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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묵지/추억의 책장 · 메모

[한 말씀만 하소서] 받아들일 수 없는 아들의 죽음 앞에 신을 향해 외친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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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p.

이건 소설도 아니고 수필도 아니고 일기입니다. 훗날 활자가 될 것을 염두에 두거나 누가 읽게 될지도 모른다는 염려 같은 것을 할 만한 처지가 아닌 극한 상황에서 통곡 대신 쓴 것입니다.

88년 여름, 아들을 잃었습니다. 다섯 자식 중에 하나였지만 아들로서는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었습니다. 그 최초의 충격을 어떻게 넘기고 아직도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통곡하다 지치면 설마 이런 일이 나에게 정말 일어났을라구, 꿈이겠지 하는 희망으로 깜박깜박 잠이 들곤 했던 게 어렴풋이 생각납니다. 그런 경우에도 희망이 있다는 게 남보기엔 우스웠을지 모르지만 본인으로서는 참담의 극한이었습니다.

 

- 12p.

만일 그때 나에게 포악을 부리고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그분조차 안 계셨더라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가끔 생각해 봅니다만 살긴 살았겠죠. 사람 목숨이란 참으로 모진 거니까요. 그러나 지금보다 훨씬 더 불쌍하게 살았으리라는 것만은 환히 보이는 듯합니다.

하느님은 제아무리 독한 저주에도 애타는 질문에도 대답이 없었고, 그리하여 저는 제 자신 속에서 해담을 구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그러기 위해선 아무한테나 응석 부리고 싶은 감정을 억제하고 이성을 회복하지 않으면 안 되었으니까요. 제 경우 고통은 극복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고통과 더불어 살  수 있게는 되었습니다.

 

# 9월 17일 - 55-56p.

"어머니, 마취과 의사는 주로 수술장에서 환자의 의식과 감각이 없는 동안 환자의 생명줄을 쥐고 있다가 무사히 수술이 끝나고 의식이 돌아오면 별 볼일이 없어지기 때문에 환자나 환자 가족으로부터 고맙다든가 애썼다는 치하를 받는 일이 거의 없지요. 자기가 애를 태우며 생명줄을 붙들어 준 환자가 살아나서 자기를 전혀 기억해 주지 않는 다는 건 얼마나 쓸쓸한 일이겠어요. 전 그 쓸쓸함에 왠지 마음이 끌려요."

그 아들에 그 에미랄까, 나 또한 아들의 마음이 끌린 쓸쓸함에 무조건 마음이 끌려 그 애갸 원하는 것을 쾌히 승낙했다. 늘 사랑과 칭찬만 받으면서 자라 명랑하고 거침이 없고 남을 웃기기 잘하고 농담 따 먹기에 능하던 아들의 전혀 새로운 면이었다.

나는 그때 아들에 대해 새롭게 알았다. 품 안의 자식인 줄로만 알았던 아들이, 알아버렸다가 아니라 알아야 할 무진장한 걸 가진 대상으로 우뚝 섰을 때 얼마나 대견했던지, 그리고 그때의 앎의 시작에 대한 설렘까지 꼬박이 밝힌 새벽빛 속에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 9월 ㅇㅇ일 - 76p.

나는 주위의 만류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아들의 장례에 달려갔었다. 못할 노릇인 줄은 남이 말해주기 전에 이미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자식 잡아먹은 죄로 어떡하든 그 벌을 받아내지 못하면 따라 죽게 되든지 하다못해 까무러치기라도 할 줄 알았다. 정신의 고통이 어느 한계까지 차올랐을 때, 기절할 수 있는 장치가 돼 있는 몸을 가진 사람은 축복받은 사람이다. 내 몸과 마음에는 불행히도 그런 장치가 빠져 있었다. 내가 자신을 독종이라고 저주하는 까닭도 바로 거기에 있다.

나는 그때 분명히 기절하지 않았는데도 누군가 주사로 일부러 기절을 시켜 장례에서 빼돌려 버렸다. 당해야 할 고통은 아무리 못할 노릇이라도 그 자리를 피하지 않는 게 옳다. 일생 피할 수가 없게 되고 만다.

 

# 10월 ㅇ일 - 103p.

이제야말로 혼자가 된 것이다. 나는 그동안 왜 그렇게 혼자 있고 싶어했는지 생각도 안 나고 이해도 안 되어 우두망찰을 했다. 그리고 누가 떠다민 것처럼 비실비실 방구석으로 가서 찰싹 붙어 섰다. 인기척 없는 언덕방의 공기가 사방에서 화살처럼 내 몸에 꽂혀오는 것 같았다. 누가 시킨 일이 아니잖아. 자업자득이야. 이렇게 자신을 윽박질러보았지만 완벽한 고립감은 고약했다.

워낙 정신적이지 못한 나는 고립감도 감각적이었다. 무서움증만 해도 상상의 소산이니 정신적이라 하겠다. 나는 하나도 무섭지 않았고 다만 등더리에 누가 자꾸자꾸 눈덩이를 한 움큼씩 집어넣는 것처럼 차가운 전율이 간단(間斷)없이[각주:1] 지나갔다.

마침 침대 머리 높은 곳에 걸린 십자가가 눈에 들어왔다. 

 

# 10월 ㅇ일 - 117~118p.

죽음의 문제야말로 신이 개입하지 않으면 풀 수 없는 문제건만 나는 그 문제에 얼마나 아둔한가. 신을 느끼고 깨닫는 능력에도 지능지수라는 게 있다면 나는 저능도 못되는 백치 수준이었다. 그런 주제에 어떻게 그걸 답답해야 할 줄은 아는지.

나는 울며불며 내 미칠 듯한 고통을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내 방에서 혼자 뒹굴며 신에게 퍼붓던 포악과 별로 다르지 않은 푸념이었다. 나는 열심히 단란한 가정을 이루며 살아왔다. 아이들을 건강하고 바르게 잘 길렀고 깊이 사랑했다. 남에게 해를 끼친 일도 없고 마음의 상처가 될 짓도 안 하려고 노력하며 살아와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벌을 받을 까닭이 없다. 고약하고 못된 사람도 자식을 앞세우는 벌은 좀처럼 안 받던데 이게 무슨 처사냐? 억울하고 원통하다. 요약하면 그런 얘기였다.

나는 마치 귀중품을 훔쳐 간 소매치기를 고발하듯이 열렬하게 악다구니를 치며 수녀님에게 하느님을 고발하고 있었다. 부당하게 빼앗긴 걸 감쪽같이 돌려받는 것 외에 달리 위로의 여지가 있을 수 없었다.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었을까마나는 수녀님은 참을성 있게 내가 제풀에 지쳐서 그 집요한 행복의 반추를 그만둘 때까지 다 들어주고 나서 말했다.

 

# 10월 ㅇ일 - 131~132p.

내가 이 나이까지 겪어본 울음에는, 그 울음이 설사 일생의 반려를 잃은 울음이라 할지라도, 지내놓고 보면 약간이나마 감미로움이 섞여 있게 마련이었다. 응석이라 해도 좋았다. 아무리 미량이라 해도 그 감미로움에는 고통을 견딜 만하게 해주는 진통제 같은 게 들어 있었다. 오직 참척의 고통에만 전혀 감미로움이 섞여 있지 않았다. 구원의 가망이 없는 극형이었다. 끔찍한 일이었다.

이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누구라도 이런 끔찍한 극형에 당해서는 그 영문을 물을 권리가 있다. 신의 권위가 장난질 칠 권리가 아닌 바에야 의당 그 극형이 무슨 잘못에서 연유했는지 밝혀줘야 한다. 신, 당신의 존재의 가장 참을 수 없음은 그 대답 없음이다. 한 번도 목소리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도 인간으로 하여금 당신을 있는 것처럼 느끼고, 부르고, 매달리게 하는 그 이상하고 음흉한 힘이다.

영원히 순화될 것 같지 않은 원색적인 포악이 거침없이 치밀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신의 문제는 나는 무엇일까 하는 나의 내면 응시로 귀착되고 만다. 실컷 울고 나서 한결 개운해진 정신으로 『법구경』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어리석은 이는 한 평생을 두고
어진 이를 가까이 섬길지라도 참다운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

마치 숟가락이 국 맛을 모르듯이.
지혜로운 이는 잠깐이라도
어진 이를 가까이 섬기면 곧 진리를 깨닫는다.
혀가 국 맛을 알듯이.

신을 느끼는 감수성에 있어서 나는 철두철미(徹頭徹尾) 숟가락일 뿐이다.

 

# 그 후의 나날들

- 155p.

그날 이후 내 배는 영락없이 끼니 때만 되면 고파왔다. 그 이상 얘기한다는 것은 너무도 부끄럽고 괴로운 일이다. 참척을 겪은 기막힌 애통과 절망은 당연히 에미의 목숨을 단축 시킬 줄 알았다. 살고 싶지 않은 게 조금도 거짓이 아닌 이상 육신은 의당 거기 따라주려니 했다. 그러나 내 육신은 내 마음과는 별개의 남처럼 끼니때마다 먹고 살고 싶어 하는 게 아닌가. 나는 내 육신에 대해 하염없는 슬픔과 배신감을 느꼈다. 사람이 짐승과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자식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수녀원으로 거처를 옮긴 것도 실은 짐승 같은 본능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 172p.

다시 글을 쓰게 됐다는 것은 내가 내 아들이 없는 세상이지만 다시 사랑하게 되었다는 증거와 다르지 않다는 것도 안다. 내 아들이 없는 세상도 사랑할 수가 있다니, 부끄럽지만 구태여 숨기지는 않겠다. 그 후 지금까지의 내 홀로서기는 대체로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지켜보던 딸들도 엄마가 마침내 해냈다고 일단은 마음을 놓았으리라.

역설적인 얘기가 될지도 모르지만 나의 홀로서기는 내가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가까이서 멀리서 나를 염려해 준 여러 고마운 분들을 비롯해서 착한 딸과 사위들, 사랑스러운 손자들 덕분이다.

나만이 알고 느끼는 크나큰 도움이 또 있다. 먼저 간 남편과 아들과 서로 깊이 사랑하고 믿었던 그 좋은 추억의 도움이 없었다면 내가 설사 홀로 섰다고 해도 그건 허세에 불과했을 것이다. 나는 요즈음 들어 어렴풋하고도 분명하게,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의 이런 도움이야말로 신의 자비하신 숨결이라는 것도 느끼게 되었다.

"주여, 저에게 다시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주여 너무 집착하게는 마옵소서."

 

#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_호원숙(작가) - 210~211p.

어머니의 통곡은 단지 개인적으로 기구한 팔자를 토로한 것이 아니라 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사랑의 언어였다는 것을,

그 언어가 밥이 되었다는 것을 사무치게 느끼게 되었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슬퍼하셨다.

누구와도 나눌 수도 바꿀 수도 없는 그 비애를 안고 있는 것이 얼마나 외롭다는 것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문득문득 그 고통을 못 이겨 베개에 얼굴을 묻고 통곡하셨다는 것을 알기에,

어머니의 일기를 다시 읽는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날처럼 눈이 내린다.

첫눈이 아낌없이 넉넉하게 대지를 덮어주었다.

세상의 모든 허물과 아픔을 감싸안듯이.

 

 

<한 말씀만 하소서>

박완서

세계사, 2004

 

 

  1. 계속하거나 이어져 있던 것이 끊이지 않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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