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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묵지/추억의 책장 · 메모

[아홉살 인생] 노란네모… 아홉살짜리가 배운 삶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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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살 인생

저자
위기철 지음
출판사
청년사 | 2010-01-2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MBC 느낌표 선정도서『아홉살 인생(양장)』. 진실한 거짓말쟁이...
가격비교


MBC !느낌표 '책을 읽읍시다' 여섯 번째 선정 도서



# 세상을 느낄 나이 - 7p.

나는 태어날까 말까를 내 스스로 궁리한 끝에 태어나지는 않았다. 어떤 부모, 어떤 환경을 갖고 태어날까의 문제 또한 마찬가지이다.

어느 정도 생각하는 능력을 갖게 되었을 때, 나는 이 모든 것들이 이미 결정되어 있음을, 그리고 결코 되물릴 수 없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다섯 살 이전의 일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세상에 태어난 뒤 다섯 해 동안은 마치 자욱한 안개 속에 파묻혀 있는 듯한 느낌이다. 기억나지 않는 과거는 우리를 불안케 하기 마련이어서, 아버지는 이 점을 이용해 종종 나를 놀려먹곤 했다. 너 세 살 때 기억 안 나니? 왜 내가 영도다리 밑에서 징징 울고 있는 너를 주워 왔잖아. 이 말은 어린 나를 얼마나 공포에 질리게 했던가!


#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인간

"고시가 뭐야?"

"시험이야. 왜 너도 학교에서 시험을 보잖니?"

"하지만 어른들이 왜 시험을 봐?"

"좋은 직업을 가지려고 그러지."

"좋은 직업을 가지려면 하루 종일 골방에만 틀어박혀 있어야 해?"

"글쎄, 낸들 알겠니?" - 96p.


"얘야, 너도 어른이 되어 보면 세상에 화가 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이해하게 될 거야. 하지만 다른 사람한테 화를 내게 되는 일이 있어도 그건 결국 자신한테 화를 내는 거란다. 자신이 밉기 때문이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자신이 미워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 - 108p.


# 이별이 슬픈 까닭 - 173p.

"죽음이나 이별이 슬픈 까닭은, 우리가 그 사람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해줄 수 없기 때문이야. 잘해주든 못해 주든, 한 번 떠나 버린 사람한테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지……. 사랑하는 사람이 내 손길이 닿지 못하는 곳에 있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는 슬픈 거야……."

아아, 아버지의 그 말은 얼마나 내 고민의 정곡을 찔렀으며, 나를 얼마나 슬프게 했던지! 내 눈에서는 또르르 눈물이 흘러내렸다.


# 검은제비는 잘 있는가 - 182p.

- 검은제비는 지금 잘 있습니까?

제 아버지가 그러했듯, 어느 날 갑자기 자신도 모르게 직장에서 쫓겨난 것은 아닙니까? 그래서 그만 덜컥 제 아버지를 이해하고 만 것은 아닙니까? 그래서 그만 덜컥 제 아버지를 이해하고 만 것은 아닙니까? 무능한 아버지 대신 이번엔 무능한 자신을 죽여 버리고 싶다고 울부짖고 있는 것은 혹 아닙니까? 술을 마시고 제 아버지와 똑같은 주정뱅이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무엇이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렸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동네 사람들한테 하염없이 하소연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리하여 이번엔 검은제비의 아들이 뾰족한 송곳을 나무에 꽂으며 빨리 어른이 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 여러분, 검은제비는 잘 있습니까?

슬픔과 외로움과 가난과 불행의 정체를 알아보려 하지도 않은 채, 제 피붙이와 제 자신을 향해 애꿎은 저주를 퍼붓고 뾰족한 송곳을 던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도저히 용서해선 안될 적들은 쉽사리 용서하면서, 제 피붙이와 제 자신의 가슴엔 쉽사리 칼질을 해대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 검은제비는 잘 있습니까? 혹시, 당신이 검은제비 아닙니까?"



# 골방 속에 갇힌 삶 - 203p.

사람이 꿈꿀 수 있는 욕망은 무한하다. 거지는 왕자가 되고 싶어하고, 왕자는 왕이 되고 싶어하고, 왕은 신이 되고 싶어한다. 하지만 모든 욕망이 현실에서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현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 욕망은 어찌 되는가? 그것은 우리 마음속에 고이고 썩고 응어리지고 말라비틀어져, 마침내는 오만과 착각과 몽상과 허영과 냉소와 슬픔과 절망과 우울과 우월감과 열등감이 되어 버린다.

이런 성격 파탄자가 되고 싶지 않다면, 우리는 두 가지 방법 가운데 하나를 택해야만 한다. 현실에 맞춰 욕망을 바꾸거나, 욕망에 맞춰 현실을 바꾸는 것이다.


# 외팔이 하상사 - 214p.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서 죽는다. 그리고 살아 있는 동안의 인생은 전적으로 자신이 감당할 자신의 몫일 수밖에 없다. 아무도 대신 살아 주지 않는다. 대신 살아 줄 사람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신 죽어 줄 사람도 없다.

내 어릴 적 한창 유행했던 '하숙생'이란 노랫말처럼, 인생은 나그네길이고 벌거숭이여서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험한 세상과 홀로 마주 서 있는 단독자일지도 모르고, 인생이란 주어졌으니 사는 어쩔 수 없는 외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과 인생에 대한 이 모든 실존주의적 정의가 다 옳다손 치더라도, 과연 인생은 단지 죽음으로 가는 길목까지의 외롭고 허망한 여정일 뿐인가. 그래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장벽을 두르고,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 고독과 허무를 짓씹으면 혼자서만 살아가야 할 뿐인가 - 천만에!


# 숲 속에서의 방랑 - 239p.

나는 시간이 아주 많았으므로 이 슬프고 짜릿한 상상들을 될 수 있으면 천천히 맛보려 애썼다. 한꺼번에 다 슬퍼해 버리고 나면, 나머지 시간이 너무 따분해질 것 같아서였다. 슬픈 상상은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나는 내 자신을 이루 말할 수 없이 훌륭한 아이로 만들었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 불쌍한 아이로 만들었다. 그러면 나는 내가 너무 불쌍해 찔끔찔끔 눈물이 났다.


# 계속되는 이야기 - 257~258p.

물론 아홉 살이 끝났다고 해서, 내 인생마저 끝난 것은 아니다. 인생에는 죽는 순간까지 단절이 없다. 그냥 쭈욱 진행되는 과정이다. 그 과정 속에는 기쁨도 있고, 슬픔도 있고, 낭만도 있고, 고통도 있고, 욕망도 있고, 좌절도 있고, 사랑도 있고, 증오도 있다.

그러나 인생의 어느 한 측면만을 지나치게 과장해, 그것이 인생의 전부이리라 착각할 필요는 없다. 기쁨 때문에, 슬픔 때문에, 낭만 때문에, 고통 때문에, 욕망 때문에, 좌절 때문에, 사랑 때문에, 증오 때문에…… 또는 과거 때문에, 현재 때문에, 미래 때문에…… 혼자만의 울타리를 쌓으려 드는 것은 더더욱 어리석은 짓이다. 못된 거인이 정원에 울타리를 쌓자 봄이 오지 않았다던가!



# 책 뒤에

아홉은 정말 묘한 숫자이다. 아홉을 쌓아 놓았기에 넉넉하고, 하나밖에 남지 않았기에 헛헛하다. 그 아홉이 지나면 또다시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하기에 불안하기도 하다. 따지고 보면, 이건 모두 십진법의 숫자 놀음에 지나지 않지만, 그게 때때로 우리를 공포스럽게 만들곤 하니 우습다. 이게 다 고정관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탓이리라. 비단 숫자뿐 아니라, 우리네 인생에서 어떤 출발점과 도달점에 연연해하는 것부터가 고정관념의 산물이 아닐까 싶다. 도달점에 닿는 순간, 그건 곧 출발점이 되고 마니까. 그래서 우리네 인생은 중단 없이 쭈욱 진행되는 과정일 뿐인 것이다.


<아홉살 인생>

위기철 지음

청년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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