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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묵지/추억의 책장 · 메모

[자전거여행2] 한글로 씌어진 가장 아름다운 우리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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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머리에 - 8~9p.

자전거 바퀴에 공기를 가득 넣고 다시 길로 나선다. 팽팽한 바퀴는 길을 깊이 밀어낸다. 바퀴가 길을 밀면 길이 바퀴를 밀고, 바퀴를 미는 길의 힘이 허벅지에 감긴다. 몸속의 길과 세상의 길이 이어지면서 자전거는 앞으로 나아간다. 길은 멀거나 가깝지 않았고 다만 뻗어 있었는데, 기진한 몸 속의 오지에서 새 힘은 돋았다.


2004년의 여름은 뜨거웠다. 내리쏟는 햇볕 아래서 여름의 산하는 푸르고 강성하였다. 비가 많이 내려서 강들이 가득찼고 하구는 날마다 밀물에 부풀었다.


내가 사는 마을의 곡릉천(曲陵川)은 파주 평야를 파행서 진해서 한강 하구에 닿는다. 조강(祖江)을 거스르는 서해의 밀물이 날마다 이 하천을 깊이 품어서 내륙의 유역으로 바다의 갯벌이 펼쳐진다. 밀물을 따라서 숭어 떼가 올라와 물 위로 솟구치고 자라도 오고, 복어도 온다. 바다의 기별이 물고랑을 따라 들의 안쪽으로 실려와 이 들에서 부는 바람 속에는 벼가 익는 냄새에 갯내음이 스며 있다. 늙은 하천은 선연한 감수성으로 아득히 멀어서 보이지 않는 바다와 교접하고 있다.


살아 있는 것은 이러하나, 살아서 작동되는 것들은 마침내 저러하구나...... 내 이 작은 물고랑을 기어이 사랑해서 온 여름을 물가에 나와 놀았다. 놀다 보니 여름은 다 갔고, 몇 줄의 글이 겨우 남아 여기에 묶는다. 

가을에는 그만 놀고 일 좀 해야겠다.



# 여름에 이동하는 사람들을 위하여_경기만 등대를 찾아 - 132~133p.

배는 엔진의 힘으로 나아가지 않고, 저 자신의 위치를 스스로 아는 힘으로 간다. 엔진은 동력을 생산해내지만 이 동력이 방향성의 인도를 받지 못하면 동력은 눈먼 동력일 뿐, 추진력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엔진이 생산하는 동력은 이동의 잠재적 가능성일 뿐이다. 여기에 방향이 부여되었을 때 이 잠재적 힘은 물 위에서 배를 작동시키는 현실적 추진력으로 작동한다.

선박은 자신의 위치를 아는 그 앎의 힘으로 나아갈 방향을 가늠한다. 내가 어디에 처해 있는지를 알아야만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알 수 있다. 철새들이 태양의 기울기나 지구의 자장을 몸으로 감지해가며 원양을 건너갈 때 철새는 자신의 위치를 스스로 알지 못해도 천체가 보내주는 신호에 따라 방향을 가늠할 것인데, 인간의 몸에는 그 같은 축복이 없다. 그래서 선박을 움직여 대양을 건너가는 항해사는 "나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에 스스로 대답할 수 있어야만 목적지 항구에 닿을 수가 있다. 그리고 그 '나'의 위치는 물 위에서 항상 떠돌며 변하는 것이어서 항해사의 질문은 늘 새롭게 태어난다. 지나간 모든 위치는 무효인 것이다. 바다 위에서 "나는 어디에 있는가?" 라는 질문은 미래의 시간과 함께 인간의 앞으로 다가온다.



# 숲은 숨이고, 숨은 숲이다_광릉 숲에서 - 151~152p.

나는 모국어의 여러 글자들 중에서 '숲'을 편애한다. '수풀'도 좋지만 '숲'만은 못하다. '숲'의 어감은 깊고 서늘한데, 이 서늘함 속에는 향기와 습기가 번져 있다. '숲'의 어감 속에는 말라서 바스락거리는 건조감이 들어 있고, 젖어서 편안한 습기도 느껴진다. '숲'은 마른 글자인가 젖은 글자인가. 이 글자 속에서는 나무를 흔드는 바람 소리가 들리고, 골짜기를 휩쓸며 치솟는 눈보라 소리가 들리고 떡갈나무 잎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들린다.

깊은 숲 속에서는 숨 또한 깊어져서 들숨은 몸속의 먼 오지에까지 스며드는데, 숲이 숨 속으로 빨려들어올 때 나는 숲과 숨은 같은 어원을 가진 글자라는 행복한 몽상을 방치 해둔다. 내 몽상 속에서 숲은 대지 위로 펼쳐 놓은 숨의 바다이고 숨이 닿은 자리마다 숲은 일어선다. '숲'의 피읖받침은 외향성이고, '숨'의 미음받침은 내향성이다. 그래서 숲은 우거져서 펼쳐지고 숨은 몸 안으로 스미는데 숨이 숲을 빨아 당길 때 나무의 숨과 사람의 숨은 포개진다. 몸속이 숲이고 숲이 숨인 것이서서 '숲'과 '숨'은 동일한 발생 근거를 갖는다는 나의 몽상은 어학적으로는 어떨는지 몰라도 인체 생리학적으로는 과히 틀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몸이 입증하는 것들을 논리의 이름으로 부정할 수 있을 만큼 명석하지 못하다.

밥벌이에 지친 날에는 숲 속의 나무들이 더 아름다워 보인다. 먹이를 몸 밖에서 구하지 않고, 몸 밖의 먹이를 입으로 씹어서 몸 안으로 밀어넣지 않고, 제 몸속에서 햇빛과 물과 공기를 비벼서 스스로를 부양하는 저 푸르고 우뚝한 것들은 얼마나 복 받은 존재들인가. 중생의 맨 밑바닥에서 나무는 중생의 탈을 벗고 있다.



# 나이테와 자전거_광릉수목원 산림박물관 - 163~164p.

나무의 늙음은 낡음이나 쇠퇴가 아니라 완성이다. 이 완성은 적막한 무위이며 단단한 응축인 것인데 하늘을 향해 곧게 서는 나무의 향일성은 이 중심의 무위에 기대고 있다. 무위의 중심이 곧게 서지 못하면 나무는 쓰러지고 거죽의 젊음은 살 자리를 잃는다. 중심부는 존재의 고요한 기둥이고 바깥쪽은 생성의 바쁜 현장인데, 새로운 세대의 표층이 태어나면 생성과 존재가 사명을 교대하면서 나이테는 하나씩 늘어간다. 동심원 속에서 늙음과 젊음이, 전위와 후방이 순탄한 질서를 이루어 나무는 곧게 서서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또 잎을 떨군다. 



# 권력화되지 않은 유통의 풍경_모란시장 - 252~258p.

여름에 모란시장으로 몰려드는 식용견들과 그 거래의 모습은 한국사회에서 개와 인간이 빚어내는 풍경의 장관이다. 모란시장은 날짜의 끝자리수가 4와 9로 끝나는 날 열리는 5일장인데, 식용견은 도매물량이 많아서 정규 장날에 판을 벌이지 못하고 하루 전날에 따로 열린다. 개만을 도매하는 이 판을 상인들은 '개판'이라고 부른다. '개판'날이 되면 전국의 개 목장에서 사육된 식용견들은 모란시장으로 끌려온다. 식용견들은 모두 '누렁이'라고 불리는 잡종견인데 살찌고 동작은 굼떠 보인다. 개들은 개별적 표정으로 식별되지 않고 '식용견'이라는 종자 전체의 일반적 특징으로 다가온다. 눈이 크고 귀가 늘어졌고 수놈들도 엉덩이가 발달해 있다. 식용견의 눈에서는 외계를 경계하는 긴장이 느껴지지 않는다. 식용견의 눈빛은 순하고 초점이 분명치 않아서 개가 어느 방향을 주시하고 있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이 식용견들은 20여 마리씩 철망에 갇혀서 5톤 트럭에 실려서 온다. 5톤 트럭 적재함에는 20마리씩 가둔 개 철망이 4단 높이로 실려 있다. 여름 성수기에 5톤 트럭에 4단으로 실려온 식용견의 도매가격은 5억여 원에 달한다고 바쁜 개 상인들은 말했다. 개 5억 원어치를 실은 트럭들은 아침부터 줄지어 모란시장으로 들어온다. 여름에는 '개판' 날마다 개 트럭 100~120대가 모여든다. 개를 사가려는 중간상, 보신탕집 주인들도 이 시장으로 몰려든다.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들이 모두 다 전문가들이어서, 거래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고 시비도 벌어지지 않는다.

이 개들은 외지상인들이 사가거나 시장 안에 고정 점포를 차린 중간상인들이 산다. 삶은 개다리를 한 쪽씩 사가는 소매도 이루어진다. 시장 안 중간상인들에게 넘겨진 개들은 최종 수요자에게 다시 팔려가기 전까지 철망 안에 갇혀서 마지막 며칠을 견딘다.

철망 안에서 개들은 몸을 포개고 뒤엉켜 있다. 개들은 혀를 빼물고 헐떡거리면서 그 며칠을 견디어낸다. 견디지 않으면 무슨 도리 있겠는가. 철망 안에서 개들은 서로 물어뜯고 싸우기도 하고 수놈이 암놈의 사타구니에 코를 들이대고 킁킁거린다. 맨 밑에 깔려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잠이 든 개들도 있다. 잠들었떤 개가 갑자기 몸을 솟구치며 일어나 목덜미 털을 곤두세우며 옆의 개를 물어뜯고 물린 개는 또 딴개를 물어뜯는다. 한바탕 엎치락뒤치락 물고 물리는 북새통이 끝나면 다시 밑에 깔리는 개는 혀를 빼물고 잠을 청한다. 물어도, 물려도, 짖어도, 뒹굴어도, 흘레를 붙어도, 잠을 청해도, 철망 밖을 하염없이 내다보아도...... 마지막 날은 정확히 다가온다. 이따금씩 상점주인은 고무호수로 개들에게 수돗물을 끼얹어 개들의 더위를 위로해준다.

철망 안은 개들의 지옥인 듯싶은데, 모란시장에서 이 지옥은 본래 그러해서 어쩔 수 없고 손댈 수 없는 지옥처럼 보인다. 인간의 현실이 천국도 아니고 지옥도 아니듯이 개들의 현실도 천국이나 지옥은 아니다. 개들에게는 개들의 생로병사가 있을 것이고 개들의 생로병사가 인간의 생로병사와 합쳐져서 개의 몸은 인간의 똥이 되는 것이리라. 여름 모란시장에서 개들의 대규모 생로병사는 인간의 유통질서에 실려서 숨 막히게 뜨겁다. 이따금씩 동물애호가협회 사람들이 "동물을 학대 말라"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장 입구에 몰려와 확성기로 구호를 외쳐대기도 하지만 철망 안에서 짖어대는 개의 비명과 확성기의 구호 소리가 뒤섞이면서 모란시장의 풍경은 절정을 이룬다.

애완견 시장은 식용견 시장 맞은편 좌판이다. 말티즈, 치와와, 요크셔테리어 같은 덩치가 작은 애완견들과 시베리안 허스키, 말라뮤트, 그레이트데인처럼 덩치가 큰 개들이 서로 다른 우리에 분리되어 있다. 애완견에도 유행이 있다. 한 종류의 애완견이 널리 퍼지면 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특이한 종자를 찾는다. 요즘에는 시추, 코카스파니엘, 비글 같은 종자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모란시장의 애완견 상가는 이처럼 유동적인 개들의 인기 흐름에 민감하게 연동되어 있다.

애완견은 식용견에 비하면 훨씬 더 팔자가 좋다. 우선 철망 안의 개 밀도가 낮다. 애완견은 비교적 넉넉한 공간 속에서 여유 있게 몸을 놀린다. 주인들은 개들의 맵시를 내느라고 한 마리씩 끌어안고 털을 빗질해주고 가위로 깎아 준다. 털을 헤집고 벌레를 잡아주고, 작은 개는 대가리에 리본을 달아주기도 한다. 애완견 철망 안에는 물그릇과 밥그릇이 놓여 있다. 밥그릇에는 콩알 같은 사료들이 담겨 있고, 물그릇은 대체로 뒤집혀 있다. 식용은 다 자란 성견이 시장에 나와 있지만 애완은 젖을 막 뗀 새끼들이 나와 있다. 더위를 못 이겼는지, 코카스파니엘 새끼 한 마리가 밥그릇에 주둥이를 박고 죽어서 늘어졌는데, 말티즈 새끼 한 마리가 죽은 개의 시체를 밟고 올라서서 밥그릇에 주둥이를 박고 있다.

어린 시절에, 개들은 종자에 관계없이 모두 동작이 가볍고 장난을 좋아한다. 어린 개들은 잠시도 가만히 좌정하지 못한다. 애완견 철망 속에서 어린 개들은 쉴 새 없이 철망 밖을 향해 앞발을 내밀고 지나가는 사라들을 향해 혀를 날름거리며 교태를 보낸다. 식용견 철망 속에 갇힌 오래 산 개들은 싸울 때 싸우더라도 싸우지 않을 때는 늘 조용히 늘어져 있다. 오래 산 것들과 아직 덜 산 것들의 몸놀림은 이처럼 확연히 다르다. 애완견 상가와 식용견 상가가 마주보면서 모란시장 개의 풍경을 이루고, 식용견의 생로병사와, 애완견의 생로병사와 인간의 생로병사가 공존하면서 한국사회의 개 팔자의 풍경을 완성해낸다.




<자전거 여행2>

글 김훈, 사진 이강빈

생각의 나무



자전거 여행 2 (한정특별판)
국내도서
저자 : 김훈
출판 : 생각의나무 2007.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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