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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 안도현의 노트에 베끼고 싶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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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
국내도서>비소설/문학론
저자 : 안도현
출판 : 이가서 2006.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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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

몇 해 전 시인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가 크게 회자(膾炙)되면서 뭇사람들의 가슴을 뜨겁게 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해를 거듭하며 그의 시는 많은 사연과 함께 여러 인터넷 게시판을 오르내렸고, 사람들은 인생의 의미를 찾았다. 비단 이 시 뿐 아니라, 그의 시들은 읽는 이에게 우리네 정겨운 시골의 따스함을, 때로는 70년대 골목 어귀 풍경을 선사하며 우리의 가슴을 따스하게 울리곤 한다.

그의 시에는 힘이 있다. 많은 이들의 감정을 쥐고 흔들기도 하고, 함께 눈물 흘리게 하기도 한다. 문학 공부를 하던 시절 그는 좋은 시가 있으면 꼭 노트에 필사(筆寫)를 했다고 한다. 그렇게 베낀 시들은 그 만의 훌륭한 시집이었고, 시 공부의 지침서가 되었다. 이 습관들이 쌓여 그의 시를 빛나게 하고, 그의 시에 힘과 생동감을 불어넣었을까. 시인이 된 후로도 줄곧 그는 다른 시인의 시를 많이 읽는 편이라고 한다. 그 중 그가 생각하는 '좋은 시'의 기준으로 시를 골라 독자들을 위한 시선집 <안도현의 노트에 베끼고 싶은 시 - 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를 엮었다.

그의 시선이 닿은 시들 역시 7,80년대 우리들의 정겨운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 작은 사물 하나에서도 인생의 의미와 결부시키는 탁월한 시들이 심금을 울리기를 여러 차례. 시인들의 시선은 어찌 이렇게도 아름다울 소냐. 시 속에는 추억이 있고, 그리움이 있고, 애환이 있었다. 우리네 삶이 있고 인생이 있었다. 

그가 선사한 시집 속에서, 나 역시 몇 편을 골라 그의 습관을 좇아 노트에 필사(筆寫)를 한다. 자그마한 감동들을 모아 오늘의 삶을 감사하며.


■ 본문 중에서

이래서 이 세상에 돌로 버려지면 어쩌나 두려워하면서
이래서 이 세상에 꽃으로 피었으면 꿈도 꾸면서 
〃 돌 하나, 꽃 한송이 中 _신경림

하찮은 돌로 버려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화려한 꽃으로 피어나고자 하는 욕망 사이에, 
그 경계에, 인생이 잇다. 그것은 현실과 이상 사이의 거리이기도 하고,
성스러움과 속됨 사이의 갈등이기도 할 것이다.


삶의 목차는 이미 끛났는데
부록처럼 남은 세월이 있어
덤으로 사는 기분이다
봄이 온다
권말부록이든 별책부록이든
부록에서 맞는 첫 봄이다
목련꽃 근처에서 괜히
머뭇대는 바람처럼
마음이 혹할 일 좀
있어야겠다
〃 불혹不惑, 혹은 부록附錄 中 _강윤후

부글부글 끓어오를 수 있다면 
끓어올라 넘치더라도 부끄럽지도 
쑥스럽지도 않은 세상이라면 
그런 세상은 참 얼마나 아름다우랴
〃 물 끓이기 中 _정양

빗물, 다시 사선이다
어둠이 그걸 받아 삼킨다
순간 사선 위에 깃드는
그 바람, 그 빛, 그 가벼움, 그 망설임
〃 빗방울, 빗방울 中 _나희덕


<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
안도현 엮음, 김기찬 사진
이가서,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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