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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묵지/추억의 책장 · 메모

Marketing Warf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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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열매와 성스러운 물

코카콜라는 100년이 된 청량음료이지만, 출발 당시부터 이러한 컨셉트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코카콜라는 약제사이며 남군장교였던 펨버톤(J.S. Pemberton)이 발명하였는데, 처음에는 신비한 외국산 특허 의약품(코카나무 잎의 코카인과 콜라 열매의 카페인이 포함된)으로 소개되었다.

[출처: 한겨레21]

콜라 잎은 볼리비아 인디언들이 일하는 동안 즐겨 씹던 것이었다. 코카콜라의 초기 경쟁자였던 미첼(Mitchell)박사의 코카볼라(CocaBola)의 이름도 이러한 이유에서 만들어졌다. 콜라 열매를 씹는 서아프리카 원주민들 사이에서도 이와 비슷한 효과가 나타나서 몇몇 종족들은 이것을 '지옥의 열매'라고 불렀다.

코카콜라는 처음에는 약이었다. 초기의 광고에서는 "모든 두통, 신경성 질환, 히스테리, 우울증에 치료 효과를 지닌 맛있고 상쾌하고 활력을 주는 음료"라고 설명하고 있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코카콜라의 앞길은 찬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1902년까지 1,200만 달러의 광고비를 사용한 코카콜라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브랜드가 되었다. 다음해 이 회사는 제조방식을 바꿔 코카인을 제거하였다. (그 후 카페인을 제거하기까지는 70년이 걸렸다.)

광고와 금주운동 덕분에 코카콜라는 급속히 성장해 나갔다. 1907년까지 남부연방 994개 군 중에서 약 825개 군이 금주법을 선포하였다. 코카콜라는 광고에서 "범국민적인 비알코올성 음료"라고 선전했고, 북부의 박식한 사람들은 코카콜라를 "남부의 성스러운 물"이라고 불렀다.

1915년 인디애나 출신의 디자이너가 매혹적이고 독특한 6.5온스짜리 코카콜라 병을 고안하였다. 수년에 걸쳐 약 60억 개의 초록색 코카콜라 병이 생산되었다. 새로 디자인된 병은 아주 적시에 등장하였다. 여기저기서 모조품이 생겨났다. 1916년 한 해 동안만 피그콜라, 캔디콜라, 콜드콜라, 캐이올라, 코카놀라 등 153개의 모방업체들이 법적 패소 판결을 받았다.

1920년대만 해도 코카콜라에 대항할 만한 진정한 의미의 경쟁자가 없었다. 단지 문제라면 소비의 증가 속도가 1919년 1인당 2.4갤런에서 1929년 3.3갤런으로 느렸을 뿐이다. (오늘날의 40갤런과 비교해 보라.) 코카콜라 광고는 소비를 자극하는 데 집중되었다. "갈증은 계절을 가리지 않는다(1922년)", "상쾌해지는 그 순간(1929년)"은 좋은 예이다. 


<마케팅 전쟁>
앨리스. 잭트라우트 지음, 안진환 옮김
비즈니스북스,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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