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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묵지/추억의 책장 · 메모

좀머 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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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출처 : YES24]


그런 것들보다는 이 세상 전체가 불공정하고 포악스럽고 비열한 덩어리일 뿐
다른 아무것도 아니라는 분노에 찬 자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못된 개의 잘못은 또 다른 문제였다.
모든 것이 다 문제였다.
어떤 것에 대한 예외도 없이 모든 것이 다 그랬다.

우선 제일 먼저 내게 맞는 자전거를 사주지 않은 우리 어머니가 원망스러웠고,
어머니를 그렇게 하도록 만든 아버지가 그랬으며,
선 자세로 자전거를 타야 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몰래 나를 비웃었던 누나와 형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를 구역질나게 만들었던 하르트라웁 박사님 댁 개의 똥도 그랬고,
호숫가 길을 꽉 메워 나를 늦게 도착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던 산보객들도 그랬다.
푸가 형식으로 나를 괴롭히고 모욕스럽게 만든 작곡가 헤슬러도 그랬다.
말도 안 되는 억지로 내게 누명을 뒤집어 씌우고,
올림 바 음 건반 위에 구역질 나는 코딱지를 붙여 놓은 미스 풍켈 선생님도 마찬가지 였다... ...
그리고 내가 딱 한 번 필요로 하였을 때 도와 줄 것을 간청하였건만 비겁하게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어긋난 운명의 수레바퀴가 돌아가는 모양만 지켜보았을 뿐
다른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세상 사람들이 자비롭다고 하는 하느님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잘못되기를 바라는 그런 모든 것들에게 의리를 지킬 필요가 무엇이란 말인가?
이런 세상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그토록 비열한 세상에서 노력하며 살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나말고 다른 사람들이나 그런 못된 악에 질식해 버리도록 두는 편이 더 낫지 않겠는가?
그런 사람들이나 잘먹고 잘해 보라지! 나를 포함시키지는 말고 말이다!
나는 앞으로도 결코 그 사람들이랑 같이 어울리지 않으리라!
이 세상에 작별을 고하리라!
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리고 말겠다!
그것도 지금 당장!


<좀머 씨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장 자끄 상뻬 그림, 유혜자 옮김
열린책들, 1992


향기로 세상을 지배하는 그루누이와.
밀폐공포증(?)이 의심되는 좀머 씨.
그리고 좀머 씨의 죽음을 지켜본 나.
영화로 유명한 '향수'의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 그의 상상력과 이야기 샘의 끝은 어디일까..?

코르넬리우스 미켈도
피아노를 가르치는 무서운 미스 풍켈 선생님도
어린 시절에 소소한 추억들이 떠오르게 만드는 동화같은 잔잔한 이야기 책이었다.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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