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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묵지/칸타빌레 · 영화 리뷰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 - EP05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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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어느 사회에서나 같습니다.
자신의 결정을 스스로 내리는 기회입니다.

- 에릭 매스킨(Eric Maskin) -
2007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사회과학과 교수

 

 

행복이란 사람들의 삶이 계속 더 좋아지는 것입니다.

- 로저 로웬스타인 (Roger Lowenstein) -
미국 칼럼니스트, 전 월스트리트 기자, 저서 「복지전쟁」

 

 

자본주의 사회에서 행복이란
즐기기에 충분한 돈을 벌 수 있는
행운을 누리는 것입니다.

- 리처드 탈러 (Richard H. Thaler) -
미국 시카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저서 「넛지」,「승자의 저주」

 

 

행복은 좋은 삶을 사는 것입니다.
자신이 믿는 가치에 따라 살 수 있죠.
돈과는 상관없습니다.

- 데이비드 케이 존스턴 (David Cay Johnston) -
미국 저널리스트, 저서 「내가 낸 세금은 다 어디로 갔을까」

 

 

자본주의가 위대한 이유는
개인에 맞게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 스티븐 랜즈버그 (Steven Landsburg) -
미국 로체스터 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저서 「발칙한 경제학」, 「경제학자 철학에 답하다」
 

 

 

 

하이에크의 '신자유주의' vs. 케인스의 '거시경제학'

 

 

 

 

1. 존 메이너스 케인스 (John Maynard Keynes, 1883~1946)

- 거시경제학(macroeconomics, 巨視經濟學)의 아버지

- 저서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 이론 (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 1936)

- 영국 출생, 캠브리지대 졸업, 재무성 수석 대표, 상원의원

 

1914년 7월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제1차 세계 대전이 시작됐습니다. 전쟁은 4년을 넘게 계속되었죠. 1918년 11월 11일, 독일의 항복으로 드디어 전쟁은 끝이 났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31개 연합국은 파리 평화회의를 열고 베르사유 조약발표(1919. 06. 28.)합니다. 전쟁을 일으킨 독일에게 240억 파운드에 달하는 전쟁배상금을 물라는 것이었죠.

 

만약 고의적으로
중부 유럽을 빈곤에 빠뜨리려 한다면
복수는 손쉽고 신속하게 이루어질 것임을
나는 감히 예언한다.

자유방임의 자본주의는
1914년 8월 끝났다.

- 1918년 「평화에의 경제적 귀결」 중에서

 

 

케인스의 예언이 적중했음을 아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독일 정부는 감당할 수 없는 배상금 때문에 더 많은 돈을 찍어낼 수밖에 없었고, 결국 하이퍼인플레이션(hyperinflation)*이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전쟁의 여파로 폐허가된 유럽과 달리 미국은 호황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끝없는 욕심은 거품을 만들었습니다. 1929년 10월 29일, 검은 목요일. 거품이 터지면서 미국은 대공황의 소용돌이에 빠졌습니다. 그 시기 1931년 유럽의 이탈리아, 독일 등에서는 파시즘이 힘을 얻고 있었습니다. 독일 국민들은 빈곤과 실업에 지쳐 히틀러에게 정권을 맡겨 버리고 말았죠.

* 하이퍼인플레이션(hyper inflation) : 급격하게 발생한 인플레이션, 물가 상승 현상이 통제를 벗어난 초 인플레이션 상태

 

이렇게 대공황과 전쟁의 위기가 몰아칠 때 케인스는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해서 의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를 구하기 위해 위기의 원인에 대한 분석과 해결방법을 다룬 책,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 이론 (1936)」을 출간했습니다. 케인스는 공황의 원인을 '수요 부족'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소득이 늘어난다고 수요가 똑같이 늘어나지 않으며, 현실적인 수요량유효수요*라고 정의했습니다. 경제가 잘 돌아가려면 소득과 수요가 거의 같아야 하는데 덜 쓰다 보니 경기가 침체되는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정부의 역할에 대한 케인스의 이론은 거시경제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탄생시킵니다. 

* 유효수요(effective demand, 有效需要) : 실제로 물건을 살 수 있는 돈을 가지고 물건을 구매하려는 욕구

 

자본주의 경제 체계에서는 그 주체를 '가계', 기업, 그리고 '정부' 셋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미시경제학(microeconomics)이란, 가계와 기업이 어떻게 의사결정을 내리며 이들이 시장에서 상호작용을 하는지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아담 스미스의 자유시장경제 체제 이후 세계를 지배한 경제학입니다. 여기서 국가란 전쟁에서 국민을 보호하는 정도의 야경국가 정도의 역할만 해야 한다고 정부의 역할을 축소해서 생각했습니다.

 

반면에 거시경제학(macroeconomics)국민소득, 이자율, 환율 등 국가 전체와 세계에 관한 경제 정책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정부의 계획적인 정책으로 가계와 기업을 움직여야 한다는 주장이죠. 공황에서 벗어나는 길은 정부가 재정지출을 확대해 일자리를 만드는 것. 완전고용이 일어나면 유효수요가 늘어나서 경제가 되살아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케인스가 내린 정부의 계획적인 개입이라는 처방은, 이제까지 시장을 지배한 보이지 않는 에 대한 중대한 반역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케인스는 정부의 계획경제 강조로 한 때 공산주의자로 의심까지 받았습니다. 하지만 케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이 스스로 시장을 조정할 때까지 기다리자는 주장과 단기적인 관점에서만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비판했습니다.

 

In the long-run, we are all dead.
장기적으로 보면 우리는 모두 죽는다.

- 존 메이너드 케인스 (John Maynard Keynes)

 

 

미국의 루스벨트(Franklin D. Roosevelt) 대통령은 케인즈의 이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1933년 '뉴딜정책(New Deal)*'을 발표합니다. 미국인 복지 정책을 마련하고 댐, 고속도로 등을 건설해서 일자리를 만들었습니다. 또 전례 없이 강력한 규제 강화를 실시했습니다. 

* 뉴딜정책(New Deal) : 대공황 극복을 위해 정부가 적극 개입하여 자유주의 경제에 대한 수정을 가했던 정책

 

그리고 드디어 1939년 9월 1일, 케인스의 예언이 그대로 적중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다시 유럽 대륙에 전쟁의 피바람이 불었고,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된 것입니다. 전쟁은 1941년 독일의 소련 공격과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계기로 태평양 전쟁으로 번졌습니다. 유럽뿐만 아니라 아시아, 북아프리카, 태평영까지 전 세계가 전쟁에 휩싸이게 된 것이죠.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를 낳은 전쟁은 1945년 8월 15일*이 되어서야 끝이 났습니다. 

*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 → 종전

 

그 사이 케인스의 이론은 그 영향력을 전 세계로 확대했습니다. 1944년 7월, 케인스는 세계 최고의 경제학자 자격으로 브레튼우즈 협정을 진두지휘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은 독일과 미국 모두에게 불황의 탈출구가 돼주었습니다. 돈을 빌려 전쟁에 쏟아부으면서 실업률이 낮아지고 경제가 살아난 것입니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나자 케인스주의는 자본주의 세계 모든 정부를 지배하는 경제 원리가 되었습니다. 이후 케인스주의는 큰 정부를 만드는 이론적 토대가 되었고 이후 30년 동안이나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게 해 주었습니다.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 - EP05 국가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2.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Friedrich Hayek, 1899~1992)

- 신자유주의(Neoliberalism, 新自由主義)의 아버지

- 저서 「노예의 길 (The Road to Serfdom, 1944)

- 오스트리아 출생. 런던대학교 교수, 시카고대학교 교수. 197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

 

하이에크는 너무 많이 투자됐고, 너무 많이 써서 공황이 왔다고 진단했습니다. 케인스와는 정반대의 의견으로, '시간이 걸리더라도 시장의 조정 능력을 신뢰해야 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케인스 이론으로 호황을 누리고 있던 세계는 하이에크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주지 않았습니다.

 

초창기에 대부분의 경제학자들로부터
아웃사이더 취급을 받았다.

-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Friedrich Hayek) -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자,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호황도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위기는 이제까지와 전혀 다른 양상으로 번졌습니다. 경기 불황과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오는 스태그플래션(stagflation). 케인스 이론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했습니다. 대세는 케인스에서 하이에크로 기울어졌고, 하이에크는 「화폐 및 경기변동에 관한 연구」로 1974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습니다.

*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 경기 불황과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오는 현상

 

선거가 있던 1979년 영국은 경기가 치명적인 침체에 빠져있었고, 영국 국민들은 마가렛 대처의 보수당 정부를 선택합니다.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된 마가렛 대처(Margaret Thatcher)하이에크의 신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대처리즘(Thatcherism)을 표방했습니다.

* 대처리즘 (Thatcherism) : 영국 경제의 재생을 꾀한 마가렛 대처 수상의 사회·경제 정책의 총칭으로 기존 노동당 정부가 고수해 왔던 각종 국유화와 복지정책 등을 포기하고 민간의 자율적인 경제활동을 중시하는 머니터리즘(monetarism)에 입각한 강력한 경제개혁을 추진

 

하이에크는 큰 정부의 문제점을 비판하며 아담 스미스의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다시 부활시켰습니다. '신자유주의(Neoliberalism)' 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미국도 1979년 2차 오일쇼크(Oil Shock, 石油波動)가 발생하자 규제 철폐가 시작되었지만 침체는 계속됐습니다. 케인즈가 가르쳐준 대로 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미국은 대처와 같은 노선을 가진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을 대통령으로 선출했습니다. 레이건 대통령은 하이에크와 같은 시장주의자인 시카고학파의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 교수의 이론을 기반으로 해서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를 시행했습니다. 건실한 금융, 규제 철폐, 적정한 세율, 제한적인 정부 지출이 주요 내용입니다.

*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 : '레이건'과 '이코노믹스'의 복합어로, 레이건 대통령이 추진한 경제 회생 정책

 

1982년 영국은 포클랜드 전쟁(Falkland Islands War)을 일으켰고 승리했습니다. 다행히 대처 정부는 그때까지 성과를 내지 못했던 경제 정책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영국 경제가 다시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1980년대 들어와서 공산주의 세계는 소련이 리더십을 잃어가면서, 경제위기의 해결책이 마르크스주의가 아닌 시장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경제 사정으로 공산주의 체제는 점차 무너져 갔고, 결국 1991년 12월 25일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었습니다. 그동안 세계를 양분했던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대결에서 자본주의가 최종 승리를 거둔 것입니다.

 

대처의 영향력은 더 막강해졌고, 그와 함께 하이에크의 신자유주의는 지구촌 경제를 휩쓸었습니다. 미국과 영국은 세계화(Globalization)*를 주장하며 세계 여러 나라에 압력을 넣기 시작했고, 그 결과 세계는 글로벌 경제체제(Global economic regime)**에 돌입하게 됩니다.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그 누구도 통제권을 갖지 못하는 단일 시장이 시작된 것입니다. 또 미국과 영국은 금융산업을 무기로 세계화에 성공했고, 급기야 새로운 자본주의 형태인 금융 자본주의(Financial Capitalism)*** 를 탄생시켰습니다.

* 세계화 (Globalization, 世界化) : 사람, 자본, 상품, 정보와 이동에 아무런 규제가 없는 것
** 글로벌 경제체제 (global economic regime) : 나라와 나라 사이의 경제 활동이 국내에서처럼 자유로워지고 경제적 상호의존도가 높아지는 경제체제
*** 금융 자본주의 (financial capitalism, 金融資本主義) : 금융부문의 영향력이 확대되어 금융자본이 경제를 지배하는 자본주의

 

하지만 이런 금융 자본주의전 세계적인 금융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예측한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1994년 멕시코 금융위기는 미국의 지원으로 해결됐지만, 1997년 태국에서 발발한 금융위기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로 전염병이 되어 번져나갔습니다. 1997년 12월 한국 금융위기. 우리나라도 IMF 체제에 돌입하는 굴욕을 당했지만 금융위기는 멈추지 않고 계속됐죠. 결국 철옹성이라 생각했던 미국까지 2008년 금융위기에 휩싸이게 되고, 연이은 2010년 유럽발 금융위기로 전 세계가 휘청거리고 있습니다. 이제 세계는 어느 누구도 통제할 수 없게 돼버린 것입니다.

 

물론 세계화가 전례없는 풍요를 가져다 준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세계화가 시작되면서 부와 빈곤의 양극화가 가속되고 불평등이 더 커졌다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 그러자 케인스주의자들은 신자유주의가 괴물 금융을 키웠기 때문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하이에크의 추종자들은 과도한 정부의 지출이 이번 금융위기의 주범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정부냐 시장이냐. 그래서 주도권 싸움은 아직도 첨예하게 대립하며 계속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Global Wealth Inequality - What you never knew you never knew

 

 

얀 펜 (Jan Pen)의 소득분배 (1971)

 

- 우리사회의 소득의 불평등과 빈부 격차를 쉽게 표현한 그림

- 전 세계인이 소득 순서대로 1시간 동안 행진 (키 크기는 소득에 비례)

 

최초 발만 버둥버둥
땅속에 머리를 파묻고 거꾸로 등장
빚쟁이 파산한 사업가 (마이너스 소득)
잠시 후 겨우 몇 cm 시간제로 일하는 주부, 신문 배달 소년
10분
~30분
1m 남짓 난쟁이 수준 노인, 실업가, 장사가 안되는 노점상, 아무도 재주를 알아주지 않는 천재화가 ~ 풀 타임 노동자
48분 2m 이상 대졸 회사원, 교장 선생님
마지막
6분
5m 이상 상위 10% : 의사, 변호사, 고위 공무원
마지막
몇십초 전
110m + @ 은행가, 중권 증개인, 성공한 기업 임원(ex: 석유회사 shell 전무이사) 등
행렬마감 몇 초 전 구름에 얼굴가려
못알아 볼 정도로 큰 키
(신발 밑창만 수백 미터)
석유 재벌 (ex: John Paul Getty)

 

 

네덜란드 경제학자 얀 펜(Jan Pen)의 소득분배, 난쟁이들의 행진 (1971) - 출처 : declinacionmagnetica

 

 

 

<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 - EP05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

EBS1

2012. 09. 24 ~ 2012. 10.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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