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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의 마지막 저녁 식사] 마지막 식사, 어떤 음식을 먹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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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의 마지막 저녁 식사
국내도서>비소설/문학론
저자 : 되르테 쉬퍼 / 유영미역
출판 : 웅진지식하우스 2010.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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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아침. 오늘도 급한데로 집을 나서서 사무실에 도착할 무렵 근처의 커피전문점에서 커피 한 잔을 사들고 출근한다. 아침 대신 커피 한 잔이 일상이 된지 꽤 오래 된 것 같다. 바쁜 아침의 한 바탕 소동이 지나가고 점심시간이 되면 동료들과 점심 식사 시간을 갖는다. 먹고, 대화하며 한 시간을 빠듯하게 사용한다. 하루 중에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도 하고 사람들과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얼마 안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해야할 일들을 처리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 식사 시간을 맞이한다. 요즘 저녁은 먹어도 그만 먹지 않아도 그만인 식사 취급을 받는다. 예전엔 다이어트를 주장하며 저녁 먹는일을 기피했던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요즘은 가끔 먹는다. 그리고 늦은 저녁 집으로 돌아와서 잠들기 전, 마른 과자들을 조금 곁들여 시원한 맥주 한 캔을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 한다.
 
가끔은 샌드위치나 패스트푸드 햄버거 세트로 때우기 일수가 되어버린 현대판 직장인 식사가 내 일상이 되어버렸다.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는 과일에 섬유질 많은 음식들을 항상 준비해주셨다. 또 내가 좋아하는 반찬들은 꼭 한가지 이상씩 상에 내어 주셨으며, 피부가 건조해서 고생할 땐 알로에와 사과, 요쿠르트를 함께 갈아 별식을 만들어 주기도 하셨다. 요즘은 그 시절이 그립다. 어머니의 손맛이 그립기도 하고 나 하나만을 위해 정성을 다해 준비하신 어머니의 정성이 그립다.

자신이 곧 죽을것임을 알고 있는 사람의 마지막 순간도 같았다. 죽음에 임박하면 이루지 못한 많은 일들이 생각나진 않을까? 아쉬움이 가득하진 않을까? 그 입장이 되어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었던 그들의 마지막 생각들. 그러나 그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않고 어머니의 손맛, 추억의 음식을 기억하고 먹고 싶어했다. 그들에게 음식은 단순한 생계를 이어가는 수단이 아닌 지난 삶의 아름다움을 상기시켜주는 추억이었다. 

호스피스에 무슨 요리사가 필요하느냐며, 대부분 음식을 삼키지도 못하고 설사 삼킨다 하더라도 맛을 느끼지 못할것이라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요리사 루프레히트는 호스피스 요리사에 지원했다. 화려한 경력으로 최고급 레스토랑의 주방장으로 일하던 그는 손님들에게 최고급 요리를 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는 호스피스 요리사로 지내는 동안 많은 사람들의 마지막을 함께하며 기다리는 법을 익히고, 음식으로 생의 마지막 순간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만들어주었다. 만약 내가 억척스럽게 살던 생을 마감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나는 무엇이 먹고 싶을까? 그 순간의 나는 어떤 추억을 되짚고 있을까? 영원히 살 것처럼 꿈꾸고, 일하는 지금 나에게 그 대답은 아직 막연하다. 그러나 죽음은 삶과 불과 한 발짝 떨어져 있을 뿐이다. 아무렇게나 대충 때워버리는 식사보다는 좀 더 향기나는 추억을 만들며 매 순간을 아름답게 살아야겠다. 마지막 순간에 그 향기를 머금을 수 있도록.

"마지막 식사, 어떤 음식을 먹겠습니까?"
이 질문의 답을 찾는 동안 당신이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지, 실제로 지난날 얼마나 많은 인생의 장면이 스쳐가는지 모를 것이다. 어린시절 할머니 댁에 놀러 가면 맛볼 수 있었던 간식, 꼭 맛보고 싶었던 이름만 알고 있는 외국의 희귀 요리...... 당시엔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순간이 불현듯 생각날 수도 있다.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나 역시 답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당신도, 나도 부디 답을 찾을 수 있기를. - 프롤로그 중에서


# 운명을 거슬러 '죽음'을 밀치기 - 91p.

생각하고, 나는 아주 많이 생각해요. 너무 많이. 하지만 생각이 닿는 데로 그냥 따라가서는 안 돼요. 그러면 금세라도 목을 매거나 엘베 강에 뛰어들어 버리고 싶을걸요. 후회스러운 일도 뇌리를 스쳐요. 그러나 그런 걸 바로잡기엔 시간이없지요. 나는 계속 과거의 이런저런 결정이 올바른 것이었는지, 아니면 다르게 해야 했는지 생각해요. 하지만 그것을 말로 내뱉긴 싫어요. 살면서 모든 걸 올바르게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아무도 그럴 수 없을 거예요. 돌아보면 실수했다는 걸 확인하게 되죠. 인생의 마지막엔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요?

# 운명을 거슬러 '죽음'을 밀치기 - 97p.
"칼로리는 밤에 잘 때 찾아와 옷을 줄여놓는 동물이다."

# 삶에 등 돌리는 적절한 순간 - 237p.
말을 끝맺기 전에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그녀는 다른 데로 주의를 돌리려고 얼른 컴퓨터 옆에 놓인 사전을 들었다가 다시 놓는다. 그리고 또 다시 폈다가 옆에다 놓는다. 그녀는 감정을 조절하기가 힘들다. 통제 하지도, 마구 표출하지도 못하겠다고 한다.
그녀는 깊은 슬픔을 느끼지만, 억지로 기분 좋은 척 슬픔을 억압한다. 엉엉 울고 싶은 기분인데도 농담을 하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미칠듯 걱정이 덮치는데도 미소를 짓는다. 


<내 생의 마지막 저녁 식사>
되르테 쉬퍼 지음, 유영미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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