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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묵지/추억의 책장 · 메모

[등반중입니다] 우이동에서 히말라야까지, 유학재의 산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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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중에서

# 배려 – 29p.

산에서 해야 할 것들은 더 많다. 그 중에서도 몸에 배야 하는 것이 있는데, 그건 바로 배려이다. 고전(古傳)선배는 후배를 위해야 하고, 후배는 선배를 존경해야 하고, 동료는 서로를 이해하고 위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내 몸도 제대로 가누기 힘든 상황에서 상대방을 배려하기란 무척 힘든 일이다. 잘못하면 오히려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기 십상이다. 그래서 제일 중요한 건, 내 몸을 먼저 배려하는 일이다. 내가 멀쩡해야 동료를 도와주거나 배려할 수 있다.

등반에서의 내 몸은 내가 가지고 있는 무기이다. 과녁에 따라 어떤 때는 권총으로, 또 어떤 때는 따발총으로 변해야 한다. 간혹 몸을 혹사시키더라도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줘야 한다. 산을 오르기 위한 마지막 한 발의 총알이 필요하다면 내 몸을 먼저 배려하길

 

# 야간산행 - 65p.

칠흑 같은 어둠 속을 걸어가면 뒤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 등산도 뒤를 보지 못한다. 오늘 지나가면 그 자리는 끝이고, 그곳에서의 경험도 끝이 난다. 산은 항상 새로운 것을 요구한다. 지나간 것은 과거로 밀려난다. 과거의 산에 매달리기에 우리는 아직 젊다. 산은 언제나 내게 열정 넘치는 청춘으로 가는 길을 열어준다.

 

# 스펙 쌓기 – 109p.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산쟁이라면 원정등반이 무엇인지 체험해볼 필요도 있다. 그리고 그 경험은 다음번의 등반을 위해 필요한 수순이다. 하지만 자신의 등산 경력에 스펙 한 줄 더하려는 사람들은 등반이란 용어의 해석으로 볼 때 별로 달갑지 않은 자들이다. 또한 순수하게 등반을 하려는 사람들의 기회를 빼앗아가는 결과이고, 이것은 산악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 포기할 줄도 알자 – 117~118p.

등반의 성패와 상관없이, 그 등반을 오롯이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등산을 한다면, 차라리 대회로 치러지는 스포츠클라이밍으로 전향하는 게 나을 것이다. 주어진 등반을 성공하든 또는 실패하든, 그 행위에 따른 명예가 주어진다. 그 명예는 누가 내게 주는 게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판단하는 과정에서 생긴다.

등반은 꼭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는 불확실한 행위다. 위험과 난관에 부딪쳐 돌아서야 할 때, 대원의 안전을 위해 포기하는 게 무리한 등산으로 문제가 생기는 것보다 더 나은 판단일 것이다. 산은 언제든지 다시 갈 수 있다. 이번이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계속 밀어붙이는 무리수를 둔다면 사고가 날 수도 있고, 대원 누군가가 불행에 직면할 수도 있다. 등반의 성패에 상관없이 그동안 진행해왔던 행위에 가치를 두고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또는 자신의 명예를 드높이려고 등산을 한다면 당장 그만두어야 할 일이다. 어떤 행위를 하든, 그 속에 정당함과 의로움 그리고 순수함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타인이 그 명예에 대해 높이 평가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 풍선효과 – 128p.

동료들에게 모나게 굴지 않았는지, 나의 기준을 동료에게 강요하지 않았는지, 등반실력으로 동료 간의 우열을 가리고 있는지, 내가 하는 등반만이 정통이라고 그 외의 등반을 하는 사람들을 무시하는지, 규정된 등산로를 이용하지 않고 샛길을 이용하는 것을 자랑하는지, 남들이 걸어갈 때 차를 타고 산에 가는 것을 자랑하는지, 직장보다 산을 우선시하는 것을 좋아하는지, 공동의 역할 수행에서 꽁무니를 감추는 것이 자랑인지, 산보다 산에서 마시는 술이 우선인지 등, 이 모든 것이 둥글둥글한 풍선을 눌러 터지게 할 수 있는 요인들이다.

등산이란 행위 안에 철학이 있고, 사상이 있고, 종교도 있다고들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는 가장 단순하게 산에 접근하고 싶다. 등산을 통해 자연환경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에서 오는 즐거움이 나를 다시 산으로 가게끔 하는 원동력이다..

 

# 허무와 황당 – 183p.

가스만 나온 줄 알았는데 덩어리까지 나오면 황당한 것이고, 덩어리인 줄 알고 배에 힘을 주는데 가스만 나오는 경우는 허무한 것이다. 시설도 좋지 않은 화장실에 앉아 힘을 주는데 가스만 나오면 정말 허무하다. 허무는 그래도 괜찮은 편이다. 트레킹을 하는 도중 가스가 나오는 줄 알고 아무 생각 없이 분출했는데 어제 먹은 식량이 나온다면 얼마나 황당한가!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그런 경험을 해본 적 없는지? 내겐 이 허무와 황당이 일상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혹시 이 글을 읽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거나 배시시 웃는 이가 있다면, 필시 나와 똑같은 경험을 해본 사람일 터. 허무와 황당은 나와 당신만이 아는 쓰라린 추억이다.

 

# 과거는 무조건 버린다 - 269p.

전통이란 건 어느 순간 갑자기 생겨나는 게 아니라, 수년에서 수십 년 혹은 수백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사람에서 사람으로 이어진 관습이 누적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선배에게서 후배에게로, 그 후배가 언젠가 선배가 되어 자신의 후배에게로..., 전통이란 건 그렇게 이어지는 것이다.

 

# 눈맞춤 – 285~286p.

산에서 눈을 맞춘다는 것은 상대방을 이해한다는 뜻이다. 그가 앞으로 움직일 동선을 생각하고, 서로 말을 주고받지 않아도 각자 그 동선에 맞게 움직이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관계를 자일파트너라고 한다. 오랜 기간 함께 등반을 해온 파트너는 눈빛만 보고도 상대방이 무슨 행동을 하려는지 알 수 있다고 한다. 내 생각이 아니라 상대방의 생각을 이해하고 그 행동에 접근하면,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예측할 수 있다. 내가 할 일은 상대방의 행동에 부수적으로 필요한 부분을 거들어주는 것이다. (중략)

등산을 하든 일상생활에서든, 파트너와 함께 움직일 때면 상대방의생각을 읽고 그 다음 동작에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선배라고 해서 밥숟가락만 들고 기다리고 있다면 그 선배와의 산행이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산은 군대가 아니다. 공동의 책임이 따른다. 후배들과 함께 오래 산에 다니고 싶다면, 지금부터라도 감자를 깎고 양파를 까는 선배가 되자.

 

# 가슴 속의 사람들 – 309p.

우린 산에 가면서 죽으러 간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알프스나 히말라야처럼 만년설이 있는 고산에 갈 때, 목숨을 걸고 어려운 등반을 하면서 내가 죽을 것이다생각하고 가는 사람은 없다. 죽음으로써 승부를 낼 수 있는 건 전쟁뿐이다. 산에서의 죽음은 모두가 원치 않는 일이다.

물론 우린 산을 대할 때 죽음도 불사하는 승부근성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산에서 죽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그것을 생각할 수 있고 없고가 아니라, 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지 않고 등산을 즐겨야 한다. 좀 더 모험적인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는 그것을 가능케 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그 행위에 수반되는 위험에 대한 최상의 안전조치는 등반기술의 숙달이다. 등산은 반복을 통한 숙련의 결과물이다. 등산의 안전은 책에서 보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실전을 통한 반복된 훈련이 그 행위에 안전과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어떤 형태든, 자주 하던 사람과 안 하던 사람은 같은 곳을 가더라도 바로 표시가 난다.

 

# 아주 높은 산에 간 그대에게 – 339~341p.

그저 장례를 치르고 나니 또 날은 밝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눈물도 마르겠지. 너희를, 죽음이란 것을 잊기 위해 난 또 산에 가야겠다.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악우 유영직과 그 악우들을 위해 먼 길 마다하지 않고 달려와 슬픔을 같이 해준 분들께 감사합니다. 하늘나라에 신입회원 들어왔다고 좋아할 선배님들, 부디 후배 잘 챙겨주세요. 여기서는 더 이상 그들에게 해줄게 없네요. 부탁합니다. 유영직, 정준모, 김창호, 임일진, 이재훈. 잘 가라.

 후배여, 이제 편히 가시게나.
여기에 있는 산은 내가 마저 다니겠네.
저기에 있는 바위는 내가 마저 올라가겠네.
산 너머 있는 얼음 계곡은 너를 아는 후배들과 같이 올라가겠네.

후배여, 이제 한시름 놓게나.
그대는 마지막을 내 집, 내 방에서 잠시 동안 나와 같이 잠을 잤다네.
자네가 서울에 오면 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은 그 지저분한 방에서 말일세.
자네가 좋아하는 산에서, 자네를 좋아하는 동료들과 야영을 했다네.
자네가 오르고 싶었던 바위와 마주 앉아 친구들이 오르는 모습을 함께 했네.
자네가 좋아하는 설악산의 단풍과 함께 산행을 했네.
그리고 자네가 개척한 암벽 루트 앞에서 마지막 술잔을 서로 기울였네.
오늘 아침부터 바람이 몹시 불었네.
그 바람을 타고 그대는 우리와 같이 등반을 하러 오신 것인가?
아님 떠나기가 싫어 산을 못 오르게 한 것인가?

후배여, 만남이 있다면 헤어짐도 있다네.
비록 이생에서 더는 못 보지만, 내 저 세상에 가면 먼저 후배를 찾으리라.
그때 가서 소주 한 잔 하시게나.
이제 바람을 타고 왔듯이, 바람을 타고 가고 싶은 산천을 돌아다니시게.
나는 바람이 불 때면 그대를 생각하겠네.
눈이 오면 그대와 얼음 벽 밑에서 차디 찬 소주를 먹던 것을 기억하겠네.
비가 오면 바위 밑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던 그대를 생각하겠네.
더 이상 내가 말린 굴비 다 먹었다고 투정도 안 부리겠네.

그리고 자네를 내 가슴 속에 담아두고 살겠네.
친구들의 추억 속에 그대를 남기네.
더 이상 자네를 위해 눈물도 흘리지 않을 것이네.
자네가 남겨놓은 친구와 동료들과 함께 산에 갈 것이네.
바람에 실려 같이 등반을 하시게나.

그동안 고마웠네.
그대가 있어 내 같이 한 산행이 행복했었네.
이젠 저 하늘에서 잘 지켜봐주게나.
우리가 어떻게 산에 가는지.

 

# 기존의 고정 확보물을 믿지 마라 – 365p.

애당초 고정 확보물은 사람이 설치해둔 것이지, 자연의 것이 아니다. 등반은 내 자신이 오르는 행위이다. 과거의 등반은 잊어버리고, 지금 내 앞에 놓인 새로운 등반에 집중해야 한다. “과거는 어떠했는데~” “과거에는 이렇게 했는데~”라고 하는 건 과거의 신뢰일 뿐이다. 자연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앞으로 가질 신뢰가 더 중요하다. 내가 나아가기 위해서는 기존의 확보물을 믿지 말고 자신 있게 갈 수 있다는 내 마음 속 확보물을 만들어가야 한다. 살아 숨쉬며 시시때때로 변하는 자연을 헤쳐 나가는 일은 자신의 마음먹기에 달렸다.

 

# 야생화 – 426p.

우리의 산도 그렇게 다녀야 할 것이다. 생존이란 명제 하에 움직임이 있는 거친 등산은 정형화된 곳에서 배워서는 안 되는 것이다. 처음의 시작은 정형화된 곳에서 배웠다고 하더라도, 우린 좀 더 거친 생존을 위해 그 테두리에 안주하면 안 된다.

그렇게 정형화된 산행을 거친 환경에 대입하다 보면 여러 가지 위험과 사고에 좀 더 가까이 접근한다. 아니 사고 날 확률이 더 높아진다. 야생, 즉 자연은 정형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과 내일이 다르듯이 자연은 꾸준히 우리에게 야생에 길들여지기를 바라고 그렇게 요구한다. 저 산 속에 핀 파도 거친 야생에서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곳의 토착 기후에 적응하고 더 많은 씨를 날려 라첵산장 주변에는 야생 파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우리도 정형화된 틀 속에서 벗어나야 한다. 야생과 자연에 어울리고자 한다면, 그 속에 들어가 작은 것부터 경험을 쌓아 야생에 길들여져야 한다. 나는 산과 자연에 주어진 환경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즐기며, 그 경험을 통해 또 다른 거친 환경 속으로 들어간다. 야생화처럼 우리도 그 자연에 동화되어 눈에 띄지 않지만 스스로 빛을 발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야생과 자연을 접해야 한다. 산은 자연이고, 우린 그 속을 헤매는 야생화와 같아져야 한다.

 

<등반중입니다>

유학재

알파인웍스

 

http://www.mountainjournal.co.kr/news/articleView.html?idxno=350

 

|서평| 한국판 ‘에켄슈타인’의 독백… 『등반중입니다』 - 마운틴저널

책 제목부터가 현재진행형인 『등반 중입니다』는 산악인 유학재의 등산인생 44년의 편린들을 모아 엮어낸 이야기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몇 편의 글들은 이미 월간 『마운틴』지의 지면에 소개된바있지만 단행본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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