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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묵지/책 더하기 · 리뷰

[내 머릿속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사실 그건 '기억'이 아니라 '뇌가 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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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


얼마전 회사에서 좋은 기회로 KAIST 김대식 교수님은 Deep Learning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강연을 들어볼 기회를 가졌다. 교수님은 Deep Learning을 소개하기에 앞서 먼저 뇌의 착각에 대한 이야기로 강연을 시작하셨다. 


“세상은 분명 존재하지만 세상은 결코 우리가 보는 것처럼 생기지 않았다.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은 뇌가 계산해 낸 결과물일 뿐이다.”

인간의 뇌는 1.5KG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 내재된 능력은 무한하다. 뇌는 우리 몸의 감각기관인 센서(눈, 코, 귀 등)를 통해 받아들인 정보들을 통계학적으로 추론하고 해석함으로써 지능을 만들어 낸다. 이 과정에서 뇌의 착각으로 인해 동일한 사물의 색상도 각자 다르게 이해하는 상황도 종종 나타나게 된다.


Deep Learning은 인간의 뇌가 경험을 통해 정보를 인지하고 학습을 하는 과정에 착안하여 탄생한 기계학습 방법이다. 인간의 뇌는 Layer 구조로 되어 있는데 각 계층별로 물체를 인식하고 분석한다. 첫 번째 Layer에서는, 이 물체가 내포하고 있는 시공간적으로 가장 작은 단위의 인과 관계를 압축해서 표현하게 된다. 다음 단계의 Layer를 거치면서 압축의 압축을 하게 되고, 10~20층 정도의 Layer를 거치게 되면 드디어 물체를 robust하게 인식하게 된다. 김대식 교수님은 Deep Learning을 한마디로 Neural Network(인공신경망) 이라고 소개한다. Deep Learning에서는 현실을 symbolic하게 표현하는 것이 아니고, Big Data를 input으로 주면, 10층 정도되는 구조를 가지고 이 정보를 압축해서 표현한다고 한다. 


Deep Learning이 각광을 받게 된 이유는 1) Algorithm의 발달로 over-fitting 등의 고난도 문제를 해결했고, 2) GPU 기반의 Parallel Computing이 발달로 고속의 연산이 가능해졌고, 3) 데이터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는 점 등 3가지이다. 


최근 구글, 페이스북, 바이두와 같은 세계적인 IT 기업들이 Deep Learning의 권위자들을 스카우트하며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불과 5년 전만 하더라도 인공지능은 영화에서나 나오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기계는 일단 알고리즘만 만들어지게 되면 이후 scale-up을 빨리 하기 때문에, 어떤 영역에서는 인간은 기계를 도저히 따라갈 수 없게 된다. 향후 20~30년 후면 인간은 기계와 일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날이 도래할 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현재 직업의 47%가 사라진다는 연구 결과와 앞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직업을 소개를 해주셨다. 


과연 자녀들에게 어떤 직업을 추천해야 할까?

   1) 무언가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일(100% 인지 자동화가 불가능한 일)

   2) 인간의 감성과 관련된 일

   3) 아주 중요한 선택을 하는 일 (결국 선택은 인간이 하게 될 것). 


김대식 교수님의 강의는 Deep Learning 기술 뿐만 아니라 삶과 일, 행복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멋진 강의였다. 강의로 인사이트를 얻게된 후 교수님이 쓰신 책들을 읽어보니 강의에 소개되지 않은 다양한 사례들과 뇌과학에 대한 이야기들이 소개되어 있었다. 뭇 지식인이라면 본인의 생각과 지식으로 다른이들에게 영감(인사이트)을 주고, 그것을 글로 잘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강연과 책을 통해 만난 김대식 교수님은 과연 우리시대 대표 지식인이었다. 다른이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울림'이 있는 그를 책을 통해 만나보자.




■ 본문 중에서


# Brain Story 01. 사실 그건 '기억'이 아니라 '뇌가 쓴 소설'이다 - 24p.

우리의 뇌는 컴퓨터 하드디스크가 아니다. 하드디스크에는 정보가 입력된 그대로 저장된다. 하지만 망막을 통해서만도 매시간 100기가바이트 정도 들어오는 정보를 평생 지속적으로 보관하기엔 뇌의 저장량이 부족하다. 결국 우리의 경험은 보고 듣고 지각한 그 자체가 아니라 극도로 압축된 상태로 뇌에 저장된다. 기억과 정보 압축은 해마에서 이루어진다.

이 때 특별히 집중하며 경험하지 않은 정보는 ‘제목’ 위주로 압축된다고 볼 수 있다. 시간이 지나서 입력된 정보를 다시 불러오면 뇌는 예전에 경험했던 본래의 정보가 아니라 이미 제목으로 압축된 정보를 가져온다. 압축된 정보 사이의 구체적인 내용은 과거 경험이나 편견에 바탕을 두고 재생된다.


# Brain Story 02. 뇌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절대로 – 37p.

대화를 거부하며 ‘2+2=4’라고 주장하는 사람보다 세련된 행동과 말로 ‘2+2=5’라고 적절히 거짓말하는 사람을 더 선호하는 것이 오늘날 세상이다. 당연히 공정하지 않다. 하지만 세상이 공정하다고 믿는 그 자체가 어쩌면 어리석음의 첫 단계일지도 모른다. 물론 먼훗날 역사는 결국 진실에 한 표를 던질 수 있겠다. 하지만 경제학자 존 케인스(John Keynes)의 말을 인용하자면, 먼 훗날엔 우리 모두 어차피 다 죽는다. 미래의 역사와 철학에 대해서 우리가 지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지금 중요한 건 현실이고, 현실은 아무리 불편하더라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자가 결국 주도하는 법이다.


# Brain Story 03. 팔은 안으로 굽고, 생각도 안으로 굽는다? – 49~50p,

어린아이는 어른과 비슷한 숫자의 신경세포들을 가지고 있지만, 서로 간의 연결성은 완성되지 않은 상태다. 마치 서울과 부산을 연결하는 큰길은 유전적으로 타고났지만, 막상 부산에 도착해보면 신경세포와 주변 세포가 무질서하게 연결돼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이중 적절한 시냅스도 있고, 연결돼서는 안 되는 시냅스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결정적 시기’라는 것을 가진다. 오리는 태어나서 몇 시간, 고양이는 4주에서 8주, 원숭이는 1년, 그리고 인간은 10년까지 유지되는 이 결정적 시기 동안 자주 사용되는 시냅스는 살아남고, 사용되지 않는 시냅스는 사라진다.

결정적 시기의 뇌는 젖은 찰흙처럼 주변 환경을 통해 주물러지고 모양이 바뀔 수 있다. 그 시기가 끝나면 찰흙은 굳어지고 유연성을 잃어버린다. 그래서 아이는 외국에서 자라면 그 나라의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지만, 더 이상 유연하지 않은 시냅스로 가득찬 어른의 뇌로 외국어를 배우기는 정말 괴롭다. 

결국 뇌는 미완성 상태로 태어나, 자신이 경험한 주변 상황에 최적화되도록 완성된다. 고향이 편한 이유는 어릴 적 경험한 음식, 소리, 사람, 풍경, 이 모든 것이 우리의 뇌를 완성시킨 바로 그 원인이기 때문이다. 무언가에 최적화돼 있으면 당연히 편안함을 느낀다. 선택이 필요 없고 막연히 좋다. 거꾸로 다른 환경에 최적화된 뇌를 가진 사람들은 나에게 당연한 것을 전혀 당연해하지 않거나 편해하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내 것이 좋기 때문에 남의 것이 나쁘다가 아니라, 내 것이 나에게 좋은 만큼 다른 것은 다른 사람에게 좋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 Brain Story 06. 책을 보듯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 86~89p.

사실 뇌 보안을 걱정하기에 앞서, 우리에겐 사생활 보호란 과제가 코앞에 놓여 있다. 독일과 브라질이 제안한 ‘디지털 시대의 사생활 보호권(the right to privacy in the digital age)’ 결의가 2013년 UN 총회에서 받아들여졌다. 왜 하필 독일과 브라질이 이런 결의안을 냈을까? 미 중앙정보국(CIA)과 미 국가안전보장국(NSA)에서 일했던 미국의 컴퓨터 기술자 에드워드 스노든(Edward Snowden)이 폭로한 브라질 대통령과 독일 총리 도청 사건과 연관될 것이다. 스노든은 NSA의 무차별적 개인정보 수집 사실을 폭로했고, 이로써 디지털 시대의 개인 프라이버시에 대한 논쟁에 불을 붙였다. 이번 UN 결의에 따르면 각 국가들은 개인의 사생활 정보를 존중해야 함은 물론이고, 구체적인 규정을 통해 개인의 디지털 정보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사생활 정보, 프라이버시란 도대체 무엇일까?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겠다. 우선 나의 생각 그 자체가 나의 최우선 프라이버시라고 할 수 있겠다. 수백억 개의 신경세포 간의 정보 전달과정을 통해 형성되는 ‘생각’은 지금까지 인류 역사상 오로지 나만이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은 선호도를 만들어내고, 선호도는 선택으로 실천된다. 고로 선택은 나의 두 번째 핵심 프라이버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의 프라이버시는 공공장소에서 나라는 존재를 숨길 수 있는 권리를 말하겠다.


페이스북은 사진을 공유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든 인스타그램(Instagram)을 1조 원에 사들였고, 또 휴대전화로 서로 간단히 연락할 수 있게 하는 왓츠앱(WhatsApp)을 20조 원에 사들였다. 구글 역시 스마트한 실내온도 측정기를 개발한 네스트(Nest)를 3조 5000억 원에 사들였다. 조 단위로 평가받을 만한 특별한 기술도, 지적재산도, 인력도 없는 회사들이다.

디지털 시대를 가장 잘 이해하고 이끈다는 구글과 페이스북이 모두 제정신이 아닌 걸까? 물론 그럴 수 있다. 17세기 전 세계에서 가장 금융 시스템이 발달했다는 네덜란드에서 한동안 튤립 한 뿌리가 1억 원 넘게 거래되는 ‘튤립 버블’이 생겼듯 말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들은 천문학적인 액수를 투자할 만한 무언가를 얻어가는지도 모른다 바로 ‘데이터’다. 땅과 공장과 주식이 19세기, 20세기 가치의 상징이라면 21세기엔 데이터 그 자체가 부와 가치의 핵심이라는 말이다.

화폐 사용이 불가능한 감옥에서는 담배가 돈 역할을 한다. 비슷하게 디지털 세상은 가치적으로는 감옥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디지털 생태계 내부 회사들은 돈을 벌 필요도, 흑자를 낼 필요도 없다. 최대한 많은 사용자만 확보하면 된다. 사용자는 데이터고, 디지털 세상의 슈퍼 갑인 구글과 페이스북은 이렇게 모은 데이터를 실물경제에서 다시 수십, 수백 조의 현찰과 교환할 특권을 갖는 것이다. 이 세상에 공짜란 없다. 다양한 무료 인터넷 서비스를 사용하는 동시에 우리는 이미 나 자신에 대한 모든 데이터를 무료로 넘겨주고 있는 셈이다.




# Brain Story 16. 왜 ‘우리’는 ‘그들’을 싫어하는가 – 188p.

튜링의 삶과 업적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하나 던진다. 이성이 아닌 동성을 사랑하는 남녀, 소고기가 아닌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유대인, 모든 사람이 다 대학에 진학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고등학생…… 왜 우리는 모든 사람은 꼭 나처럼 살아야 하며, 그렇게 살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차별과 원망의 대상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왜 인간의 뇌는 독립적인 개인으로 구성된 성숙한 사회가 아닌 외모나 사상적으로 동일한 클론(clone)과 함께 살고 싶어하는 것일까?


# Brain Story 21. 생각의 길이 많을수록 남들과 다른 길을 갈 수 있다 – 235p.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그렇고 독자 대부분은 천재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창의력을 키우려는 사회와 기업이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일까. 이미 천재적 뇌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을 위해 단 하나만 해주면 된다. 바로 ‘간섭하지 않기’다.

모차르트나 스티브 잡스로 태어난 사람을 대기업 ‘김대리’로 만들지만 않으면 된다. 그리고 우리처럼 나머지 평범한 99.999퍼센트를 위해서는 역시 단 하나만 지켜주면 된다. 우리에게 모차르트가 되라고 억지스러운 요구를 하지 않고, 우리가 이미 갖고 있는 생각의 길이나마 제대로 써볼 수 있도록 생각의 다양성과 변화를 허락하는 것이다.

2013년은 뇌과학 역사에 충분히 기억될만한 해다. 1월엔 유럽연합이 ‘인간 뇌 프로젝트(human Brain Project, HBP)’를 10년간 10억 유로(약 1조 5000억 원)를 지원하는 두 가지 과학 연구 프로젝트의 하나로 선택했다. 유럽은 과학 초 강국이었던 예전 명성을 되찾으려는 야심과 자존심을 걸고 이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오바마 대통령은 2월 국회 연설에서 미국이 앞으로 10년간 30억 달러(약 3조 3000억 원)를 투자해 ‘뇌 지도(Brain Activity Map, BAM)’를 완성시킬 계획이라고 선언했다.


# Brain Story 23. 아프니까 사람이다? 만약 아픔이 없다면…… - 259p.

만약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HSAN4(Hereditary Sensory and Autonomic Neuropathy type Ⅳ)라는 유전병을 가진 환자들은 통증과 온도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자신의 팔이 부러지거나 발이 동상에 걸려도 느끼지 못한다. 심지어 음식을 씹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있다. 혀가 물려 피가 나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정상적인 삶과 행복을 위해 아픔은 필수라는 말이다.

아픔과 통증을 통해 문제의 심각함을 알려주는 것은 신체뿐만이 아닐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의 자살률, OECD 최상의 우울증 환자 비율, OECD 최하위 수준의 행복지수…… 수천만 명으로 구성된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 역시 어쩌면 이런 통증을 통해 우리 사회의 치명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지 모른다. HSAN4 환자처럼 이런 신호들을 계속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어쩌면 우리는 우리들 공동체의 팔과 다리가 잘려나가는 것조차 느끼지 못하게 될 것이다.


# Brain Story 25. 기계가 인간을 대신하는 세상이 온다면…… - 277~278p.

구글은 무인자동차를 개발하고 아마존은 배달로봇을 사용한 택배 서비스를 계획 중이다. 인터넷 세상엔 검증되지 않은 무료 뉴스가 대세고, 교수들이 직접 하던 수업을 소수 전무낙가 ‘온라인 공개 수업(Massive Open Online Course, MOOC)’을 통해 전파하기 시작했다. 결론은 명백하다. 우리는 이미 새로운 기계혁명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 새로운 기계들은 더 이상 인간의 힘만을 대체하려는 것이 아니다. 데이터 마이닝, 기계학습, 뇌 모방 기술로 무장한 기계들이 인간의 뇌만이 할 수 있었던 일들을 시작한 것이다. 다시 한번 수많은 직업이 사라질 것이고, 수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다. 이미 ‘신(新)러디즘’ 역시 등장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선 성난 시민들이 구글 통근버스의 운행을 방해하고, 무인자동차 책임 연구원의 집 앞에서 반대 시위를 하기도 했다.

기술과 사회의 발전은 시위로 막을 수도, 막을 필요도 없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촛불 시외도, 기계 파괴도 아니다. 19세기 인류가 전 국민 의무교육을 통해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고 더 높은 삶의 질을 가능하게 했듯, 우리 역시 새로운 교육을 통해 앞으로 사라질 일자리보다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19세기 교육은 ‘몸’을 대체하는 기계에 적합한 ‘팩트’ 위주 교육이었다. 하지만 ‘뇌’를 대체할 21세기 기계를 다스리려면 우리는 기계가 할 수 없는, 인간의 창의성과 개성을 중심으로 한 근본적으로 새로운 스타일의 교육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 본문에 소개된 뇌과학 

해마의 이중 작용 – 29p.

해마는 새로운 정보를 형성하는 곳이지만, 기억해야 할 지식 자체를 저장하는 곳(long-term storage)은 아니다. 기억은 뇌의 각 영역에 걸쳐서 시냅스(synapse)의 연결로 저장된다. 여기서 해마는 조합을 통해서 새로운 정보 조각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므로, 일단 해마가 파괴되면 새로운 조합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더 이상 새로운 정보를 습득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예전에 형성됐던 조합은 계속해서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과거에 배웠던 것들을 기억할 수 있다.

새로운 조합과 기억을 만드는 데 대표적인 역할을 하는 해마가 공간적 위치를 나타내는 데도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놀랍다. 예를 들어, 잘 알고 있는 거리를 돌아다니는 장면을 떠올릴 때 해마는 매우 활동적으로 바뀐다. 동물 연구에서도 동물이 자꾸 움직일수록 해마의 신경세포들은 공간적 위치를 나타내고 있었다.

해마의 이중 작용이 우연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기억과 공간 탐험의 중복이 학습과 기억의 조합으로 사용되는 공간적 위치를 훨씬 효과적으로 만든다는 것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뇌의 기본 단위, 뉴런 – 43p.

뇌는 뉴런이라고 하는 수천억 개의 세포로 구성돼 있다. 뉴런은 뇌의 기본 단위로서, 감각기관과 뇌 운동기관 사이에서 신호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뉴런은 세포체(cell body), 수상돌기(dendrite), 축삭돌기(axon)로 구성돼있다. 세포체에서는 뉴런이 일을 잘할 수 있도록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실제로 뇌의 무게는 몸무게의 2퍼센트 밖에 안 되는 1.5킬로그램 정도이지만, 심장에서 나가는 피의 15퍼센트를 소비한다.

작은 나무처럼 생긴 수상돌기를 통해서는 다른 뉴런들로부터 정보를 받아들인다. 예를 들어 눈으로 보는 것은 망막을 통해 시각피질(visual cortex)로 전달되는데, 이때 이 시각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수상돌기다. 일단 수상돌기가 받아들인 정보는 세포체를 거쳐서 뉴런의 긴 ’꼬리’로 내려간다. 이 꼬리가 바로 축삭돌기다. 축삭돌기는 전선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뇌의 한쪽에서 받아들인 정보(신호)를 멀리까지 전송한다.



뉴런 사이의 연결고리, 시냅스 – 53p.

시냅스는 한 뉴런의 축삭돌기 끝 부분과 다른 뉴런의 수상돌기 사이의 연결 부분이다. 각각의 뉴련은 수천 개의 다른 뉴런과 연결되는데, 이는 수상돌기의 나무들이 수천 개의 시냅스를 덮고 있다는 뜻이다.

뉴런의 작동원리는 다음과 같다. 수천 개의 뉴런을 통해 들어오는 신호의 합이 어느 한 계를 넘으면, 신호를 받은 뉴런에서 반응이 일어나 전기 스위치가 켜진다. 그러나 신호의 합이 정해진 한계치를 넘지 못하면 뉴런은 반응하지 않는다. 즉 스위치가 꺼져 있는 셈이다. 이렇듯 뇌는 수억 개나 되는 뉴런들의 고리인 시냅스로 복잡하게 연결돼있다. 눈의 망막 같은 곳에서 일단 초기 반응이 시작되면 시냅스와 뉴런이 신경반응의 전류를 일으켜 뇌 전체로 반을을 전하게 된다.



양쪽 뇌와 뇌량 – 64~65p.

인간의 뇌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 중 하나는, 뇌가 거의 유사한 두 부분, 즉 오른쪽과 왼쪽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크기와 모양이 거의 같아서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인다. 보통 왼쪽 뇌는 신체의 오른쪽으로부터 입력신호를 받는데, 예를 들면 오른손이나 시각 영역의 오른쪽으로부터 나온 정보는 왼쪽 뇌에 도착한다. 반면에 오른쪽 뇌는 모든 정보를 신체의 왼쪽으로부터 받는다.

그냥 겉으로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양쪽 뇌는 서로 다른 일을 할 것이라는 가설도 있다. 왼쪽 뇌는 수학적이고 논리적인 생각을 담당하고, 오른쪽 뇌는 언어나 감정 처리를 맡는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것은 논쟁의 여지가 많다. 확실한 것은, 양쪽 뇌가 하는 일이 각각 다르더라도 그 차이가 일상생활에서는 거의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미미하지만, 언어만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의 언어는 주로 왼쪽 뇌에서만 처리된다고 알려져왔다. 그리고 오른쪽 뇌는 음악을 담당하면서 독특한 소리정보를 처리한다.

이처럼 양쪽 뇌의 가장 큰 차이점은, 왼쪽 뇌에서만 인간의 언어가 처리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왼쪽 뇌는 어떻게 신체의 오른쪽으로부터 도착한 정보를 아는 것일까? 이것은 뇌량이라고 불리는 2억 개 이상의 축삭돌기 다발이 교량 역할을 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뇌량은 오른쪽과 왼쪽을 연결하는 부분인데, 이곳을 통해 정보가 교환된다. 그래서 왼쪽 뇌는 언제나 신체의 오른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뇌의 젊은이, 대뇌피질 – 75p.

일반인들은 ‘뇌’하면 ‘대뇌피질(cerebral cortex)’이라고 불리는 깊은 주름과 굴곡으로 이루어진 이미지를 떠올린다. 대뇌피질은 밖으로 보이는 뇌의 한 부분으로 1센티미터도 안 되는 얇은 세포막으로 만들어졌다. 이 얇은 막이 편도핵이나 시상 같은 뇌의 다른 부분을 감사고 있다.

대뇌피질은 뇌에서 ‘젊은이’라고 할 수 있다. 진화론적으로 더 오래된 것일수록 뇌의 중심에 위치하는데, 뇌의 중심에는 ‘핵’이 있고 젊은 대뇌피질이 그 핵을 둘러싸고 있다. 파충류나 어류 등 원시동물의 뇌는 거의 뇌의 핵 부분만 가지고 있다. 진화가 계속되면서 대뇌피질은 점점 더 커지게 됐고, 결국엔 중심핵을 모두 뒤덮게 됐다. 그와 동시에 보고 듣는 것과 같은 중심핵의 역할도 대뇌피질에서 하게 됐다.

뇌의 각 영역이 하는 일 – 90~91p.

뇌의 여러 부분은 각각 다른 일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뇌의 뒷 부분에 있는 후두엽(occipital lobe)에서는 ‘보는 것’을 담당하는데, 눈의 망막으로부터 들어온 물체가 시상핵을 통해 후두피질로 옮겨간다. ‘듣는 것’은 뇌의 좌우에 있는 측두엽에서 담당하고 ‘생각’과 ‘결정’은 뇌의 앞부분에서 맡고 있다.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것은 뇌 앞부분의 대뇌피질 아래에 있는 ‘후각신경구(olfactory bulb)’ 덕분이다. 인간의 후각신경구는 대뇌피질로 완전히 덮여 있기도 하지만, 살아가는 데 있어서 ‘냄새 맡기’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파충류의 후각신경구 보다는 덜 효율적이다. 마지막으로 ‘학습’은 해마에서 일어난다.

뇌의 각 영역은 세상에 대한 정보 처리만 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세상에 대한 ‘지도’를 갖기도 한다. 예를 들면 뇌의 중간 부분에 있는 감각피질(somatosensory cortex)은 신체구조를 나타낸다. 신체의 특정 부위를 만지면 뇌의 관련 부분에서 활발한 반응을 보이므로 뇌를 가지고 몸의 지도를 그릴 수도 있다. 뇌에서 신체를 나타내는 인체모형(homunculus, 호문클루스는 사람 속에 있는 작은 난쟁이라는 뜻이다)은 약간 우습게 보인다. 예를 들어 손가락이나 얼굴 같은 부분은 실제보다 더 크게, 목이나 등은 실제 사이즈가 아니라 정보를 처리하는 중요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낸다. 결국 손이나 혀에서 오는 감각정보가 목이나 등에서 오는 정보보다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절차적 지식서술적 지식 – 109p.

우리는 매일 별다른 의식 없이 엄청난 양의 지식을 활용한다. 예를 들어 양치질하는 법, 자동차를 운전하는 법, 심지어는 두 다리로 걷는 것도 광범위하게 보면 모두 지식의 범주에 속한다. 이런 일상적인 행동들은 아무런 훈련 없이도 그냥 수행할 수 있는 듯 하지만, 사실은 뇌의 시각 담당 신경계와 운동 담당 신경계가 결합돼 일어나는 상당히 복잡한 작업이다. 이렇게 습득하는 지식을 절차적(procedural)지식이라고 부른다. 절차적 지식이란 어떤 일을 수행해나가는 과정이나 흐름에 관한 지식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신체가 스스로 깨닫는 것이다.

반면 서술적(declarative) 지식은 세상의 사물이나 개념 등에 관한 지식으로, 신경과학자들은 절차적 지식과 서술적 지식이 서로 다른 신경체계에 의존한다고 믿는다. 서술적 지식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생각해내는 데 시간과 집중을 요하는 지식이다. 예를 들어 독일의 수도가 어디냐는 질문을 받으면 잠깐은 생각해봐야 한다. 둘재는 자기 이름이나 나이처럼 고민하지 않고도 쉽게 알 수 있는 지식이다. 이것은 두 다리를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고도 걸을 수 있는 것처럼 자동화된 지식이다.

뇌는 세 단계를 거쳐 자란다 – 139p.

뇌와 관련해 가장 놀라운 사실은, 성장하는 동안 뇌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몇 가지 기본적인 변화는 거의 모든 뇌에서 유사하게 일어난다. 그리고 뇌가 자라는 동안의 시냅스 연결성은 세 단계로 구성된다.

처음 두 단계는 유전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외부 환경의 영향을 그다지 받지 않는다. 이 단계에서 뇌의 연결 패턴은 대충 골격만 갖춘 기본 구성이므로 연결성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다. 세부적인 시냅스 연결은 그 다음 단계에서 이루어지는데, 주변의 감각적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 결정적 시기라고 불리는 기간 동안에 많이 사용되는 시냅스들은 연결이 점점 더 강해지고, 그렇지 않은 것은 약해지다 사라진다.

일단 결정적 시기가 끝나고 나면 시냅스의 연결성은 더 이상 바뀌지 않는다. 즉 결정적 시기 동안 두뇌의 하드웨어가 결정된다는 뜻이다. 이후에 배우는 모든 것들은 12세 전후에 결정되고 굳어진 시냅스의 통로(pathway)를 따라 움직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각피질 – 148~149p.

‘본다’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눈만 뜨면 바로 옆의 사물이 보이기 때문에 별다른 의미가 없는 질문으로 여길 수 있다. 그러나 현대 뇌과학에서는 이런 간단한 문제가 뇌의 신비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3, 4세 아이의 뇌는 아무 문제 없이 엄마의 얼굴을 알아보지만 세계 최고 성능의 슈퍼컴퓨터는 아직까지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지 못한다.

사람의 뇌 구조와 가장 흡사한 원숭이의 뇌의 절반 이상은 시각 처리를 위해 사용된다. 사람이 물체를 보는 과정을 풀어서 설명해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가 어떤 사물을 보면 그 사물에 반사된 빛이 눈의 렌즈와 망막을 통해 대뇌의 후반부에 위치한 ‘주시각 대뇌피질(primary visual cortex)’이라는 시각뇌의 영역에 도착한다. 이 영역에는 그 사물에 관한 모든 정보가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지만, 주시각 대뇌피질을 지나면 사물에 관한 정보는 약 25개의 영역으로 나누어지게 된다.

이 영역들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머리의 위쪽에 있는 부분은 주로 사물의 위치와 움직임에 관한 정보를, 아래쪽에 있는 부분은 사물의 형태나 색깔, 구조에 관한 정보를 받아들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빨간 사과를 볼 때 그 사물을 ‘빨간’ ‘둥근’이라는 두 개의 정보가 아니라 ‘빨간 사과’라는 하나의 정보로 인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대 뇌과학에서는 두 가지 가설을 내놓고 있다. 유력한 이론은 사물에 반응하는 많은 영역들의 활동 자체가 그 사물의 영상이라는 것이다. 즉 우리가 사물을 인식하고 기억한다는 것은 과거에 경험했던 것을 연상하면서 그 모양을 인식하는 것은 의미한다. 또 다른 주장은 뇌 안에서 흩어진 여러 가지 정보가 밝혀지지 않은 뇌의 또 다른 영역에서 합쳐진다는 것인데, 이 주장은 뇌과학자들 사이에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언어를 담당하는 브로카베르니케 – 179p.

뇌는 보통 좌우 대칭적으로 작용하는데, 그렇지 않은 대표적인 예가 언어 처리기능이다. 소리정보는 좌우 뇌를 오가면서 처리되는 반면, 언어는 좌뇌에서만 처리된다.

좌뇌에는 언어를 담당하는 중요한 부분으로 브로카 영역과 베르니케 영역이 있다.

브로카는 프랑스의 인류학자이며 외과의사인 브로카가 밝힌 뇌의 언어 담당 영역으로, 말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한다. 유아기에 외국어를 학습하면 모국어와 같은 브로카 영역에서 처리되지만 성인이 되어 배우는 경우 두 개의 브로카 영역이 생긴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베르니케는 폴란드 태생의 독일 해부학 및 신경병리학자인 베르니케가 언어장애에 대해 연구하다가 밝혀낸 좌반구의 영역으로, 문장 전체를 해석하고 처리하는 역할을 맡는다.


<내 머릿속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김대식

문학동네, 2014



내 머릿속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국내도서
저자 : 김대식
출판 : 문학동네 2014.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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