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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묵지/추억의 책장 · 메모

[언젠가는, 페루] 신이 숨겨둔 마지막 여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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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중에서


# 1 세상에서 가장 멋진 아이러니를 찾아 - 12p.

리마가 무질서한 곳이라는 주장을 반박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이곳의 무질서는 어지럽기보다 꽤나 근사하다. 마흔세 개의 작은 도시들을 모자이크로 덕지덕지 붙여놓은 모양새인 리마는 그 옛날 가득했던 은만큼이나 어딜 가나 떼를 지어 몰려 있는 사람들, 그리고 차들이 끝없이 내뿜는 매연이 고대 유적지와 식민시대의 건물, 현대적 마천루와 한데 뒤섞여 오히려 묘한 질서를 이룬다. 늘 짙은 안개로 뒤덮인, 지구 상에서 가장 메마른 절벽 위의 모래 도시. 이곳의 구석구석은 서민들의 땀으로 뒤범벅되어 있고, 해안 절벽 아래에는 풍요를 상징하는 드넓은 해안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 13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리마의 민낯 - 47p.

누구나 리마를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런 대조적인 모습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도시의 중심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갈라진 길이 많고 그 위에는 수많은 부랑자들이 자리하고 있다. 자연이 이들에게 선사한 부는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부의 불균형이 빚어낸 초상. 이러한 부정적인 수식어만으로 리마를 묘사해서는 안 되겠지만 이것이 리마가 보여주지 않으려 애쓰는 아픈 현실임은 분명하다.

부의 불균형은 비단 오늘날만의 문제가 아니라 페루가 늘 안고 있는 문제다. 전체 인구에서 상위 10퍼센트 계층이 차지하는 부는 하위 50퍼센트가 차지하는 부를 훨씬 뛰어넘는다. 나라의 실질적인 구매력을 결정하는 중산층은 늘 얕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21세기 들어서며 극빈층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일시적인 호황에서 비롯된 것인지 지속 가능한 변화인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


# 16 세비체! 세비체! 세비체! - 54~55p.

리마에는 세비체를 파는 음식점을 뜻하는 세비체리아(cevicheria)가 수도 없이 많다. 그 많은 세비체리아들 중 여행자들에게 대강 만든 음식을 내지 않고 정성을 다한 세비체 요리를 내는 곳을 찾기란 쉽지 않다. 추천할 만한 곳은 '세비체리아 라 초사 나우티카(Cevicheria la Choza Nautica)' 다. 다양한 종류의 정갈한 세비체를 말끔한 차림의 웨이터들이 기분 좋게 서빙한다. 유일한 흠이라면 상당히 척박한 느낌을 주는 지역에 자리하고 있어서 들어갈 때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는 점이다. 다만 나갈 때는 세비체가 주는 감흥 덕분에 지역의 우중충함도 용서가 되니 찾아가 볼 만하다.

참고로 페루 사람들은 세비체를 웬만하면 저녁에 먹지 않는다. 그러므로 제대로 된 세비체리아는 저녁에 문을 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좋은 세비체리아를 고를 때 이 점을 고려해야 한다. 물론 풋내기 관광객들만을 상대하는 세비체리아는 저녁에도 문을 연다.


# 18 코카콜라를 누른 잉카콜라 - 57p.

잉카콜라는 페루아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그야말로 페루의 '국민 음료'다. 콜라가 주는 청량감은 그대로 유지한 채 독특한 맛과 색깔로 승부하는 페루의 자체 콜라 브랜드다. ... (중략) ...

잉카콜라의 독특한 색깔은 농축액 제조 과정에 들어가는 만사니야(Manzanilla)라는 식물의 원액이 노란 빛깔을 띠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1999년 이후 페루를 제외한 전 세계에서 잉카콜라의 상표권은 코카콜라의 소유가 되었다. 페루에서는 코카콜라와 잉카콜라가 공동으로 상표권을 소유하고 있다. 국가의 자존심이었던 상품의 상표권이 외국 자본에 넘어간 것에 대한 페루 사람들의 아쉬움은 크다.


# 19 리마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 - 59p.

여기서 리마에서의 마지막 밤을 화려하게 장식할 한 가지 팁이 있다. 로모 살타도 맥주로 기분 좋게 배를 채우고 난 이후에는 택시를 타고 분수쇼(El Circuito Magico del Agua)가 열리는 레세르바 공원(Parque de la Reserva)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수요일에서 일요일 저녁마다 벨라지오(Bellagio) 스타일의 분수와 레이저 쇼가 벌어진다. 저렴한 가격으로 수준 높은 분수쇼를 감상할 수 있는 덕에 리마 사람들은 밤이 되면 이곳으로 삼삼오오 산책을 나온다.


# 6 사막에서 바라보는 일몰에 취하다 - 84p.

이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던 버기의 시끄러운 엔진 소리도, 사람들의 요란한 환호성도 없다. 모두들 사막의 한가운데서 엄숙하게 일몰을 기다리는 것이다. 사방이 고요하다. 붉은 해가 황금빛의 모래를 물들이며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면 각지에서 모인 여행자들은 알 수 없는 벅찬 감동에 할 말을 잃는다. 뒤로는 야자수에 둘러싸인 신기루 같은 오아시스가 내려다보인다.


# 2 이곳에서 모든 것이 시작된 그 옛날처럼 - 108p.

리마처럼 쿠스코에서도 아르마스 광장이 도시를 둘러보는 여정의 출발점이다. 쿠스코의 중심부에 위치한 이 광장은 쿠스코에 머무는 동안 수없이 지나칠 만큼 번화한 곳으로, 잉카제국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광장을 식민지대풍 아케이드가 에워싼 모양을 띠고 있다. ... (중략) ...

이쯤 되면 어느 정도 눈치챘겠지만 페루에 있는 대부분의 도시들은 마치 계획도시처럼 상당히 획일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아르마스 광장을 중심으로 서서히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구조인데, 이는 스페인 정복자들이 통치의 편의를 위해 방사형 구조로 도시를 설계했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 14 코카, 치차, 그리고 감자와 옥수수까지 - 147p.

코카 차는 예로부터 고지대 노동자들이 피로를 잊고 노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널리 보급되었다고 한다. 호흡이 가쁘거나 몸이 피곤할 때 코카 차를 한 잔 마시면 안정이 된다. 원주민들은 차를 끓이지 않고 코카나무 잎 한 뭉치를 껌처럼 씹기도 한다. 쿠스코의 코카 차 인심은 늘 넉넉하다. 도시를 대표하는 차로서 어디를 가도 쉽게 맛볼 수 있다. 코카 차를 제대로 즐길 줄 알아야 진짜 쿠스코의 멋쟁이다.

차도 좋지만 여행 하면 술이 빠질 수 없다. 쿠스코에서 치차 이야기를 안 하면 섭섭하다. 치차는 한마디로 안데스의 옥수수 막걸리다. 먼저 옥수수를 물에 불려 싹을 틔운 뒤, 건조시켜 빻아 가루를 만든다. 이 가루를 오랜 시간 끓인 다음 항아리에 넣어 발효시키면 밭일을 하는 원주민들이 즐겨 마시는 치차가 완성된다. 우리 나라의 막걸리같이 농부들뿐만 아니라 전 국민에게 사랑받는 전통술이다. 맛은 막걸리와 달리 다소 시큼하다. 당연히 애주가들에게는 색다른 경험이 될 것이다. 다만 치차의 종류에 따라 알코올 도수가 상당히 높은 경우도 있으니 과음은 금물이다.

인디오들은 치차를 마시기 전 손가락을 술에 넣었다 빼며 술 한두 방울을 땅에 뿌린다. 대지의 신 파차마마(Pachamama)에게 경의를 표하는 의식이다.


# 1 순례자의 마음으로 - 156p.

사진이나 영상으로 수없이 접해도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못 견딜 것 같은 곳이 있다. 모든 사람이 꿈꾸는 곳. 죽기 전에 꼭 한 번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곳. 페루의 상징이자 모든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의 자랑. 산과 절벽, 강과 수풀 사이에 숨어 발견될 때까지 아무도 그 존재를 몰랐고 공중에서만 도시의 존재를 알 수 있었다 하여 하늘의 작품이라고 불리는 곳. 바로 마추픽추다.

이곳은 마치 성지와도 같다. 우뚝 솟은 산봉우리와 기암절벽에 빙 둘러싸인 이 비밀 도시를 보고 있노라면 알 수 없는 성스러운 기운에 모두들 순례자가 된다. 신이 있다면 이곳은 분명 신이 창조한 도시일 것이다. 수다스러운 페루인들이 이곳에만 오면 사뭇 엄숙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 잉카의 길 - 164p.

사실 마추픽추로 가는 방법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잉카의 길(Camino de los Incas)'을 이용하는 것이다. 카미노 레알(Camino Real)이라고도 불리는 이 길은 이름 그대로 옛날 잉카인들이 마추픽추로 향하던 길을 따라가는 트레킹 코스다. 보통 오얀타이탐보에서 출발한다. 3~4일에 걸쳐 걷고, 쉬고, 야영하기를 반복하며 마추픽추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일은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경험이라고 한다. 트레킹으로 만나는 안데스의 장엄함이 어떨지 감히 상상하기 어렵다.


# 초현실에서 다시 현실로 - 183p.

여행 안내서를 참고하는 것도 좋고 지도를 보며 다니는 것도 좋지만 마추픽추를 여행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저 돌과 바람을 따라 걷는 것이 아닐까.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고 눈앞에 있는 건물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데 급급하다 보면 더 중요한 것을 놓칠 수도 있다. 그저 순례자의 마음으로 라틴아메리카의 성지를 하염없이 걸어보자.

걷는 데 자신이 있다면 '태양의 문'이라는 뜻을 가진 인티푼쿠(Intipunku)'에 가볼 만하다. 중앙 광장과는 꽤 거리가 있고 가는 길의 경사가 급한 편이지만, 경치가 아름답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석조 건축물이 있다. 태양의 문 앞에서 체 게바라(Che Guevara)와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가 마추픽추에서 느꼈을 감정이 떠오른다.

 



<언젠가는, 페루>

이승호 지음

리스컴, 2014



언젠가는, 페루
국내도서
저자 : 이승호
출판 : 리스컴 2014.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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