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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묵지/책 더하기 · 리뷰

[戀書] 사랑하는 이여, 당신을 향한 그 모든 떨림을 이 편지에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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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서 (양장)
국내도서>비소설/문학론
저자 : 김하인
출판 : 티비(생각의나무) 2007.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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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꽃 향기>의 감성작가 김하인 선생님은 전작들에서 다 하지 못한 사랑의 말들을 '사랑하는 이에게 쓰는 편지<연서;戀書>'에 담았다. 한 여자가 지난 사랑을 잃고 난 후, 그 아픔을 딛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려고 한다. 편지를 쓴 그녀는 그 설레이는 감정과 떨림을 사랑하는 이에게 한 자 한 자 아름다운 말들로 수놓아 편지를 남겼다. 그녀의 연애사에서 일어났던 잔잔한 감정 다툼에서 그녀의 상처와 기쁨이 그 모든 감정들이 묻어난다. 그녀는 지난 사랑에 대한 반성과 지금 사랑하는 이에 대한 절절한 사모곡을 사랑하는 이에게 아흔아홉(99)개의 편지에 담아냈다. 

가장 순수한 마음으로 기존의 그 모든 누추한 사랑들을 다 비워내고 사랑하는 이에게 맑게 다가가고 싶었던 그녀. 세상의 그 어떤 사랑의 시작이 떨리지 않을소냐. 사랑의 시작, 그 설레임에 대한 애틋함 때문일까. 사랑하는 이에게 오롯이 그녀 자신이고 싶어 무진애를 쓰는 그녀의 마음이 나에게도 전해졌다. 그녀는 이전의 사랑들에서 사랑뿐만 아니라 마음, 사랑하는 이를 손에 쥐고 싶어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반성을 한다. 그리고 이제 사랑에서 절대로 움켜주지 않겠노라고 나즈막히 고백한다. 이 간단한 사랑의 이치를 깨닫는데 겪어야 했던 아픔과 고통이 너무도 컸다. 혹은 누구나 알면서도 절대로 뜻대로 할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소유욕. 그 욕심을 내려놓으라고 세상 모든 연인들에게 상기시켜준다. 

하지만 영원하길 소망했던 그녀의 이번 사랑도 영원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이내 연락이 되지 않는 사랑하는 이에게 정신없이 전화 다이얼을 눌러대는 그녀. 그녀는 어김없이 영원토록 사랑하고 싶다. 그런 그녀의 사랑은 결국 또 세상 속으로 보내진다. 그녀의 사랑하는 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로 굳혔다면 그 마음 굳건히 지키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 되라고 축복과 원망을 토해낸다. 그 애틋한 사랑에 대한 남은 슬픔을 아직 다 토해내지 못한채 편지들은 맺음을 하지만 그녀의 그 슬픔을 나는 안다. 그녀의 설레임도,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애틋함도, 원망도 그녀는 잘 견뎌낼 수 있으리라 조심스레 응원해본다.

P.S : 김하인 선생님의 어머니께서 떠나기 전에 투병생활에 힘들어 하시던 모습을 막내의 애틋한 마음으로 이 책에 족적을 남겨두었다. (68번 편지. 엄마) 잠시 사랑에 대한 다른 편지들마저 어머니에 대한 사모곡으로 비춰지기도 했지만 이내 사랑의 감정으로 돌아와 글을 적으셨던 모양이다. 선생님의 사랑에 대해 수놓는 그 아름다운 말들 담아두고 많이 배우겠습니다. :)
 

#007 마음을 보내다
지금껏 살아오며 가슴에 쌓였던 타인에 대한 감정의 앙금, 추억의 찌꺼기까지도 다 걸러낸 뒤 비로소 내 마음을 맑고도 단정히 세웠습니다. 당신 앞으로 내 마음 보내기 위해서 그동안 불면으로 얼마나 많은 하얀 새벽의 집 지었던가요.

#009 하루의 시작
오늘의 첫걸음을 떼는 당신에게 제 하루치의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그리움을 보내드립니다. 당신... 제 몫까지 행복한 하루이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오늘 하루 끝까지 걸어가시는 동안 당신에게 좋은 일과 아름다운 일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집으로 돌아가는 오늘의 끝 길 어디선가 제 생각 한 번이라도 떠올려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 호닥거리는 가슴 살며시 여며봅니다.

#017 손
한때 저는 젊음을 패기로 세상의 모든 것을 제 손으로 움켜잡아보고 싶었습니다. 가지고 싶었던 걸 꽉 움켜잡는다면 절대로 놓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사람에 한해서는, 사랑에 한해서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사람의 마음과 사랑은 손으로 움켜잡는다고 해서 잡혀지는 게 아니란 것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전 제가 잡은 이상 사람과 사랑 또한 내 것이어야만 한다고 그저 움켜잡으려고만 했습니다. 어리석음의 극치였습니다. 완악과 패악을 부리는 내 손아귀에 잡현던 사랑과 사람은 완전한 증오나 절망이 되어야만 이별의 형태로, 혹은 죽음의 형태로 내 손아귀를 빠져나갈 수 있었습니다. 
   ... ...
이젠 어떤 경우에도 내 손이 당신 일부조차 거머쥐는 일 결코 없을 것입니다. 사랑도, 사람도, 원래부터 소유가 불가능한 것이고 처음부터 사람 손에는 잡히지 않는 바람 같은 것임을 이제는 알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세월에 따라 운용하고 한 방향으로 조심스럽게 몰아가는 것은 손이 아니고 오래도록 한 사람을 위해 인내하고 고통을 감내하는 마음에 있음을 이제 알았기 때문입니다. 까닭에 
  ... ...
가끔씩 제가 외로우면 등 토닥이거나 쓰다듬어 주는 손이 돼주십시오. 제가 슬픔에 눈물 흘리면 닦아주고 제가 불면에 허덕거리면 제 머릿결을 그 손가락으로 빗겨 잠재워주십시오. 저도 당신에게 그렇게 해드릴 테니 당신 또한 부챗살처럼 환하게 퍼진 손으로만 제 몸과 마음에 손 대어 주시길 바랍니다. 

#048 오월동주(吳越同舟)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마음은 언제나 두 편으로 나뉘어져 싸웁니다. 나를 사랑하는 이기심(利己心)과 상대를 사랑하려는 이타심(利他心)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기심은 자신을 보호하려는 속성인 만큼 본능이랄 수 있고 한 사람만을 향한 이타심은 그 사람을 위한 배려인 만큼 자신을 포기하고 인내를 해야 가능합니다. 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그 두 마음은 적이 되어 끊임없는 갈등과 자존심을 불러일으킵니다. 이기심으로만 사랑을 하면 그 사랑은 욕망이 되고 실망이 되며 이어서 낙망이 되고 절망이 되었다가 결국 두 사람 간의 사랑은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김하인의 LOVE LETTER 戀書>
김하인 지음
생각의나무,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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