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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묵지/추억의 책장 · 메모

디테일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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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1%의 실수가 100%의 실패를 부른다.

2. 한순간에 무너진 공룡은행 베어링스

   1994년 11월 말, 리슨은 니케이지수가 19000포인트 이하로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고 이를 승산이 확실한 도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의 일본 경제는 그후로 30개월이나 지속되는 경기침체가 막 시작되는 단계에 있었다.
   1994년 12월과 1995년 1월, 니케이지수 225가 19000포인트까지 하락하고 설상가상으로 1995년 1월 17일에 고베에서 진도 7.2의 강진이 발생하면서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아성 같았던 니케이지수가 단 1주일 만에 7% 넘게 하락하고 말았다. 상황이 이런데도 리슨은 계속해서 3주 동안 수천 건의 선물을 매입했고 니케이지수가 19000포인트 이상에서 유지될 것이라는 쪽에 베팅했다. 현재 가격이 낮다고 본 것이다.
   2월 첫주에 리슨이 1000만 달러를 벌어들이자 베어링스은행의 경영진은 일제히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리슨이 앞으로도 매주 이런 실적을 올려 줄 수 있으리라는 망상에 젖었다. 하지만 파생금융상품 거래는 수익률이 큰 만큼 리스크도 막대한 것이다. 리슨은 점점 헤어나올 수 없는 늪 속으로 깊이 빠져들었다. 그는 시장 추세와는 반대로 거액의 돈을 이리저리 굴렸고 그럴수록 손실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 그런데 본사에서는 그가 더 많은 돈을 벌어올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그가 송금을 요구할때마다 아무말 없이 내주었다.
   리슨에게는 리스크에 대비할 헤지도 없었고 거액의 손실을 막아줄 그 어떤 안전판도 없었다. 리슨은 일본의 국채에도 손을 댔지만 도리어 손실액만 더 키웠다. 이제 베어링스의 재무구조 전체가 리슨 한 사람 손에 좌우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베어링스은행 본사는 계속 리슨의 광적인 도박에 밑천을 대주었다. 4주 동안 본사에서 그에게 송금한 금액이 무려 8억 5000만 달러에 달했다.
   1995년 2월 23일은 베어링스의 선물거래가 이루어진 마지막 날이었다. 그날 하루 동안 니케이지수가 350포인트나 떨어졌지만 리슨은 시장의 모든 계약을 사들였다. 폐장될 때 리슨은 6만 1039건의 니케이지수선물과 2만 6000건의 일본 국채선물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시장상황은 그의 예상과 완전히 어긋났다. 급기야 리슨의 손실액은 무려 8억6000만 파운드에 이르게 되었다. 베어링스은행 전체 자본금의 1.2배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2월 26일, 결국 베어링스은행의 파산이 공식 발표되었다.

- 영웅의 비참한 종말

   1980년대에 금융시장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일부 은행, 특히 미국과 일본의 은행들이 파생금융상품 거래에 손을 댔다. 당시에 실적이 우수한 딜러들은 거액의 연봉에다 연봉보다도 더 많은 인센티브를 받곤 했는데, 리슨도 그중 하나였다. 베어링스은행은 리슨이라는 젊고 야심만만한 딜러를 자사의 보물로 여겼고, 그가 큰돈을 벌어다줄 것이라는 환상에 도취되어 그에 대한 감독을 소홀히 하는 치명적인 오류를 범했다.

(중략)

   베어링스가 파산하기 불과 2개월 전인 1994년 12월 뉴욕에서 베어링스의 금융실적회의가 열렸다. 세계 각국의 베어링스 지사에서 온 250명의 직원들이 이 회의에 참석했는데, 그들 역시 만장일치로 리슨을 베어링스의 영웅으로 추대하고 기립박수를 보냈다. 이 얼마나 우스운 상황인가.
1995년 2월 8일, 베어링스 런던 본사의 한 고위 임원이 직접 싱가포르로 가서 리슨과 그가 주도하는 팀의 거래에 대한 내부감사를 실시했다. 2월 20일에는 도쿄 지사의 책임자가 리슨에게 니케이지수선물 보유량을 줄이라고 충고했다.
   하지만 누구도 88888계좌가 회사에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끼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회사의 내부감사에서 이상한 점이 발견되었을 때는 이미 이 계좌의 손실액이 회사 전체의 자본금을 넘어서버린 다음이었다.
   2월 23일 저녁, 베어링스은행의 모든 자산을 초과하는 손실을 낸 리슨은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아내와 함께 도주해버렸다. 그는 브루나이와 말레이시아를 거쳐 독일로 갔고, 1995년 3월 2일에 아내와 함께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경찰에 체포되었다. 영웅으로 불리며 일세를 풍미하던 그였지만, 결국 싱가포르 법정에서 6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감옥생활을 시작할 수 밖에 없었다.

* 이 이야기는 1999년 'Rogue Trader(감독 제임스 디어든)"라는 제목으로 영화화 되었다.
   한국에서는 <갬블>이라는 제목으로 상영됨



4장   중요한 것은 담력이 아니라 뇌력(腦力)이다.

3. 남들도 금방 따라온다. - 동질화에는 인성화로 대처하라

 스승인 상종이 병을 앓게 되자 노자가 문병을 갔다. 상종이 입을 벌려 노자에게 보여주며 물었다.

"내 혀는 아직 그대로 있느냐?"
노자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상종이 다시 물었다.
"그러면 내 치아는 있느냐?"
"없습니다."
상종이 다시 물었다.
"이게 무슨 까닭인지 너는 알고 있느냐?"
"혀가 아직 그대로인 것은 그것이 부드럽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치아가 빠지고 없는 것은 그것이 너무 단단하기 때문입니다."
상종은 노자의 대답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 세상의 모든 일이 바로 이와 같으니라."

   이 이야기는 제품과 서비스가 동질화되어가는 오늘날의 시장에서 경쟁하는 기업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부드러운 것, 소프트웨어적인 것'이 기업의 생명력을 더욱 길게 해줄 수 있다.



<작지만 강력한 디테일의 힘>
왕중추 지음, 허유영 옮김, 공병호 추천
올림,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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