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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묵지/추억의 책장 · 메모

서른살, 꿈에 미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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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 4시까지 일해야 한다는 거,
예전에 해본 일이건 말건 특정 프로젝트에 대한 사전 지식이 있건 말건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다 짐작하고도 해보겠다고 온 거였다.

이 일이 좋으니
하루에 20시간씩 일해야 하는 건 얼마든지 오케이였고,
매일 이렇게 많은 걸 배울 수 있다는 사실에 신이 났다.

하지만 내 잘못이 아닌데도
내게 소리 지르고
단지 자신의 화를 어찌할 수 없어서
나의 자존심을 처참히 무너뜨리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사람들과
2주간을 일하고 나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많이 상한 것 같다.




# 카리브 해를 항해하는 청춘들

미셸. 그녀에게는 아픔이 있었다. 너무나 건강하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이유를 알 수 없는 희귀병으로 몸져누우셨는데, 아직 특별한 치료약이 없으며 자식들에게도  병이 유전된다고 했다. 청소년기에는 괜찮다가 25세에서 30세 사이에 주로 발병하며, 일단 발병하면 거동하기가 힘들어지는 병이란다.
  " 나도 언제 병이 발병할지 모르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너무나 소중해.
    그래서 나에겐 '언젠가 하고 싶은 일'이란 없어. 하고 싶으면 지금 당장 해야 하거든."

미셸도 울고 나도 울었다. 기가 막혔다. 그녀는 하버드 대학을 나온 데다, 아카펠라 그룹에서 노래할 정도로 고운 목소리를 가졌고, 자신이 가진걸 남들에게 나누어줄 줄 아는 예쁜 마음씨도 지녔다. 그런 그녀에게 그렇게 큰 아픔이 있다니, 세상은 공평하다고 생각했던 내 믿음이 흔들렸다.
  " 난 한국에서 남보다 모자랄 것도 나을 것도 없이 평범하게 자랐어.
    그래도 내가 하고 싶다는 건 노력해서 나름대로 다 이루고 누리며 살았지.
    덕분에 흥미로운 일을 하면서 별 희한한 경험도 많이 하고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났단다.
    그런데 그릇에 넘치게 너무 많은 걸 바랐던 건지 한 해에 세 번이나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간 적도 있어.
    병원에 누워 있으면서 사람에게는 한계란 게 존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어.
    한계까지는 아니더라도 어쩌면 자기 페이스를 알고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걸 생각한 거지.
    그 뒤로는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일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어."

나 또한 오랜만에 내 얘기를 속 시원하게 털어놨다. 굳이 말로 확인하진 않았지만 그때 우리는 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

모두 일어나 출렁이는 배 위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미친 사람들처럼 춤을 추었다. 그렇게 우리의 마지막 밤이 지나갔다. 깜깜한 바다 위 하늘에 별이, 달이 너무나 밝았다.


# 천재가 아니라서 다행이야

매주 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인 <그레이 아나토미(Grey's Anatomy)>에 이런 에피소드가 있었다. 닥터 버크(Dr.Burke)는 자신이 너무나 존경하던 명 바이올린 연주자의 위험한 심장 수술을 맡자 고민에 빠진다. 혹시라도 수술 중에 그를 잃게 될까 봐 두려워 다른 병원으로 이송시킬까도 생각했지만, 결국은 최고 심장 전문의인 자신이 수술을 맡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바이올린 연주자는 닥터 버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수술 중 저세상으로 가버리고 만다.
닥터 버크는 최고의 연주자를 최고의 심장 전문의인 자신이 살려내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빠지는데, 연인이자 같은 병원의 인턴인 닥터 양(Dr. Yang)이 위로하자 고통스럽게 입을 연다.
  " 그가 내게 그랬어. '당신, 내 음악을 사랑하나요?
    난 천부적인 재능은 없었죠. 학교 때부터 그걸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무지 연습했습니다. 하루하루 열심히 연습해서 이렇게 된 거죠' 라고 말이야.
    나도 마찬가지야. 타고난 외과의인 너와 달리 난 의대 때 평균 정도의 학생이었어.
    그래서 연습에 매달렸지. 근육 하나하나가 수술의 손놀림을 완벽하게 익힐 때까지 계속 연습했어.
    그런데 오늘, 내 손으로 그를 잃었다....."



<서른살, 꿈에 미쳐라>

명재신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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