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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묵지/추억의 책장 · 메모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 홀로 떠나는 여행, 그것은 나 자신과의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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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 1 - 아프리카 | 중동 | 중앙아시아


# 개정판 서문, 나의 가장 좋은 것만 주고 싶은 여러분께 - 9p.

책 만드는 사람들은 책도 운명과 수명이 있는 유기체라고 한다. 이 책은 좋은 운을 타고나서 10년 이상 여러분과 사랑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이 책도 제 역할을 다하고 나면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때가 언제일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 나는 그날까지 지금처럼 여러분과 마음껏 내 여행 얘기를 나누고 싶다. 더불어 내가 앞으로 겪게 될 새로운 경험과 깨달음, 어려움과 고통까지 나누며 함께 성장하는 기쁨도 한껏 누리고 싶다.

이제 드디어 나와 함께 좌충우돌, 흥미진진한 세계 일주 여행을 떠날 시간이다. 이번엔 좀 긴 여행이 될 테니, 떠나기 전에 한 번 더 배낭끈을 꽉 조이고 신발 끈도 바싹 붙들어 매길 바란다.

자, 이제 문밖으로 나가자. 나가서 온 세상을 가슴 가득 품어보자.



# 제2의 부모 위튼 씨 부부 도움으로 미국 유학 – 21p.

난 자신이 있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일반 지식은 고등학교만 나오면 충분하다고, 그 후의 알차고 풍요로운 삶은 학벌에 의해 결정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삶을 위해 스스로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달린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 일이 있은 후 나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이후에도 고졸자로서 당당하게 사회적인 편견과 부당한 대우를 감당할 자신이 있는가. 아니, 그 벽을 뛰어넘을 자신이 있는가.



# ‘나 홀로 여행’은 나 자신과의 여행 – 32p.

홀로 떠나는 여행, 그것은 나 자신과의 여행이다. 여행이란 결국 무엇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서 수많은 나를 만나는 일이다.

여행 중에는 참 많은 일이 벌어진다. 그 사건들마다 얻은 경험이 내 안에 들어와 나를 만들어 간다.



# 여행 1년은 평범한 인생 10년 – 37p.

세상의 바다를 헤쳐 나가는 내 인생이라는 배의 선장은 바로 나라는 것, 누구도 대신할 수 없고 대신하게 해서도 안 된다는 것, 바다가 고요할 때나 폭풍우가 몰아칠 때나 나는 내 배의 키를 굳게 잡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지금과 같은 깊은 행복감을 맛보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마침내 깨닫게 되었다.



# 아! 이 일을 하고 싶다 – 82~83p.

난민들을 돕는 방법은 많다. 종교를 가진 사람은 영적으로, 돈을 가진 사람은 물질적으로, 국제 관계에 영향력을 가진 사람은 정치적으로, 누구든지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어 가지려고만 한다면 난민들을 돕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 내 목소리도 잠재운 수다 퀸의 내공 – 142p.

그러니까 섭섭하다는 감정은 생각대로 해주지 않는 상대방 때문이 아니라 기쁘게 줄 수 있는 이상의 것을 준 나 때문에 생기는 거다.

‘마음에서 우러나서 하고 싶은 만큼만 하자. 그러면서 그 우러나는 마음의 폭과 깊이를 키우자.’



# 아싼테 싸나, 고마운 내 몸 – 180~181p.

우선 사람은 세상을 살면서 빨리빨리 해야 할 것과 천천히 해야 할 것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 거다. 나도 지금까지 살면서 누구 못지않게 ‘빨리빨리’를 외쳐온 사람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무엇이든 조금씩 늦게 시작했다. 대학도 늦게 다니고, 첫 직장에도 늦게 들어가고, 결혼도 이미 늦었고. 이런 늦었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더욱 조급해져 무엇이든 속전속결, 빨리빨리 해치우려고 해왔다.

그런데 내가 킬리만자로 등반을 하면서 평소처럼 ‘남보다 빨리, 남보다 먼저’를 외쳤다면 나는 아마 정상은 쳐다보지도 못하고 주저앉았을 것이다.

실제로 중요한 것은 남과 비교해서 내가 얼만큼 왔는가가 아니라 내가 지금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힘을 제대로 축적하면서 알맞은 속도로 가고 있는가라는 소중하고도 고마운 자각을 하게 되었다.

자기 목표가 뚜렷하다면 남이 얼마나 빨리 가는지, 가면서 무엇을 하는지 비교하지 않고 자기 페이스를 지키는 게 어렵지는 않겠지. 불경에서도 모든 번뇌의 근본은 남과 비교하는 데에서 비롯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 그 사람 조나단 – 190p.

혼자 여행을 하다 보면 여행객이든 현지인이든 늘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런 사람들과 짧게는 하루, 길게는 몇 주씩 함께 여행을 하게 되는데, 어떤 인간관계나 그러하듯 첫눈에 마음에 드는 사람, 한참을 지내야 좋아지는 사람, 아무리 좋아하려고 해도 끝내 좋아지지 않는 사람, 처음에는 좋았다가 나중에는 빨리 헤어지고 싶은 사람 그리고 무리하게 여정을 바꾸어서라도 될수록 길게 함께 있고 싶은 사람 등 갖가지다.

어떤 경우든 여행 중에 만나는 사람들은 내 경험을 풍요롭고 값지게 해주지만, 특히 외로운 여행길에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는 건 마치 한여름 땡볕에서 일을 하다가 잠시 바람 부는 시원한 그늘에 앉아 마시는 찬 맥주의 첫 모금과 같다고 할까. 



# 빗속의 귀곡 산장 – 214p.

혼자 여행을 하면 자신이 스스로를 돌보아야 한다. 혼자 결정하고, 그 모든 결정에 따르는 결과에 대해 혼자 책임을 져야 하는 과정에서 나는 나와의 대화 시간을 갖게 되고, 그러면서 나를 잘 알아가게 된다.

뿐만 아니라 여행 기간이 길어질수록, 그래서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될수록, 어떤 일이 닥쳐도 감당할 수 있다는 자기 능력에 대한 신뢰가 조금씩 더해지는 것 같다. 자기에 대한 믿음, 이거야말로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소득이 아닐까. 결국 이것이 인생을 사는 데 가장 큰 힘이 될 테니까 말이다.




■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 2 – 중남아메리카 | 알래스카


# 흰 눈, 검은 산, 붉은 해 – 77p.

동물 가운데 어떤 종류는 대하기가 공손해질 만큼 점잖고 품위 있는 것들이 있다. 사슴이 그렇고, 숫사자가 그렇고, 아까 본 과니코가 그렇다. 반면 하이에나처럼 표정도 비굴하고 행동도 남의 눈치를 보는 등 채신머리가 없어 볼품없는 것들도 있다.

사람이라고 왜 안 그렇겠는가. 지위의 고하나 귀천에 상관없이 어떤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고개가 절로 숙여지고, 어떤 사람은 발버둥을 쳐대도 우스워 보이는 것을. 나는 어떤 동물에 비할 수 있을까. 나는 사자처럼 당당하게 살고 싶은데, 실제 내 모습은 하이에나같이 초라한 것은 아닐까? 생각만 해도 무섭다. 그러니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매일매일 부단한 노력만이 살 길이다.



# 마추픽추에 꽃을 바치다 – 132p.

잉카인들이 걷던 길을 그대로 따라 걸어 그들이 살던 곳에 와서 그들이 남기고 간 숨결을 느껴보면 잉카에 대한 궁금증이 조금은 풀릴 줄 알았다. 그런데 아서와 함께 한나절 동안 이곳을 샅샅이 돌면서 수많은 설명을 듣고 수없는 질문을 해보아도 수수께끼는 더욱 풀기 어려운 실타래가 되기만 한다.

‘잉카의 길’ 끝에 놓여 있는 공중 도시 마추픽추는 결국 내게 아무것도 확실히 말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이 도시를 내려올 무렵에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그렇게 멀기만 하던 잉카문명이 내게 아주 가까이 다가와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흔적 없이 사라져버린 문명이 아니라 현재형의 문명으로.



# 원숭이 바비큐는 못 먹었지만 – 179p.

제놈은 원숭이를 유인하기 위해 울음소리를 흉내 낸다. 멀리서 원숭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면 마치 먹이를 발견한 맹수처럼 눈을 반짝이며 쫓아가는 그의 행동은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멋진 프로의 태도 그대로다.

저녁거리 원숭이를 잡지 못한 채 질퍽한 정글을 돌고 돌아 다시 캠핑장으로 돌아올 때는 다른 가이드 같으면 변명을 하거나 사탕발림으로 이말 저말 늘어놓을 텐데, 그는 최선을 다한 사람의 당당한 모습으로 “노 수에르떼 오이(오늘은 일진이 안 좋았어요).” 하고 딱 한마디만 한다.



# 갈비찜에 김치에 뭇국까지 – 186p.

사람은 사는 곳에 따라 달라지는 모양이다. 도시에서 아옹다옹 경쟁하고, 그러는 중에 알게 모르게 상처를 주고받으며 사느니 이렇게 자연과 더불어 편안하게 사는 게 얼마나 일생을 잘 사는 것이냐? 비록 삶의 풍운에 따라 고국을 떠나왔지만 시골 고향 사람들처럼 순박한 사람들과 함께 구순하게 살 수 있다는 것도 또 다른 행복이 아닐까?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 – 224p.

인간은 아주 오래전부터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만 생각해왔다. 그래서 사람들은 산 정상에 올라가거나 또는 자연의 작은 법칙을 발견해 내고는 ‘자연을 정복했다’고 말한다. 마치 거대한 호수에서 한 컵의 물을 뜨고는 그 조그만 잔에 호수를 다 담은 듯 호들갑을 떠는 것과 같다. 아무리 많은 컵에 물을 떠간대도 호수는 호수로 남아 있는데 말이다.

인간은 자연을 절대로 정복할 수 없다. 아니, 정복해서는 안 된다. 그 대신 자연과 융화되어 자연스럽게 살아야 한다. 이게 바로 동양의 정신이다. (중략)

자연은 자연 그대로 남아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자연(自然)이다.



# 삼각형 산만 산이냐? 사각형 산도 산이다 – 290p.

내가 장난으로 평평한 꼭대기 위로 삼각모를 씌웠더니 그 아이는 안색까지 변하며 “이건 산이 아니야.” 하는 거다. 만약 우리나라 어린이에게 물었다면 그 아이가 그린 산처럼 꼭대기가 평평한 것은 산이 아니라고 했을 것이다.

경험이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새삼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사람들은 이런 경험과 교육으로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갖게 되고 그 테두리 안에서 가치관과 인생관을 만들어간다.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가치관은 절대로 바뀔 수 없는 것으로 고착되기 때문에 자신과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나 사회와 문화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풍부한 간접 경험이 중요하고, 그래서 책 읽기와 여행이 중요하다고 하는 거다.



# 힘내라, 힘! – 360~361p.

지금 엘케를 만난 것처럼 여행 중에는 늘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 현지인도 만나고, 같은 여행객들도 만나고. 현지인을 만나면 민박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여행객들하고는 여정이 비슷해 며칠씩 같이 다니기도 하고, 한곳에 오래 머물면서 오가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경험을 하고, 인생의 각각 다른 가치를 듣는 것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나는 원래 사람 사귀기를 좋아해서 여행의 이런 면을 대단히 즐긴다. 

그러나 텔라에서 엘케랑 헤어지고 나서는 정말로 혼자 있고 싶었다. 혼자 여행을 다니고 있지만 생각해보면 지난 2년 동안 이렇게 저렇게 만난 사람들과 늘 함께 다녔다.

특히 이번 중미 여행은 멕시코시티부터 이곳까지 아주 많은 사람을 릴레이 하듯 만났다. 대부분의 경우는 참 좋았다. 그렇지만 지금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 자기소개를 하고 똑 같은 얘기를 반복하는 것에 진력이 난다.

사람은 가끔씩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이렇게 논스톱으로 사람을 만나게 되면 생각을 정리할 새도 없이 여러 가지가 한꺼번에 겹쳐 더 이상 처리할 수 없는 한계상황이 온다. 그런 때가 오면 내 안에 있는 내가 혼자 있고 싶다고 신호를 보내온다.

일단 생각이 둔해진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게 되고 무얼 해도 재미가 없다. 변덕이 심해지고 자꾸만 글이 쓰고 싶어진다. 그때가 며칠간 혼자 있어야 하는 시간이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때다.



# 여행을 하면서 무엇을 얻었나요 -364~365p.

그는 여행을 통해 우선 자기가 가지고 있는 가치와 판단 기준이 절대적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여행이 거의 끝나가는 지금은 자기와는 전혀 다른 사회와 문화를 보는 눈이 유연해 졌다는 거다. 그건 나도 그렇다.

똑 같은 행동이라도 어느 문화권에서는 지극히 정상인 게 다른 문화권에서는 비정상으로 보이는 경우가 있다. (중략) 문화 충돌의 체험을 통해 자연스럽게도 서로 다른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게 되는 것, 그것이 여행의 가장 큰 소득이다.

로버트가 얻은 여행의 두 번째 소득은 자신을 발견한 것이라고 한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인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자기에 대해 충분히 정리하고 계획할 시간을 가졌다는 것에 나도 고개를 끄덕인다. 이 점은 내가 세계여행을 시작한 가장 근본적이고도 중요한 목적이다. (중략)

특히 어떤 삶이 멋진 삶인가, 앞으로 우리는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를 주고받았다. 야자수 그늘 아래서 악명 높은 샌드플라이의 집중 공격을 받으면서도 자리를 옮기지 않고, 우리가 오후 내내 나눈 대화의 결론은 이거다.

첫째,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자. 둘째, 심플하게 살자. 셋째,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살자. (중략)

‘직장까지 그만두고 여행을 시작한 건 정말 잘 한 일이야. 여행은 인생을 배우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니까.’




■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 3 – 인도차이나 반도 | 남부아시아


# 아름다운 사람들의 따뜻한 눈길 그리고 미소 – 21p.

여행은 ‘떠나는 것’이라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여행은 ‘만나는 것’이다. 서로 다른 문화와 언어, 풍습, 생김새와 생각들과의 만남이다. 그리고 사람들. 여행이 줄 수 있는 최대의 선물은 바로 사람들과의 만남이다.



# 배낭족의 오아시스 방콕 카오산 로드 – 26~28p.

돈이 많든 적든, 어느 나라 어느 문화권에서 왔든, 인생의 한 부분을 배낭 메고 여행을 한다는 공통점에서 이들은 같은 민족이다. 이 민족의 이름은 바로 배낭족이다.

비록 말이 잘 안 통하고 문화적·정서적 배경이 전혀 다른 사람들일지라도 배낭족이라는 한 가지 공통점 때문에 언제 어디서 만나도 반갑고, 나눌 얘기가 많다. 때로는 ‘비(非)배낭족’인 같은 나라 사람보다도 훨씬 할 말이 많고, 말이 잘 통하기도 한다.

배낭족은 그들만의 신체적 특징과 나름대로 독특한 문화와 정서를 가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들은 하나의 민족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들끼리 서로를 알아볼 수 있게 하는 가장 큰 외형적 특징은 민족의 대명사 ‘배낭’이다.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이 담긴 한 덩어리 배낭은 사람들이 얼마나 불필요한 것을 욕심 내며 살고 있는지 명백히 보여주는 인생의 교훈이다. 배낭 하나를 채울 정도의 물건이면 한 사람이 살기에 충분하다는 지혜를 배낭족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전대(纏帶). 몽골족에게는 누구든 몽고반점이 있듯이 배낭족에게는 배낭족에 합류하는 그날부터 ‘전대 착용’이라는 민족적 특징을 지니게 된다. 전대는 그것을 차는 순간부터 벗어버릴 수 없는 제2의 피부가 된다.

자신의 전 재산과 여권 등 여행에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 들어 있는 전대가 얼마나 귀중하면서도 귀찮은 애물단지인지를 이들은 잘 안다. 이것을 잃어버리면 당분간 배낭족의 신분을 상실하게 된다는 것도.

이들에게는 민족 필독서도 있다. <론리 플래닛(Lonely Planet)>이라는 가이드북을 비롯한 여행 책자다. 배낭족은 그 책에 나온 숙소에 모이고, 그 책에 나온 식당에서 먹고, 그 책에서 가보라는 데를 가본다. 그래서 그 책에 소개된 곳에서는 언제나 동족을 만날 수 있다.

이들은 막막한 사막에서 만난 사람들이 서로 지나온 오아시스와 행로에 대한 정보를 나누듯 배낭족의 생활 정보를 주고받는다. 싸고 좋은 숙소와 식당에 대해, 바가지 쓰지 않거나 위험한 일을 피하기 위해, 어떻게 하면 더 잘 보고 많이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 서로가 알고 경험한 것을 나눈다. 이런 정보 교환을 통해 배낭족은 더욱 끈끈한 동족애를 느끼게 된다.



# 감기로 죽을 뻔하고 사기도 당하고 – 82~83p.

여행을 시작한 지 벌써 5년째. 누가 돈 주고 시키는 일이었으면 그만두어도 벌써 그만두었을 거다. 내가 좋아서 내 돈, 내 시간 들여가며 하는 일이니 이렇게 힘든 때도 참을 수 있는 거다. 이럴 때마다 내가 나에게 묻는 말이 있다.

“그러면 넌 지금 한국에서 편안히 생활하면서 세계 일주 여행 한번 해봐야지 하고 생각만 하고 있는 편이 좋겠니?”

내 안에 있는 다른 내가 얼른 대답한다.

“아니, 아니야. 조금 몸 고생이 되더라도 지금이 행복해.”



# “그런 남편은 우리에게 죽은 거나 다름없습니다” 

<라이따이한의 향기> 中… SBS – 91p.

“한국과 베트남이 국교가 정상화되고 소식을 전할 수 있게 된 지가 벌써 2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남편이 우리를 찾지 않은 걸 보면 나는 그가 죽었다고 생각됩니다. 아니, 죽은 것으로 생각하고자 합니다. 몸은 살아 있을지 몰라도 마음은 이미 떠난 것이니 우리에게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중략)

“우리 아이들은 한국인 2세라는 이유로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없었음은 물론 온갖 기회를 박탈당하고 살아왔습니다. 단지 한국인 피가 섞였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그런 속에서 우리 베트남 여자들이 이만큼 키워놓았으니 이제는 한국의 자식인 이들에게 한국이 무엇인가 삶의 발판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96p.

“미군이 베트남전쟁에 직접 개입하게 된 통킹 만 사건부터가 조작극이라는 거 알지?”

이렇게 시작한 그의 얘기는 나를 베트남전쟁의 실상에 대해 지금까지 나만 모르고 있었다는 부끄러움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했다.

우리가 젊은이들을 바쳐가면서 베트남전쟁에서 얻은 것은 무엇인가. 미국과 혈맹의 약속을 지켰다는 신의와 그 대가로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했다는 전쟁 특수 몇 억 달러가 전부 아니던가. 그리고 피는 물보다 진하다면서도 너무나 야비하고 치사하게 버리고 온, 3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 한국인 2세 라이따이한.

정말로 한국 아버지가 다시 돌아오리라고 기대하며 질곡의 삶을 살아온 불행한 인생들을 남겨놓았으니 우리는 이제 그 역사의 그늘에서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을 어찌해야 할 것인가.

나는 무거운 마음을 남겨두고 다시 떠난다.



# 부처님 오신 날 파간은 조용했다 – 212p.

긴 여행을 하면서 이렇게 읽고 싶었던 책을 얻게 되는 것은 큰 행운이다. 여행자들은 항상 다 읽은 책을 돌려보는데, 다음에 어떤 책이 걸릴지 모르는 일이다. 하기야 여행 자체가 언제나 불확실성의 연속이 아닌가.

거의 매일 새로운 곳에서 자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는 떠돌이 생활. 항상 새로운 환경에 부딪치면서 이번에는 또 어떤 것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전혀 예측도 하지 못한 채 새로운 곳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 여행자의 삶이다.



# 강간범은 고추를 따버려야 해 – 266~267p.

나는 세계 어느 나라든 강간범에 대한 처벌이 너무 미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한 인간에게 끼친 그 어마어마한 피해에 비하면 몇 년 징역살이는 얼마나 가벼운 벌인가. 이런 불공평한 법을 만든 사람들이 대부분 남자이기 때문에 강간범에게 관대할 거라는 의혹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초범이고 충동적이었다면, 그래서 개전(改悛)의 여지가 있다면 모를까(이 경우에도 10년 이상 형은 되어야 한다) 재범 이상이라면 분명히 구제 불능의 정신병자들이다. 자신을 제어할 능력이 없는 이들은 범죄예방과 사회 안녕의 차원에서 아예 거세를 해야 마땅하다는 게 내 의견이다. 이런 말을 하면 강간범에게도 인권이 있다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 ‘인간의 의무’를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 왜 ‘인간의 권리’를 주어야 하느냔 말인가.



# 이슬라마바드의 꼬리털 클럽- 304p.

혼자 여행을 다니면 빠지기 쉬운 아주 나쁜 버릇이 바로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식의 인간관계다.

마음에 맞는 사람들하고야 얼마든지 즐겁게 지내지만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거나 의견 충돌이 생기면 양보하거나 참으려 하기보다 저 사람과 더 이상 안 다니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더 쉽게 든다. 여행 중에는 사실 아쉬울 게 없으니까.

참으로 유지한 생각이고 무서운 생각이다. 세상을 살면서 어떻게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들하고만 지낼 것이며, 좋아하는 사람들 틈 속에서만 살 수 있겠는가. 어떻게 자기 스타일이 아니거나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인간관계 밖으로 생각하며 살겠는가.

그것이 혈연이든 지연이든 학연이든 아니면 다른 어떤 인연으로 만난 관계든 참을성 없고 이해와 양보와 절충이 없는 관계는 이미 시작부터 죽은 관계다.

사람의 인연과 관계란 가꾸기 까다로운 꽃과 같아서 인연이라는 꽃시가 있다고 저절로 크는 것이 아니라 정성을 다해 키워야 한다는 말이 그 밤, 내 가슴 안으로 아프게 파고들었다.




■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 4 – 몽골 | 중국 | 티베트


# 여행을 통해 얻은 소중한 것들 – 19p.

그래서 나는 늦은 시간을 벌충하기 위해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면서 그저 바삐 움직였다. 산으로 가든 바다로 가든 일단 움직여야 마음이 놓였다.

그러나 이제는 알 것 같다. 객관적인 시기가 중요한 만큼 주관적인 때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나에게는 세계 일주 여행을 시작한 35살이 바로 그런 때였으며, 여행이 끝난 지금 다시 한 번 전혀 새로운 인생의 장을 펼 때라고 생각한다.

킬리만자로의 우후르 봉에 오를 때 깨달은 대로 나는 남과 비교하지 않고 묵묵히 나의 길을 갈 것이다. 또한 남미의 어디에선가 작정한 것처럼 가슴은 따뜻하고 생활은 심플하게 살면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할 것이다.

여행을 하면서 바로 그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는 것도 커다란 수확이다. 국제 난민 관련 프로그램에서 일하는 것이다. 여행을 하지 않고 한국에서만 있었다면 관심조차도 없었을 분야다. 아프리카, 중동, 인도차이나, 남부아시아 등을 여행하면서 수많은 난민들을 보고, 애써 난민촌에서 같이 지낼 기회를 만들면서 찾아낸 평생의 일이다.



# 꿈꾸는 사람은 아름답다 – 23p.

꿈은 아름답다. 무언가를 꿈꾸는 삶은 아름답다. 자기의 꿈을 향해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는 힘과 용기는 더 없이 멋지다.

여러분이 가슴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꿈, 꼭 이루시길 바란다.



# 무늬만 슈바이처 – 123p.

저 아이는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펼쳐질지 알고 있는 걸까.

물론 할아버지도 할아버지의 방식으로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대한의 행복을 준비하고 계신다는 걸 안다. 그래서 학교에 보내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러나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적어도 자기 생각을 글로 쓸 줄 알고, 다른 사람의 생각과 경험을 읽을 줄은 알아야 하지 않는가.

중국 인민이면 누구나 받아야 하는 의무교육이 왜 이곳에서는 실시되지 않는 건지. 어느 곳에서나 소수민족 편이었던 나는 지금은 중국 편에 서고 싶다. 강제적인 의무교육을 통해서라도 아이가 교육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염려도 소위 문명인으로서의 오만과 편견일지 모른다. 어떻게 내가 가진 잣대로 아이의 행불행을 가늠할 수 있겠는가. 이 아이는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문맹으로서 큰 불편과 불만 없이 살 수도 있을 것이다.



# 국경 마을의 가난한 부자 아줌마 – 214p.

‘여행하시면서 버릴 것은 버리고 그 빈자리에 더 많은 것을 채워가시기 바랍니다.’



# 공동묘지에서 인생 상담 - 223~224p.

릴리가 내 친동생이라면 이럴 때 뭐라고 말해주었을까? 세상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여자의 편안한 삶, 결혼해서 아이들 낳고 남편 울타리 속에서 안정된 삶을 살아갈 길이 열려 있는 친동생에게도 모두 버리고 홀로서기의 험한 길을 택하라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을까?

그래, 적어도 내 동생이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분명히 알고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해내겠다는 의지가 굳건하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홀로 거친 바다로 나가보라고 말할 거다.

모든 결혼이 다 그렇지는 않지만 동생이 하려는 결혼이 자기의 성장을 막을 게 뻔하다면, 함께 커나갈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는 세상이라는 거친 바다에서 자기 배의 노를 스스로 저어가 보라고 말할 거다.



# 시작이 늦은 것보다 하다 중단할 것을 두려워하라 – 340p.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 중 하나가 ‘이 나이에……’. 라는 말이다. 앞으로 더 나이 들 일밖에 남지 않았으니 ‘이 나이’가 그 사람의 인생으로서는 제일 젊은 나이인데도 말이다. 바로 ‘이 나이’가 자기보다 나이 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며 돌아가고 싶어 하는 ‘참 좋은 때’ 인데도 말이다.

스스로 자신을 ‘이 나이에’라는 올가미로 얽어매지 않는다면 나이로부터 얼마든지 자유로울 수 있다. 언제 어느 때든 용기를 내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분들에게 들려드리고 싶은 중국 격언이 있다.

‘늦게 시작하는 것을 두려워 말고, 하다 중단할 것을 두려워하라.’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 1~4>

한비야

푸른숲, 2007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 세트
국내도서
저자 : 한비야
출판 : 푸른숲 2007.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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