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일 : 해야 할 일이니까... 꼭지점을 찍어야 되니까...

임일진 : 36시간 같은 거 하지 말아야죠. 그냥 기계처럼 해야되는 것 같아요...

임일진 : 히말라야에 갔는데, 거기에 어울리는 사람이었다는 거죠. 자기 안에 뭐가 있는지... 가보면 안다고 하더라고요.

 

 

<알피니스트 - 어느 카메라맨의 고백>

감독 - 임일진, 김민철

다큐멘터리, 2020

 

 

 

● 본문 중에서

# 한 인간이 먼 길을 돌아 찾아낸 진정한 사랑과 소박한 행복에 관한 아주 낮은 이야기 – 5~6p.

()인생 20년이 지난 지금도 산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내 생애 산들은 열다섯에 와룡산을 오르는 날부터 촐라체 죽음으로부터의 생환까지 단 한 번도 같은 모습, 같은 경험이 아니었다. 어린 중학생의 첫 산행은 그저 산이, 바위가 다가와서 반겨 주었고,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올랐던 히말라야는 희 눈과 바위 속으로 나를 깡그리 내던지게 했다. 산에 미쳐 산밖에 몰랐던 시절이었다. 그 젊음의 광기가 사라져가기 시작한 것은 사회라는 더 높은 산을 만나면서 더 깊숙한 크레바스 자락으로 빠져들 때부터였다.

삶의 수단으로서의 산, 세속의 산을 만났을 때 산은 결코 하얀 산으로 머물지 못했다. 한때는 맑고 밝은 영혼의 산으로 다가왔던 그 산이, 세월과 현실의 때를 입으면서 끝이 보이지 않는 검은 어둠의 고독으로 다가왔다.  

 

# 개정판에 부쳐 – 9p.

나는 수많은 사람을 만나 사고와 그 이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죽음의 팔부능선에서 바라본, 먼 길을 돌고 돌아 찾아낸 소박한 행복에 대해 말해 주고 있다. 우리 인생의 산은 무엇인가. 우리는 왜 산을 오르는가. 그런 질문들에 답하고 있다.

촐라체 등반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가슴 속에는 여전히 히말라야가 가득하다. 그래서 내 삶의 고도는 늘 높다.

 

# 여기는 촐라체 정상

_ 113일 새벽 3, 베이스캠프 -18~19p.

어둠 속에서 길은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어쩌면 길은 애초부터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길이 없었으므로 우리가 발을 딛는 곳은 그 순간 길이 되었다. 흔적도 없이 금방 사라지고 말 그런 길이었다. 강식은 휘파람을 불었고 나는 이따금씩 고향에 두고 온 가족을 떠올렸다. 강식의 휘파람 소리가 끝나자 어디선가 화답이라도 하듯 새 우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내가 휘파람을 불어 새에게 답신했다. 새는 낮에는 보이지 않았고 밤에만 소리로 들렸다. 어쩌면 고대 전설에 나오는 죽지 않는다는 새 시무르그(Simurg)의 일종인지도 모른다.

어둠 속으로 발을 옮길 때마다 산은 한 발 뒤로 물러섰다. 두 걸음을 나아가면 두 걸음을 물러났다. 나는 두려움에 직면했다. 두려움이 앞설 때마다 시무르그를 떠올렸다. 나는 눈을 더욱 크게 뜨고 산을 노려보았다. 헤드랜턴 불빛이 산을 향해 뻗어 나갔다. 산은 아주 조금씩 길을 내주었다. 공포를 느끼는 순간 알피니스트(Alpinist)는 발길을 돌려 산에서 내려가야 한다. 그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법칙이다. 하지만 나는 뒤로 돌아설 수 없었다. 그때쯤 길은 내 뒤에도 없었고 앞에도 없었다. 오로지 저 암벽 꼭대기, 내가 올라야 할 촐라체 정상에 있었다.

 

# 우리 사이, 마주잡은 끈 하나

_ 116일 오후 4, 죽음의 블랙홀 - 69~70p.

휘리릭, 소리가 홀리듯 내 귀를 자극했다. 알 수 없는 힘이 나를 강하게 끌어당겼다. ‘악마의 입구가 나를 끌어당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몸은 이리저리 부딪히면서 제멋대로 내동댕이쳐졌다. 차가운 하늘이 얼음 눈 사면이, 저 아래 수백 수천 미터 절벽이 뱅그르르 돌았다. 짧은 순간 오만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영화에서나 보았던 상황이 내게 현실로 일어난 것이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제멋대로 굴러가던 몸이 탁 멈추었다. 거꾸로 엎어진 상태에서 나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무엇인가 내 몸을 꽉 옥죄고 있었다. 자일이 가슴과 목을 짓누르는 바람에 숨을 쉴 수 없었다. 몸을 일으키려고 해도 말을 듣지 않았다. 이제 죽는구나 싶었다.

 

# 나의 두 다리와 너의 두 눈

_ 117일 오전 10, 또 다른 추락 – 93~94p.

일어나려고 버둥거렸지만 기력이 없었다.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멍하니 누워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젠장, 내가 왜 여기까지 와서 이 고생을 하고 있지?’ 아무리 생각해도 나 자신이 한심했다. 스스로에 대해 화가 치밀기 시작했다. 무엇 때문에 산에 미쳐 이 고생을 하고 있단 말인가. 지금쯤 집에 있다면 편안하게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을 텐데. 다시는 산에 오지 말아야지. 살아 돌아간다면 산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으리라. 별의별 생각이 뒤엉켜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지옥을 벗어나야 했다.

 

_ 117일 오후 5, 시야 상실 – 106p.

밤은 참으로 길고 또 길었다. 너무 추워 잠이 오지 않았다. 강식은 무엇을 하는지 쥐 죽은 듯 누워 있었다. 혹시 죽은 게 아닌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다가가서 확인할 기력도 없었다. 자정이 되자 강식은 끙끙 신음을 흘렸다. 나 역시 턱이 떨리며 저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강식과 나는 그때마다 소리를 지르며 기합을 넣었다. 그건 한 인간이 살아 있다는 신호였다. 바람이 몰아쳤다. 신음 소리가 들렸다. 기합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상대가 흘리는 신음 소리를 통해 서로의 안부를 확인했다. 정신이 깊은 나락 속으로 가물가물 해질 때마다 상대의 기합 소리가 명료하게 몸을 흔들었다.

 

# 살아 돌아갈 수 있을까

_118일 오전 11, 처절한 생환 -117p.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웃음보가 터졌다. 왜 웃음이 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모든 게 우스웠다. 산에 미쳤던 세월이 우스웠고 크레바스에 빠진 내가 우스웠다. 그렇게 한참 웃다 보니 얼굴에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다. 눈은 그치지 않을 모양이었다. 또다시 기기 시작했다. 다리도 손가락도 잃고 싶지 않았다. 두 학기만 남겨 둔 학교도 무사히 마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려가야 했다. 그 끝이 어딘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지금보다 낮은 곳으로, 조금이라도 더 내려가는 것이다.

 

_ 121일 오전 9, 헬기 소리 – 129p.

다시 이곳을 찾을 수 있을까......’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쓸쓸한 얼굴로 풍경 속에 시선을 놓아두었다. 봉우리들 사이로 내가 올라야 할, 오르지 못한 산들이 내려다보였다. 기분이 착잡했다. 나는 입술을 깨물며 낮게 중얼거렸다.

"살았구나. 드디어 살았구나......”

 

 

 

# 신은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

-137p.

비행기는 점점 고도를 높이며 상승했다. 창밖으로 삶과 죽음을 넘나들던 지난 10일간의 사투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나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가 지금 살아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비행기가 출발하자 이번에는 다른 걱정이 스멀거리며 나를 괴롭혔다. 설마 손발을 자르게 되지는 않겠지? 가족들에게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앞으로 나의 등반 인생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얗게 눈 덮인 히말라야의 설산을 뒤로하고 비행기는 힘차게 미끄러졌다.

 

_ 우리는 살아 돌아왔다. 그러나...... – 150~151p.

통증이 몸을 엄습할 때마다 나는 살아 돌아온 걸 저주했고 히말라야와 그 산들을 증오했다. 산에 미쳐 살았던 지난 세월을 후회했으며 산에 오르는 모든 사람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허리는 끊어질 듯했고 골절된 갈비뼈와 피켈에 맞은 어깨, 동상에 걸린 손발은 잠시도 쉬지 않고 아우성쳤다.

 

#하늘로 날려 보낸 여덟 손가락

_ 하느님, 이대로 손가락을 잘라야 하나요? – 154~155p.

손가락을 절단한 뒤 아이들에겐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히말라야 고봉을 오르다가 동상에 걸려 손가락을 잘랐다고 하면 아이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왜 그 먼 곳까지 날아가 산을 올라야 했느냐고 묻는다면? 자라는 동안, 아빠의 손가락은 아이들에게 커다란 상처가 될 게 뻔했다. 아이들이 성인이 된다 해도, 나는 마땅히 그들을 이해시킬 말을 알고 있지 못했다.

 

# 아직 엄지손가락이 남았다 -213p.

생각해 보면 등반은 마약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손을 잃은 건 어쩌면 하나의 경고인지도 모른다. 죽음을 향해 미친 듯 달려가는 내 등반 인생에 브레이크가 걸린 것이다. 보통의 히말라야 등반은 분명한 끝이 존재한다. 14좌를 비롯해 오를 수 있는 높이의 봉우리들은 다 정해져 있다. 실제로 많은 산악인이 14좌 완등 이후 은퇴를 감행했다. 그러나 등로주의를 따르는 등반에는 끝이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도 오르지 않은 길, 힘든 길은 무한대로 존재한다. 등로주의의 끝은 오로지 차가운 죽음뿐이다.

내가 촐라체를 무사히 내려왔다면?

정답은 하나다.

나는 지금쯤 탈레이사가르 북벽 어딘가에 매달려 있을 것이다.

 

# 에필로그_ 다시 촐라체로

_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 - 234p.

산은 움직임이 없다. 움직이는 것은 오로지 인간일 뿐이다. 산은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며 인간을 맞는다. 따스한 빛과 바람을 이용해 인간을 끝없이 시험에 들게 한다. 어떤 날은 바람 한 점 없는 정상을 허락하기도 하고 때로는 휘몰아치는 강풍으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게 한다. 따라서 등반은 고독과의 싸움이다. 그 고독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등반의 성패를 좌우한다. 또한 등반은 화합을 실험하는 장이다. 예민해지기 쉬우므로 서로 잘 배려해야 한다. 정상 등정이란 사람과 자연이 하나가 되어 신을 만나는 행위이다. 신이 허락을 하고 자연이 허락해야 정상이 예비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행위는 인간의 삶 그 자체이며 삶의 한 여정일 뿐이다.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왜 사는가에 대한 해답을 얻고자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바로 이거다.’ 하는 누구나 수긍할 만한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단지, 보다 가치 있는 인생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생각만 나왔을 뿐이다. 어쩌면 등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더 가치 있는 것을 향해 끝없이 오르는 행위가 등반이다. 그것이 때론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일지라도. 그런 면에 있어서 우리가 산을 오르는 행위나 인생을 살아가는 행위는 크게 다르지 않다.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인간은 오늘도 산을 오른다.

 

<끈>

박정헌

황금시간

 

국내도서
저자 : 박정헌
출판 : 열림원 2005.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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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중에서

# 배려 – 29p.

산에서 해야 할 것들은 더 많다. 그 중에서도 몸에 배야 하는 것이 있는데, 그건 바로 배려이다. 고전(古傳)선배는 후배를 위해야 하고, 후배는 선배를 존경해야 하고, 동료는 서로를 이해하고 위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내 몸도 제대로 가누기 힘든 상황에서 상대방을 배려하기란 무척 힘든 일이다. 잘못하면 오히려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기 십상이다. 그래서 제일 중요한 건, 내 몸을 먼저 배려하는 일이다. 내가 멀쩡해야 동료를 도와주거나 배려할 수 있다.

등반에서의 내 몸은 내가 가지고 있는 무기이다. 과녁에 따라 어떤 때는 권총으로, 또 어떤 때는 따발총으로 변해야 한다. 간혹 몸을 혹사시키더라도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줘야 한다. 산을 오르기 위한 마지막 한 발의 총알이 필요하다면 내 몸을 먼저 배려하길

 

# 야간산행 - 65p.

칠흑 같은 어둠 속을 걸어가면 뒤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 등산도 뒤를 보지 못한다. 오늘 지나가면 그 자리는 끝이고, 그곳에서의 경험도 끝이 난다. 산은 항상 새로운 것을 요구한다. 지나간 것은 과거로 밀려난다. 과거의 산에 매달리기에 우리는 아직 젊다. 산은 언제나 내게 열정 넘치는 청춘으로 가는 길을 열어준다.

 

# 스펙 쌓기 – 109p.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산쟁이라면 원정등반이 무엇인지 체험해볼 필요도 있다. 그리고 그 경험은 다음번의 등반을 위해 필요한 수순이다. 하지만 자신의 등산 경력에 스펙 한 줄 더하려는 사람들은 등반이란 용어의 해석으로 볼 때 별로 달갑지 않은 자들이다. 또한 순수하게 등반을 하려는 사람들의 기회를 빼앗아가는 결과이고, 이것은 산악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 포기할 줄도 알자 – 117~118p.

등반의 성패와 상관없이, 그 등반을 오롯이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등산을 한다면, 차라리 대회로 치러지는 스포츠클라이밍으로 전향하는 게 나을 것이다. 주어진 등반을 성공하든 또는 실패하든, 그 행위에 따른 명예가 주어진다. 그 명예는 누가 내게 주는 게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판단하는 과정에서 생긴다.

등반은 꼭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는 불확실한 행위다. 위험과 난관에 부딪쳐 돌아서야 할 때, 대원의 안전을 위해 포기하는 게 무리한 등산으로 문제가 생기는 것보다 더 나은 판단일 것이다. 산은 언제든지 다시 갈 수 있다. 이번이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계속 밀어붙이는 무리수를 둔다면 사고가 날 수도 있고, 대원 누군가가 불행에 직면할 수도 있다. 등반의 성패에 상관없이 그동안 진행해왔던 행위에 가치를 두고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또는 자신의 명예를 드높이려고 등산을 한다면 당장 그만두어야 할 일이다. 어떤 행위를 하든, 그 속에 정당함과 의로움 그리고 순수함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타인이 그 명예에 대해 높이 평가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 풍선효과 – 128p.

동료들에게 모나게 굴지 않았는지, 나의 기준을 동료에게 강요하지 않았는지, 등반실력으로 동료 간의 우열을 가리고 있는지, 내가 하는 등반만이 정통이라고 그 외의 등반을 하는 사람들을 무시하는지, 규정된 등산로를 이용하지 않고 샛길을 이용하는 것을 자랑하는지, 남들이 걸어갈 때 차를 타고 산에 가는 것을 자랑하는지, 직장보다 산을 우선시하는 것을 좋아하는지, 공동의 역할 수행에서 꽁무니를 감추는 것이 자랑인지, 산보다 산에서 마시는 술이 우선인지 등, 이 모든 것이 둥글둥글한 풍선을 눌러 터지게 할 수 있는 요인들이다.

등산이란 행위 안에 철학이 있고, 사상이 있고, 종교도 있다고들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는 가장 단순하게 산에 접근하고 싶다. 등산을 통해 자연환경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에서 오는 즐거움이 나를 다시 산으로 가게끔 하는 원동력이다..

 

# 허무와 황당 – 183p.

가스만 나온 줄 알았는데 덩어리까지 나오면 황당한 것이고, 덩어리인 줄 알고 배에 힘을 주는데 가스만 나오는 경우는 허무한 것이다. 시설도 좋지 않은 화장실에 앉아 힘을 주는데 가스만 나오면 정말 허무하다. 허무는 그래도 괜찮은 편이다. 트레킹을 하는 도중 가스가 나오는 줄 알고 아무 생각 없이 분출했는데 어제 먹은 식량이 나온다면 얼마나 황당한가!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그런 경험을 해본 적 없는지? 내겐 이 허무와 황당이 일상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혹시 이 글을 읽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거나 배시시 웃는 이가 있다면, 필시 나와 똑같은 경험을 해본 사람일 터. 허무와 황당은 나와 당신만이 아는 쓰라린 추억이다.

 

# 과거는 무조건 버린다 - 269p.

전통이란 건 어느 순간 갑자기 생겨나는 게 아니라, 수년에서 수십 년 혹은 수백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사람에서 사람으로 이어진 관습이 누적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선배에게서 후배에게로, 그 후배가 언젠가 선배가 되어 자신의 후배에게로..., 전통이란 건 그렇게 이어지는 것이다.

 

# 눈맞춤 – 285~286p.

산에서 눈을 맞춘다는 것은 상대방을 이해한다는 뜻이다. 그가 앞으로 움직일 동선을 생각하고, 서로 말을 주고받지 않아도 각자 그 동선에 맞게 움직이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관계를 자일파트너라고 한다. 오랜 기간 함께 등반을 해온 파트너는 눈빛만 보고도 상대방이 무슨 행동을 하려는지 알 수 있다고 한다. 내 생각이 아니라 상대방의 생각을 이해하고 그 행동에 접근하면,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예측할 수 있다. 내가 할 일은 상대방의 행동에 부수적으로 필요한 부분을 거들어주는 것이다. (중략)

등산을 하든 일상생활에서든, 파트너와 함께 움직일 때면 상대방의생각을 읽고 그 다음 동작에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선배라고 해서 밥숟가락만 들고 기다리고 있다면 그 선배와의 산행이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산은 군대가 아니다. 공동의 책임이 따른다. 후배들과 함께 오래 산에 다니고 싶다면, 지금부터라도 감자를 깎고 양파를 까는 선배가 되자.

 

# 가슴 속의 사람들 – 309p.

우린 산에 가면서 죽으러 간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알프스나 히말라야처럼 만년설이 있는 고산에 갈 때, 목숨을 걸고 어려운 등반을 하면서 내가 죽을 것이다생각하고 가는 사람은 없다. 죽음으로써 승부를 낼 수 있는 건 전쟁뿐이다. 산에서의 죽음은 모두가 원치 않는 일이다.

물론 우린 산을 대할 때 죽음도 불사하는 승부근성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산에서 죽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그것을 생각할 수 있고 없고가 아니라, 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지 않고 등산을 즐겨야 한다. 좀 더 모험적인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는 그것을 가능케 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그 행위에 수반되는 위험에 대한 최상의 안전조치는 등반기술의 숙달이다. 등산은 반복을 통한 숙련의 결과물이다. 등산의 안전은 책에서 보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실전을 통한 반복된 훈련이 그 행위에 안전과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어떤 형태든, 자주 하던 사람과 안 하던 사람은 같은 곳을 가더라도 바로 표시가 난다.

 

# 아주 높은 산에 간 그대에게 – 339~341p.

그저 장례를 치르고 나니 또 날은 밝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눈물도 마르겠지. 너희를, 죽음이란 것을 잊기 위해 난 또 산에 가야겠다.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악우 유영직과 그 악우들을 위해 먼 길 마다하지 않고 달려와 슬픔을 같이 해준 분들께 감사합니다. 하늘나라에 신입회원 들어왔다고 좋아할 선배님들, 부디 후배 잘 챙겨주세요. 여기서는 더 이상 그들에게 해줄게 없네요. 부탁합니다. 유영직, 정준모, 김창호, 임일진, 이재훈. 잘 가라.

 후배여, 이제 편히 가시게나.
여기에 있는 산은 내가 마저 다니겠네.
저기에 있는 바위는 내가 마저 올라가겠네.
산 너머 있는 얼음 계곡은 너를 아는 후배들과 같이 올라가겠네.

후배여, 이제 한시름 놓게나.
그대는 마지막을 내 집, 내 방에서 잠시 동안 나와 같이 잠을 잤다네.
자네가 서울에 오면 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은 그 지저분한 방에서 말일세.
자네가 좋아하는 산에서, 자네를 좋아하는 동료들과 야영을 했다네.
자네가 오르고 싶었던 바위와 마주 앉아 친구들이 오르는 모습을 함께 했네.
자네가 좋아하는 설악산의 단풍과 함께 산행을 했네.
그리고 자네가 개척한 암벽 루트 앞에서 마지막 술잔을 서로 기울였네.
오늘 아침부터 바람이 몹시 불었네.
그 바람을 타고 그대는 우리와 같이 등반을 하러 오신 것인가?
아님 떠나기가 싫어 산을 못 오르게 한 것인가?

후배여, 만남이 있다면 헤어짐도 있다네.
비록 이생에서 더는 못 보지만, 내 저 세상에 가면 먼저 후배를 찾으리라.
그때 가서 소주 한 잔 하시게나.
이제 바람을 타고 왔듯이, 바람을 타고 가고 싶은 산천을 돌아다니시게.
나는 바람이 불 때면 그대를 생각하겠네.
눈이 오면 그대와 얼음 벽 밑에서 차디 찬 소주를 먹던 것을 기억하겠네.
비가 오면 바위 밑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던 그대를 생각하겠네.
더 이상 내가 말린 굴비 다 먹었다고 투정도 안 부리겠네.

그리고 자네를 내 가슴 속에 담아두고 살겠네.
친구들의 추억 속에 그대를 남기네.
더 이상 자네를 위해 눈물도 흘리지 않을 것이네.
자네가 남겨놓은 친구와 동료들과 함께 산에 갈 것이네.
바람에 실려 같이 등반을 하시게나.

그동안 고마웠네.
그대가 있어 내 같이 한 산행이 행복했었네.
이젠 저 하늘에서 잘 지켜봐주게나.
우리가 어떻게 산에 가는지.

 

# 기존의 고정 확보물을 믿지 마라 – 365p.

애당초 고정 확보물은 사람이 설치해둔 것이지, 자연의 것이 아니다. 등반은 내 자신이 오르는 행위이다. 과거의 등반은 잊어버리고, 지금 내 앞에 놓인 새로운 등반에 집중해야 한다. “과거는 어떠했는데~” “과거에는 이렇게 했는데~”라고 하는 건 과거의 신뢰일 뿐이다. 자연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앞으로 가질 신뢰가 더 중요하다. 내가 나아가기 위해서는 기존의 확보물을 믿지 말고 자신 있게 갈 수 있다는 내 마음 속 확보물을 만들어가야 한다. 살아 숨쉬며 시시때때로 변하는 자연을 헤쳐 나가는 일은 자신의 마음먹기에 달렸다.

 

# 야생화 – 426p.

우리의 산도 그렇게 다녀야 할 것이다. 생존이란 명제 하에 움직임이 있는 거친 등산은 정형화된 곳에서 배워서는 안 되는 것이다. 처음의 시작은 정형화된 곳에서 배웠다고 하더라도, 우린 좀 더 거친 생존을 위해 그 테두리에 안주하면 안 된다.

그렇게 정형화된 산행을 거친 환경에 대입하다 보면 여러 가지 위험과 사고에 좀 더 가까이 접근한다. 아니 사고 날 확률이 더 높아진다. 야생, 즉 자연은 정형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과 내일이 다르듯이 자연은 꾸준히 우리에게 야생에 길들여지기를 바라고 그렇게 요구한다. 저 산 속에 핀 파도 거친 야생에서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곳의 토착 기후에 적응하고 더 많은 씨를 날려 라첵산장 주변에는 야생 파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우리도 정형화된 틀 속에서 벗어나야 한다. 야생과 자연에 어울리고자 한다면, 그 속에 들어가 작은 것부터 경험을 쌓아 야생에 길들여져야 한다. 나는 산과 자연에 주어진 환경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즐기며, 그 경험을 통해 또 다른 거친 환경 속으로 들어간다. 야생화처럼 우리도 그 자연에 동화되어 눈에 띄지 않지만 스스로 빛을 발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야생과 자연을 접해야 한다. 산은 자연이고, 우린 그 속을 헤매는 야생화와 같아져야 한다.

 

<등반중입니다>

유학재

알파인웍스

 

http://www.mountainjournal.co.kr/news/articleView.html?idxno=350

 

|서평| 한국판 ‘에켄슈타인’의 독백… 『등반중입니다』 - 마운틴저널

책 제목부터가 현재진행형인 『등반 중입니다』는 산악인 유학재의 등산인생 44년의 편린들을 모아 엮어낸 이야기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몇 편의 글들은 이미 월간 『마운틴』지의 지면에 소개된바있지만 단행본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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