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인수봉 등반을 마치고 내려오던 도선사 입구 주차장에서 화려한 색의 바지를 입은 한 산악인을 만났고, 주변의 선배님들께서 '꿈속의 알프스' 임덕용 선배님이라고 알려주셨다. 멀고 높게만 느껴지는 선배님께 멋쩍은 인사를 드리고는 기회가 되면 얼른 책을 찾아보아야지 마음먹었다.

 

그리고는 서점에서 책을 찾으려는데, 절판된 오래된 산서는 구해 읽기가 마땅치 않았다. 스마트폰 메모 앱 구석에  '산서 구매 목록'을 만들어 두고, 틈나는 대로 책들을 검색해보곤 했는데, 오래된 헌책방에서 어렵사리 '꿈속의 알프스'를 찾을 수 있었다. (95. 6. 12. 미선) 이란 메모와 함께 '내 좋은 山 친구에게'라는 선물 메시지가 담겨있었다. 아마도 80년대 출판되었던 이 책은 95년 선물이 되어, 95부터 20여 년을 어느 책장에 머물다가 이곳으로 왔으리라. 덕분에 절판되어 구할 수 없는 책을 읽을 수 있음에 감사드린다.

 

살아 숨 쉬는 전설 같은 선배님들의 청년 시절 북벽 등반기를 읽으며, 키득키득 웃음이 세어 나왔다. 생생하게 전해지는 30여 년 전 멋진 선배님들의 등반 기록들. 책장을 덮으며 "척"하는 삶에 더 가까운 내 모습을 돌아보았다. 나도 언제쯤이면 진심으로 미칠 수 있을까? 아니 나는 그런 삶을 살 수 있을까? 여전히 오늘도 "척"하는 삶이지만, 그 "척"이 진짜가 되기를 갈망한다.

 

 

■ 본문 중에서

 

# 이 책을 쓰고나서 - 2p.

 

10년 동안 나는 철저히 미쳐 왔었다. 오직 미쳐야만이 그리고 철저히 미쳐야만이 해낼 수 있다는 신념 외엔 없었다. 남들이 하는 흡연이나 음주는 커녕 영화구경 한 번 군것질 하나 제대로 하지 않고 오로지 산에만 미쳐 왔었다.

이제 조용히 지나 온 날을 돌아 본다. 내가 과연 미칠만큼 모든 일에 나의 최선을 다했던가?

운동을 한 날보다 안한 날이 부지기수였고 늦잠드는 날이면 아예 걸렀으며 조금 힘들면 쉬길 원했고 배고프고 목마르면 조금도 참지 못하고 먹고 마시기를 원했다. 배낭이 무거우면 짐을 줄이려 애썼고 비가 퍼붓고 있을 땐 텐트 밖에 나가길 주저했으며 몸이 피곤해 지쳐있을 땐, 누가 버너를 먼저 꺼내지 않을까 눈치를 보았으며, 말로만 그림이 어떻고 작품이 어떻고, 고갱이, 고흐가 어떻다고 떠들었지 실상 산행 중에 산그림 그린 것 몇 장 없으며 시헌 전날 책 펴놓고 공부한 적 또한 한번도 없는 것이다.

다만 "척" 했을뿐. 그러나 "척"하다 보면 그 "척"이 진짜가 되었다. 누가 그 "척"을 일찍하느냐, 얼마나 빨리 시작하느냐에 성공의 승패가 좌우된다고 감히 말해도 될까?

 

 

# 불효자의 눈물

 

- 19~20 p.

집에 돌아와 래다를 나의 자일인 빨랫줄을 잘라 이었다. 나에겐 이미 굵고 하얀 멋진 자일이 생겼던 것이다. 장비들을 가지고 정신없이 노닥거리는데 놀랍게도 아버지께서 불쑥 방에 들어 오셨다. 당연히 화가 나신 아버지는 처참하게도 나의 전 재산이고 모든 기쁨인 장비들을 몽땅 몰수 해서는 캐비넷 금고에 넣고 잠가 버리셨다. 야단 맞는 일은 문제도 아니었다. 나의 최대 보물이고, 기쁨인 그것들을 잃어버린 슬픔에 비하면. 그러나 다행히도 캐비넷 번호를 알고 있어 꺼내 볼 수 있다.

 

- 23p.

쓰라림을 안고 다시 산을 찾아 나섰고 그곳에서 실컷 울었다. 눈꽃이 사르락사르락 내려앚는 소리와 잔잔한 바람이 가지에 부딪치는 소리 외에는 나의 울음을 방해할 아무 것도 없었다. 마음껏 울었다. 낙오자라서가 아니라 부모에게 죄스럽고 부끄러웠으며 떳떳하게 찾아 오겠다던 산과의 약속을 저버린 것이 미안해서 울었다. 이제는 산을 찾을 길이 막혀 버린 것 같았다. 그러나 산은 조용히 나를 지켜 보고 있었다.

 

 

# 내 너를 위해 울던 날

 

- 55p.

산사람들에겐 일종의 금기로 산행 전에는 머리와 손, 발톱을 안깎으며 개고기와 닭고기를 먹지 않는 일종의 미신같은 것이 있었다. 헌데 출발을 코앞에 두고 머릴 깎여야 하는 운명에 놓이다니......

 

- 59~60p.

두 발 사이로 한규의 불안한 표정이 들어왔다. 불안한 등반은 하는 이보다 보는 이를 더 초조하게 한다. 만일의 추락 사태에 대비하여 취하여야 할 행동을 미리 구상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안 꼽히면 몸이 뒤집혀지면서 그대로 추락해 버린다. 암벽보다 빙벽에서의 추락이 더 무섭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제동걸어 줄 확보물이 불안한데다 미끄러지는 속도를 예측할 길이 없었던 것이다.

 

 

# 북벽으로 가는 길 - 102p.

 

식량 담당에는 허 욱, 우리 대원 중 가장 낙천주의자. 이 등산가는 항상 유우머를 만들고 다닌다. 어디에서나 즐거워 보이는 그가 안경 속의 두 눈을 껌벅거릴 땐 만화의 주인공 꺼벙이 같지만 단단한 몸매에서 우러나오는 힘은 뽀빠이가 무색할 정도이다. 설악산 울삼암을 일곱 번 등반, 안산의 개척 등반, 대표 형과 아이거 북벽 등정을 다녀 온 기량있는 등산가 이기도 하다. 이번 대원 중 가장 힘이 세고 완력등반으로는 단연 제1인자이며 매그러운 암벽보다는 거친 틈새를 좋아하는 고전적인 멋을 가지고 있는 클라이머이다.

 

 

# 위험한 서주 - 123~124p.

 

대부분의 클라이머들은 자기 짐을 남에게 분산시키길 싫어한다. 누구나 거의 같은 무게를 지고 있고 같이 등반을 하는데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에게 해를 주지 않으려는 것이다. 파트너간에는 더욱더 심해 상대에게 도움을 주지 못할 망정 청하길 꺼려하여 등반중 빨리 지치거나 피로해져 사실상 등반을 실패로 이끄는 예도 있다. 자신이 피로해 지기 전에 미리 양해를 구해 도움을 받는 방식이 마음에 안 내킬지라도 지독히 어려고 극한상태에서의 등반시에는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파트너 간의 거리낌없는 대화에서 서로의 상태를 토로하고 협력할 수 있어야 되겠다.

 

 

# 그랑드 죠라스 정상의 메아리 - 188p.

 

난 정말이지 그렇게 행복했던 적이 없었다. 정상의 세 명의 사나이는 나와 함께 정상에 서 있었다. 난 차마 눈을 뜨고 내려다 볼 수는 없었지만 나에게도 정상의 세찬 바람은 몰아치고 있었고 발아래 펼쳐진 파노라마는 마터호른의 정상에 섰던 기쁨보다 더해 동료들의 정상을 향한 모든 열의를 지켜볼 수 있는 마음은 더욱 나를 감동시키며 정신없이 눈물과 콧물이 교차되어 그치질 않고 있었다. 아니 엉엉 큰 소리로 울어도 부끄럽지 않았고 10년을 미쳐온 자신이 울고 있을 때 난 자랑스러운 미친애가 되었던 것이다. 울음은 알프스의 험난한 북벽을 메아리되어 퍼져 나가고 누가 있어 이런 미친애의 진정한 울음을 울 수 있는 선택된 자가 될 것인가? 누가 이 감격한 패배자의 화려한 웃음을 알 것인가?

 

 

<꿈속의 알프스>

임덕용

평화출판사, 1982

 

 

 

 

Katherine : 

  There's no bathroom for me here.

  여기엔 제가 쓸 화장실이 없어요.

 

Harrison : 

  What do you mean there is no bathroom for you here?

  여기 자네 화장실이 없다니?

 

Katherine : 

  There is no bathroom.

  여기엔 화장실이 없어요.

 

Katherine : 

  There are no colored bathrooms in this building 

  or any building outside the West Campus, 

  which is half a mile away.

  Did you know that? I have to walk to Timbuktu just to relieve myself.

  And I can't use one of the handy bikes.

  Picture that, Mr. Harrison.

  My uniform... Skirt below my knees, my heels, and a simple string of pearls.

  Well, I don't own pearls. Lord knows you don't pay coloreds enough to afford pearls!

  And I word like a dog, day and night, 

  living off of coffee from a pot none of you wanna touch!

  So, excuse me, if I have to go to the restroom a few times a day.

  이 건물엔 흑인 화장실이 없어요. 

  웨스트그룹 다른 건물에도 없어요.

  800 m 거리라는 거 알고 계셨어요?

  그 먼 거리를 볼 일 보러 걸어서 가야해요. 자전거도 쓸 수 없어요.

  상상이 되세요? 본부장님?

  근무복은, 무릎 아래에 힐도 신어야 하고. 진주 목걸이라뇨?

  진주 같은 건 없어요. 그런 거 살만한 급여를 흑인들은 받지 못해요!

  밤낮으로 열심히 일해요. 

  커피 포트 손대는 건 전부 꺼려하고요!

  그러니 양해 바랄께요, 하루에 몇 차례 화장실에 가는걸요.

 

Harrison : 

  There you have it.

  No more colored restrooms. No more white restrooms. 

  Just plain old toilets.

  Go wherever you damn well please. Preferably closer to your desk.

  Here at NASA, we all pee the same color.

  이제 됐네!

  유색인종 화장실은 이제 없어. 백인 화장실도 마찬가지. 그냥 평범한 화장실뿐.

  급할 땐 어디든 가. 사무실에서 가까운 쪽으로.

  나사에선, 화장실 구분은 없어!

 

 

Katherine Johnson. Mary Jackson. Dorothy Vaughan.

 

 

John Glenn successfully completed three of a scheduled seven orbit fight.

존 글렌은 예정된 7바퀴 궤도 비행 중 3바퀴를 성공적으로 끝냈다.

 

His Friendship 7 Mission turned the tide in the space race, propelling NASA to the moon in 1969.

프렌드쉽 7 임무는 우주 경쟁의 절정기에 동력이 되어 나사가 1969년 달에 가도록 이끌었다.

 

Mary Jackson became NASA's... and America's first female African-American aeronautical engineer.

In 1979, she was appointed Langley's Women's Program Manager, where she fought to advance women of all colors.

메리 잭슨은 나사 뿐 아니라 미국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항공 엔지니어가 됐다.

1979년 랭리 여성 프로그램 관리자로 임명됐고 모든 인종의 여성들 권익을 위해 힘썼다.

 

Dorothy Vaughan became NASA's first African-American Supervisor.

As a Fortran specialist, on the frontier of electronic computing, she was regarded as one of the most brilliant minds at NASA.

도로시 반은 나사 최초로 아프리카계 미국인 관리자가 됐다.

전자 연산이라는 미개척지 분야의 포트란 전문가로서 그녀는 나사의 최고 수재 중 한 명으로 인정 받았다.

 

Katherine Johnson went on to perform calculations for the Apollo II mission to the moon and the Space Shuttle.

In 2016, NASA dedicated the Katherine G. Johnson Computational Building in honor of her groundbreaking work in space travel.

At the age of 97, Katherine was awarded the Presidential Medal of Freedom...and celebrated her 56th anniversary with Jim Johnson.

캐서린 존슨은 달 관련 아폴로 II 임무와 우주 왕복선의 전산원 임무를 계속 수행했다.

2016년 나사는 우주 여행 분야에서 그녀의 획기적인 업적을 기려서 '캐서린 존슨 전산동'을 헌정했다.

97세 나이에 캐서린은 대통령 훈장을 수상했고 짐 존슨과의 56번째 결혼기념일을 축하했다.

 

 

<히든 피겨스, Hidden Figures>

감독 : 데오로드 멜피

출연 : 타라지 P. 헨슨(Taraji P. Henson) - 캐서린 존슨, 옥타비아 스펜서(Octavia Spencer) - 도로시 본, 자넬 모네(Janelle Monae) - 메리 잭슨

드라마, 2017

 

 

 

[원문] 사람과산 2019 09월호 (Vol. 359)

 

해외등반_ 아프리카 최고봉 탄자니아 킬리만자로(5,895m)

 

아프리카 대륙의 최고봉, 킬리만자로 산의 정상 우후루 피크(5,895m) 등정에 성공한 신차원정대!

킬리만자로 신차원정대

"누나... 춥고 배고프고 졸려요..."

"하섭아, 안 되겠다. 우리 그냥 버스 탈까?"

새벽 4시, 35km 지점을 막 지난 지점이었다. 터덜터덜. 발걸음이 너무 무거웠다.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눈꺼풀도 연신 감겼다. 엎친 데 덮친 격, 몇 해 전 부상이 있었던 발목까지 시큰거려오니 더는 버티지 못하고 두 손을 들고 회송 차량에 몸을 실었다. 킬리만자로 원정을 한 달여 앞두고 마지막 훈련 및 단합을 위해 참가한 '신라의 달밤 165리 걷기 대회(66km 코스)'에 나간 우리는 보기 좋게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마지막 훈련에서 삐끗한 이후, 우리는 결의를 더욱 굳건하게 다지고 남은 기간 더 열심히 체력 훈련을 했다.

 

대망의 출국일, 공항에서 둘만의 조촐한 출정식을 했다. 신하섭의 '신', 차승준의 '차' 두 명뿐인 대원의 이름을 따서 '킬리만자로 신차원정대'로 작명하고 지인들에게 등반 계획 보고와 짤막한 인사말을 남겼다. 자동차 판촉 행사 같은 다소 촌스러운 원정대 이름을 가지고 드디어 킬리만자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산에 대한 경험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산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짐과 더불어 산을 향한 꿈도 꼬리를 물며 다양해졌는데,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7대륙 최고봉에 올라보고 싶다는 꿈이 스멀스멀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그 여정의 첫걸음으로 아프리카 대륙 최고봉 킬리만자로를 택했다. 꿈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운행기록

일정 등반 운행(고도) 숙영지
1일차

오전: 장비 점검 및 일정 시뮬레이션
오후: 운행

10km
(1,800m~3,000m)

마차메 캠프
(Machame Camp, 3,000m)

2일차

오전: 운행
오후: 휴식 및 고소적응 하이킹

6km
(3,000m~3,800m)

시라 캠프
(Shira Camp, 3,800m)

3일차

오전: 운행 (라바타워, 4,630m)
오후: 운행 (고소적응 후 고도 낮춰 숙박)

10km
(3,800m~4,630m~3,900m)
바란코 캠프
(Baranco Camp, 3,900m)
4일차 오전/오후: 운행

10km
(3,900m~4,673m)

바라푸 캠프
(Barafu Camp, 4,673m)
5일차

(자정부터) 야간 운행 후 정상 등정
오후: 하이캠프 휴식 후 하산

17.5km
(4,673m~5,895m~3,100m)

음웨카 캠프
(Wmeka Camp, 3,100m)
6일차

오전: 하산 완료
- 음웨카 게이트(Wmeka gate, 1,900m)

10km
(3,100m~1,900m)
 

 

평화로운 시라 캠프(Shira Camp, 3,800m) 전경

폴레폴레,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리아! 폴레폴레"

"오케이 오케이"

가이드 필벗이 내 발걸음을 붙잡았다. '폴레폴레'는 스와힐리어로 '천천히'라는 뜻으로, 고산 등반 경험이 많지 않은 등산객들이 초반 오버 페이스로 등정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아 현지 가이드들이 늘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넷째 날까지 하루 평균 10km (고도차 800~1,200m)를 이동하며 별 탈 없이 운행 계획에 맞는 평화로운 등반이 이어졌다. 이전에 5,000m가 넘는 등반지를 대원으로서 오른 경험은 있었지만, 내가 직접 계획 수립부터 루트 선정까지 인도어 클라이밍 시뮬레이션을 모두 도맡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모든 게 순탄하게 진행되는 과정이 그저 감사했다.

 

여유 있게 시라 캠프에 도착해 함께한 멤버들과 가무를 즐기며 팀워크를 돈독하게 쌓았다.

 

마지막 캠프를 향해 이동 중인 신차원정대 앞으로 포터들의 기나긴 이동 행렬이 펼쳐져 있다. 킬리만자로 국립공원 입산을 위해서는 반드시 현지인 가이드와 포터를 동행해야 한다.

 

킬리만자로는 고도에 따라 열대우림, 관목 지대, 알파인 사막, 만년설 빙하 지역까지 아프리카의 생태를 모두 만날 수 있다. 구름이 낮게 깔리는 날이면 구름과 대자연과 어우러진 풍경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매일 밤이면 하늘을 바라보며 남반구의 별들이 나에게 쏟아지니 황홀경이 따로 없었다.

 

드디어 등정 전야, 그날 저녁 바라푸 캠프(Barafu Camp, 4,673m)에는 유독 바람이 많이 불었다.

"신을 믿거나 믿지 않거나, 지금 이 순간은 모두의 안전을 위해 기도하자!"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꼴깍꼴깍 침 삼키는 소리와 차갑고 메마른 바람만이 공간을 묵직하게 채웠다. 잠시 후 모두의 함성이 울리며, 정상을 향한 등반이 시작되었다. 시곗바늘은 자정을 넘어서고 있었다.

"가자 킬리만자로!! 와아!!"

 

신차원정대가 알파인 사막 지대에 접어들었다. 킬리만자로는 고도에 따라 열대우림, 관목 지대, 알파인 사막, 만년설 빙하 지역까지 아프리카의 생태를 모두 만날 수 있다.

 

킬리만자로 바라푸 캠프(Barafu Camp, 4,673m). 정상 공격을 시도 전 마지막 밤을 보낸 캠프.

 

극한의 추위, 우후루피크 등정

 

"하아... 너무 추워..."

"누나, 여기 따뜻한 물 마셔요."

 

얼마나 걸었을까, 온몸이 오들오들 떨리고 영하의 추위에 팔다리의 감각이 무뎌져 갔다. 나도 모르게 걷다 주저앉길 반복했다. 하섭이가 건넨 레몬과 꿀을 탄 따뜻한 물을 마시며 잠시 몸을 녹였다. 해가 떠오를 때까지만 버티면 곧 나아질 거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이를 악물고 다시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걸음은 자동으로 폴레폴레가 되었다. 스텔라 포인트(Stella Point, 5,745m) 직전, 서서히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다시 못 볼 인생의 일출이었지만 극한의 추위 속, 가만히 서서 아름다운 일출을 바라볼 조금의 여유도 없었다. 정상을 향해 나아가야만 했다.

 

오전 7시 20분, 드디어 정상 우후루 피크(5,895m)에 도착했다. 정상부는 만년설은 많이 줄어있어 일부 지역만 눈이 덮여 있었다. 아프리카 대륙의 가장 높은 곳인 킬리만자로 정상에 다다르면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할 줄 알았는데,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제 내려가야지...'였다. 기온이 많이 올라가고 있었지만 밤새 체온을 유지하느라 에너지를 상당히 소진한 탓에 몸도 마음도 하산을 재촉했다. 정상 등정 인증 사진을 찍고 출발점을 향해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노 모어 폴레폴레"

가이드가 더 이상은 천천히 걷지 말고 빨리 가라고 지시했다. 비몽사몽 졸음을 참아가며 꾸역꾸역 하산길을 따라 걸었다. 지난밤의 베이스캠프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체력이 급속도로 떨어지고, 급기야는 술 취한 사람마냥 휘청휘청 걸으며 만신창이로 가까스로 캠프에 도착했다. 텐트 도착 직후, 곧바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정신이 돌아오고 눈을 뜨니 가이드가 다시 하산을 재촉했다. 곧바로 음웨카 게이트(Wmeka Gate)까지 운행을 시작했다. 이튿날이 돼서야 무사히 하산을 마쳤다.

 

킬리만자로 바란코 캠프(Baranco Camp, 3,900m) 뒤로 정상 우후루 피크(Uhuru Peak, 5,895m)가 눈에 들어온다.

 

마침내 등정 인증서가 손에 쥐어졌다. 신차원정대, 킬리만자로 등정 성공! 고산에서 내려오니 세상은 참 살만 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킬리만자로에서 보낸 일주일을 돌아보니 등정의 기쁨보다는 자연의 섭리에 더 감사한 날들이었다. 등반 중에는 식수를 구하기가 매우 어려웠고, 당연히 전기도 사용할 수 없었다. 휴대폰은 여러 개의 보조배터리를 아껴가며 사진을 찍는 용도로만 소중히 사용했다. 매일 아침 한 잔씩 마시는 커피도, 내 것 인양 공기처럼 사용하는 빛과 전기도, 양치할 때 콸콸 틀어놓는 깨끗한 수돗물도, 그 어느 것 하나 당연한 것은 없었다. 산에서는 모든 것들이 정말 귀중한 자원이었다.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이 다시금 감사함으로 다가왔다.

 

 

우후루 피크(Uhuru Peak, 5,895m)를 배경으로 운행 중인 신차원정대. 고도가 오르면서 점차 얼굴이 붓고 피곤한 모습이다.

 

 

진정한 동물의 왕국

 

킬리만자로 등정을 마치고 혹시나 싶어 남겨두었던 이틀의 여유 일정은 어린 시절 동물의 왕국에서만 보던 아프리카의 야생 동물들을 대자연에서 직접 만나는 데 쓰기로 했다. 나는 공인된 가이드와 함께 지프차를 타고 타랑기레(Tarangire) 국립공원과 응고롱고로(Ngorongoro) 국립공원 두 곳을 돌아보는 투어를 예약했다. 사파리 투어 예약은 현지 트레킹 여행사에서 정보를 찾아 쉽게 예약할 수 있었다.

 

타랑기레(Tarangire) 국립공원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잠시 정차한 지프차 위에서 풍광을 즐기고 있는 필자.

 

지프를 타고 국립공원 내부로 진입하니 살아 숨 쉬는 '라이온 킹'의 영화 캐릭터들을 만난 것 같았다. 지프차가 다가가자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오는 원숭이와 코끼리,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는 얼룩말과 마사이 기린, 평원을 시커멓게 뒤덮으며 이동하는 버팔로 무리까지 영화 속으로 들어온 듯 생생한 풍경이 펼쳐졌다. 방금 사냥한 먹잇감을 들고 창공을 맴도는 맹금류가 머리 위로 맴돌고, 따사로운 햇살 아래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있는 사자와 치타는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지금 여기가 현실인지 영화 속인 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방금 사냥한 먹잇감을 들고 창공을 맴도는 위세 등등 맹금류.



두 마리의 누(Wildebeest)가 서로 시비를 걸며 투닥거리다 자리를 뜨려던 지프차의 시동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흑백의 매혹적인 줄무늬를 가진 얼룩말이 슬픈 눈으로 무언가를 응시 중이다. 배가 고픈 걸까?



사랑에 빠진 듯 정겹게 나란히 초원을 거니는 두 마리의 얼룩말.



익살스럽게 장난을 치고 있는 사바나 원숭이. 나무 위에서 너무도 편안하게 노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는 속담은 사실이 아닐 것만 같다.



아프리카의 뜨거운 태양 아래, 무더위를 피해 물웅덩이에 모여 몸을 식히고 있는 코끼리 가족.

 

INFO_ 킬리만자로

킬리만자로(5,895m)는 스와힐리어로 '반짝이는 산'이라는 뜻이다. 탄자니아에 자리 잡은 아프리카 최고봉으로 암벽 및 빙벽 등반 없이 도보만으로 정상인 우후루(Uhuru) 봉우리에 도달할 수 있다. 1년 내내 입산이 가능하지만, 건기인 1~2월과 7~9월이 등반하기에 가장 좋은 시즌이다.

 

정상까지 등반 가능한 루트로는 마랑구(Marangu), 마차메(Machame), 롱가이(Rongai), 레모쇼(Lemosho), 시라(Shira), 음브웨(Umbwe) 등의 루트가 있다. 한국 관광객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코스는 마랑구 루트로, 일명 코카콜라 루트라고 불리는 대중적인 코스다. 마랑구 루트는 산장에서 숙박하며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필자와 신하섭 대원은 킬리만자로 만년설 봉우리를 바라보며 걷는 일정이 많은 마차메 루트를 선택했다. 마차메 루트는 캠프에 머물며 텐트 숙박으로 정상까지 등반할 수 있다.

 

 

글·사진  차승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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