되었다가 1906년 다시 재건되었다.  이 기년전을 받치고 있는 것이 하부에 3층으로 된 백색의 기곡단(祈穀壇)인데, 직경 68.2m, 중단은 79.6m, 하단은 90.8m 이다. 


기년전은 높이 38m(9장 9척), 직경 32.7m, 지붕의 둘레는 30장(丈)으로 면적 3만 2,000㎡의 토대 위에 세워졌다. 9장 9척의 높이는 천수(天數)에 부합하는 높이로 9는 하늘의 수로 여겨지는 홀수를 의미하고, 지붕의 둘레는 한 달(30일)을 표현하였다. 기년전(祈年殿) 내부 중심에 위치한 붉은 기둥 4개는 직경이 1.2m, 높이는 19.2m에 달한는데, 용정주(龍井柱)라고 불리며 춘하추동 4계절을 상징한다. 그 주위를 12개의 기둥이 두 줄로 둘러싸고 있는데 안쪽 12 기둥은 1년 12개월을 상징하고, 외층의 처마 기둥은 하루의 12시간(12時)를 상징하며, 기둥에 사용된 목재는 모두 운남성(雲南省)에서 운반해왔다. 천장의 중심에는 용과 봉황이 어우러진 금용봉(金龍鳳)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바닥의 원형 대리석과 위치가 일치하며 기년전의 중심이다. 전설에 따르면 바닥 대리석에 조각되어 있던 봉황이 밤을 틈타 천장의 용에게 놀러갔다가 날이 밝아 돌아오지 못하고 남은 것이라 전해진다.


△ 황건전(皇乾殿)의 문턱에서 바라본 기년전(祈年殿)의 뒷모습


△ 기년전(祈年殿) 방향에서 바라본 황건전(皇乾殿)


■ 상제(上帝)와 선황제의 위패를 모신, 황건전(皇乾殿)


기년전(祈年殿) 북쪽에 위치한 황건전(皇乾殿)은 기곡단에서 사용하는 상제(上帝)와 선황들의 위패를 모셔둔 곳이다. 명(明)나라 영락제(永樂帝) 18년(1420)에 건축되어 초기에는 천고(天庫)로 불리다가, 가정제(嘉靖帝) 24년(1545)부터 황건전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고, 청(淸)나라 건륭제(乾隆帝)에 이르러 황색과 푸른색 청와로 기와를 교체하였다.


제천 의식이 있는 전날 밤, 황제는 이곳에서 상제와 선황제들에게 향을 올리고 숙소인 재궁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리고 제를 지내는 당일 이곳에서 위패들을 용정(龍亭)에 실어 기년전으로 모셔갔다고 한다. 황건전 전면에는 명(明)나라 가정제(嘉靖帝)가 친필로 쓴 편액이 걸려있고, 편액을 둘러싼 정교한 금빛 용과 상운(구름) 문양이 관광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 상제(上帝)와 선황제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황건전(皇乾殿)


△ 단폐교(丹陛桥, Danbi Bridge) 전경, 중앙의 선루(神路)는 황제(皇帝)만이 걸을 수 있었다고 한다.


■ 단폐교(丹陛桥, Danbi Bridge)


단폐교(丹陛桥)는 길이 360m, 너비 30m의 다리로 남쪽 황궁우에서 북쪽에 위치한 기년전을 잇는 다리이다. 남쪽은 지상 1m, 북쪽은 지상 4m 높이로 '하늘은 높고 땅은 낮다'는 천고지저(天高地低)의 사상으로 건축이 되어 가장 큰 제사를 지내는 북쪽의 기년전(祈年殿)으로 걷다보면 마치 하늘로 올라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단폐교(丹陛桥)의 중앙 하부에는 아치형의 통행로가 뚫려 있는데, 이 통행로를 통해 천단의 동(東)과 서(西)가 연결된다는 의미에서 '교(橋, 다리)'라는 명칭이 붙었다고 한다.


단폐교 중앙의 선루(神路)는 천신(天神)만이 다니는 길이라하여 인간은 걸을 수 없었고, 선루의 동쪽 벽돌이 깔린 길은 위루(御路)라고 하여 황제만이 다닐 수 있었으며, 서쪽 길은 왕루( 제사 때 황제를 수행하는 왕공대신(王公大臣)들이 사용하는 길이었다. 세월이 흐른 지금은 관광객들이 기념 사진을 찍는 포토존으로 빛을 발한다. 또한 기년전(祈年殿)으로 향하는 중앙문은 닫혀있는데 인간은 드나들 수 없고, 천신(天新)만이 드나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 원구단(圜丘壇)의 영성문(欞星門)을 통해 바라본 황궁우(皇穹宇)와 회음벽(回音壁)


■ 하늘에 제를 올리는 제천 의식이 거행되던, 원구단/환구단(圜丘壇)


원구단(圜丘壇)은 황제가 제천 의식을 올리는 제천대(祭天臺)라하여 하늘을 형상화한 모습으로 흰 대리석으로 3층, 높이 약 5m로 이루어져 있다. 명(明)나라 가정제(嘉靖帝) 9년(1530)에 제천 의식을 거행하는 장소로 건축되어, 청(淸)나라 건륭제(乾隆帝) 14년(1749)에 확장 공사를 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형태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天元地方)의 사상에 따라 원형이다. 원구단은 총 3층으로 되어 있는데 각 층의 4면에는 9단으로 된 계단이 있다. 각 층에는 난간이 있는데 난간 역시 모두 9의 배수로 상층은 지경은 9장, 중층은 15장, 하층은 21장인데 각 단을 모두 합하면 45장이 된다. 이것은 단지 9의 배수를 의미할 뿐 이니라 구오지존(九五之尊)이라는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 원구단/환구단(圜丘壇, Circular Mound Altar)의 중심이자 

천단공원 최고의 포토존, 천심석(天心石, Heavenly Center Stone)

중국인들, 관광객들은 할 것없이 너도나도 이 곳을 들른 관람객이라면 천심석 위에 올라서서 사진을 찍는다.

천심석에 올라서서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 있는 통에, 잠시도 빈틈을 주지 않는다.

20여 분을 기다리고 나서야 드디어, 오롯이 천심석의 모습만을 사진에 담을 수 있었다.


■ 원구단의 중심, 천심석(天心石, Heavenly Center Stone)


원구단(圜丘壇)의 정중앙에는 하늘을 상징하는 천심석(天心石)이 놓여있다. 천심석의 주의의 부채꼴의 돌들은 1단에는 9개의 석판이 있으며, 한 칸씩 밖으로 벗어날 때마다 9개의 석판이 증가하여, 2단 18개, 3단 27개 등으로 9단까지 설계되어 원형을 이루고 있다. 3층으로 된 원구단에는 석판이 총 3,402개가 사용되었고 이 석판들은 그 크기와 모양이 모두 동일하여 정확히 들어맞는다고 한다.


천심석(天心石) 위에서는 작은 소리로 이야기하면 소리가 크게 들릴뿐만 아니라 독특한 회음(回音, 메아리) 현상이 발생하는데, 청(淸) 나라 에는 이 현상을 하늘이 내린 상서로운 징조로 해석하고, 하늘이 황제의 제사를 받아들여 청 황조가 오래도록 번영하리라 믿었다.


△ 천심석(天心石) 위에 올라서서 앙증맞은 애교로 여러 관광객들을 미소짓게한 애교 소녀.


△ 황궁우(皇穹宇, Imperial Vault of Heaven)


■ 상제(上帝)의 위패를 모신 곳, 황궁우(皇穹宇, Imperial Vault of Heaven)


황궁우는 제반 제천의식을 준비하고 하늘에 바람과 구름, 해와 달 등 자연신의 위패와 역대 황제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곳으로 침궁(寢宮)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높이 19.5m, 하부 직경 15.6m 목조 건축물이며, 지붕은 8개 기둥에 의해 지탱이 되고 대들보를 사용하지 않고 천정이 층층이 축소되어 아름다우며, 기년전을 축소해 놓은 듯한 아담한 건물이다. 회음벽(回音壁)으로 둘러쌓여 있다.


△ 황궁우(皇穹宇) 내부


△ 새초롬한 표정으로 회음벽(回音壁, Echo Wall)을 관람중인 꼬마 아가씨.


■ 소리가 되돌아오는, 회음벽(回音壁, Echo Wall)


회음벽(回音壁)은 황궁우(皇穹宇)의 담장으로, 직경 61.4m, 둘레 193.2m, 높이 3.7m의 석벽(石壁)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에서는 음파의 굴절현상으로 회음(回音)이 발생하는데 벽에 근접한 두 사람이 작은 소리를 내면 벽을 소리가 벽을 타고 전달되어 반대편에서도 이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회음벽은 원형이고 벽돌을 가지런이 이어 붙였으며 벽면이 매끄럽다. 또한 벽 위에는 기와를 얹은듯한 처마가 있어 소리가 분산되어 소실되는 것을 막아주어 소리가 벽을 타고 반사되어 전달될 수 있는 것이다.



[중국, 북경]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올리던 천단공원(天壇公園, Temple of Heaven)

FEB 2014

Liah



△ 베이징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경산공원(景山公園, Jingshan Park)



■ 베이징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경산공원(景山公園, Jingshan Park)


    - 주소 : 北京市西城区景山西街44号, 44 Jingshan W St. Xicheng, Beijing

    - 전화 : (+86) 010 6403 8098

    - 입장료 : 2元

    - 홈페이지 : http://www.bjjsgy.com

    - 운영시간 : 06:00 ~ 21:00

    - 찾아가는 길 : 자금성 관람을 마치고 후문으로 나와서 길을 건너면 경산공원 입구가 보인다.



오전 나절 자금성 관광을 마치고 북문(北門)인 신무문(神武門)을 나와 길을 건너면 바로 경산공원의 입구다. 저렴한(?) 입장료를 내고 경산공원(景山公園)에 오르니 탁 트인 시야에 베이징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어느 도심에나 있는 스카이 타워, 룩아웃이 없는 베이징의 경치를 한 눈에 내려다 보려면 이 곳 경산공원에 올라야 한다. 해질 무렵 이 곳에 올라 자금성을 바라보면, 떨어지는 석양을 머금은자금성의 황금빛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 경산공원에서 가장 높은 곳, 만춘정(萬春亭)으로 오르는 길


△ 경산공원의 가장 높은 곳 만춘정(萬春亭)으로 향하는 길


경산(景山)은 명실상부 베이징의 최고봉으로 유명한 인공산으로, 이 곳이 만들어진 데에는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어느 것 하나 사실로 밝혀진 것은 없다. 자금성 서쪽에 있는 인공호수인 북해/중해/남해를 만드느라 퍼낸 흙을 쌓아 만들었고, 자금성을 건설하며 파낸 해자의 흙까지 덮어씌워 지금의 높이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구전되는 이야기에 의하면 경산공원은 원래 원(元)나라 때의 궁전 터 였는데, 원나라를 멸망시킨 명나라가 그 전 왕조를 모욕하기 위해 흙을 파서 쌓았다고 한다. 또 다른 설은 경산(景山)은 겉만 흙이고 내부는 석탄으로 가득차 있어, 비상 시를 대비해 연료 창고로 위장해 놓았다는 설이다. 명(明)나라 때 이름은 만세산(萬歲山) 또는 진산(鎭山)이라 불렸고, 후에 청(淸)나라 순치제 때(1655)부터 경산(景山)이라는 명칭이 사용되었고, 1928년부터 공원으로 개방되었다.


△ 경산공원(景山公園, Jingshan Park) 정상에서 바라본 자금성.

스모그가 뒤덮은 붉은 하늘. 오늘의 미세먼지 지수는 406

방진 마스크쓰고 계단을 오르다보니 숨이 콱 막혀온다. (=_=)


△ 경산공원 정상에서 바라본 수황전(壽皇殿).

수황전은 황제의 초상화를 모셔둔 곳으로, 청(淸)나라 홍정(雍精) 때부터 황제들의 초상이 모셔져 있다. 

매월 1일과 4일 황실은 이 곳에 모여 제사를 지냈다.

중화인민공화국(신중국, 1949) 수립 후에는 북경시소년궁이 입주하여 소년, 소녀들이 꿈을 키우는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 경산공원 정상에서 바라본 북해공원(北海公園).

북해공원은 1,0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보존 상태가 가장 완전한 황실 공원으로 손꼽힌다. 


△ 경산공원(景山公園, Jingshan Park)의 만춘정(萬春亭).

경산에는 5개의 정자를 경산오정(景山五亭)이라 부른다.

경산오정으로는 관묘정(觀妙亭), 주상정(周賞亭), 만춘정(萬春亭), 부람정(富覽亭), 집방정(輯芳亭)이다.

이 중 만춘정은 유일하게 황궁보다 높은 곳에 위치하였고, 자금성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위치에 있다.

해질녘, 만춘정에 올라 자금성을 바라보면, 석양을 머금은 황금빛의 장관을 이룬 자금성을 볼 수 있다.



[중국, 북경] 베이징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경산공원(景山公園, Jingshan Park)

FEB 2014

Liah


△ 전통적인 후퉁과 현대식 카페와 상점이 어우러진 베이징의 삼청동, 난뤄구샹(南锣鼓巷:남라고항, Nanluogu Xiang)



■ 베이징의 삼청동, 난뤄구샹(南锣鼓巷, Nanluogu Xiang)


    - 주소 : 东城区 南锣鼓巷50号(黑芝麻胡同口), Nan Luo Gu Xiang & Hei Zhi Ma Hu Tong, Dong Cheng Qu

    - 찾아가는 길 : 지하철 6호선 난뤄구샹(南锣鼓巷)역



서울에 삼청동 카페 골목이 있다면 베이징에는 난뤄구샹(南锣鼓巷)이 있다. 베이징의 뒷골목 후퉁의 전통적인 고택들이 현대식 카페와 어우러져 멋스러움을 더한다.  약 100m 마다 하나씩 총 8개의 작은 후퉁과 교차되어 지네 거리(蜈蚣街: 우궁제)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독특하고 멋스러운 분위기 덕분에 많은 여행자들이 찾을 뿐만 아니라 중국 드라마나 광고의 배경으로도 자주 등장한다.


소털보다 많다는 베이징의 후퉁 중 하나였던 이곳이 뜨게 된 배경은 상당히 재밌다. 첫번째 포인트는 난뤄구샹 중간쯤에 있는, 베이징에 하나뿐이라는 연기학원인 북경중앙 연극학원. 공리를 비롯해 장쯔이까지 난다 긴다 하는 스타들을 배출한 베이징 영화의 산실 중 한 곳이 여기있다. 연기학원에 선남선녀가 몰리는 것은 당연한 일. 이런 잘나가는(?) 선남선녀들이 일부 외국인과 사귀면서 외국인들이 찾아들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이들을 위한 분위기 좋은 카페들이 생겨난다. 난뤄구샹의 터줏대감인 과객(过客)이 처음 테이프를 끊은 것을 신호로 매력적인 카페들이 비온뒤 죽순 나듯 생겨난다. 그리고 외국인 여행자들에게 난뤄구샹은 개성 있는 후퉁이자 카페 골목으로 소문이 나게 된다. 이래저래 외국인이 몰리니 동당 유스호스텔과 같은 숙박업소도 생겨난다. 이제는 배낭여행자들까지 이 골목으로 몰리게 된 셈이다. 이쯤 되자 베이징 시 당국은 난뤄구샹 도로의 시멘트를 걷어내고 재정비를 하기에 이른다. 현재의 난뤄구샹은 오리엔탈리즘에 기울어진 외국인과 세련된 중국 젊은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재탄생한 느낌이다. 인위적인 개발 냄새가 난다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중국의 향기와 서구적 편의가 알맞게 배합된 이 곳을 사랑한다. - (프렌즈 베이징 中 발췌)


△ 난뤄구샹(南锣鼓巷)의 명물 츄러스 아이스크림 가게, 지스궈(吉事果:길사과, JSG Churros)



■ 난뤄구샹의 명물 지스궈(吉事果, JSG Churros)의 츄러스 아이스크림


    - 주소 : 吉事果(南锣鼓巷一店) 东城区 南锣鼓巷49-1号, 49-1 Nanluoguxiang, Dongcheng District

    - 메뉴 : 츄러스 아이스크림 - 딸기맛 20元, 키위/메론맛 25元, 블루베리맛 28元, 쵸코맛 30元

    - 홈페이지 : http://11898.cn/jsg.html

    - 찾아오는 길 : 지하철 6호선 난뤄구샹(南锣鼓巷)역 도보 3분


난뤄구샹에는 카페와 맛집이 즐비하다. 이 곳에 오기전에는 식사를 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 난뤄구샹에서만 먹을 수 있는 별미 군것질거리가 끝도 없이 펼쳐지기 때문에, 아무리 배가 불러도 먹지 않고는 못배길테니 말이다. 그 중 하나가 지스궈의 츄러스 아이스크림이다. 바삭하게 튀겨낸 츄러스에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올리고, 그 위에 딸기, 키위, 메론, 블루베리 등 과일 시럽을 얹어 먹거나, 쵸컬럿 시럽을 뿌려 먹는다. 블루베리 맛, 빙찌링+란메이(冰激凌+蓝莓)를 골라 맛을 보았다. 아삭하게 씹히는 츄러스의 식감과 달콤한 블루베리 아이스크림이 입 안에서 사르르 녹는다. 한 입... 두 입... 먹다 보니 게눈 감추듯 사라져 버리고.. 아쉬워서 하나 더 먹을까 잠시 망설이다가 떠오른 사실. 칼로리는 폭탄급 이라는 거~*


△ 지스궈(吉事果, JSG Churros)의 블루베리 츄러스 아이스크림, 빙찌링+란메이(冰激凌+蓝莓) - 28元

딸기맛 - 20元, 키위/메론맛 - 25元, 블루베리맛 - 28元, 초코맛 - 30元



△  우유푸딩의 명가 난뤄구샹의 문우치즈가게, 원위 나이라오뎬(文宇奶酪店:문우내락점, Wenyu Nailaodian)



■ 우유 푸딩의 명가, 난뤄구샹의 문우치즈가게(文宇奶酪店:문우내락점, Wenyu Nailaodian)


    - 주소 : 文宇奶酪店, 49 S Luogu Alley Dongcheng, Beijing

    - 전화 : (+86) 010 6405 7621

    - 메뉴 : 나이라오(奶卷) - 12~15元(팥맛, 망고맛), 솽피나이(燕麦双皮奶) - 10~15元, 

               쏸메이탕(酸梅汤: 오매탕) 10~15元 등

    - 운영시간 : 12:00 ~ 소진시까지

    - 찾아오는 길 : 지하철 6호선 난뤄구샹(南锣鼓巷)역 도보 5분


후퉁을 구경하며 거닐다 보면 사람들이 저마다 손에 무언가를 하나씩 들고는 맛있게 먹으면서 가는데, 바로 나이라오(내락)다. 골목길을 따라 조금 걸어들어가다 보면 사람들이 줄을 길게 늘어선 허름한 가게, 문우치즈가게(文宇奶酪店:문우내락점)이다. 자그마한 가게 안에 우유 푸딩과 치즈 등 몇가지 메뉴만을 판매하고 있다. 그 날 만든 분량이 다 팔리면 더 판매하지 않아 우유 푸딩을 맛 볼 수 없으니 너무 늦지 않게 찾아가자. 


문우치즈가게(文宇奶酪店:문우내락점) 내부.

줄을 서서 주문을 하고 영수증을 창구 안 쪽의 직원에게 건내주면 냉장고에서 신선한 우유 푸딩을 꺼내어준다.


△ 문우치즈가게의 우유푸딩, 오리지널 위엔웨이 나이라오(原味奶酪, Wenyu Yogurt Shop) - 12元

팥이 올라간 달콤한 맛의 나이라오, 홍또우슈앙피나이(红豆双皮奶, Shuangpinai) - 13元


나이라오(奶酪)는 우유 푸딩과 요플레의 중간 정도 맛과 식감이다. 팥이 없는 오리지날 나이라오도 달콤한 맛과 시큼(?)한 맛 두 종류가 있는데, 역시 달콤한 맛을 추천한다. 베이징어들처럼 문우치즈가게의 나이라오를 하나씩 사들고 난뤄구샹, 후퉁의 골목길을 거닐어 보자. : )



[중국, 북경] 베이징의 삼청동 난뤄구샹(南锣鼓巷, Nanluogu Xiang)

FEB 2014

Liah

△ 광동 음식 전문점 일창찬관(日昌餐馆, Otto's Restaurant), 북해북역 점



■ 광동 음식 전문점, 일창찬관(日昌餐馆, Otto's Restaurant)


    - 주소 : 西城区 地安门西大街14号 (近北海北门),  14 Di An Men Xi Da Jie, ShiChaHai, Xi Cheng Qu, Beijing

    - 전화번호 : (+86) 010 6405 8205

    - 홈페이지 : http://www.bj-rc.com/

    - 영업시간 : 10:00 ~ 03:00

    - 찾아가는 길 : 지하철 6호선 북해북역(北海北门) 도보 5분



1998년 개업한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으로 중국내 8개의 지점에 600여 명의 직원들이 일하고 있다. 음식의 메뉴가 다양하고 가격 또한 저렴하여 현지인들에게 사랑받는 음식점 중 하나이다. 스차하이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어 관광을 마치고 허기진 배를 채울 겸 가이드 북에서 소개하고 있는 이 곳에 들렀다. 


음식을 주문하면 고수를 빼고 요리할 것인지 종업원이 묻는다. 전혀 못 먹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즐겨먹는 편이 아니었기에 고수는 빼고 조리해줄 것을 주문했다. 우리는 둘이서 3가지 음식을 주문했는데, 잠시 기다리자 주문한 요리가 순서대로 나왔다. 보기엔 그럴듯 하여 군침이 돌았는데 한입 베어물어보니 음식들이 대부분 입맛에 맞지 않았다. 우리가 주문한 음식은 모두 짜거나 식감이 별로 였다. 한국인 입맛에 맞지 않을 것이라 자신한다. 아니 현지인 입맛에는 맞을까 의문이 드는 맛이었다. 조금 더 굶고 난뤄구샹에 가서 군것질 거리를 사먹을 것을... 게다가 종업원들은 많은데 친절하지 않아 서비스 또한 형편없었다. 


베이징에서 4일을 보내면서 대부분의 음식들이 맛있고 서비스 또한 친절했는데, 이 곳 일창찬관은 나에게 좋은 기억을 남겨주지 못했다. 다음번에 베이징을 방문한다면 다시 들르지 않을 곳이자 주변에 추천 또한 할 수 없는 곳이다. 별 다섯개 중에 0.5개.


△ (Pan Fried Assorted Mushroom Bean Curd) - 22 元

그림만 보고 고기와 버섯, 콩 등을 얇은 전병에 튀긴 음식이라 생각했는데 예상했던 맛이 아니다.

그림으로 보기엔 바삭한 튀김일 거라 생각했는데, 눅눅하고 식감도 별로다. 우_유..

내 입맛엔 맞지 않는다. '맛이 없다'고 표현하는게 좋겠다. 한국인 입맛엔 '확실히' 맞지 않는다. 


△ 깐차오니우허(干炒牛河:건초우하, Fired Rice Noodle with Sliced Beef and Onion) - 28元

소고기와 양파를 잘게 슬라이스로 썰어 콩나물, 쌀 국수 면과 함께 튀긴 광동 요리.

다행히도 이 요리는 입맛에 맞는다. 짜장 소스와 같이 짭조름한 소스에 튀겨낸(볶아낸) 고기가 

우리에게도 익숙한 맛인 태국식 볶음면 요리와 흡사한 맛이다. 


△ 화로식 떡볶이(生嗜年糕:생기연고, Sauteed Rice Stick in Iron Pot) - 28 元

매콤한 짜장 소스에 떡을 튀겨낸 요리로 떡볶이 맛과 유사하다. 

뜨거운 철판과 함께 서빙되어 따뜻한 맛을 오래 유지되었고 입맛에 잘 맞았지만 조금 짰다.


△ 일창찬관(日昌餐馆, Otto's Restaurant)에 들어서면 입구에 위치한 자그마한 제단



[중국, 북경] 광동 음식 전문점 일창찬관(日昌餐馆, Otto's Restaurant)

FEB 2014

Liah

△ 중국 인민의 심장 천안문 광장(天安門廣場, Tian'anmen Square)



■ 중국 인민의 심장, 천안문 광장(天安門廣場, Tian'anmen Square)


    - 주소 : 北京市东城区 天安门广场, Tiananmen Square, Dongcheng, Beijing

    - 전화 : (+86) 010 6511 8713

    - 홈페이지 :  https://plus.google.com/101082628766466420381/about?gl=kr&hl=ko

    - 운영시간 : 05:00 ~ 22:00

    - 찾아가는 길 : 지하철 1호선 천안문동(天安門東)역 C·D 출구 도보 1분



베이징(北京)의 정중앙에 위치한 천안문 광장은 천안문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북으로 약 880m, 동서로 약 550m에 이르는 총 면적 44만㎡의 거대한 광장으로 약 10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광장이다. 1651년 처음 설계된 후, 1958년 확장 공사를 거쳐 현재의 규모가 되었다. 천안문 광장 중앙에 1952년 8월 인민영웅기념비를 착공하기 시작하여 1958년 4월 완공되었다. 기념비의 정면에는 "인민영웅은 영원히 잠들 뿐 사라지지 않는다"는 마오쩌둥의 기념문이 새겨져 있다. 1999년 건국 50주년을 맞아 광장 바닥 공사를 새로 하였고, 조명과 녹지를 조성하여 세계 최고 규모에 걸맞는 모습을 갖추었다. 천안문 광장에는 인민영웅기념비, 모주석기념당, 중국국가박물관, 인민대회당(국회의사당)이 위치하고 있으므로 한나절 시간을 두고 여유롭게 관광을 즐겨보자.


2월의 천안문 광장은 아직 찬바람이 스며든다. 따땃한 핫팩을 주머니에 넣고 광장 구석을 따라 거닐며 이 곳을 찾은 중국인들을 구경하고 있자니 이곳 저곳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 일색이다. 이 사람들 사진을 참 좋아한다. 그런 까닭일까. 광장 곳곳에는 사진사들이 천안문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준다며 외쳐댄다. 나도 여느 유명한 관광지에 들르면 기념 사진을 찍곤 하는데, 이 곳에선 사진에 열성적인 중국인들 틈에서 기념사진 찍자니 조금 쑥쓰럽다는 핑계로 천안문 광장에서는 기념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하고 말았다. 


△ 중국의 상징, 천안문(天安門)



■ 중국의 상징, 천안문(天安門, Tian'anmen)


    - 요금 : 성루 등정료 15元(학생 5元)

    - 개방 : 08:30 ~ 16:30 


중국 황제가 살았던 궁전의 정문인 천안문(天安門). 천안문 정면에는 마오쩌둥(毛澤東) 초상과 국가 문장이 걸려있고 중국의 상징과도 같은 곳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베이징에서 가장 먼저 찾는 곳이다. 1417년 명(明)나라 영락제 때 건설되어 승천문(承天門)으로 불리었다. 1457년 낙뢰를 맞아 파괴되었고, 1644년 이자성의 농민군에 의해 불태워졌다가 17세기 명나라가 멸망한 후 청(靑)나라 순치제에 의해 1651년 재건되며 천안문(天安門)이라 불리게 된다. 건설된 천안문은 중국 황제가 살았던 황실의 정문으로 사용되다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선포 장소로 중국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다. 


△ 천안문 광장에 위치한 국기 게양대(国旗揭扬台)



■ 중국 인민의 꿈, 천안문 광장의 국기게양식/하기식(國旗昇降式)


천안문 광장의 국기 게양대에서는 매일 중국 국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오성홍기(五星紅旗)가 게양된다. 국기 게양식은 일출 시간 때, 하기식은 일몰 때로 시간이 들쑥날쑥하다. 많은 인파가 몰리기 때문에 가까이서 구경하고 싶다면 해뜨기 1시간 전, 해지기 1시간 전 쯤 미리 자리를 잡고 있어야 한다. 매년 5월 1일 노동절(勞動節, Labor Day)과 10월 1일 국경절(國慶節, National Day)에 국기 게양식/하기식은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갖게되는데 이 때 몰리는 인파로 광장 주변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지방에 살고있는 중국 인민들은 이 곳에서 국기게양식을 보는 것을 일생일대의 과업으로 삼는다고 한다. 떠오르는 오성홍기를 바라보는 중국인의 모습을 보면 장엄함마저 느껴진다.


1949년 10월 1일 마오쩌둥이 천안문 성루에 올라 개국대전(開國大典, The Birth Of New China) 개최하며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성립하였다. 이후 국경절(10.1)은 현재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수립일, 즉 개국기념일로 춘절(春節), 노동절(勞動節)과 함께 중국 최대의 명절로 손꼽힌다. 


△ 천안문 광장을 지키는 경비병 공안(公安)



■ 천안문 광장에서 벌어진 대학살, 천안문 사건(1989. 6. 4)


1980년 중국은 개혁개방을 단행한게 되는데, 개혁개방 이래 중국은 매년 10% 가까운 고도성장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도시 내에서 빈부 격차와, 농촌간의 소득 격차 등 다양한 사회문제에 맞닥뜨리게 된다. 더욱이 1980년대 말은 세계사 적으로도 경동의 시기였다. 사회주위권으로 상징되는 소련이 정치와 경제 개혁을 단행하고, 동유럽 국가들도 자본주의에 편입되기에 이른다. 이러한 혼돈의 정세 속에서 중국공산당 총서기였던 후야오방(胡耀邦:호요방)이 사망하게 되고, 그의 죽음은 북경대 학생들이 시작하고 시민들이 합세하여 대규모 군중 집회로 발전한 천안문 사건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다. 


1989년 4월 15일 그는 당내 보수파와 논쟁 도중 졸도하였고 그대로 사망하고 말았다.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수 많은 음모론이 제시되었으며 학생들은 후야오방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모여들어 인민영웅기념비 행렬을 하게 된다. 4월 17일 대학생 수백 명이 천안문 광장에서 시위를 시작하고 , 시위는 이내 확대되었다. 4월 22일 시안(西安)에서 진행된 후야오방의 장레식에서 군중 300여명이 차량에 불을 지르는 등 시위가 더욱 확대되기에 이른다. 4월 27일 덩샤오핑(鄧小平:등소평)은 이를 '반혁명 폭란'으로 규정하였고, 5월 20일~6월 3일까지 베이징 시 여러 지역과 천안문 일대에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1989년 6월 4일 새벽 1시 30분 '긴급통고' 이후 새벽 4시 중국 정부가 계엄군을 통해 시위대 진압 명령을 내리며 진압 작전을 펼치고 유혈사태가 벌어진다. 다음날 중국 정부는 언론을 통제하고 '6월 4일 천안문 광장에서는 한 사람의 사망자도 없었다. 학생들은 해산했고 총에 맞거나 전차에 치인 학생도 없었다. 폭도들이 소란을 피운 곳은 다른 곳이다. 폭도들은 군인에게 총을 탈취하여 국가를 전복시키려 하고 있다. 이 전투에서 사망자는 300여 명인데 희생자의 절반은 군인이며, 절반은 폭도 및 질 나쁜 구경꾼들이다'라고 발표했다. 영국의 BBC방송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사망자만 7천 명에 이르고, 부상자는 수만 명에 달한다고 알려졌다. 천안문 광장에서 대피한 시위대의 학생 대표들에게 수배령이 내려졌고, 잡히면 총살당했다. 


사건 이후 전 세계는 중국의 야만성에 격분했고, 많은 서방 국가들이 중국에 비난을 쏟아냈다. 덩샤오핑의 정치적 입지가 흔들렸고 이내 권좌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사건의 여파로 2000년 베이징 올림픽 도전은 실패로 이어지고, 중국에 병합될 예정이던 홍콩은 공포로 인한 이민 열풍이 불었다고 한다. 지금도 매년 6월 4일을 전후하여 천안문 광장에는 대륙 공안이 대규모로 배치되어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고 있고, 검색엔진(중국어 구글)에서도 중국 국무원의 요청으로 천안문 사태에 대해 정보검색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 1976년 천안문 사건(1976. 4. 5) - 중국 마오쩌둥 체제 말기 1976년 있었던 대중반란으로, 중국 문화대혁명 이래 마오쩌둥 사상 절대화 풍조와 가부장 체제에 대한 중국 민중의 저항을 나타낸 사건이었다.


○ 1919년 천안문 사건(1919. 5. 4) - 오사운동(5.4운동)으로 알려진 1919년 천안문 사건은 러시아 혁명(1917)의 영향을 받아 베이징 대학의 교수, 학생들을 중심으로 확산한 반제국주의, 반봉건주의 혁명 운동이다. 중국공산당의 신민주의 혁명의 출발점으로 평가되기도 하며 근·현대사의 중요 사건으로 일컬어진다.


△ 천안문에 걸린 마오쩌둥(毛澤東:모택동 주석, Mao Zedong) 초상



■ 중국의 초대 주석, 마오쩌둥(毛澤東, 1893~1976)


마오쩌둥(毛澤東)은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한 초대 국가 주석이다. 1893년 청나라 후난성에서 농민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13세(1905)에 학업을 중단하고 아버지의 강요로 집안의 농장에서 일을 한다. 그러나 공부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후난 성립 제일사범학교까지 졸업하고 베이징 대학에 취직하여 도서관 사서 보조로 근무하게 된다. 1919년 5.4운동 발발 후 후난 학생연합회를 설립하고 <샹장평론(湘江評論)>을 펴냈으나 곧 금지당하고, 베이징으로 넘어가 러시아 혁명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다. 1921년 8월 상하이에서 열린 중국공산당 1차 전당대회 창립대회에 참석하여 회의 서기를 맡아 보았고, 10월 후난성 지부 서기로 취임하게 된다. 1924년 국공합작이 되자 공산당 중앙위원, 중앙집행위원 등을 거쳐 1931년 중화 소비에트정부 중앙집행위원회 주석이 되었다.


1945년 4월 연합정부론을 발표하고 중앙위원회 주석이 되었고, 전쟁 후 국민당과의 내전(1946~1948)을 승리로 이끈다. 1949년 10월 1일 마오쩌둥(毛澤東)은 천안문 성루에 올라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을 공표했고 국가 주석 및 혁명 군사위원회 주석으로 선출된다. 이날 이후 천안문은 황궁의 정문에서 중국의 상징으로 탈바꿈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1959년 국가 주석을 사임하고, 1965년 당내에서 고립되어 연금되었으나 1966년 문화대혁명을 통해 다시 권력을 잡았다. 1976년 4월 발발한 천안문 사건(天安門事件) 이후, 위대한 영웅이자 독재자 마오쩌둥은 고립된 채 82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마오쩌둥(毛澤東:모택동 주석)에 대한 평가는 아직가지 분분하다. 중국을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중국의 독립과 주권을 회복하게 한 점. 중국을 통일하고 대중의 정치 참여를 이끌어낸 점은 높이 평가된다. 그러나 문화대혁명으로 인한 중국 전통 문화의 유실 및 대학살로 많은 인명을 죽인 독재자로 비판받기도 한다.



[중국, 북경] 중국 인민의 심장 천안문 광장(天安門廣場, Tian'anmen Square)

FEB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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