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중에서


내게 말해다오,

보석이 빛을 발하지 않았거나

땅이 제때에 돌이나 낟알을 건네주지 않아,

나 여기서 벌 받아 죽었노라고.

그대들이 떨어져 죽은 바위와

그대들을 못 박아 매달았던 나무 기둥을 내게 가리켜다오.

그 오랜 부싯돌을 켜다오,

그 오랜 등불을, 그 오랜 세월 짓무른 상처에

달라붙어 있던 채찍을

그리고 핏빛 번뜩이는 도끼를.


파블로 네루다, <마추픽추 산정> 중에서



# 07  1536년 6월, 올란타이탐보 – 159~161p.

너는 나와 함께 있단다, 호수의 눈을 지닌 소녀야,

네가 나의 분신 형제를 보호하는 한 나는 더 이상 네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 뒤에는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이며, 그도 똑같이 사라질 것이다.

너는 퓨마가 대양 너머로 달려가는 걸 보게 될 것이다.

그는 떠나 네게로 돌아올 것이다.

비록 서로 떨어져 있어도 너희는 결합될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떠날 때, 너는 남고 퓨마도 네 곁에 남을 것이다.

너희의 조상 망코 카팍과 마마 오클로처럼,

너희는 함께 이 땅에 새 생명을 낳을 것이다.

예전에 전쟁이 있었듯이 전쟁이 있을 것이고,

예전에 헤어짐이 있었덧이 헤어짐이 잇을 것이다.

이방인들은 그들의 승리 속에서 비참함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잉카족은 모욕을 당하고 수치심의 노예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거쳐온 기나긴 여정, 인티가 아니라 오직 전쟁의 정신으로만 고무된 우리 파나카들이 파괴의 광기 속에서 잊어버린 여정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러나 우리는 죽지 않을 것이다.


아나마야는 늙은 왕의 숨결 속에 있다. 그녀는 그가 먼 옛날을, 세상의 창조를, 쿠스코 산들의 요람에서 태어난 잉카족에 대한 신뢰를 다시 얘기하는 것을 듣는다. 그가 자신의 정복을 찬양하고 아들들의 골육상쟁을 한탄하는 것을 듣는다. 그는 아타우알파를 지명하는 불덩어리에 대해 말하고, 그녀는 기억한다. 그는 미래 시간의 첫 매듭인 망코를 언급하고, 그녀는 기억한다.


나는 내 종족의 족장들처럼 쿠스코 산의 보드라운 풀밭에 놓이는 돌이 되고 싶었다.

전쟁이 나를 쫓아냈고, 난 ‘비밀의 도시’에서 피난처를 찾았다.

내가 사방위 제국을 확장시킨 것처럼 내 돌은 사방위로 열려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돌이다. 결국 제국에서 남는 것은 오직 그것뿐이기 때문이다. 태양신이 결합하게 될 돌 말이다.

사방위는 순수한 인간의 마음속에 있을 것이다.

오늘 그들은 모르나, 형제들 사이에 이미 전쟁은 존재한다.

전쟁은 다시 일어날 것이다.

태양신의 아들들의 전쟁과 이방인들의 전쟁, 그것이 징조다.

형제의 피와 친구의 피가 적의 피보다 더 많이 뿌려지는 것, 그것이 징조다.

돌과 물이 숲에서 사라지는 것, 그것이 징조다.

자신의 강력한 조상이 아니라 한 여인에게 기도하는 이방인이 죽는 것, 그것이 징조다.

어떤 예언자도 그 징조를 보시 못하고, 신관들은 혼란에 빠지고, 천문학자들의 태양이 어두워지고, 백성들은 배반을 밥 먹듯 하고, 대양은 여전히 더 많은 수의 이방인을 쏟아놓고, 늘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을 구하기 위해 네가 도망쳐야 할 때가 곧 올 것이다.

그러나 너는 징조를 기다리게 될 것이고, 인티가 우리들 사이의 증오를 태워 없애고 여자들만 남아서 흘린 피를 슬퍼할 때까지 우리 백성들 곁에 있을 것이다.

넌 죄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

너는 돌로 시간을 멈추는 자를 만날 것이고, 그는 너와 마찬가지로 나를 마주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기원의 장소로 가지만, 너는 ‘이름을 말할 수 없는 도시’로 가는 길을 택하게 될 것이다.

너희는 침묵으로 지켜져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고, 함구하게 될 것이다.

너는 있어야 할 것만을 말할 것이고, 그러면 그것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서로 떨어질 수 없게 되었을 때 너희를 결합시켜줄 것이다.

너는 자유로울 것이다.

너는 내 분신 형제를 그의 여정 끝까지 인도할 것이고, 그도 마찬가지로 자유로울 것이다.

오직 한 가지 비밀이 네게 숨겨진 채로 남을 것이고, 너는 그것을 그대로 간직한 채 살아야 할 것이다.

그 시간 동안 한순간도 나를 의심하지 말거라. 내 숨결 속에 머물고, 퓨마를 믿거라.



# 09  1536년 6월 18일 밤, 올란타이탐보 – 181p.

욕망이 너무도 깊고 강렬한 나머지, 그는 오히려 참고 기다리게 된다. 잔인하게 참는다. 아나마야가 그를 향해 몸을 내밀고, 입술로 격려하며 그를 부른다. 그것은 아직 말이 아니라 신음이고, 발음이 불분명한 작은 외침이다. 그는 자신을 부르는 그녀의 욕망을 듣는다. (중략) 그는 끝없이 키스한다. 오랫동안 사막을 지나온 뒤에 물을 들이켜듯 키스한다. 사랑을 하듯, 숨을 쉬듯, 살아가듯 키스한다. 마치 한 번도 키스를 해보지 못한 사람처럼 키스한다.



# 11  1536년 8월, 올란타이탐보 – 198p.

어떤 날들은 순수한 아름다움과 푸름 하늘과 지나가는 바람에 바치는 침묵의 성당 같았다. 반대로 어떤 날들에는 끝없이 말해야 했다. 서로에게 모든 것을 말하고 이야기해야 했다…… 상대방의 말에 취한 채로, 그들의 말은 그들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하나의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쉬이 바뀌었다.

침묵을 지키든 대화를 나누든, 그는 날마다 마음이 커지는 것을 느꼈다. 물론 언제나 그녀의 신비로운 푸른 눈이 있었고, 그 눈에 때때로 뚜렷한 까닭 없이 불안이나 비밀의 기미가 스쳤다. 그는 그녀에게 묻지 않고 그녀 대답의 깊이를 살피는 것으로 그쳤다. 그는 이제 질투하고 의심을 품는 애인이 아니었다. 순진한 병사도 아니었다. 그렇다, 그는 자신이 남자임을 느꼈다. 진정으로 지혜롭지는 않지만 어쨌든 더 평온한 남자임을. 그것을 표현할 적절한 단어를 찾는데, 뜻하지 않은 단어가 떠올라 그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행복이라는.

그의 과거가 물결처럼 밀려들었다. 내쳐진 아이의 고통, 청년기의 열정, 도냐 프란세스카, 감옥…… 자유와 영광을 향한 꿈, 이름을 날리고 싶은 욕망…… 그는 한순간도 행복하다는 생각으로 감동받은 적이 없음을 깨달았다. 아직은 너무 불안정해서 그 생각에 완전히 빠져들지 못하지만, 아나마야와 함께 있음을 음미하며 태양의 애무 아래 눈을 감을 때면 삶이 그가 품었던 초라한 꿈보다 믿을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꾸고 있는 거예요, 퓨마?”



# 16  1536년 11월, 올란타이탐보 – 247p.

하늘이 여러 가닥의 실 같은 안개에서 빠져나오고, 밝은 아침 햇빛이 언덕의 비탈길 위로 질주했다. 싱그러운 햇살이 계단식 대지 위로 번지고 물을 반짝이게 했다.

죽기에 좋은 날이었다.



# 17  1536년 11월, 올란타이탐보

– 259p.

망코가 진흙으로 뒤덮인 말고삐를 잡아끌며 걸어서 다가왔다. 그는 말없이 가브리엘을 노려보았다. 자만심으로 빛나는 그의 검은 눈에는 여전히 전쟁의 취기가 가득 서려 있었다. 승리, 그것은 여러 단지의 치차보다 강력하고, 수많은 코카 잎보다 센 마약이었다.

- 272p.

“오래 기다려야 할까요?”

‘오래’라고 말하는 그의 말투에는 예기치 못한 불안감이 담겨 있다. 마치 그의 마음속에 있던 어린아이가 튀어나와, 얻지 못하면 떼를 쓸 기세로 당장 행복을 요구하는 것처럼.

새벽이다.

창백한 노란빛이 산꼭대기에서 흔들리고, 밤이 사라진다. 매 순간이 가슴속에서 서걱거리는 모래알 같다. 아나마야는 대답 대신 그의 입술에 오래도록 입을 맞춘다.



# 21  1539년 4월, 티티카카 호수, 코파카바나 – 322p.

“아뇨, 아름다움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은 살아 있어요. 산과 돌과 물 말이에요…… 여기 있는 모든 것은 우리와 비슷한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수도사님과 나는 그 삶을 볼 줄 모르죠!”

“무슨 말인가?”

“잉카족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안다는 말입니다. 더 나아가 그들은 그 숨결을 느끼고 그 지지를 받아들일 줄 알아요. 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표현되는 삶을 있는 그대로 느낄 줄 알아요. 칼날 아래에서의 그들의 힘은 닭 한 마리보다도 못하지요. 어쩌면 언젠가는 그들 모두가 닭처럼 전멸할지도 몰라요! 그러나 본질은 보존될 겁니다. 그들이 산 속으로, 우리가 볼 줄도 들을 줄도 모르는 이 호수와 돌 속으로 세상에 대한 그들의 지식을 가져가는 것은 아무것도 막을 수 없을 겁니다. 여기에는 피사로 같은 사람이 대항할 수 없는 힘이 있어요!”



# 24  1539년 6월, 쿠스코, 콜캄파타 – 366p.

“누구든 살다 보면, 총독님처럼 검을 꺼내어 모래밭에 선을 그어야 할 순간이 오게 마련이겠지요. 선택은 각자의 몫입니다.”

“자넨 뭘 할 건가?”

“제가 해야 할 일을 할 겁니다.”



# 29  1540년 3월, 비트코스 – 426p.

퓨마의 피가 먼지와 뒤섞여 붉은 진흙물처럼 흘렀다. 아나마야는 붉은 빗물에 젖은 안뜰을 나서면서, 망코의 온 생애가 오직 그 한마디에 이르기 위해 흘러갔다는 생각을 했다. 침착하게 내뱉은, 그의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길게 울려 나온 “안 돼”라는 한마디.



# 31  1542년, 마추픽추-카랄 – 478~479p.

이제는 침묵뿐.

갑자기 습기가 무거운 대기를 뒤덮으면서 그들의 얼굴에 달라붙는 동시에, 어둠보다 더 짙은 구름이 하늘을 덮었다. 첫 빗방울이 떨어졌다. 소리 없는 번개가 어두운 산에 줄무늬를 그리며 창백한 빛을 던졌다. 번개는 번득이는 송곳니를 지닌 맹수 떼처럼 순식간에 마추픽추를 에워쌌다. 여기저기 벼락이 목쉰 울음소리를 내며 활 모양의 빛을 내리꽂았다.

(중략)

그제야 천둥이 그들의 가슴을 진동시키며 이 비탈길에서 저 비탈길로, 가장 깊은 협곡까지 울렸다. 분노가 하늘에서 내려오고, 땅에서 올라가고, 온 세상을 한꺼번에 뒤흔들었다.

그들은 두렵지 않았다.

비바람이 잠잠해지자 상쾌한 바람이 구름을 몰아내고 하늘을 말끔히 치웠다. 또다시 바람이 불어, 정적 속에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어둠이 너무 짙어 세상이 온통 하늘로만 이루어진 듯했다.



# 옮긴이의 말 – 510~511p.

공동체 의식이 사라지고 인간의 삶을 관장하는 절대적인 가치 기준이 무너지면서 현대인은 자유를 얻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신 잃어버린 것이 있다. 그것은 삶과 죽음에 대한, 그리고 우주를 지배하는 초자연적인 힘에 대한 존엄성이다. 따라서 개개인이 내면의 방에 틀어박혀 파편화된 삶을 살아가면서 환멸과 냉소에 익숙해진 현대인은 웅장하고 비장한 열정을 경험하기가 매우 어렵다. 뚜렷한 대의와 초월적인 의지가 분명히 존재했고 그것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포함한 전 존재를 내던질 수 있었던 옛사람들과는 달리, 현대인은 자신의 모든 존재를 주저 없이 투영할 수 있는 대상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옛사람들은 우리보다 더 행복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처한 현실을 초월하여 자신의 전부를 거는 비장한 열정으로 무엇인가에 몰두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사랑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현대인의 사랑은 종종 현실적이고 자질구레한 일상에 부딪혀 작은 조각으로 깨어지고, 분석하고 계산하기 좋아하는 속성으로 말미암아 비장한 열정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하지만 아나마야와 가브리엘의 사랑은 종족의 차이와 세월과 온갖 고통을 뛰어넘어 이어지면서 초월적인 힘으로 맺어진다. 또한 평온하고 신비로운 대자연 속에 신화적인 요소가 첨가되어 웅장한 스케일로 확장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 인간의 탐욕에서 비롯된 잔인한 피의 향연이 끝난 후 아나마야와 가브리엘의 사랑은 한 마리 새가 되어 새롭게 태어날 세상을 내려다보는 신비의 꽃을 피운다. 그들의 사랑이 세월의 장막을 뚫고 나와 우리에게 감동을 자아낼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잃어버린 신비와 웅장한 열정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기 때문이 아닐까?



<잉카 3 : 마추픽추의 빛>

앙투안 B. 다니엘 지음, 진인혜 옮김

문학동네, 2007



잉카 3
국내도서
저자 : 앙투안 B. 다니엘 / 진인혜역
출판 : 문학동네 2007.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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