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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묵지/추억의 책장 · 메모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이 사회의 오지랖에 대한 통쾌하고 속 시원한 일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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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중에서



# 얼굴에 철판을 깐 회사들, 야근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건 도둑질 - 32p.


몇 년 전 서비스 야근을 합법화하는 '화이트칼라 이그젬프션(White collar exemption)[각주:1]' 이라는 제도의 법안이 일본 국회에 제출되어 파문을 일으켰다.

이 법안은 노동조합 등이 당연히 거세게 반대하고 나서서 폐기되었으나 지금도 도입을 꾀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는 듯하다. 특히 경제 단체연합회를 비롯해 경영자 입장에 선 사람들은 대부분 이 제도를 적극 지지한다.



# 레일을 벗어나면 살아남지 못하는 '재도전 불가능' 사회 - 47∼49p.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에 진학하고 대학을 졸업하면 곧이어 신졸(新卒)[각주:2]로 기업에 취직한다. 그 다음에는 결혼해서 대출을 받아 내 집을 마련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며 정년까지 일한다. 이것야말로 순풍에 돛을 단 듯 행복한 삶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우리 사회에는 이처럼 '행복한 인생'의 본보기가 있다.


이런 삶은 종종 기차 레일에 비유되기도 한다.

(중략)

"이미 깔린 레일 위를 그저 달리기만 하는 인생이 무슨 재미야"라고 말하는 사람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우리 사회에서 레일을 벗어나는 행위는 매우 위험하다.


예를 들어 대학 재학중에 취업활동을 시작하지 않아 신졸로 회사에 들어가는 코스를 벗어났다고 해보자.

알다시피 대부분 기업들은 신졸자가 아닌 구직자는 적극적으로 채용하려고 나서지 않는다. 아예 모집 대상에 기졸업자를 넣지 않는 회사도 많다. 신졸이라는 패를 잃은 시점에서 이들이 취업할 수 있는 곳은 놀랄 만큼 줄어든다.

신졸자와 기졸자 사이에 결정적인 능력 차이는 없다. 그저 구직활동에 나서는 타이밍이 조금 늦었을 뿐인데 취직하는 일 자체가 가시밭길이 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 그렇다면 이 사회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 50∼51p.


우리 사회는 일단 레일을 벗어나면 갑자기 인생이 '하드 모드'로 바뀐다. 

그렇다고 레일을 벗어난 사람을 탓하는 것은 옳지 않다. 사람에 따라 가치관이 제각각 다르므로 당연히 다양한 인생이 있을 수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취업하지 않아도 좋다. 회사를 옮겨다니는 것 또한 하나의 생활 방식이다. 딴 길로 새지 않고 대학을 졸업하는 시점에 곧바로 회사에 취직해 정년까지 성실하게 일하는 삶이 오히려 부자연스럽다고 느껴지지 않는가?

인생의 레일이 딱 하나뿐이고, 그 레일을 벗어났다고 해서 갑자기 삶이 어려워진다면 이 사회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제도상 설계 실수다.



# '일님'의 광신도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 56p.


일을 위해 사는 것도 좋고, 가족이나 취미를 위해 사는 것도 그 사람의 자유다. '일을 적당히 하는 대신 사생활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열중하고 싶다'는 삶 역시 충분히 합리적이고 존중받아 마땅하다. 이런 사람들이 매일 야근하지 않고 정시에 퇴근하고 싶다, 보람 따위 아무래도 좋으니까 최대한 편한 일을 하고 싶다고 주장하는 것에 무슨 잘못이 있나?

'일을 위해 사는 것이야말로 사람의 행복' 이라는 사고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은 결국 가치관을 억지로 밀어붙이는 행위다.

그야말로 '노도교(勞道敎)'의 광신자가 입교하지 않은 사람에게 억지로 교의를 밀어붙이는 행위나 마찬가지다.



# 직장인의 눈치 게임 : 아무리 바보 같더라도 '모두'가 그렇게 한다면 따라드릴 수밖에 - 124∼126p.


어쨌든 '모두'의 행동에 맞춰 어울리는 것이 직장을 지배하는 암묵적인 규칙을 어기지 않고 동료들과 불화 없이 지낼 수 있는 기본적인 비결인 셈이다.

이런 '동조 압박'에 굴복하지 않고 자기만의 의사를 유지하는 일은 군대식 신입 연수에서 세뇌되지 않고 버티는 것보다도 더 어려운 일이다.

연수는 그 시기만 잘 버티면 끝나지만 직장에서 가하는 '동조 압박'은 그곳에서 일하는 한 계속 존재할 테니 말이다.


애당초 우리 사회는 개인주의나 계약주의가 뿌리깊게 자리잡은 서구와 달리 '동조 압박'에 아주 약하다.

학교든 대학 동아리든 혹은 이웃과 관계를 맺는 지역 커뮤니티든 이 사회에서 모두와 똑같이 행동하지 않는 사람은 이단 취급을 받으며 불이익을 당하기 쉽다. 조직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협조성'이다. '다양성의 존중'이나, '개인주의' 같은 사고방식은 협조성이라는 단어 앞에서 힘을 잃는다.

직장도 예외가 아니어서 널리 퍼진 규칙이 아무리 불합리하고 바보 같더라도 '모두'가 따른다면 그 어느 개인도 거부하거나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러지 않으면 여러모로 귀찮아진다는 것을 지금까지 삶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 괴로우면 언제든 도망쳐도 된다. - 143p.


일단 무너지면 원상 복귀에 시간이 걸린다. 상황에 따라 원래대로 돌아가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 무너질 때까지 가느니 차라리 전부 다 내던지고 도망쳐버리자. 적절한 시점에 도망쳐서 몸과 마음을 지켜내자.


도망칠 때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이 '책임감'이다.

'내가 도망치면 주위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 아닌가?' '남은 사람들도 힘들 텐데 나 혼자 무책임하게 굴 수는 없다.' 이런 책임감 때문에 '이거 도망치면 안 되겠는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꽤 많다.

책임감이 강한 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 그러나 정말 한계에 몰렸다면 주변에 책임을 다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일단 내 몸부터 지켜야 한다.

몸과 마음이 무너지면 결국 주변에 책임도 다하지 못한다. 이러나 저러나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면, 내가 무너지지 않는 길을 선택하는 편이 훨씬 현명하지 않은가?



# '남들과 똑같이' 대신 '내게 가장 어울리게' - 165∼166p.


본래 사람은 저마다 다르다. '모두와 똑같이'란 불가능하다.

일이 좋아서 매일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있따면, 일이 싫어서 최대한 편한 직장을 구해 매일 일찍 퇴근하고 싶은 사람도 있다.

둘 중 어느 쪽이 옳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는 저마다 다양한 생각이 존재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결국 중요한 사실은 '남들과 똑같이' 되는 것이 아닌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게 행동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가치관을 좀더 소중히 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대충 '남들에게 맞추는' 일에만 에너지를 쓰면서 내키지 않는 인생을 살다가 끝나게 된다.


'보람 있는 일에 몰두하는 것이 행복한 인생이다' 혹은 '결혼해서 내 집을 마련해 배우자와 아이들과 함께 사는 것이 행복한 인생이다' 같은 생각은 어디까지나 다양한 가치관 중 하나다.

이러한 생각들이 자신의 가치관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면 그렇게 살면 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까지 여기에 동조할 필요는 없다.

나와 맞지 않는 가치관은 결국 타인의 것일 뿐이다. 공감하지 못하면서 그런 가치관을 따라 산다면 타인의 인생을 사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세상의 평가기준이 아니라 나의 평가기준이다.

세상의 평가가 아무리 높더라도 나의 평가 기준에 비췄을 때 높이 평가할 수 없는 대상이라면 괜히 거기에 시간을 투자할 필요가 없다. 반대로 세상에서 낮은 평가를 받더라도 나의 평가기준에 비췄을 때 높이 평가할 수 있는 대상이라면 내게는 충분히 가치 있는 것이다.

내 인생은 나 이외에 그 누구도 살아줄 수 없다.

내 행복은 나의 주관으로 판단하면 된다.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히노 에이타로 지음, 이소담 옮김, 양경수 그림

오우아, 2016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국내도서
저자 : 히노 에이타로 / 이소담역
출판 : 오우아 2016.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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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일정 연봉 이상을 받는 화이트칼라 노동자의 경우 노동시간이 아닌 성과를 기준으로 임금을 책정하는 제도. 야근 등 초과근무에 대한 수당이 없는 대신 추후 업무 성과를 토대로 임금을 받는다. 미국, 독일, 영국 등에서 시행하고 있다. [본문으로]
  2. 대학을 갓 졸업한 것을 말한다. 일본에는 매년 신졸 학생을 대상으로 한꺼번에 채용을 진행하는 특유의 관행이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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