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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묵지/칸타빌레 · 영화 리뷰

[사서, 인문고전 강연 36.5℃] 그리스 로마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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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들이 신화의 맛을 알아?


신화(新話, myth)는 신들의 이야기다. 인간이 생각하고 말하는 신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전적으로는 '고대인의 사유나 표상이 반영된 신성한 이야기.'라고 정의된다. 그런데 정말 과거만의 이야기일까? 여전히 현재에도 신화는 생산되고 있다. 무일푼에서 대재벌로, 무명에서 어느 날 눈뜨니 스타가 되었다는 이야기, 아이돌 그룹 '신화'까지...... 신화는 옛날 이야기만은 아닌가 보다. 살아있으며 여전히 만들어지고 있으며 누구나 꿈꾸고 있는 것!


로또 당첨 신화를 꿈꾼다면 당신도 이미 신화적 사고 속에서 살고 있다. 로또 당첨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오늘도 명당집 앞에는 길게 줄을 서 있다. 그들은 인생 역전을 꿈꾸며 티케(그리스 신화의 행운의 여신)가 자신에게 미소 짓기를 바라며 당첨번호의 신탁을 받기 위해 인터넷 신전을 접속하고 있다. 밤새 모르페우스(꿈의 신)를 만나고 새벽에 힙노스(잠의 신)로부터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며 모네타(로마 경계의 신, money의 어원)를 벌기 위해 집과 직장을 반복하는 시시포스의 삶을 살고 있다. 반복되는 시시포스의 굴레를 벗어나고자 나에게 운명 지어졌다고 믿으며 당첨이라는 신화를 꿈꾸고 있다.


그런데 신화는 이미 인간들에게 모두 정복당했다. 아르테미스(그리스 신화의 달의 여신)를 정복한지는 오래, 제우스의 아들 아레스(로마식 mars, 화성)도 이미, 또 인간은 파이오니아(개척자, 미국 우주탐사선)를 만들어 제우스(Jupiter, 목성)에 제우스가 없다는 것을 알아냈다. 과학은 이성과 합리성으로 신화를 몰아냈다. 그런데 이런 시대에 점집(신탁)이 성행하고 로또가게 사장이 대박을 맞고 또 지금 이렇게 신화에 관심이 있어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있다.


신들이 없는 시대에도 여전히 신화 관련 붐이 일고 있다. 오로지 인간들에 의해 신들이 되살아나고 활개를 치고 있다. 신이 인간을 부활시켰다지만 실상은 인간이 신을 부활시킨 것이다. 신화가 무엇이길래 인간은 신화를 탐닉하며 그 옛날 세이렌에게 홀리듯 신화에 빠져드는 것일까? 단지, 옛날 신들의 이야기라는 것만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신화를 현재의 이야기라고 재정의 하고 보자. 신화는 인간 DNA의 한 부분을 구성하고 있다. TV 드라마 속에서, 제품 광고 속에서, 연애 감정 속에서, 자녀에 대한 본능적 애정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우리들의 깊은 무의식 속에 잠들어 있던 신화적 본능은 문득문득 발현한다.


 △ 오디세우스와 세이렌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1891)


왜?

신화는 인간이 만들어냈기 때문에, 인간의 삶과 사고방식이 녹아 들어 있기에, 음식의 소금처럼, 알 수 없지만 맛보는 순간 느껴지는, 원시 바다에서 생성되어 1억 5천만 킬로미터 떨어진 태양빛으로 저 무한의 깊은 바다로부터 결정되어진 소금, 신화는 그렇게 알게 모르게 느껴지는 삶의 맛이다.


신화, 어려울 것 없다. 신나는 이야기이다. 그 맛을 느끼면 된다. 느끼려면 일단 입 속으로 집어넣어라. 혀의 미각 돌기가 분석하여 신경을 통해 뇌로 알아서 전달할 것이다. 이미 진화의 결과물로 의도치 않아도 맛을 느끼게 프로그래밍 되어 있으니까. 달면 삼키고 쓰면 뱉으면 된다.




■ 신화의 대표주자, 그리스 신화

신화학자들은 신화에 대하여 여러 가지 해석을 내놓고 있다. 해와 달, 낮과 밤, 지진 등 자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아틀라스가 천공을 떠받들고 있기에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다든가, 제우스의 딸인 페르세포네가 타로타로스에 있을 때는 겨울이라는 계절의 변화, 화산의 원인 등을 신화로서 풀어낸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꿈과 신화의 유사성을 제기하며, 억압된 금기적 욕망이 꿈으로 나타나듯 억제된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 신화라고 한다. 융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 신화는 ‘집단 무의식에 기반을 둔 원형의 객관화’로 풀이한다. 세계 각지의 신화에서 공통되는 점이 원형이며 인간에게 내재된 공통의 무의식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화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신화학자 조지프 캠밸은 ‘신화는 공적인 꿈이요, 꿈은 사적인 신화’라고 갈파했다. 어쨌든 신화는 고대인들의 사고방식과 자연에 대한 인식의 표현이며, 그것은 인간의 근원적인 원형이자 내재된 무의식이며 현재의 인간들도 거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각 지역마다 민족마다 신화를 가지고 있지만 가장 체계적으로 되어있으며 문화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그리스 신화이다. 서구 문명의 양대 뿌리라고 하는 헤브라이즘(기독교 문화)와 헬레니즘(그리스 신화)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를 제대로 모르고서는 서양 문화를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그리스 신화의 시작은 언제부터일까? 신화는 기본적으로 이야기이고 언어로 구전되었기에 원시인들이 사냥, 채짐을 하고 모닥불 앞에서 겪은 일들을 이야기하면서 그것들이 신화로 발전되었다고 본다면 대략 기원전 삼천 년경부터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들은 흔히 그리스 로마 신화라는 용어에 친숙하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엄밀히 말하면 그리스 신화이다. 물론 로마에서도 자체적으로 신화를 가지고 있었는데, 로마가 그리스를 무력으로 침략 후 그리스 신화를 가져가면서 자기네들의 신화로 바꾼 것이다. 그래서 무력으로는 그리스를 점령했지만 언어, 문화적, 신화적으로는 그리스에 점령당했다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이후 로마는 전쟁을 통해 무력으로 전 유럽을 지배하게 되는데 이를 통하여 그리스 신화는 전 유럽으로 퍼져나가고 결국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으로, 또한 인도를 거쳐서 아시아로도 건너오게 된다. 특히 서유럽에서는 르네상스 이후에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 등을 라틴어로 번역된 것을 자기네 신화로 가져가기에 그리스 로마 신화라고 인식하게 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그리스 로마 신화는 토마스 불핀치 판의 『그리스로마신화』이다. 원제는 『전설의 시대-신과 영웅들의 이야기(The Age of Fable, or Stories of Gods and Heroes)』이다. 1855년 보스턴에서 출판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러면 좀 더 정확히 그리스 신화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 물론 이야기 자체는 그 이전이겠지만, 기원전 8-9세기부터 기원후 3-4세기까지 본다. 그때 처음으로 언어로 기록되기 시작되었다. 어차피 우리가 알고 있는 신화는 그 당시에 기록된 내용들이다. 그때까지 그리스 각 지방에 퍼져있던 여러 가지 불가사의한 설화와 전설을 기록한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해서 그리스 신화는 그리스 독자적으로 발생한 것은 아니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영향을 받았으며, 소아시아와 그리스 선주민의 신화의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독특한 그리스 신화의 이야기를 만든 것들이다. 

그리스 신화의 출처는 기원전 8세기 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 등으로 볼 수 있다. 그리스 비극에도 신화적 소재가 나오고 역사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헤로도토스가 쓴 『역사』 등에도 나온다.


그럼 그리스 신화의 내용은 어떤 것일까? 나오는 인물만 5,000명이 넘고 다양한 판본을 가지고 있기에 그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우주의 창조와 올림포스 신들에 대해서 간략히 소개해 볼까 한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천지창조가 없다. 우주의 기원과 생성에 대한 설명이 있을 뿐이다. 신들 역시 피조물로 생성된 것이며 인간과 같이 불완전한 존재이다.

태초에 ‘카오스(Chaos)’가 있었다. 흔히 혼돈으로 해석하지만 원래 고대 그리스어에서는 텅 빈 공간을 의미한다. 카오스에서 대지의 여신 ‘가이아’와 ‘에로스’, ‘뉙스’, ‘에레보스’가 나온다. ‘뉙스’는 청량한 밤을 의미하는 데 녹턴(nocturne 야상곡)의 어원이다.
가이아는 스스로 우라노스(하늘의 신)를 낳고 둘은 결합하여 티탄을 비롯한 신들을 낳는다. 그런데 우라노스는 자신의 자식을 가이아의 자궁 속에서 나오지 못하게 한다. 가이아는 분노하며 막내아들이 크로노스로 하여금 자신의 아버지 우라노스의 성기를 절단하게 하여 드디어 밖으로 나오게 된다. 크로노스는 동기인 레아와 결합하여 자식들을 낳는데, 자신이 한 것처럼 자식에 의해 권좌에서 쫓겨나게 될 것이라는 말에 자식들을 삼켜버린다. 크로노스의 부인인 레아는 막내인 제우스 대신 돌을 강보에 싸서 준다. 제우스가 자라서 다시 아버지인 크로노스를 비롯한 티탄족 신들과 전쟁을 벌려 드디어 권력을 잡고서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림포스에서 세상을 통치하게 된다. 



그리스 신화의 신은 전지전능하지 않으며 인간처럼 분노도 하고 실수도 한다. 제우스는 아내 몰래 바람을 피워 많은 신들과 영웅들을 탄생시켰다. 아내 헤라는 현장을 덮치려 쫓아다니는 것이 일이 됐다. 그리스 신화의 특징은 이처럼 인간주의적인 특성을 지녔으며 이것이 르네상스 시대에 재발견되어서 오늘날 서구 문명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 티타노마키아



■ 현재 진행형인 그리스 신화

그리스 신화는 옛 문헌과 이야기로만 명맥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도 전 세계 곳곳에서 꿈틀대며 살아 움직이고 있다. 유럽에는 주요 건물 곳곳에서 그리스 신화의 상징물, 조각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박물관에도 온통 관련 조각과 명화들이 전시되어 있다. 현재 자본주의 물질문명 속에서도 그리스 신화는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나이키(승리의 여신), 박카스(술의 신), 롯데 자이언츠(거인족), 오리온(거인) 과자, 이지스(아테나의 방패) 군함, 태양계 행성의 이름, 별자리 이름, 꽃말 등등. 현재 우리의 주변을 둘러보아도 상당한 것들이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하고 있으며 그 신화의 상징과 이미지를 차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을 상징하는 독수리는 최고의 신 제우스의 신조를 차용한 것이다. 세계를 지배하고자 하는 미국의 의도를 드러내며 신화의 이미지를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영어의 어원도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한 것이 상당하다. 철학, 심리학, 의학, 과학 용어의 상당부분은 그리스 신화에 빚지고 있다.

철학과 민주주의의 발상지가 그리스인 것은 바로 고대 그리스인들의 자유롭고 인본주의적 사유체계가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본다. 시장을 의미하는 아고라에서 자유롭게 토론하고 삶을 찬미했다. 절대적인 신의 지배가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가는 신들의 세계를 통해서 세상을 인식하고 해석했기에 신들에게 지배당하지 않고 인간이 주체가 되어서 철학과 정치제도와 문화를 꽃 피울 수 있었다.



■ 신화, 꿈꾸는 자의 것

신화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신화를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치부해 버리지는 않는다. 신화 속에서조차 상상해내지 못한 스마트폰과 같은 첨단 물질을 쓰는 이 시대에 여전히 신화는 잘 팔리는 상품이다. 여성의 아름다움의 욕망을 상품에 덧칠하기 위해 ‘비너스’라는 상표가 나왔고, 우주 정복의 꿈을 위해서 우주선에 ‘아폴로’라는 이름을 붙였다. 강력한 힘을 지닌 것을 강조하기 위해 배터리 ‘아틀라스’가 있다.


신전은 무너지고 더 이상 제사를 드리지는 않지만 여전히 신들을 위한, 신들을 이용하기 위한, 인간들의 신화 만들기는 계속 되고 있다.




신화란 무엇인가?

신들의 이야기 이전에 나에게 깃들어 있는 인류의 원형 의식을 찾아보는 것. 나에게 내재되어 잇는 신화적 요소, 잠재되어 있는 원형질을 느끼고 찾아내는 것은 신화 익기를 통해서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신화는 나에게 어떤 의미, 가치를 가질 수 있는가?

스마트폰을 통해 만나는 세상, 눈에 보이지 않는 통신망을 통해 수 많은 정보가 눈 앞에 나타나는 이해하기 힘든 세상, 살기 좋아졌다고 하지만 경쟁 때문에 인심도 사라지고 각박해져가는 세상, 정보의 잔달 속도는 빨라졌지만 그보다 더 늘어나는 정보 때문에 늘 뒤처지는 듯한 세상살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판도라는 상자를 열었다. 세상의 온갖 부정적인 것들이 튀어나왔고 얼른 덮어버렸지만 마지막 남은 것은 희망이라고 한다. 그런데 희망이 상자 속에 갇혀있는데 어떻게 희망이 있을 수 있을까? 그래서 희망이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판도라의 상자를 다시 열 사람은 바로 당신이다. 희망이 없다고 느끼는 당신이라면 신화를 통해서 판도라의 상자를 다시 열기를 바란다. 그대가 그대의 신화를 만들어 가면 된다.




■ 그리스 로마 신화 관련 서적


서명

저자

발행자

발행년

(구본형의) 신화 읽는 시간

구본형

와이즈베리

2012

그리스 로마 신화

토마스 불핀치

범우사

2003

거꾸로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

유시주

푸른나무

2009

(세계적인 신화학자) 베르낭의 그리스 신화

장-피에르 베르낭

성우

2004

(장영란의) 그리스 신화

장영란

살림

2005

(클라시커 50) 신화

게롤트 둠머무트 구드리히

해냄

2003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1-5

이윤기

웅진닷컴

2000-2010

그리스 로마 신화: 개정판

에디스해밀턴

문예

2010

그리스 로마 신화와 서양문화

윤일권, 김원익

문예출판사

2004

길 위에서 듣는 그리스 로마 신화

이윤기

작가정신

2002

그리스 로마 신화, 그림으로 읽기

루치아 임펠루소

예경

2008

그리스 로마 신화

마르크 퓌마롤리

마로니에북스

2009



09 April, 2015

- 장훈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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