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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묵지/추억의 책장 · 메모

Wildlife sketches in African saf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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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의 눈. 어렸을 적에 보았던 영화 '킬리만자로의 눈'이
'Eye'가 아니라 'Snow' 였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킬리만자로의 얼음'이 더 정확하다.
해발 5,985미터. 아프리카 대륙 최고의 화산이며 최고봉인 이 산의
하얀 정상은 늘 구름에 가려 있지만, 가끔 제 모습을 눈부시게 드러낸다.
이곳 사람들에게 킬리만자로는 '번쩍이는 산'이란 뜻으로,
고대부터 신성시 되어 온 장소여서 함부로 접근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관광객의 달러를 한푼이라도 더 뽑아 내기 위한
갖가지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가득찬 관광 명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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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사자 한 마리가 죽어있다. 새로 대장이 된 젊은 수컷 사자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전 남편의 새끼들을 모조리 물어 죽이는 일이다.
새끼가 죽은 암컷들은 곧 새로운 새끼를 갖는다.
아프리카의 자연 상태에서 2살까지 살아남는 사자 새끼는
다섯 마리 가운데 겨우 한 마리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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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하는 게 아니라 빠지는 것이라고 했던가.
막연한 설레임으로 시작했던 스케치 여행이 한 달이 훌쩍 지나자,
나는 아프리카의 대자연 속으로 흠뻑 빠져들고 말았다.
어렸을 때부터 아름다운 것을 보거나 들으면
들뜬 기분에 사로잡혔지만, 동시에 그것들이
금세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아서 두렵기도 했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오랫동안 굶주려 왔던 설레임과 감동을
조금 더 연장시키기 위해 열심히 붓을 놀려 기억을 붙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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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헤어질 날짜를 정해 놓고 시작하는 연애와 같다.
아, 정녕 이렇게 끝내야 하는 것인가... ...
한숨을 내쉬어 보지만 비행기 티켓에 빨갛게 적혀 있는 숫자는
경고문처럼 귀향을 재촉한다.
배낭을 꺼내 짐을 싼다.
가장 소중한 다섯 권의 스케치북과 에스키스 노트부터 챙기고
깨지기 쉬운 공예품 몇 개와 짐바브웨의 길거리 조각가에게
1불을 주고 산 목각 인형. 마사이 노인에게 선물 받은 칼 한 자루,
바지 몇 벌과 쌍안경, 그리고 간단한 화구통이 전부다.
간단하게 짐을 꾸리고 운전사 이솝과 함께
마지막 밤을 기념하는 조촐한 맥주 파티를 했다.



<Wildlife sketches ion African safari; 스케치 아프리카>
글.그림 김충원
진선북카페,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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