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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아트리스와 버질] 잔혹한 우화로 그려낸 홀로코스트의 숨막히는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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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아트리스와 버질
국내도서>소설
저자 : 얀 마텔(Yann Martel) / 강주헌역
출판 : 작가정신 2011.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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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헨리는 홀로코스트를 주제로 한 플립북 출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본질을 꿰뚫지 못했다는 비평만 잔뜩 머금은 채로 그의 책은 출간되지 못했고 헨리는 런던의 일상을 뒤로한 채 아내와 함께 한 도시로 떠난다. 그 곳, 알 수 없는 도시를 배경으로 헨리와 박제상 노인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노인은 작가 헨리에게 희곡을 완성하기위한 도움을 받고 싶어했다. 노인을 도우러 찾아간 헨리는 노인의 박제상에서 느껴지는 음험한 기운이 두려웠지만 이내 그를 돕기로 마음먹는다. 그곳에서 헨리는 노인의 육성을 통해 희곡을 듣기 시작했고, 살아있는 듯 박제로 남아있는 희곡의 두 주인공 베아트리스와 버질을 만났다. 그의 기억속에 있던 박제들도 희곡도 노인의 손에 의해서 세상에 존재할 수 있었다.

노인은 평생에 걸쳐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문장 하나 하나에 의미를 담아내며 희곡을 썼다. 아직은 미완으로 머물러있던 노인의 희곡 '20세기의 셔츠' 안에서 겁에 질린 당나귀 베아트리스와 고민 많은 원숭이 버질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과일 '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베아트리스와 버질의 이야기는 천천히 그리고 잔잔한 템포로 시작되었다. 점점 빠른 템포로 전개되던 그들의 이야기는 책의 말미에 이르러서 숨막힐듯 빠르게 전개되었다. 드디어 잔혹한 진실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소름이끼치고 공포가 밀려왔다. 인간으로서 행할 수 있는 가장 잔혹한 일들을 행하고 그 죄책감을 떨쳐버리고 살아가고 싶었던 노인은 결국 스스로를 불살랐다.

박제상 노인은 헨리에게 본인의 희곡을 소개하기에 앞서, 끊임없이 살인을 저지르는 '쥘리앙'에 대해 알리고 싶었다. 노인은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단편 <구호 수도사 성 쥘리앙의 전설>에서 주인공 쥘리앙이 동물들을 잔혹히 죽여나가는 장면을 형광펜으로 표시해가며 읽었고, 그 잔혹한 문장들을 헨리에게 건냈다. 살해의 흔적에 대해 서술한 문장에 밑줄을 그어나가면서 노인은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본인도 책 속의 쥘리앙처럼 그 모든 죄가 사해지고 구원받고 싶었으리라. 그리고 차마 본인의 손으로는 완성해내지 못한 구원받는 장면이 헨리를 통해 씌여지기를 바랬던 건 아닐까.

이야기의 절정에서 박제상 노인으로부터 죽임을 당할뻔한 헨리는 가까스로 살아남는다. 그가 노인의 실체를 깨닫고 그 존재를 부정하고자 하는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 후 상흔을 머금은 채로 살아가던 헨리는 곧 노인의 희곡을 책으로 써냈고, 더불어 '구스타프를 위한 게임'이란 짧은 토막글을 통해 독자들에게 생각할 말미를 제공했다. 작가가 스스로 결론을 제공하는 간단한 방법을 택하지 않고 독자로 하여금 인간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고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책의 전반에 걸쳐 홀로코스트의 만행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언급이 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잔인했던 진실의 내면에 대해 몸서리칠 수 밖에 없었다. '그 어떤것도 소설처럼 진실을 말할 수 없다는 걸 증명해보였다'는 클리블랜드의 플레인 딜러 말에 전적으로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홀로코스트를 재조명한 무수히 많은 영화들과 다큐멘터리들에서 우리는 감독 혹은 작가의 손으로 다시 그려진 진실을 보아왔다. 그러나 <베아트리스와 버질>을 읽는 내내 우리는 끊임없이 진실을 갈구했고 마침내 우리의 생각으로 그려진 진실을 얻어낼 수 있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심리를 묘하게 줄타기 해나가면서 진실을 진실 그 자체로 써낸 얀 마텔이야 말로 천재작가라 칭할 수 있지 않을까.


■ 홀로코스트(Holocaust) 
홀로코스트 혹은 유대인 대학살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나치 독일이 유대인을 전멸시키려는 목적으로 자행하였다. 구약성서의 레위기에 나오는 제사를 가리키기도 하다. 나치 독일은 유대인 외에도 공산주의자, 동성애자, 집시, 정신박약장애인을 포함한 장애인, 소련의 전쟁포로, 여호와의 증인과 프리메이슨 등 여러 '원치 않는 부류'를 유대인과 함께 죽이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들은 대부분 집단수용소에 옮겨져 조직적으로 학살되었으며, 장애인의 경우는 의사에 의해 안락사 시키는 방법으로 5만명이나 학살했다. 홀로코스트로 인해 사망한 유대인의 수는 대략 6백만 명 정도이며, 나치의 탄압에 의해 죽은 비유대인을 포함시킬 경우 총 사망자 수는 9백만에서 천만까지 올라간다. [출처 : 위키피디아]


28p.
하지만 글을 쓰지 않았다면 그는 겨우 숨이나 쉬면서 살았을 것이다. 런던의 한 공원을 정처 없이 거닐며 아름다운 나무를 만남으로써 그는 다음과 같은 유용한 교훈을 깨달았다. 비참한 상황에 빠지면, 이 땅에서 너희에게 남은 날들을 헤아려보고 그 날들을 최대한 이용하는 편이 낫다는 걸 기억하라!

48p.
그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고 어떤 것도 기억하지 않았다. 오직 그 순간만을 위해 살아 있을 뿐이었다. 그는 시간이 모든 의미를 상실하고 모든 것이 꿈에서처럼 쉽게 일어나는 환상적인 세상에 존재하는 사냥꾼이었다.

129p.
글길이 막히는 상황은 결코 웃을 일이 아니다. 자기만의 흔적을 남기려고 한 번도 노력해보지 않은 무사안일한 사람들만 그런 현상을 우습게 넘길 뿐이다. 그런 상황이 닥칠 때는 특정한 작업, 즉 글쓰기만 부정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의 존재 자체가 부정된다. 당신 내면에 존재하는 작은 신, 즉 당신이 결코 소멸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던 부분이 죽어간다는 징후다. 이처럼 창조적인 능력이 폐색되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죽은 껍데기뿐이다.

132p.
버질 : 내 생각에 믿음은 햇살을 받으며 지내는 것과 비슷한 거야. 햇살을 받고 있을 때 그림자를 만들지 않을 수 있어? 
         네가 너라는 것을 절대 잊지 못하게 할 것처럼, 너랑 똑같은 모습으로 항상 너한테 달라붙어 있는 
         그 어둑한 부분을 떨쳐낼 수 있냐고? 결코 떨쳐낼 수 없어. 그림자는 의심을 뜻해. 햇살을 받고 있는 한 
         네가 어디를 가든 그림자는 따라다녀. 그런데 햇살을 받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베아트리스 : 하지만 해가 사라졌어. 버질, 해가 사라졌다고! (베아트리스가 울음을 터뜨리고 크게 흐느껴 울기 시작한다.)

144p.
버질 : (풀이 죽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우리가 지금까지 얼마나 모진 삶을 견뎌왔는데 
          어떻게 이제야 저처럼 아름다운 광격이 나타날 수 있단 말인가? 이해할 수가 없어. 이건 모욕이야. 
         (버질은 한 발로 땅을 힘차게 구른다.) 아, 베아트리스, 모든 것이 끝나는 날, 우리가 겪은 일들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
베아트리스 : 모르겠어. (버질은 베아트리스의 다리를 잡고 있던 손을 풀고 네 다리로 엎드려 길게 울부짖기 시작한다. 
                  가슴에 응어리진 분노를 크게 폭발시키는 버질의 울부짖음에 풍경과 무대가 서서히 어둠에 잠긴다.)

248p.
너는 절대 죽지 않을 거야. 너한테 공정하게 주어진 몫만큼 살 거야. 하지만 그의 생활방식은 바뀌었다. 폭력을 당한 사람은 누구나 그 이후로 평생 함께할 동반자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 의심과 두려움, 불안과 절망, 그리고 즐거움을 잃어버린 삶이 그것이다. 자연스러운 미소가 사라지고, 과거에는 자연스레 즐기던 것에도 시큰둥해진다.



<베아트리스와 버질>
얀 마텔 지음, 강주헌 옮김
작가정신,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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