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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묵지/추억의 책장 · 메모

[그녀에 대하여] 황망히 세상을 등진 영혼에게 바치는 따뜻한 레퀴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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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p.
만약 가족과 함께하는 행복 속에서 여든까지 산다면 이 외로움이 없어질까? 역시 그렇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내 외로움은 확고하게 있던 것이 없어진 데서 오는 거니까 어떤 인생을 살든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잃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 68p.
아, 좋다, 꿈만 같아, 하고 나는 생각했다. 언제나 생각한다.
사람과 헤어질 때마다, 어떤 장소를 떠나야 할 때마다, 자신에게나 타인에게 몹쓸 말을 했을 때...... 만약 꿈속에서처럼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전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한다. 시간 감각이 꿈속만 같다면 늘 친절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은 사람에게, 사실은 언제나 그러고 싶지 않을까.

- 119p.
새 공기가 들어오자 집 안 분위기가 조금은 좋아져 움직여도 괜찮을 만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안개가 낀 것처럼 눈앞이 부옜는데, 또렷해졌다.
촛불을 밝히고 둘이 묵묵히, 불길에 녹아드는 예쁜 촛농의 색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불빛은 하늘하늘 춤추면서 금속 창틀에 반짝반짝 반사되었다. 내 안에서, 멈춰 있던 시간의 사슬이 뚝 끊어진 느낌이 들었다. 불빛은 지금의 시간 속에 살아 있었다. 무언가를 하나하나 품어 안고 활활 태우는 듯했다.

- 148p.
바로 이 세상은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힘이에요. 누군가의 품에 꼭 안겨 본 경험, 귀염받고 자란 기억. 비 오고 바람 불고 맑게 갠, 그런 날들에 있었던 갖가지 좋은 추억. 부모가 맛있는 음식을 차려 주었던 일, 생각난 것을 얘기하고 받았던 칭찬, 의심의 여지없이 누군가의 자식이었던 것, 따뜻한 이불 속에서 푸근하게 잤던 잠, 자신이 있어도 좋다고 진심으로 생각하면서 이 세상에 존재했던 일. 그런 것들을 조금이라도 갖고 있으면 새로운 사건과 부딪칠 때마다 그것들이 되살아나고, 또 그 위에 좋은 것들이 더해지고 쌓이고 하니까 곤경에 처해도 살아갈 수 있어요. 토대니까, 어디까지나 그 위에서 무언가를 키워가기 위해 있는 거니까.

- 193p.
그렇다면 내가 상상한 인생과 이번 여행도, 현실에 있었던 것이나 마찬가지네! 그렇게 나쁘지 않았어. 대충 보면 비참한 인생이지만, 내가 지금 여기에 좋은 기분으로 있다는 건,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는 뜻이야.


<그녀에 대하여>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2010, 민음사

그녀에 대하여
국내도서
저자 : 요시모토 바나나(Yoshimoto Banana) / 김난주역
출판 : 민음사 2010.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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