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트후크(Windhoek)는 나미비아의 수도로 명실상부한 상업, 공업의 중심지이다. 독일의 정교한 도시계획에 의해 세워진 도시인 만큼 깨끗하게 잘 정비되어 있고 교회, 도서관, 미술관 등 중세 독일풍의 건물이 도시를 꾸미고 있다. 나미비아에 머무를 시간이 너무 부족했던 나는 빈트후크를 떠나는 일정의 마지막 날 오전 반나절 동안 짧게 시내와 카투투라 타운십을 둘러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나미비아의 수도이자 가장 발전한 도시인 빈트후크 이지만, 대중 교통이 거의 없는 아프리카에서 역시 혼자 투어를 하기는 역부족 이었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나미비아 현지의 한인 여행사 레드아프리카(RED AFRICA)의 가이드 투어를 예약했다. 레드아프리카 대표님 내외분은 먼 타지에서 나미비아를 찾는 손님을 위해 070인터넷 전화뿐만 아니라 카카오톡으로도 실시간 고객 상담을 해주셨고, 덕분에 나는 인터넷 연결이 어려운 아프리카 여행 중에도 빈트후크 투어를 예약할 수 있었다. 엄지족 세대의 마음을 사로잡는 편리한 예약 방법이 아닐 수 없다.



레드아프리카(REDAFRICA)와 함께한 빈트후크(Windhoek) 다운타운 투어

레드아프리카(REDAFRICA) 빈트후크 다운 타운 투어 루트

- 소요 시간 : 약 4.5 시간 (8:30 ~ 13:00)

- 비용 : 5만원

- 이동 경로 : ① 독일 루터 교회(Christuskirche), ② 베른 힐 공원 쇼핑몰(Wernhill Park), ③ 부시맨 기념품점(Bushman Art),  ④ 카투투라 타운십(Katutura Township)의 하바나 마을(Havana), ⑤ 소웨토 마켓(Soweto Market), ⑥ 독립기념 박물관(Independence Memorial Museum)

- 특이 사항 : 일요일에는 대부분의 상점들이 문을 닫기 때문에 시내 상점들을 둘러보는 대신에 빈트후크 인근 카투투라(KATUTURA)에서 한국인 선교사가 운영하는 하바나 빈민촌의 주일 학교에 들르기로 했다. 비행기 출발 시간이 오후 2시 25분이었기 때문에 1시까지는 공항에 가기로 하고, 오전 8시 반부터 반나절 동안 바지런히 빈트후크 구석구석과 카투투라에 다녀왔다. 일요일이 아닌 평일에 방문한다면 시내에서 더 많은 상점과 기념품 가게들을 둘러 볼 수 있으니 참고할 것.


약속한 8시 반이 되자 빨간 JEEP를 타고 대표님이 호텔 앞에 나타났다. 역시 먼저 건네신 말은 "여자분이셨네요 !!" 이쯤 되면 앞으로 모든 투어 예약할 때 메일에 꼭 여성이라는 표시를 해두어야겠다. 보이시한 이름을 가진 덕분에 나야 늘 겪는 일이라 익숙하지만, 상대방은 가끔 당황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대표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차에 올랐다. 엄주환(UM Jay) 대표님은 지난해 가족들과 함께 이곳 나미비아에 정착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무척 젊은 분인 줄 알았는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초등학생 아들이 둘이나 있으시다고. '대표님 동안이세요~!' 혼자 여행길에 나섰다가 머나먼 타지에서 삶을 꾸려가는 한국인들을 보면 괜스레 정이 가고, 평소보다 말이 많아져서는 조잘조잘 이런 저런 질문들을 하곤 한다. 이번에도 예외 없이 어떻게 나미비아에 오시게 되었는지, 이곳에서의 생활을 어떠한지 폭풍 질문을 쏟아내는 와중에 벌써 첫 번째 목적지에 도착했다.


△ 빈트후크의 상징. 독일 루터교 교회 크리스투스키르헤(Christuskirche)


대부분의 상점들이 9시가 되서야 문을 여는데, 오늘은 일요일이라 그나마도 문을 연 곳이 없을 거라고 한다. 아직 9시가 되지 않은 이른 아침 가장 먼저 들른 곳은 독일 루터교 교회인 크리스투스키르헤(Christuskirche)이다.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있는 교회 건물이 무척 웅장해보였다. 고개를 젖히고 하늘 높이 솟은 지붕을 바라보고 있자니 머리가 핑그르 돈다. 여행 내내 먹었던 말라리아 약 부작용이 사라진 줄 알았는데 아직도 적응이 안되었나 보다. 교회 맞은편에는 독립기념관이 위치하고 있었는데, 독립기념관이 오픈하기 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서 잠시 후에 다시 들르기로 하고 자리를 옮겼다.

독일 루터 교회 크리스투스키르헤(Christuskirche)

- 주소 : Robert Mugabe Avenue, Windhoek, 나미비아

- 위키피디아 : http://en.wikipedia.org/wiki/Christ_Church,_Windhoek

- 빈트후크 하늘을 찌를듯 높이 솟아있는 교회(Christuskirche)는 신 고딕과 아르누보 양식으로 독일의 신교파인 루터 교회에 의해 1910년에 건설되었다. 


빈트후크에서 기념품을 사시려면 부시맨 기념품점에서~!


빈트후크(Windhoek) 시내에 위치한 부시맨 기념품점(BUSHMAN ART) 전경. 대부분의 상점이 닫은 일요일이지만 홀로 문을 열고 관광객을 맞는다. 덕분에 저렴한 가격에 나미비아 기념 자석과 엽서, 우표를 구입했다. 여행 중에 써놓은 포스트카드를 한국으로 보내려고 우표를 구입하니, [BY AIR MAIL PAR AVION] 표시를 함께 챙겨주신다. 국제 우편에는 이 스티커를 함께 붙이면 더 빨리 도착한다고 친절한 설명과 함께.


△ 빈트후크(Windhoek) 시내에 위치한 부시맨 기념품점(BUSHMAN ART)


△ 빈트후크(Windhoek) 시내. 부시맨 기념품점(BUSHMAN ART) 앞에 익살스럽게 자리한 부시맨 동상


부시맨 아트 기념품점 (BUSHMAN ART)

- 주소 : 187 Independence Ave (P.O.Box 20165), Windhoek, Namibia

- 전화 : +264 61 22 8828

- 이메일 : bushmanart@iafrica.com.na

- 홈페이지http://www.bushmanart-gallery.com/

- 운영시간 : 매일 09:00~17:00 (※ 일요일의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았는데 오픈한 거의 유일한 기념품점 이었다.)


쇼핑의 거리 베른힐 공원(Wernhill Park) 초입에 위치한 기베온 운석(Gibeon Meteorites)


△ 포스트 스트리트 스트리트몰(Post Street Mall)에 전시된 기베온 운석(Gibeon Meteorites). 1938년 제임스 알렉산더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그 중 33개의 운석이 이곳에 전시되어 있었다. 대단한 도둑이 운석을 훔쳐간 덕에 현재는 30개만 남아있다. 기베온 운석은1950년 국가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베른 힐 공원 쇼핑몰 (Wernhill Park)

- 주소 : Wernhil Park Shopping Centre, Corner Fidel Castro and Mandume Ndemufajo Street, Windhoek (P.O. Box 16) Namibia

- 전화 : +264 61 37 45 45

- 홈페이지http://www.wernhilpark.com/


마트에서는 재미있는 상품도 판매하고 있다. 초와 액자에 정치인의 사진을 새겨 판매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돈으로 초는 약 3천원, 액자는 5천원 정도이다. 이름을 찾아보니 대통령은 아니었는데, 그의 얼굴이 새겨진 상품이 이렇게 마트의 가장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대단한 정치인인 모양이다.


△ 정치인(Kuaima Riruako)의 얼굴이 새겨진 액자와 초. 


△ 주소가 없는 빈민촌의 집들은 대형 마트 앞의 우편함을 연간으로 구입해서 사용한다고 한다.


카투투라 타운십(Katutura Township), 하바나 마을소웨토 마켓(Soweto Market)을 다녀오니 어느덧 해가 중천에 걸렸다. 잠시 햇살이 드리운 교회에 들러 사진을 찍고, 다시 독립기념관으로 향했다. 



북한에서 건설한 나미비아의 독립기념관(Independence Memorial Museum)


△ 북한에서 수주해서 건설한 나미비아 독립기념 박물관


△ 벽화나 동상도 북한 느낌이 물씬난다.

나미비아 역사 이야기


남아프리카에서 살기 시작한 최초의 거주민은 가장 혹독한 지형에서조차 적응할 수 있었던 대가족집단으로 구성된 유목민인 산(San)족이었다. 나중에 산족은 코이코이(Khoi-Khoi)족에게 몰리게 된다. 코이코이족은 사냥을 하기보다는 가축을 기르는 부족이었으며 고고학적인 기록에 따르면 최초로 도자기를 제조한 부족의 하나였다. 그들은 남쪽에서부터 와서 점차 산족을 몰아내고 AD1500년경까지 나미비아지역을 통치하게 된다.코이코이족과 산족의 후예들이 여전히 나미비아에 살고 있지만 그들의 전통적인 생활양식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2천3,4백년전에 처음으로 반투족이 나미비아 남중부의 고원지대에 나타나게 된다. 반투족이 등장함으로써 남아프리카 사회에 최초로 부족의 구조가 형성된다. 다른 부족들은 사막이나 오카방고 삼각주(Okavango Delta)의 늪지대로 쫓겨나거나 반투족의 노예가 된다. 나미비아에는 세계에서 가장 메마르고 황량한 해안선이 있기 때문에 유럽의 개척자들은 대부분 나미비아 지역을 무시하게 된다. 이곳에 도착한 첫 번째 유럽인은 15세기말에 인도로 가는 길을 찾던 포르투갈의 선원들이었지만 항해의 길잡이로서 해안을 따라 일정한 지점에 석조 십자가를 세우는 것으로만 활동이 한정된다. 


19세기말이 되어서야 나미비아는 1878년에 영국이 점령한 콜로니곶(Cape Colony)이었던 월비스만(Walvis Bay)을 제외하고 독일에 합병된 마지막 식민지 각축장이었다. 1904년 반투어를 사용하며 소를 기르던 헤레로(Herero)족이 폭동을 일으키지만 잔인하게 진압되고 만다. 한편 남부에서는 남아프리카 노동자들이 뤼데리츠(Lüderitz)에서 다이아몬드를 발견하게 된다. 모른척하면서 독일당국은 뤼데리츠와 오렌지강(Orange River)사이의 전지역을 슈페르게비트(sperrgebiet) 즉 '금지구역'으로 지정한다. 독일의 지배는 1차 세계대전동안 독일군이 연합군을 위해 싸우던 남아프리카 원정군에 항복하였을 때 끝나게 된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남아프리카는 국제연맹이 정한대로 나미비아지역(그후 서남아프리카(West South Africa)로 알려짐)을 지배하는 위임통치를 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후에 유엔이 남아프리카에 위임통치를 계속하게 하지만 남아프리카가 나미비아를 노골적으로 합병한 것은 승인하지 않는다. 아무런 저항도 없이 남아프리카 정부는 나미비아지역에 대한 지배를 강화하게 되며 1949년 백인인구에게 의회선출권을 부여하기에 이른다. 남아있던 나미비아 대부분의 농장이 백인 정착민이 소유한 6000여곳의 농장에 분배되는 한편 흑인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은 법에 의해 '소유제한'으로 금지된다. 독일에 합병된 이래로 대부분의 나미비아인들은 강제노동자로 전락하였으며 이것은 1950년대 말 대중시위와 민족주의가 등장하는 주요한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즈음에 여러 정당이 형성되고 파업이 조직화된다. 


1960년까지 대부분의 정당이 남서 아프리카 인민단체(South West Africa People's Organisation (SWAPO))을 형성하기 위해 합병되고 남아프리카의 점령문제는 국제재판소에 뜨거운 안건이 된다.국제재판소의 재판결과는 결론에 이르지 못하지만 1966년 유엔회의는 남아프리카의 위임통치를 끝맺는 것에 대해 가결하고 나미비아 지역을 관리하기 위해 남서아프리카 의회(Council for South West Africa)를 세우게 된다. 그와 동시에 SWAPO는 게릴라 전법을 채택하지만 유엔이 나미비아에 국내정부를 세우지 못함으로써 남아프리카가 지배권을 주장하기가 더 쉽게 된다. 남아프리카는 약 1만9천명의 쿠바군이 이웃국가인 앙골라에서 철수하지 않으면 나미비아의 독립에 대하여 유엔이 감독하는 어떤 프로그램에도 협조하지 않을 것이라고 거부했다. 이에 대응하여 SWAPO는 나미비아 북부지역으로 활동을 엄하게 제한하면서 게릴라활동을 강화하게 된다. 나미비아 국민들은 전쟁에 지치게 되고 경제는 심하게 악화된다. 1985년까지 남아프리카 역시 돈에 쪼들려 고생하고 있었으며 자체내의 내부문제로 정신이 없었다. 유엔이 지원한 협약으로 남아프리카군이 나미비아에서 떠나면 쿠바군도 앙골라에서 떠날 것을 보증하게 된다. 


유엔의 감시하에 1989년 11월에 선거가 실시되고 SWAPO가 막대한 다수표를 얻게 된다. 헌법이 1990년 2월에 채택되고 다음달에 SWAPO의 지도자인 샘 누요마(Sam Nujoma)가 대통령직을 맡으면서 독립을 하게 된다. 누요마는 1994년에 재선되고 혼합경제와 민간부분과의 협력을 유지하면서 나미비아의 재건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누요마는 1998년 3월에 나미비아의 통화를 남아프리카의 랜드화와 제휴하게 된다.


- 신발끈여행사 발췌


△ (좌) 독립기념 맥주 (우) 김일성 주석과 나미비아 독립 후 초대 대통령이 함께 찍은 사진


△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시절 핍박받는 원주민들.


△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독립기념관(Independence Memorial Museum) 전경

나미비아 독립기념관(Independence Memorial Museum)
- 주소 : Robert Mugabe Ave City Centre (P.O. Box 1203), Windhoek, Namibia
- 전화 : +264 61 293 4362
- 운영시간 : 9:00 ~ 18:00(월~금), 10:00~12:00(토~일)
- 2014년 3월 24일 공식적으로 개관한 나미비아 독립기념관은 북한에서 수주하여 2013년 완공한 건축물이다. 동상이나 벽화 등 북한풍 장식품을 박물관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전시품은 1층에서는 식민 통치 시대(Colonial Repression), 2층은 해방 전쟁(Liberation War), 3층은 독립 역사관(Road to Independence history panorama)으로 자료가 구성되어 있다.


독립기념관을 둘러보고 공항으로 향하려는데 한 청년이 손에 쥐고 있는 열쇠고리를 보여준다. 가이드를 하는 내내 상세한 설명을 해주시던 엄 대표님께서 이름을 불러주면 열쇠고리에 이름을 직접 새겨주는데 그 솜씨가 무척 좋다고 기념품으로 권해주신다. 마칼라니 야자 열매(Makalani Palm Nut)에다가 아프리카의 동물들과 관광객의 이름을 새겨 판매하는 것인데, 아이디어도 좋을 뿐 아니라 보기에도 예뻤다. 하나를 구입하기로 하고 즉석에서 스펠링을 불러주니 곧바로 이름을 새겨주는데 솜씨가 기가 막힌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가족들 것을 하나씩 선물로 구입할 걸 그랬다. 


△ N$35(한화 4,000원)의 저렴한 가격의 열쇠고리를 기념품을 하나 더 구매하기로 했다. 


△ 이름 (LIAH.CHA)를 새기고 있는 청년.


나미비아의 기념품! 마칼라니 야자 열매(Makalani Palm Nut)를 깎아 만든 열쇠고리

- 가격 : N$ 30~50 (한화 3,000~5,000원)

- 제작 시간 : 5분미만

- 구입 장소 : 독립기념관 앞 (교회 앞에도 있다)에서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열쇠고리를 들고 접근해온다. 


△ 독립기념관(Independence Memorial Museum)에서 내려다본 빈트후크(Windhoek) 시내


빈트후크를 떠나려는데 여전히 하늘엔 구름 한 점 없다. 우기인 탓에 여행 내내 하루 한차례 씩은 소나기가 퍼부었는데, 여행의 마지막 날 하늘은 맑기만하다. 

레드아프리카(RED AFRICA) INFORMATION


- 주소 : PO BOX 90854 WINDHOEK, NAMIBIA

- 전화 : +264 81 347 2156 (한국에서) +82 70 4655 6149 (카카오톡) redafrica

- 이메일 : redafrican@naver.com

- 블로그http://blog.naver.com/redafrican

- 홈페이지http://www.redafrica.co.kr/

- 투어비용 : 빈트후크 City & Township 투어 5만원, 공항 픽업/드롭 서비스 1인-3.5만원/2인-5만원  (2015년 1월 기준)

                  (시내 상점이 대부분 문을 닫는 일요일은 빈민촌 투어 등으로 변경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