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
국내도서
저자 : 한비야
출판 : 푸른숲 2006.09.08
상세보기



■ 본문 중에서


3월 2일 땅끝에 서다 - 18~19p.

우리나라 땅을 걸으면서 강과 산에서 얼마나 순수하고 강렬한 에너지를 얻게 될까. 길 위에서는 또 어떤 만남과 깨달음이 펼쳐질까. 도대체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열 감기로 몸이 불덩이 같은데 마음도 그 못지않게 뜨겁게 달아 오른다.


# 3월 6일 한비야의 난초론 - 50~51p.

인연의 싹은 하늘이 준비하지만 이 싹을 잘 키워 튼튼하게 뿌리내리게 하는 것은 순전히 사람의 몫이다. 인연이란 그냥 내버려두어도 저절로 자라는 야생초가 아니라 인내심을 가지고 공과 시간을 들여야 비로소 향기로운 꽃을 피우는 한 포기 난초인 것이다.


# 3월 7일 길 떠날 때는 눈썹도 빼고 가라 - 55p.

나는 가끔 내가 아주 지체 높은 집안에서 태어나 '로열 패밀리'로 자라지 않은 것을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한다. 나의 노력과 상관없이 나를 특별하거나 잘난 사람으로 착각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때는 내가 일류 학교에 다니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싶다. 사회에서 주는 그 많은 특혜와 예외적인 친절이 마치 내 인간적 가치가 높아서 그렇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 3월 10일 전 구간의 6분의 1을 걷다 - 72~7p.

이정표를 보니 나주 지나서 바로 광주가 시작된다. 아, 나주와 광주가 딱 붙어 있었구나. 지도상으로 보면 상당히 떨어져 보이는데. 나주는 나주읍과 영산포를 합쳐서 된 시로, 옛날에는 광주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크고 번창했다고 한다. 전라도라는 이름도 전주와 나주의 앞 자를 따서 붙인 것이라니 짐작이 간다. 그렇게 다져보니 경상도는 경주와 상주, 충청도는 충주와 청주, 강원도는 강릉과 원주겠구나. 그럼 경기도는? 경기와 기주가 아니라 서울 경(京)에 경기 지방을 일컫는 기(畿)의 합자란다. 이런 행정 구역은 조선시대 세조대에 완전히 체계를 잡았다니 지명 하나로도 한 도시의 역사와 흥망성쇠를 엿볼 수 있는 거다.


# 4월 3일 내게는 발이 밑천 - 172p.

결혼에 대한 지금의 내 생각은 '꼭' 해야겠다거나 '절대로' 하지 않겠다는 양자택일이 아니다. 그야말로 물 흐르는 대로 순리에 따르고 싶다. 하게 되어도 좋고 그러지 않는다고 해도 나쁘지 않다는 얘기다.

결혼을 해보지는 않았지만 여행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여행에서 만나는 동반자에 따라 좋아지거나 나빠지는 경우를 많이 겪었다. 여행지의 모든 조건이 완벽하더라도 함께 다녔던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거기 별로였어" 하게 된다. 반대로 매일 비도오고 도둑도 맞고 물어물어 찾아가는데 볼 것이 하나도 없는 유령 마을이었대도 같이 간 사람과 마음이 맞으면 그 곳에 대해, "정말 좋았어. 너도 한번 가봐"라고 말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인생이라는 긴 여행을 좋은 동반자와 함께한다면 혼자보다 한결 즐거울 거라고 생각했다. 동반자와 함께 커나갈 수 있다면 인생이 얼마나 풍요로워질 것인가도 생각했다.


# 4월 5일 이 나이에라니, 무슨 나이 말인가 - 180~181p.

많은 우리나라 여자들은 '이 나이에'와 '여자니까'라는 토를 달며 자기 능력을 스스로 과소평가하는 것 같다.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하거나, 나는 '이것밖에 못 하는 사람'이라고 자기 능력의 한계를 그어버린다. 그런데 무슨 일을 시작하지 못하거나 잘할 수 없는 것이 정말 단순히 나이와 성별 때문일까? 혹시 그 이면에는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말과는 달리 실제로는 노력을 기울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엄살을 부리고 핑계를 대는 것은 아닐까. 나는 개발되지 않은 인간의 능력은 보석의 원석과 같다고 생각한다. 잘 갈고 다듬기만 하면 아름답고 값진 보석이 될 수 있는데도 자기를 그냥 돌덩이, 혹은 유리 덩어리로 취급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 4월 21일 먹을 복 터진 날 - 254~255p.

나이가 들수록 하고 싶은 일이 점점 더 많아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의 한 생, 길어야 백 년은 너무 짧다. 하고 싶은 것을 다 하자면. 여행만 해도 그렇다. 세계일주를 했다고 하면 "이제 갈 데가 없겠네요" 하는 사람들이 많다. 천만의 말씀이다. 다녀봤기 때문에 가고 싶은 곳이 더 많아진다. 시쳇말로 콧구멍에 바람이 든 것이다. (중략)

"도전은 나를 끊임없이 앞으로 몰아대는 채찍질과 같다. 위험은 인생에 있어 양념과 같다. 여행이란 자신의 육체적, 정신적 한계로 떠나는 소풍이며 어려움들이 나를 자극한다. 나는 극복하기 어려운 장애물을 극복했을 때 느끼는 그 따끔따끔한 만족이 필요하다고 솔직하게 인정한다. - 길들일 수 없는 자유中"


#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들(이 길을 다시 가며) - 295p.

지나가는 길에 신세 진 사람들에게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킬 것. 예를 들어 같이 찍은 사진을 보내주겠다고 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보내고, 국토종단 끝나고 전화하겠다고 했으면 꼭 그렇게 할 것. 여행하는 사람은 종단 길에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니 그런 약속이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때 신세를 진 사람들은 당신이 약속한 사진과 전화할 날을 무척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

한비야

푸른숲, 2006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