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암묵지/책 더하기 · 리뷰

[아홉수, 까미노] 스물 아홉, 인생의 느낌표를 찾아 떠난 산티아고 순례길

반응형

 

유난히 더웠던 여름, 지난 7월. 한 아웃도어 브랜드 모임에서 낭랑한 청춘을 만났다.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듯 앳된 얼굴을 한 그녀. 회차를 거듭한 모임에서 우리는 가까워졌고, 서로를 알아갈수록 더 알고 싶어지는 묘한 매력에 끌렸다. 그녀는 바쁜 일정을 쪼개어 책을 쓰고, 산을 아끼는 모임과 좋은 마음을 나누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게다가 가진 재능을 나누어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는 따뜻한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었다. 작은 몸에서 어쩜 그리 많은 열정이 뿜어져 나오는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스케줄을 소화하면서도 산에선 늘 에너지가 넘쳐흘렀다. 특히 바위 틈새 끼인 작은 쓰레기 하나 놓치지 않고 주우며 클린 하이킹의 긍정 에너지를 전파했다. 그 작은 날개짓이 더 높고 멀리 날아갈 수 있도록 바람이 되어주고 싶었다. 그런 그녀가 더 알고 싶어져 그녀의 첫 책을 꺼내들었다.

 

스물아홉, 지난 청춘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청춘을 설계하며 느낌표를 찾아 떠난 여행. 산티아고에서 그녀의 이야기에 빠져들어 읽는 내내 내 마음도 함께 걸었다. 문장 하나, 에피소드 하나에서도 선한 마음이 전해졌다. 하루 25km를 넘는 거리를 걸으면서도 틈틈이 그려낸 산티아고 순례길 그림. 그리고 경험과 마음을 쉽게 독자에게 전하려고 그려낸 웹툰.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넘기지 않고 정성스레 이 책에 담아냈다. 

 

덕분에 산티아고 순례길이 궁금해졌고, 덕분에 여행길에 오르고 싶어졌다.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이, 책 속 문장 곳곳에서도 여실히 묻어난다. 책장을 덮으며 오늘 그녀와 함께 웃으며 즐거웠던 순간을 더 오래 간직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앞으로 함께 걸을 길들과 함께 걸을 날들이 더욱 기대되는, 설레는 밤이다. 부엔 까미노!

 

■ 본문 중에서

 

# 프롤로그 - 8~9p.

30을 앞둔 나이, 안정적인 삶을 원하진 않지만 스스로의 삶을 막연한 물음표로 남겨두고 싶진 않았다. 적어도 삶에 작은 느낌표들은 찍으며 살고 싶다.

'우리의 삶이 이대로 흘러가도 괜찮은걸까?'라는 고민을 나누다가

문득, 이대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에게 필요한 건 쉼표, 나는 느낌표. 각각 조금은 다른 이유를 가졌지만 우리에게 필요하 것은 바삐 돌아가는 삶의 굴레에서 빠져나와 삶을 재정비 하는 시간. 아쉬움으로 남겨진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시 걷고 싶었다.

 

 

# 7.9 (Day 6) Estella - Sansol 28.1km - 65p.

하지만 혼자 걸어본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게다가 타국의 땅에서 완전히 혼자가 되어 걷는다는 건 좀 특별했다. 낯선 풍경에 낯선 상황, 낯설음의 극대화는 평소와는 다른 낯선 생각과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홀연히 떠오르는 생각은 대화가 아닌 독백이 되어 둥둥 떠다니다가 새로운 물음표를 달고 내게 돌아왔다. 광활한 풍경 속을 걸으니, 즐겨보던 판타지 소설 속의 모험가가 된 기분도 들었다. 이 순간이 꿈 같이 느껴졌다.

 

 

# 7.10 (Day 7) Sansl - Logroño 20.8km - 75p.

나를 위한 결정인 척 말했다. 언젠가 조금 더 걷지 못한 것을 후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후회할 거라면, 마음이 흔들리는 쪽을 선택하기로 했다. 그리고 오래 지나지 않아 그것이 옳은 결정이라고 믿게 되었다. 주어진 인연에 최선을 다하지 못한다면 두고두고 후회할 거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 7.14 (Day 11) Belorado - San Juan de Ortega - 107p.

그녀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한다는 이유로 그녀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편견일까. 그녀가 타인에게 하나의 프레임을 씌우며 잘못되었다고 비난하는 행동이 오만일까.

무엇이 옳고 그르든 간에, 이 상황 속에서 웃음 짓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씁쓸해졌다. 그 누구도 타인에게 상처 주기 위해서 이 길에 오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길에서 상처받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저마다 어렵게 오른 까미노인 만큼, 더 이상 누군가가 또 다른 누군가를 할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 7.23 (Day 20) San Martín del Camino - Astorga 23.7km - 182p.

언제부터인가 무언가를 받으면 주어야 하고, 주기 전에는 받을 수 있는지를 생각하는 세상의 계산법에 익숙해진 나였다. 그래서 호의를 받으면, 자연스레 의심부터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세속적인 계산법이 통하지 않는 곳이었다. 기브 앤 테이크가 필요 없는, 주는 것도 받는 것도 순수한 곳. 내가 이 길을 마치고 돌아간 세상도 그런 곳이었으면 좋겠다.

 

 

# 7.28 (Day 25) O Cebreiro - Samos 31km - 216~217p.

나는 이곳엣 인생의 느낌표를 찾고 싶었다. 그 느낌표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2년 전의 아쉬움을 그대로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눈치를 보다가 기회를 놓쳐버리거나,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해 하고 싶은 것을 하지 않거나, 혹은 내게 다가온 인연에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 같은 아쉬움들 말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내 개인적인 욕심에 충실했다. 그러다보니 같은 목적지를 향하면서도, 다른 방향을 바라보며 걸었다.

먼저 함께 이 길을 걷자고 해놓고, 개인적인 시간을 더 많이 보낸 것 같다. (중략) 그녀도 '고마워'라고 건네는 나의 '미안해'를 알아 차렸을 것이다. 처음 이 길을 떠나기로 결심했을 때, 익숙함에 속아 그녀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어느새 또 가장 소중한 친구를 당연하게 생각한 것이 속상했다.

"그래도 넌 이 까미노에서 가장 너다운, 너만의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아."

 

 

<아홉수, 까미노>

김강은 지음

푸른향기

 

아홉수, 까미노
국내도서
저자 : 김강은
출판 : 푸른향기 2019.06.12
상세보기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