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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묵지/추억의 책장 · 메모

Homo Mobilicus(호모 모빌리쿠스) : 모바일 미디어의 문화생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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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YES24]


서론
호노 모빌리쿠스의 탄생
호모모빌리쿠스(Homo Mobilicus)는 휴대전화를 생활화시킨 현대인을 지칭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라틴어 신조어로서 지혜의 인간, 호모 사피엔스가 휴대전화 거는 인간 호모 모빌리쿠스로 변형되어가는 문명적 차원의 변화를 시사한다. 일부 외국 전문가들은 호모 모빌리스(Homo Mobilis)라는 표현을 사용한 바 있는 데, 이 표현은 점차로 높아져가는 현대사회의 이동성 속에서 갈수록 더 많이 움직이는 인간형을 말하며, 휴대전화라는 구체적인 매체를 담아 내지는 못한다. 호모 모빌리쿠스는 더 정확히 말하자면, 휴대전화를 거는 인간을 의마하는 호모 모빌리스 텔레포니쿠스(Homo Mobilis Telefonicus)의 약어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2부 : 새로운 언어 풍경과 정신의 변형
04 휴대전화 접속자의 정신계
 
모바일 마인드와 유목주의
모바일 마인드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따르면, 'mobile'은 라틴어 'mobilis'에서 유래했으며, 최초의 의미는 라틴어 문장 'mobile vulgus(흥분한 군중)'와 결합되었다. 오늘날 휴대전화는 바로 이 같은 최초의 의미를 다시 부각시킨다. 즉, 휴대전화는 새로운 속도감을 불어넣고 사회생활에서의 연결을 강화해주며, 개인들 간에 새로운 종류의 관계를 도입한다. 이런 점에서, 휴대전화는 새로운 사적 세계의 창발을 쉽게 해주며 순간적으로 결합될 수 있는 가상 공동체의 출현을 가능하게 한다.
이제 심리적 이동성을 포함하는 "어디에 계세요?"라는 물음은 액면적 의미를 갖는 물음 이상의 것이다. "어디에 계세요?"는 장소를 이동한 목소리의 소재지를 묻고 그것을 맥락화시키는 시도다.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자아는 현실로부터 일탈되고 파편화될 수 있지만, 새로운 안정감을 얻는다. 즉, 자신의 친구 및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과 늘 전화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안도감을 말한다. 실제로 여성들은 휴대전화를 소지함으로써 심리적 안정감을 느낀다고 진술한다. 휴대전화는 일종의 은신처로서 가치매김된다. 아울러 자신의 사적 공간을 경영하는 수단으로 쓰이기도 한다.
이제 모바일 시대의 사람들은 아무 하는 일 없이 보내야 하는 따분한 시간의 미학이나 사용 방법을 알 수 없게 되었다. 휴대전화를 도움과 조언의 근원으로 삼으면서 그것에 대한 정신적 의존도가 커져, 자아와의 진정한 대화나 깊은 사색의 시간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휴대전화 수신음이 울리지 않을 때 모바일 인간은 유례없는 고독감을 느끼고, 늘 가지고 다니던 휴대전화가 없을 때는 원래부터 그것이 없던 상황에 비해서 더 심한 고립감과 취약한 상태에 노출된 것처럼 노심초사하게 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환상성과 고독
판타즘의 경연장

홍길동이라는 사람은 지금 서울-부산 간 기차 속에 있으며, 온화하게 그를 바라보는 것을 거부하는 추악한 사람들에 에워싸여 있다. 그러나 그는 휴대전화라는 마술 지팡이를 통해 누구에게나 전화를 걸 수 있으며, 기차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대화 상대를 핑계 삼아 자기가 지난 일요일 테니스 시합에서 우승했다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더 멀리서 김영희라는 여자 역시 공적인 표현을 하는데, 이번에는 그녀가 얼마나 낭만적이며, 열정적인 사람인지를 설명함으로써 자신을 드러낸다. 또 다른 사람은 사업가인데, 자신이 중요한 인물로 주목받지 못하는 데 짜증이 나서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는 아무에게나 전화를 걸어 기차 안의 친절한 승객들에게 자기 소개를 하는 모습을 연출한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환상을 이야기하며 스스로를 치장한다. 과거에는 이런 자기 치장을 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노력을 해야했다. 큰 소리로 검표원에게 자신이 낭만적인 사업가이며, 근육질의 스포츠맨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히스테리가 필요했다. 이제 휴대전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신분을 공개적으로 떠들어대는 것을 가능하게 하며, 듣는 사람이 있든 없든 환상을 이야기할 수 있게 해준다.



3부 : 시간과 공간의 새로운 축조
05 시간의 새로운 현상학
 
춤추는 시간
시간의 연금술

상대방에게 곧바로 시간 및 프로그램의 변화를 알릴 수 있는 가능성은 끊임없는 양자 선택의 논리로 유도될 수 있다. 욕망과 의무, 이성과 감정, 권력과 도덕 등을 섞어가면서 매우 절묘한 시간의 연금술이 출현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수시로 자신에게 유리한 선택이 무엇인지를 자문해본다. 쉬운예로, 예정대로 약속 장소에 가는 대신, 휴대전화로 핑계를 대면서 다른 볼일을 보고 나중에 약속 장소에 가는 대신, 휴대전화로 핑계를 대면서 다른 볼일을 보고 나중에 약속 장소에 나갈 수도 있다. 최종 순간에 이르러 변화를 알리는 것으로 족하기 때문에 하나의 결정을 양분시키면서, 시간의 비귀환성에 맞서서 투쟁한다. 그 결과, 수시로 시간 조정을 할 수 있는 이 같은 능력은 하나의 행동이 이미 착수되었다 해도, 변경 가능한 점증적 선택들을 증가시킬 것이다.
결과적으로, 하나의 미래를 프로그램화시키되, 그 실현은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만회 방식을 예측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럴 경우 미래는 선택의 결과라기보다는 하나의 선택적 대안이다. 심리적으로 말해서 이러한 행동 양식은 결정적인 것, 돌이킬 수 없는 것에 대한 원초적 두려움에 기인하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휴대전화 사용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최종 순간에 늘 변화가 발생하고, 휴대전화를 이용해, 회의를 취소할 수도 있고, 장소를 이동할 수도 있으며, 모든 것은 일시적이게 된다. 매사가 불안정해지고, 일상 생활 속에 엔트로피는 증가해 시간의 서커스가 시작되는 형국이다.


시간의 가소성
순간의 복제와 순간의 상실

시간을 의미하는 고대 그리스어 '카이로스(kairos)'는 순조로운 순간과 기회를 뜻한다. '카이로스'는 곧 '존재'와 '기회'의 합성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구조적 관점에서 휴대전화 사용자들의 논지를 살펴보면, 바로 가소성을 띤 '카이로스'가 문제임을 알 수 있다. 시간을 제어하려는 사람들은 순간 또는 핵심적인 주요 순간들, 선택의 기로 등을 놓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앞에 두면 불안감에 빠진다. 이들은, 만약 그러한 기회들을 스쳐지나가도록 놓아두면 인생을 망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심리적 관점에서 이 같은 공황 상태는 너무나 강렬한 것이어서 아주 작은 것 하나만 놓쳐도 인생의 성공을 가로 막을 수 있는 심각한 일로 받아들여진다. 아주 작은 일의 실패가 곧 인생의 실패를 떠올리게 만든다. 예컨대, 모임을 예로 들어보자.
당신은 지금 고교 동창들과 회식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근처에 있는 직장 상사로부터 회식에 참석해달라는 문자메시지가 날아온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의 우정도 중요하지만, 회식자리에서 중요한 회사 프로젝트와 관련된 이야기가 오고갈 것이 분명하다. 딜레마다. 이제 휴대전화와 더불어, 당신은 선택 대신 두세 개의 만남을 동시에 해결하는 이른바 '재핑'을 선택한다.
하나의 이벤트가 어디에선가 진행되며,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달려가면 모임은 끝나가고 있다. 우리의 삶에서 모든 내용과 깊이를 제거하는 가장 확실한 방식은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달려가는 것이다. 정신분석학자 라캉(J.Lacan)이 말했듯이 "내가 존재하는 곳에서 나는 생각하지 않으며, 내가 생각하는 곳에서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달리 말하면, 우리는 늘 생각하고 난 다음에야 자신이 사건의 주역이었다는 점을 깨닫는다. 동시에 한 곳에서밖에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은 결코 무능력과 실패를 노출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상이한 순간들에 있어서 동시에 여러 곳에 존재한다는 것은 여러 곳에서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이해관계에 직결된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일련의 장소를 동시에 제어할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일 뿐이다. 반면, 깊이 있게 의미를 부여한 하나의 장소와 하나의 구체적 상황 속에서 우리는 무한한 가능성을 갖게 된다.

 

<호모 모빌리쿠스 : 모바일 미디어의 문화생태학>
김성도 지음
삼성경제연구소,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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