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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묵지/추억의 책장 · 메모

연어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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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말이야, 넘지 못할 벽은 없다고 생각해. 
 아니 오히려 뛰어오르라고, 도전하라고 벽은 높이 솟아 있는 게 아닐까? 
 벽 앞에서 절망하고 되돌아서는 이들을 위해 한번 덤벼들어보라고, 
 주저앉아서는 안 된다고, 반드시 뛰어넘어야 한다고 벽은 말하고 있는 거야. 
 그래서 벽은 높고, 두텁고, 강하고, 오만한 것처럼 보이는 거지. 
 이 세상 어떤 벽도 하늘 위까지 막혀 있진 않아. 
 그러니까 넘을 수 없는 벽이란 없는 거야. 
 많은 연어들이 그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안타까워." 


우리는 그렇게 달랐다. 
나는 혼자인 게 싫어 강을 따라 내려가려고 했고, 너는 혼자이고 싶어 강을 거슬러오르려고 했다. 
나는 이 세상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는 겁 많은 연어였고, 너는 아는 게 너무 많아 두려움이 없는 연어였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말할 자신이 없었지만, 너는 네가 누구인지 말하고 싶어 안달을 하는 연어였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숭어를 볼 수 있어야 했어. 그랬더라면 희생을 줄였을 거야. 
 눈에 보이는 것만 대비하면 된다는 생각이 우리의 한계였어.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구별할 필요가 있을까? 
 또 살아 있는 것과 살아 있지 않는 것의 차이는 도대체 뭐지? 
 숭어가 잡아먹는 연어와 연어들이 뜯어먹는 물풀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어. 
 물풀들에게는 연어가 제일 두려운 존재일지도 모르잖아. 
 그럼에도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이 세상에는 있을 거야. 
 아직은 잘 모르지만...... 
 슬퍼, 내가 세상을 잘 모른다는 사실이." 

너는 그날 내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 
그렇게 당당하고 꿋꿋하던 네가.


울어야 할 마땅한 이유는 없었다. 
우리는 바다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고, 달리 고민할 것도 고통스러워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내가 울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릴 정도로 마음껏 울었고, 
너는 그런 나를 가만히 놔두었다. 
실컷 울고 나니까 나는 훨씬 자유로운 연어가 된 것 같았다. 


<어른을 위한 동화 연어이야기> 
 안도현 글, 유기훈 그림 
 문학동네,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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