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알프스 전통 트레일로 일컬어지는 비아 알피나(Via Alpina). 30명의 알파인 중에서 비아 알피나로 향하는 최종 다섯 명을 선발한다고 했다. 처음엔 자못 경쟁으로만 치달을 수 있다고 의심했던 관계들이었는데, 어느덧 막바지에 이르러 함께한 지난 시간을 톺아보니 '행복'이었다.

 

여느 여름보다 뜨거웠던 지난 7~8월. 두 달여의 시간 동안 우리는 매주말이면 조금씩 가까워졌다. 배려와 이해가 더해가며 서로를 북돋웠다. 어느새 우리 사이에는 끈끈한 무언가가 자리 잡았다. 그중에서도 매번 웃는 얼굴로 유독 살갑게 다가와 내 마음을 녹인 은주 언니. 그녀는 이 여름, 누구보다 뜨겁게 열정을 불살랐다. 불의의 사고로 부상을 입어 모두가 안타까워했는데, 채 아물기도 전에 언제 다쳤냐는 듯 밝은 얼굴로 다시 나타났다. 마치 행복 바이러스에 걸린 것 같았다. 이 여름의 끝자락에, 주말이면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부상과 싸우며, 바쁜 시간을 쪼개 한 땀 한 땀 써내려간 그녀의 책이 출간되었다.

 

스위스 알프스의 산들을 동경하는 내게는, 그녀가 걸어간 그 모든 길들이 꿈만 같았다. 전문 산악인은 아니지만, 그래서 더 담백하게 여행자의 시각으로 쓰인 알프스의 길들이 이어졌다. 알프스 3대 미봉인 몽블랑, 마터호른, 융프라우를 향하는 그녀의 발걸음을 좇다 보니 알프스의 공기를 함께 들이마시고 있는 착각마저 들었다. 여행이 뜻대로 이어지지 않을 때조차 의연함을 잃지 않았던 사랑스러운 여행자.

 

봄 날의 단비같은 언니, 우리 종종 같이 걸어요! 그리고, 몽블랑도 다시 가야하잖아요? :)

 

 

■ 본문 중에서

# 프롤로그_ 툭 건들면 폭우를 쏟아낼 것 같은 날들 - 7p.

걷고 싶었다. 멈추면 조바심 나는 길이 아니라 멈추면 행복해지는 길 위를 걷고 싶었다. 온전히 나를 바라보는 시간 앞의 풍경을 걷는 일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방향을 점검할 겨를도 없이 달려온 마음을 가라앉히고 내 걸음의 속도로 세상을 보고 싶은 열망으로 뜨거웠다.

생각이 완성되길 기다리는 시간조차 무의미했다. 마음은 최소한의 방향이 결정되면 일단 부딪치라며, 내게 당장 짐을 싸서 여행가방을 꾸리라고 재촉하고 있었다. 여행을 떠날 각오, 평생에 단 한 번 내어줄 수 있는 것이라면 바로 지금 이 순간, 이 결정이 내 인생에서 가장 진하게 기억될 변곡점이 될 것을 직감했다. 그렇게 두 손 가득 쥐고 있던 내 삶의 커리어에 '퇴사'를 결정하고, 짊어지고 있던 짐을 내려 놓고 다시 싸는 여행을 시작했다.

 

 

# 13_ 이곳, 취리히는 사랑하기 좋은 날 - 96~97p.

길가의 가로등 불빛에 기대어 속삭이는 사랑스러운 커플도, 황금빛으로 물든 거리를 활보하는 여인도, 한 손에 쿱마트 봉투를 들고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 슈트 차림의 신사도, 트램에서 손잡고 의지하며 내려오는 은발의 아름다운 노부부의 모습도, 모두 눈이 부시다.

짧은 하루 평생 기억될 이 시간을 위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멋들어지게 차려입고, 밤이 새도록 불어오는 밤공기를 붙잡고 걷고 싶은 거리다. 혼자라는 사실을 자각할 즈음 왜 이리 함께 오고 싶은 사람들이 떠오르는 것인지. 오롯이 혼자였기에 누릴 수 있었던 감정. 세상의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축복이 내게도 내려앉았다. 여기서는 시간이 느리게 흘러갔으면, 오래도록 머물렀으면 좋겠다.

취리히에서는 길을 잃어도 좋다.

 

 

# 17_ 드디어 알스프를 걷다, 융프라우 - 137p.

마음속에 자기 산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는 스위스 사람들처럼, 이번 여행의 끝에서 난 어떤 산을 나의 산으로 저장하게 될까? 그 순간을 마주 대할 때 나의 마음이 딱 오늘과 같기를...

 

 

# 23_ 갈 길을 잃은 몽블랑 트레킹 - 182p.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서 비 오면 비 오는 대로, 바람 불면 바람 부는 대로 궂은날도 조금은 즐길 줄 알게 되는 삶의 굳은살이 늘고 있었다. 삶이 항상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더라도 오늘 내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있게 되길 바란다. 파란 구름 아래 바람을 활강하며 몽블랑을 걷는 그날이 그림자처럼 아른거린다.

걷기를 멈추지 않는 한, 언젠가 또다시 만날 수 있겠지. 몽블랑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으니까.

 

 

# 25_ 자발적 여행자들의 만찬 - 196p.

여행의 농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어디로 뻗어나갈지 모를 길 위에서 나는 많이도 웃었다. 한순간도 놓칠 수 없는 시간이었기에 '행복할 거리'를 찾고자 하는 나의 본능적 노력은 어떤 상황에서도 어김없이 발휘됐다. 그때마다 항상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많이 그리울 것 같다. 나는 벌써부터 이 여행이, 이 길이 몹시도 그리워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행복한 하루는, 기적에 가까우니까>

헤이쥬,

더시드 컴퍼니

 

행복한 하루는, 기적에 가까우니까
국내도서
저자 : 여행자 헤이쥬
출판 : 더시드컴퍼니 2019.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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