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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묵지/책 더하기 · 리뷰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사랑에 빠져 가끔씩 균형을 잃는 게 균형 잡힌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인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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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국내도서>비소설/문학론
저자 : 엘리자베스 길버트(Elizabeth Gilbert) / 노진선역
출판 : 솟을북 2007.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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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길버트는 이혼의 아픔과 사랑을 잃고 바닥까지 떨어져버린 자아를 회복하고자 여행길에 올랐다. 1년간 4개월은 이탈리아에서 먹으며 회복하고, 그 다음 4개월은 인도의 아쉬람에서 기도하고, 그 다음 4개월은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사랑한다. 그녀는 그녀의 가슴 절절한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냈다. 실은 여행을 떠나기 전 여행경비를 위한 출판 계약 때문에, 순전히 그 이유만으로 이 책이 세상에 나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너무나 아픈 상처를 안고 떠난 이탈리아에서 그녀는 아름다운 이탈리아어에 빠져 맛있는 음식들을 먹으며 회복기를 거친다. 이탈리아의 여행을 기록한 36개의 이야기들에선 그녀의 아픈 얘기가 온 지면을 덮고 있었다. 아픔과 상처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우울에 빠져 허덕이던 자신을 건져내기 위해 무진 애를 쓰고 있었다. 인도에서 보낸 4개월 역시 그녀는 아쉬람에서 자신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기도하고 생각하고 명상에 빠졌다. 그녀의 처절한 노력이 안쓰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감추고 싶었을 아픔들을 낱낱히 글 소재로 써내는 뼛 속까지 작가정신으로 무장한 그녀의 작가정신이 숭고해 보였다. 그녀는 그렇게 회복의 과정을 잘 견뎌냈다. 마지막 여행지 발리에서 그녀의 글들은 조금 밝아졌다. 여전히 아프고 여전히 힘든면이 남아있었지만 그렇게 그녀는 아름다운 회복과 갱생의 기간을 거쳐 다시 그녀의 삶으로 돌아왔다.

최근 몇년간 혼자 떠나는 여행에 늘 환상을 갖고 있었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인 이유가 가장 컸을것이고, 여행 자체에 대한 막연한 행복감, 그리움 등등. 특히 두려움도 마다않고 혼자 여행을 다니는 여자들을 동경해왔었다. 드디어 몇 주 전 나도 생애 처음으로 혼자 떠나는 여행을 경험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여행의 시작이자 출발점인 장시간 비행길을 위해 준비한 책은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였다. 지난해 영화를 보고난 후 원서와 번역서를 모두 구입해서 겉핥기 식으로만 읽었던 책인데, 혼자 여행을 떠나려니 이 책이 떠올랐던 거다. 

내가 그녀와 비슷한 아픔을 겪으며 비슷한 여행을 결심한 지금에서야, 이전엔 느낄 수 없던 감정들이 목울대까지 밀려올라왔다. 홀로 떠난 여행에서 처음 며칠간은 그 동안 갖지 못했던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갖고,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러나 이내 알아버린 나홀로 여행의 최고의 단점은 벅찬 감동의 순간. 그 감동의 순간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다는 것. 오로라를 보기위해 떠난 여행에서 환상적인 빛을 하고 나타난 오로라가 온 하늘을 뒤덮은 가슴 벅찬 그 순간을 나는 내 눈에, 내 가슴에만 담아야했다. 그런 순간을 함께 소리치고 감동을 나눌 사람이 없다는게 어떤 기분인지 나는 그 큰 애통함을 글로 표현해낼 수가 없다. 그 안타까운 심정은 겪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으리라.

그리고 나서 나는 깨달았다. 나는 그들을 동경해왔지만 이제는 그들의 나홀로 여행을 동경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그들의 글을 동경하고 아픔의 감정들은 공유하겠지만... 나의 결론은. 혼자 여행 다니는 여자들은 모두 상처받은 영혼들이다. 나 역시 그랬었던것 같다. (모든 경우에 예외는 있는 법이지만 대부분은...) 일에서건 사랑에서건 그 어떤 모든 것들로부터 받은 상처의 아픔을 달래려고 여행을 찾는다. 다음 여행지에서 아픔의 감정을 담았던 자신을 게워내려 하고, 또 다음 여행지에서 다시 자신을 찾게다고 자아를 갈구한다. 이렇게 홀로 여행지를 전전한다. 

그러나 여행과 시간의 힘은 경이롭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고 치유받은 영혼으로 돌아온다. 혹은 여전히 여행지를 전전하거나. 


#05 데이비드에게 중독 : 짧은 행복, 긴 외로움 | 38p.
중독은 맹목을 바탕으로 한 모든 사랑 이야기의 단골손님이다. 이는 애정의 대상으로부터 우리가 원하고 있다고 감히 인정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아찔하고, 환각적인 그 무엇을 받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아마도 천둥 같은 사랑과 영혼의 밑바닥까지 뒤흔드는 짜릿함이 섞인 감정적 마약쯤 될까. ... 그 물건을 한 번 더 가질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고, 강도짓이라도 할 준비가 된 채로. 하지만 그 동안 우리 애정의 대상은 이제 우리에게 정나미가 떨어져버린다. 그는 우리를 한때 정열적으로 사랑했던 사람으로 보는 건 고사하고, 생판 남 보듯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그런 그를 비난할 수 없다. 자신을 좀 돌아보라. 우리는 자기 자신도 못 알아볼 정도의 한심한 쓰레기가 되었다.
그게 끝이다. 이제 우리는 맹목의 최종 목적지에 도달했다. 조금의 여지도 남기지 않고, 완전히 바닥까지 떨어져버린 자아.

#17 내 안의 멜랑콜리한 기질과의 싸움 | 79p.
때로는 이 숲에서 길을 잃고도 가끔씩 그걸 깨닫기까지 한참이 걸린다. 꽤 오랫동안 스스로에게 그저 길에서 약간만 벗어났을 뿐이며 언제든 곧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고 확신시킨다. 그러다 밤이 계속되고,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여전히 감이 잡히지 않는다. 자신이 길에서 한참을 벗어나 이젠 더 이상 해가 뜨는 방향이 어디인지조차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36 아름다운 것을 찾아내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자 권리 | 181p.
칠흑 같은 시기를 보낸 뒤에는 행복의 희미한 가능성이라도 감지되면 어떻게든 그 행복의 발목을 움켜쥐고 그것이 날 진창에서 일으켜줄 때까지 절대 손을 놓지 말아야 하는 법이다. 이건 이기적인 행동이 아니라 의무다. 우리는 삶을 부여받았고, 이 생애에서 아무리 하찮은 것일지라도 뭔가 아름다운 것을 찾아내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자 인간으로서의 권리)이다.

#42 나와 내 마음이 끊임없이 싸우다 | 210p.
구루는 자신에게 절대 무너질 기회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한번 무너져버리면 그것이 습성이 되어 자꾸, 자꾸 반복해서 무너지기 때문이다. 대신 씩씩한 마음을 유지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58 건강하지 못한 생각들의 항구가 되지 않을 거야 | 268p.
기도는 연인 관계와 같아서 절반은 내 책임이다. 변화를 원하는데 정확히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 소리내어 말하는 것조차 귀찮다면, 어떻게 그 기도가 이뤄지겠는가? 기도가 주는 혜택의 절반은 요구하는 자체에, 분명하면서도 충분히 고려된 의도를 전달하는데 있다. 그런 의도가 없다면 모든 간청과 바람은 뼈대가 없고, 느슨하며, 둔해진다. 차가운 안개처럼 우리의 발 근처를 맴돌 뿐 결코 위로 올라오지 못한다.
그리하여 이제는 매일 아침마다 내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탐색할 시간을 갖는다.

#64 신은 네 안에 머문다, 네 모습으로... | 291-292p.
예를 들어, 난 말수 적은 사람은 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수다스런 습관을 진지하게 검토해 어떤 면들을 더 좋은 쪽으로 바꾸는, 내 성격 안에서의 노력이 불필요하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다, 난 분명 말하기를 좋아하지만 욕까지 많이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아무 때나 웃어댈 필요도 없고, 나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떠들어댈 필요도 없을 것이다.
더 과격하게 나가자면, 다른 사람이 말할 때 끼어드는 짓을 그만둘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끼어드는 버릇은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결국엔 '내가 하는 말은 당신이 하는 말보다 더 중요해' 라고밖에 생각할 수가 없다. 이건 다시 말해 '난 당신보다 중요한 사람이야' 라는 뜻밖에 되지 않는다. 그 습관은 고쳐야 한다.

"사랑에 빠져 가끔씩 균형을 잃는 게 균형 잡힌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인걸."

■ To-do
@ 피제리아 다 미쉘(Pizzeria da Michele) at 나폴리 - 더블 모차렐라의 마르게리타 피자
@ 푸치니의 생가 건너편 레스토랑 at 루카 (푸치니의 고향) - 버섯 리조토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엘리자베스 길버트 지음, 노진선 옮김
솟을북,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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