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직장에서 함께 사내 기자로 활동하던 후배가 있었다. 유독 예의가 바르고, 누구에게나 배려심이 넘치던 그의 글 역시 예의가 바른 글이었다. 늘 정갈하고 맛깔스러운 글을 쓰던 후배는 틈틈이 페이스북에 본인의 생각을 담은 글들을 남겼다. 다른 회사로 이직한 이후에는 페이스북이 그의 글을 읽던 유일한 창구였다. 짧은 글과 사진이 대세인 시대의 SNS에 걸맞지 않게 긴 글들이었지만 대부분은 놓치지 않고 읽었다. 그런 그 후배가 그간의 글들을 엮어 책을 냈다. 


후배의 글에는 깊은 생각이 묻어있었다. 5년여의 짧은 사회생활에도 불구하고 나보다 훨씬 성숙했다. 나 또한 글쓰기를 직업으로 삼진 않았지만 직업과 취미의 경계에서 줄타기를 하며 항상 무언가를 쓴다. 대부분은 여행의 기록을 사진과 함께 남기는 글들인데, 보통은 길 위에서의 감정들을 최대한 솔직하게 담아내려 노력했다. 사실을 기반으로 한 글쓰기보다 감정을 전달하는 글쓰기가 늘 어려웠다. 그런데 후배는 그 어려운 이야기들을 엮어 산문집을 출간했다. 글을 읽고 책장을 덮으며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제는 후배라는 호칭보다는 작가라 불려야 마땅하다.


<명함을 정리하며>의 출간은 서 작가의 글과 책 여정의 첫걸음일 것이다. 

첫 책을 출간한 설렘을 늘 간직하길. 앞으로도 서인석 작가의 여정을 늘 응원합니다 :)




# 명함을 정리하며 - 17~18p.


명함에 이름을 넣기 위한 노력들이 모여서 지금의 사회를 굴린다. 명함은 쉽게 찍어지지만 그 명함에 이름을 넣는 과정은 어렵고 어둡고 막막하다. 뭘 잘해야, 혹은 뭘 잘못해야 명함에 이름을 올릴 조건이 되는지 세상은 아직 청년들에게 답을 주지 않는다. (중략)

불합리와 불공평이 만연한 것을 잘 앎에도 청년들은 다시 책상 앞에 앉는다. 또 밖으로 달린다. 세상의 틈바구니에 끼어서 어떤 고생을 할지 몰라서가 아니다. 그저 세상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그들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들의 노력을 행사할 뿐이다. 평범한 이들이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명함에 이름을 넣는 일은, 평범한 일이지만 평범하게라도 그들의 삶을 꾸려갈 수 있는 방법이다.



# 글 냄새 - 37~38p.


정리되지 않은 구석 책꽂이에서 이 냄새는 더 짙었는데, 오래된 책들의 냄새였다. 잉크와 종이가 만나면 그 특유의 냄새가 난다.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향기라고 부르지만, 굳이 이 냄새를 향수로 만들어 뿌리지 않는 것을 보면 향기라는 범주에 넣기에는 민망하다. 이 냄새는 책이 낡으면 낡을수록 짙어진다. (중략)

책의 오래됨과 양이 누적되면 냄새는 더욱 강해진다. 문자가 쌓이면 쌓일수록 짙은 냄새를 내는 것이다.



# 꼰대 1 - 93~94p.


머리를 노랗게, 주황색으로, 회색으로, 금색으로, 보라색으로, 분홍색으로 물들인 이후, 개인적으로는 꼰대 구분법이 상당히 쉬워졌다.

틀과 규칙이 없어도 되는 곳에 틀과 규칙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꼰대가 되기 위한 제1원칙이지만 이것만으로는 꼰대를 완벽히 정의할 수 없다. 물론 꼰대 정의의 가장 중요한 마지막 결정적 정체성은 바로 "하지만 나는 꼰대일리가 없지"라는 굳건한 믿음이다.



# 혁명가 - 157p.


내가 쌓는 가치와 당신이 쌓는 가치가 다르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내가 하는 생각과 당신이 하는 생각이 똑같을 수 없다는 걸 알았으면 한다. 당신들의 혁명은 그 이해에서 출발해야 더 많은 사람들을 혁명으로 품을 수 있다고 감히 단정지어 말한다. 혁명은 징징거림이 아니라 이해에서 출발한다. 위대한 혁명가들은 그랬다. 여러분들이 '프로불편러'로 남을지 위대한 혁명가로 남을지는 그 작은 차이에서 갈릴 것이라고 감히 단정지어 말한다.



# 담배 - 186p.


흡연자들조차도 어린 제 자식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려하지 않는다. 대학시절 자취하던 흡연자 친구도 담배는 꼭 집 밖에서 피우곤 했다. "왜 굳이?" 라고 물어보면 그 친구의 답은 "담배냄새 나잖아" 였다. 안 피우면 안 난다.



# Epilogue - 202p.


직업으로 삼지는 않았지만 돌이켜보면 늘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단지 글 쓰는 게 재밌어서, 그리고 가진 생각을 글로 정리하여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게 좋아서 그랬습니다. 쓰다 보니 더 잘 쓰고 싶어졌습니다. 한두 번 글로 칭찬을 받아보니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명함을 정리하며>

서인석 산문

BOOKK,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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