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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실루엣/해외 여행기

[중국, 북경] 1920년대의 베이징을 만나다, 치엔먼따지에(前門大街, 전문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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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엔먼따지에 (前門大街: 전문대가, qián mén dà jiē)


황궁앞에 위치한 치엔먼 따지에(前門大街, 전문대가), 1920년대 베이징을 만나다


치엔먼은 우리나라의 광화문 같은 상징성을 지닌다. 고궁 밖 남문 앞으로 난 약 1.3킬로미터 거리의 큰길을 치엔먼따지에(前門大街, 전문대가)라 부르는데, 과거 황궁에서 행차하는 황제와 고관대작들이 모두 이 길을 통과해서 다녔다고 전해진다. 이 큰길을 따라 양옆으로 수백 개의 크고 작은 후퉁(골목)이 늘어서있다. 예로부터 상점과 식당들이 사람을 따라 이 길에 모여들었고, 현재에는 1920~30년대를 연상케 하는 근대 건축물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청나라 때 가장 번화했다던 이 상점 거리는 요즘도 여전히 매일 30여만 명이 다녀가는 베이징 최고의 번화가로 남아있다.


400년 전통의 베이징카오야 전취덕(全聚德)도 이 거리에 위치하고, 건륭제가 반했다는 만두집 도일처(都一處)도 이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 치엔먼따지에 (前門大街: 전문대가, qián mén dà jiē)


명나라 가정(嘉靖) 29년(1550)에 지은 외성 앞은 황제가 톈탄(天坛, 천단) 또는 산촨탄(山川坛, 산천단으로 출궁 할 때 이용했던 길로 외성을 지은 후에는 외성의 남북 방향 주요 도로였으며, 시민들은 이를 첸먼다제로 불렀다.


전체길이 1,660미터에 차도 너비가 20미터인 첸먼다제는 명, 청나라를 거쳐 국민당 통치 시기까지 정양먼 다제(正阳门大街, 정양문대가)로 불렸으며, 1965년에 정식으로 첸먼다제라는 명칭이 정해졌다.


명나라 시대의 첸먼다제는 정둥팡(正东坊, 정동방)과 정시팡(正西坊, 정서방)의 분계선에 위치해 있었으며, 거리 중간을 기준으로 동쪽은 정둥팡에, 서쪽은 정시팡에 속했다. 그리고 정양먼이 수도의 정문이었기 때문에 고대 첸먼다제 일대는 다른 성문보다 넓었다. 명나라는 도시 재건축 과정에서 원나라 시대의 ‘전대의 것을 후세에 물려준다’는 고정관념을 탈피해 정양먼(正阳门, 정양문) 주위 및 남쪽으로 셴위커우(鲜鱼口, 선어구), 랑팡후퉁(廊坊胡同, 랑방호동)까지 이어지는 일대를 대규모 상업거리로 조성했다. 


청나라 시대에는 대로 양측면에 끊임없이 정육점, 생선가게, 과일과게, 곡물점, 보석점, 채소가게 등과 같은 수많은 전문 시장을 개설했다. 부근 골목 내에는 공예가들의 작업장, 화물창고, 숙박시설, 회관 등을 비롯해 칭러(庆乐, 경락), 싼칭(三庆, 삼경), 화러(华乐, 화락) 등의 극장이 있었다. 대로변에 막으로 둘러쳐진 가게들은 점차 벽돌과 나무로 지어진 정식 건축물로 바뀌어갔으며, 이로 인해 대로변 동서 양쪽에 가게들 뒤쪽으로도 거리가 생기면서 총 3개의 거리가 형성되었다. 동쪽 내부 거리에는 정육점, 옷가게, 과일과게가 있었으며, 서쪽 내부 거리에는 보석점, 곡물점이 있었다. 


- 출처: 베이징관광국


△ 따스란 쇼핑 거리(大柵欄街, 대책란가)


베이징의 가장 오래된 시장 골목, 따스란 쇼핑 거리(大柵欄街, 대책란가)


따스란 쇼핑 거리(大柵欄街, 대책란가)는 치엔먼따지에(前門大街, 전문대가)와 연결된 길로, 1644년 청나라가 건립된 후 번성하기 시작한 베이징의 가장 오래된 시장 골목이다. 청나라 때에는 매일 저녁이면 고궁의 안전을 위해 베이징 내의 모든 성문을 닫아버렸다고 한다. 결국 외지인들은 성문 밖에서 잠을 자야 했고, 이로 인해 치엔먼 밖으로 또 다른 상업 거리가 조성되었다. 이곳 상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후퉁 입구에 거대한 울타리를 세웠는데, 자란(柵欄)은 경계를 표시하는 울타리라는 뜻으로, 이에 따라 이곳이 바로 따스란(大柵欄, 따자란)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100년이 넘는 전통을 가진 상점들이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어 무척 고풍스런 분위기를 풍기는데, 현대식의 간판들도 곳곳에 들어서서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1702년에 개업한 약국 동인당(同仁堂), 200여 가지의 찻잎을 파는 장일원(張一元), 서태후에게 사랑을 받았다는 구부리(狗不理) 만두집, 1905년 문을 연 중국 최초 영화관인 대관루(大觀樓) 등 전통이 가득한 상점들을 모두 이 곳에서 만날 수 있다. 


따자란의 상권을 쥐고 있는 이들은 물론 베이징 상인(징상 京商)들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징상뿐만 아니라 중국 팔대상(八大商)이 활발하게 교류하던 공간이다. 팔대상 가운데도 가장 이름 높은 상인이 후이상(徽商)과 진상(晋商)이다. 후이상은 지금의 안후이성 시셴(歙縣) 등에서 형성된 상단을 말한다. 호설암 등이 이곳이 배출한 대표적인 상인으로 이들은 쑤저우, 항저우 등까지 영향을 넓히며 중국 내 최고 상단이 됐다. 이들은 주로 소금이나 금융, 비단 등으로 세계적인 상단이 됐다. 진상은 좀 특이하다.


이들은 산시성이라는 어려운 조건을 갖고 있지만 표국이나 표호를 통한 금융업 등으로 부를 축적했다. 그밖에 풍부한 물산과 국제 교류로 부를 거머쥔 저장성 상인(浙商)이다. 현재 세계를 흔드는 상권을 가진 화교들의 모체인 광둥성 상인(粤商)은 무역과 장사를 통해서 부를 축적했다. 그밖에 비단과 진주 등으로 부를 축적한 쑤저우 출신의 쑤상(苏商)과 음식과 곡식으로 부를 얻는 산둥성 상인(鲁商), 실크로드를 통한 교류로 부를 얻은 친상(秦商)이나 수도의 힘으로 돈을 번 베이징 상인 등을 8대 상인으로 꼽는다.


따자란의 끝은 메이스지에(煤市街)다. 이곳은 서쪽으로 리우리창과 연결되고 남쪽은 과거 빠다후통(八大胡同)이다. 빠다후통은 베이징의 가장 대표적인 매음장소다. 장사 중심의 상인들이 있던 따자란과 식자(識者)들과 상인들이 있던 리우리창의 중간에 빠다후통이 있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사회주의와 성(性)은 상극 같지만 중국이라고 해서 이쪽에 무감하지 않다.


- 네이버 지식백과 : 치엔먼, 살아있는 베이징 문화의 현장 中


△ 이름 장식. 4개 60元


한자(漢字)를 하나하나 골라서 즉석에서 멋진 이름 장식을 만들어준다. 저렴한 가격에 선물하기에도 좋아서 온 가족 이름으로 하나씩 장식을 구입했다.  4개 60위안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온 가족 선물을 구입하고는 기분이 좋아졌다. 


△ 따자란 (大柵欄)


△ 따스란 거리에서 팔고 있는 이름모를 화과자


INFORMATION


- 주소 : 北京市 前门大街, Qian Men Da Jie, Dongcheng Qu, Beijing Shi

- 찾아가는 길 : 지하철 2호선 전문역(前门) 하차





FEB 2014

Li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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