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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묵지/추억의 책장 · 메모

Passion Si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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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ie Ernaux[그림출처 : http://www.sevenstories.com]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슈퍼마켓에 가고, 영화를 보고, 세탁소에 옷을 맡기러 가고, 책을 읽고, 원고를 손보기도 하면서 전과 다름없이 생활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몸에 밴 습관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끔찍스럽게 노력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상마저 내게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특히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면 내가 완전히 넋을 일고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이나 문장, 웃음조차도 내 생각이나 의지와는 무관하게 내 입 속에서 저절로 생겨나는 듯했다. 게다가 나는 내가한 행동, 내가 본 영화, 내가 만난 사람들을 또렷이 기억해낼 수가 없었다. 나의 모든 행동이 자연스럽지가 않았다. 내 의지나 욕망, 그리고 지적 능력이 개입되어 있는 행동(예측하고, 찬성하고 반대하고, 결과를 짐작하는)은 오로지 그 남자와 관련된 것뿐이었다.


<Passion Simple(단순한 열정)>
아니 에르노 장편소설, 최정수 옮김
문학동네, 2001


선정적인면 뿐 아니라 감정을 낱낱이 드러낸 솔직한 문체.

"내가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
이라고 자신의 작품 세계를 스스로 정의한 아니 에르노.

자서전 적인 진실한 이야기를 담았지만 책을 출간하면서, 연하의 외국인 유부남과의 불륜과 선정성 때문에 프랑스 독서계를 경악시켰다고 한다. 더 화제가 된 건 독자로 그녀의 책을 읽고 애인이 된, 33살 연하인 필립 빌랭이라는 청년이 그녀와의 5년간의 사랑을 <포옹>이라는 책으로 출간한것이다. <포옹>은 <단순한 열정>의 문체까지 그대로 옮겼다고...
사랑의 빠진 남녀의 심리를 비교해 볼 겸 <포옹>도 읽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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