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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묵지/추억의 책장 · 메모

[The ENDURANCE] 어니스트 섀클턴의 위대한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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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듀어런스

저자
캐롤라인 알렉산더 지음
출판사
뜨인돌출판사 | 2003-11-25 출간
카테고리
자기계발
책소개
성공보다 더 위대한 실패로 기록되는 인듀어런스호 탐험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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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p.

탐험가로서 가장 소중한 자산은 다름 아닌 그의 낙천성이었다. 만일 그가 냉정하지 못했거나 욕심이 더 많았다면 지난 두 번째 탐험에서 남극점 최초 정복의 주인공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랬다면 그와 그의 대원들은 스콧 일행과 마찬가지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을 것이다. 당시 섀클턴이 후퇴하기로 결정한 것은 실로 용기 있는 행동이었으며, 그의 특징인 낙천적 성격을 잘 보여준다. 죽지 않고 살아 있으면 언젠가는 또다시 기회가 찾아오는 것이다.

"남극점 정복 경쟁을 아문센과 섀클턴이 했다면 섀클턴은 중간에 되돌아와 아문센 탐험대를 만나서 성대한 축하 파티를 열었을 것이다." 언젠가 유명한 극지 탐험 역사가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아문센과의 경쟁에서 패배한 스콧을 짓눌렀던 극심한 좌절을 섀클턴이라면 겪지 않았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53p.

5월 1일, 태양이 완전히 사라졌다. 이제 앞으로 4개월 동안은 해를 전혀 볼 수 없을 것이다. 대원들의 바깥 활동이 중단되면서 온갖 종류의 오락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새로운 놀이를 하나 만들 때면 리츠 전체가 온통 시끌벅적하게 변하곤 했다. 5월말엔 모든 대원들이 겨울의 광기에 굴복하여 머리를 바싹 깎으며 야단법석을 떨었고, 헐리는 그 순간을 사진에 담았다.

신비롭고 아름다운 남극의 겨울밤은 대원들로 하여금 이 거친 세계로 모험을 떠난 이유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얼어붙은 바다 위로 떠오른 달은 동화처럼 신비로웠고, 밤하늘의 완벽한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은 상상할 수 없으리만치 밝은 빛을 내뿜었다. 가끔은 수평선 위로 숨막히게 아름다운 오로라가 나타나기도 했다.



81p.

오후 2시 55분. 강아지 세 마리와 그동안 인듀어런스 호의 마스코트였던 고양이 '치피 여사'를 크린이 총으로 쐈다. 한 번도 썰매를 끌어본 적이 없는 강아지 시리우스의 처리는 맥클린에게 맡겨졌다. 시리우스는 총구를 빤히 쳐다보며 맥클린의 손을 핥았고, 맥클린은 손을 너무 떠는 바람에 총알을 두 방이나 쏘아야 했다. 총소리가 얼음 위로 울려 퍼지며 모두의 마음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115p.

식량은 4주 정도 버틸 분량이었다.

"그때까지 사우스 조지아에 도착하지 못하면, 우리는 죽고 말 것이다." 섀클턴은 이렇게 적었다.

섀클턴은 만일 이번 탐험이 실패할 경우 남은 두 척의 배를 끌고 봄에 디셉션 섬으로 가라고 와일드에게 명령했다. 또한 그는 이곳에 남는 대원들의 지휘를 와일드에게 맡겼다. 와일드는 자기도 함께 가겠다고 했지만 엘리펀트 섬이건 다른 어디에서건 섀클턴이 믿고 맡길 만한 사람은 오직 와일드 밖에 없었다. 그날 두 사람은 밤늦도록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와일드는 섀클턴의 마지막 명령을 차분하게 받아들였다.


141p.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던 일을 그들은 드디어 해냈다. 2년 만에 처음으로 뜨거운 물에 목욕을 했고, 매끈하게 면도를 했으며, 깨끗한 새 옷으로 갈아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포경기지 사람들은 세 사람에게 최대한의 정성과 예의를 보여주었다. 죽음의 바다를 건너 기적처럼 돌아온 이들에 대한 뱃사람으로서의 경의였다.


159p.

배가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흥분을 이기지 못한 대원들이 일제히 발을 구르며 괴성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해안으로부터 150m 떨어진 곳에 배가 멎었고, 작은 보트가 내려졌다. 섀클턴이 거기에 타고 있었다. 크린의 모습도 보였다.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났다. 몇 분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와일드는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베이크웰은 "모두들 환호성을 질렀다." 라고 적었다.

대원들은 숨을 멈추고 섀클턴이 다가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윽고 서로의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는 거리가 되자 그들은 일제히 한 목소리로 외쳤다.

"모두 무사합니다!"


옐코 호가 엘리펀트 섬에 이르렀을 때 워슬리는 섀클턴과 함께 갑판 위에 있었다. 동료들이 깃발을 흔들어대는 모습을 보자 문득 가슴이 뭉클해졌다. 섀클턴은 쌍안경을 들고 초조한 모습으로 대원들의 숫자를 헤아렸다. 해안에 있는 인원은 정확히 22명이었다.

"그는 쌍안경을 집어넣고 나에게 돌아섰다. 수많은 감정들이 뒤섞인,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얼굴이었다. 크린이 다가왔고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166p.

섀클턴의 시신을 영국으로 옮기려던 허시는 남편을 사우스 조지아에 묻어달라는 섀클턴의 아내 에밀리의 편지를 받았다. 자유로웠던 섀클턴을 좁고 복잡한 영국의 공동묘지에 가두어 둘 수 없다는 것이었다. 3월 5일, 허시는 섀클턴을 이 세상에서 가장 잘 이해했던 노르웨이 선원들 사이에 그를 묻었다. 끝까지 그와 함께했던 몇 명만이 이 소박한 장례식에 참석했다. 허시는 밴조로 브람스의 <자장가>를 연주했고, 섀클턴의 영혼은 거칠고 웅장한 남극에 남았다.



<The ENDURANCE: 어니스트 섀클턴의 위대한 실패>

캐롤라인 알렉산더 지음, 김세중 옮김

사진 프랭크 헐리

뜨인돌출판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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