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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묵지/추억의 책장 · 메모

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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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열


나이들수록 미열이 잦아집니다.
늘 예고 없이 들어와 나를 힘들게 하는 미열처럼 삶에 대한, 사랑에 대한 내 미지근한 태도 역시 은근히 남을 괴롭히는 게 아닌지 문득 두렵습니다.
나도 이젠 여름옷을 입고 더 뜨거운 여름이 될 준비를 해야겠지요.



마음을 위한 기도

늘 푸른 소나무처럼 한결같은 마음을 지니게 해주십사고 기도합니다.
  자신이 맡은 일에 정성을 다하는 성실함, 어떤 모양으로든지 관계를 맺는 이들에게는 변덕스럽지 않은 진실함을 지니고 매일을 살고 싶습니다. 힘겨운 시련이 닥치더라도 쉽게 좌절하지 않고 견디어내는 참을성으로 한 번밖에 없는 삶의 길을 끝까지 충실히 걷게 해주십시오.

숲 속의 호수처럼 고요한 마음을 지니게 해주십사고 기도합니다.
  시끄럽고 복잡하게 바삐 돌아가는 숨찬 나날들에도 방해를 받지 않고 중심을 잡을 수 있는 마음의 고요를 키우고 싶습니다. 바쁜 것을 핑계로 자주 들여다보지 못해 왠지 낯설고 서먹해진 제 자신과도 화해할 수 잇는 고요함, 밖으로 흩어진 마음을 안으로 모아들이는 맑고 깊은 고요함을 지니게 해주십시오. 고요한 기다림 속에 익어가는 고요한 예술로서의 삶을 기대해봅니다. 마음이 소란하고 산만해질 때마다 시성 타고르가 그리 한 것처럼 저도 '내 마음이여, 조용히, 내 마음이여, 조용히'하고 기도처럼 고백하고 싶습니다.

사랑의 심지를 깊이 묻어둔 등불처럼 따듯한 마음을 지니게 해주십사고 기도합니다.
  기뻐하는 이와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이와 함께 슬퍼할 수 있는 부드럽고 자비로운 마음, 다른 이의 아픔을 값싼 동정이 아니라 진정 나의 것으로 느끼고 눈물 흘릴 수 있는 연민의 마음을 지니고 싶습니다. 남에 대한 사소한 배려를 잊지 않으며,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따뜻한 마음, 주변에 우울함보다는 기쁨을 퍼뜨리는 밝은 마음, 아무리 속상해도 모진 말로 상처를 주지 않는 온유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평화의 선물이 되게 해주십시오.



<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 이해인 산문집>
이해인 수녀님 지음
샘터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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