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전 회식자리에서 우연히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우리는 왜 여행을 떠나는지에 대해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때의 기걱이 떠올라 김영하 작가의 산문집 『여행의 이유』를 읽었다. 나 역시 작가처럼 일상으로 돌아올 때보다 짐을 꾸려 여행을 시작할 때 마음이 더 편안해지는 사람이다. 도대체 우리는 왜 자꾸만 여행을 떠나려 하는 걸까. 흔히들 안정을 위해 정착해야만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나는 가끔 안전한 일상이 오히려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작가의 말처럼 집은 '의무의 공간'이자 '상처의 쇼윈도'이기 때문이다. 집안 곳곳에는 내가 해결해야 할 숙제들이 쌓여 있고, 타인에게 받은 고통의 기억들이 벽지의 얼룩처럼 들러붙어 있다. 작가의 말마따나, 우리는 행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쩌면 "자신들의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여행의 또 다른 매력은 우리를 강제로 '현재'에 붙들어 둔다는 점이다. 일상 속의 나는 이미 지나간 과거를 후회하거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불안해하느라 정작 '지금'을 놓치곤 한다. 하지만 낯선 여행지에서는 다르다. 당장 먹을 것을 찾고, 잠자리를 확보하고,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온 감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그렇게 생존의 문제와 맞닥뜨릴 때,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근심은 희미한 배경으로 물러나고 오직 생생한 현재만이 내 앞에 남는다. 모국어가 들리지 않는 낯선 땅에서 느끼는 그 단절과 평화, 그것이 나를 숨 쉬게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남들은 돌아올 곳이 있기에 떠난다고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떠나는 것 자체가 삶의 본질이기도 하다. "일상으로 돌아올 때가 아니라 여행을 시작할 때 마음이 더 편해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나와 같은 부류의 인간일 것이다."라는 작가의 고백이 나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다. 나에게는 귀환할 곳이 아니라 여행 자체가 인생의 원점은 아닐까. 명쾌한 정답을 얻지는 못했지만, 나는 또다시 여행 가방을 쌀 것이다. 그것이 나의 여행이자, 삶이므로.
■ 본문 중에서
# 추방과 멀미 - 25~26p.
독자들이 '추구의 플롯'을 따르는 소설이나 영화, 여행기를 그토록 오랫동안 사랑해왔던 것은 그들이 자신의 인생을 바로 그 플롯에 따라 사고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인생에도 언제나 외면적인 목표들이 있었다. 대학에 입학하기, 좋은 상대를 만나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기, 번듯한 집 한 채를 소유하기, 자식을 잘 키워 좋은 대학에 보내기 같은 것들. 그런데 이런 외면적 목표를 모두 달성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자기 능력보다 더 높이 희망하며, 희망했던 것보다 못한 성취에도 어느 정도는 만족하며, 그 어떤 결과에서도 결국 뭔가를 배우는 존재다. (중략)
마이너리거로 선수 생활을 마감한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원래 추구하던 것과 다른 것을 얻었다. 그러나 그들이 모두 불행했을 리는 없다. 그들은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자기 인생을 살아냈다. 경기에 출전해 최선을 다했고, 사랑하는 파트너를 만나 가정을 꾸렸고, 은퇴한 후에는 코치가 되어 후진을 양성하거나 다른 일을 찾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원래 얻으려던 것 ('메이저리거 되기')보다 더 소중한 교훈들을 얻었(거나 최소한 얻었다고 믿었)을 것이다. 어쨌든 살아남지 않았는가?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이 옆에 있고, 남 보기에는 보잘것없을지언정 평생을 들여 이룬 작은 성취가 있다. 인생과 여행은 그래서 신비롭다. 설령 우리가 원하던 것을 얻지 못하고, 예상치 못한 실패와 시련, 좌절을 겪는다 해도, 우리가 그 안에서 얼마든지 기쁨을 찾아내고 행복을 누리며 깊은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
# 상처를 몽땅 흡수한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 67~68p.
"삶의 안정감이란 낯선 곳에서 거부당하지 않고 받아들여질 때 비로소 찾아온다고 믿는 것. 보통은 한곳에 정착하며 아는 사람들과 오래 살아가야만 안정감이 생긴다고 믿지만 이 인물은 그렇지가 않아요. 하지만 그는 자신이 이런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는 걸 모르죠. 그냥 여행을 좋아한다고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가 여행에서 정말로 얻고자 하는 것은 바로 삶의 생생한 안정감입니다."
누군가가 히말라야의 팔천 미터급 고봉에 올라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안전하게 귀환하는 것을 반복하듯이, 나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로부터 거부당하지 않고 안전함을 느끼는 순간을 그리워하는데, 그 경험은 호텔이라는 장소로 표상되어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노라니 프로그램의 근원도 이제는 알 것만 같다. 나의 유년은 잦은 이주로 점철되었다. 새로운 학교로 전학하여 처음 보는 아이들에게 받아들여지는 원경험들이 쌓여, 그것이 프로그램으로 내안에 저장되었을 것이다.
어떤 인간은 스스로에게 고통을 부과한 뒤, 그 고통이 자신을 파괴하지 못한다는 것을 확인하고자 한다. 그때 경험하는 안도감이 너무나도 달콤하기 때문인데, 그 달콤함을 얻으려면 고통의 시험을 통과해야만 한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을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내 안의 프로그램은 어서 이 편안한 집을 떠나 그 고생을 다시 겪으라고 부추기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어디로든 떠나게 되고, 그 여정에서 내가 최초로 맛보게 되는 달콤한 순간은 바로 예약된 호텔의 문을 들어설 때이다.벨맨이 가방을 받아주고 리셉션의 직원은 내 이름을 알고 있다. '나는 다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이제 한동안은 안전하다.' 평생토록 나는 이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1) 낯선 곳에 도착한다. 두렵다. 2) 그런데 받아들여진다. 3) 다행이다. 크게 안도한다. 4) 그러나 곧 또다른 어딘가로 떠난다.
71~72p.
호텔을 좋아하는 이유는 또 있다. 호텔은,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집이 아니다. 어떻게 다른가? 집은 의무의 공간이다. 언제나 해야 할 일들이 눈에 띈다. 설거지, 빨래 청소 같은 즉각 처리 가능한 일도 있고, 큰맘 먹고 언젠가 해치워야 할 해묵은 숙제들도 있다.집은 일터이기도 하다. 나는 컴퓨터 모니터만 봐도 마음이 무거워진다. 아니, 책꽂이에 꽃혀 있는 책들만 봐도 그렇다. 책들은 내가 언젠가는 하지 않으면 안 될 일, 그러나 늘 미루고 있는 바로 그 일, 글쓰기를 떠올리게 한다. 내가 소파에 누워 있는 순간에도 다른 작가들이 부지런히 멋진 책들을 쓰고 있다고, 그러니 어서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라고 질책하는 것만 같다.
오래 살아온 집에는 상처가 있다. 지워지지 않는 벽지의 얼룩처럼 온갖 기억들이 집 여기저기에 들러붙어 있다. 가족에게 받은 고통, 내가 그들에게 주었거나, 그들로부터 들은 뼈아픈 말들은 사라지지 않고 집 구석구석에 묻어 있다. 집은 안식의 공간이(어야 하)지만 상처의 쇼윈도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족 간의 뿌리 깊은 갈등을 다룬 소설들은 어김없이 그들이 오래 살아온 집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에서 데이비드 실즈는 이렇게 말한다.
고통은 수시로 사람들이 사는 장소와 연관되고, 그래서 그들은 여행의 필요성을 느끼는데, 그것은 행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위해서다.
잠깐 머무는 호텔에서 우리는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롭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잘 정리되어 있으며, 설령 어질러진다 해도 떠나면 그만이다. 호텔 청소의 기본 원칙은 이미 다녀간 투숙객의 흔적을 완벽히 제거하는 것이다.
# 오직 현재 - 89~90p.
나는 많은 나라와 도시를 여행했고, 때로 한곳에서 몇 년 동안 머물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낸 스무 권이 넘는 책들 중에서 단 두 권만이 모국어의 영토 밖에서 쓰였다. 심지어 여행기도 집으로 돌아와 썼다. 영감을 얻기 위해서 혹은 글을 쓰기 위해서 여행을 떠나지는 않는다. 여행은 오히려 그것들과 멀어지기 위해 떠나는 것이다. 격렬한 운동으로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을 때 마침내 정신에 편안함이 찾아오듯이, 잡념이 사라지는 곳, 모국어가 들리지 않는 땅에서 때로 평화를 느낀다. 모국어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지만, 이제 그 언어의 사소한 뉘앙스와 기색, 기미와 정취, 발화자의 숨은 의도를 너무 잘 감지하게 되었고, 그 안에서 진정한 고요와 안식을 누리기 어려워졌다. 모국어가 때로 나를 할퀴고, 상처내고, 고문하기도 한다. 모국어를 다루는 것이 나의 일이지만, 그렇다고 늘 편안하다는 뜻은 아니다. (중략)
여행하는 동안에는 모든 게 현재시제로 서술된다. 과적 픽업트럭에 실려 이동하고, 오토바이 뒷자리에 타고 밀림 속으로 들어가고,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유적의 규모와 그 유적을 부수어버릴 듯 맹렬히 자라고 있는 나무의 위용에 압도된다. 이 모든 것을 경험하는 나라는 주체가 있지만, 그 주체를 초월하는 생생한 현재가 바로 눈앞에 있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련,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은 원경으로 물러난다. 범속한 인간이 초월을 경험하는 순간이다. 자아가 지워지고 현재가 그 어느 때보다 커다란 의미로 육박해오는 이러한 초월의 경험은 시간이 충분히 흐른 뒤에야 언어로 기술할 수 있다. 언어로 옮겨진 후에야 비로소 그것은 '생각'이 되어 유통된다. 유통되지 않고 재고로 남은 기억은 창고 깊숙한 곳에 묻혀 잊혀진다.
#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여행 - 121~122p.
과거는 이미 지나갔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고 알 수도 없다. 그렇다면 그냥 현재를 즐기자. 현재는 무엇인가. 그것은 내가 여행을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과 마주 앉아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하고 있다는 것. 미래는 포기하고 현재에 집중하자고 생각했고 그것은 사실 내가 모든 여행에서 택하는 태도이기도 했다.
내가 여행을 정말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 우리의 현재를 위협하는 이 어두운 두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하는 동안 우리는 일종의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된다. 낯선 곳에서 잘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먹을 것과 잘 곳을 확보하고 안전을 도모해야 한다. 오직 현재만이 중요하고 의미를 가지게 된다. 스토아학파의 철학자들이 거듭하여 말한 것처럼 미래에 대한 근심과 과거에 대한 후회를 줄이고 현재에 집중할 때, 인간은 흔들림 없는 평온의 상태에 근접한다. 여행은 우리를 오직 현재에만 머물게 하고, 일상의 근심과 후회, 미련으로부터 해방시킨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정리했다. 그래, 나는 여행을 하고 제작진은 프로그램을 만들고, 시청자는 그중 아주 일부를 보게 되겠지. '성'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다니지 말고 그냥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 이 순간은 유일하며 다시 오지 않는다. 그러자 마음이 조금, 아니 꽤 많이 편해졌다.
# 여행으로 돌아가다 - 233p.
우리들 대부분은 돌아올 지점이 어딘지를 분명히 알고 여행을 떠난다. 목적지는 바뀔 수도 있다. 그러나 돌아올 곳,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곳, 내 집과 내 물건이 있는 곳은 여정이 끝날 때까지 변하지 않는다. 여행의 원점. 여행이 실패하거나 큰 곤란을 겪을 때 돌아갈 수 있는 베이스캠프. 그곳에서 우리는 피해를 복구하고 다시 삶을 이어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마사이족의 청년은 달랐다. 여행의 목적지는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었고, 오히려 고향이 유동적이었다. 육중한 돌로 지어진 케임브리지대학교는 수백 년 동안 거기 그대로 서 있었다. 아마 청년의 손자가 죽을 때까지도 어디론가 옮겨지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가 떠나온 곳, 그의 부족은 늘 이동 중이었다. 정처 없이 떠도는 것이 삶인 이들에게 여행이란 과연 무엇일까?
- 252p.
자기 의지를 가지고 낯선 곳에 도착해 몸의 온갖 감각을 열어 그것을 느끼는 경험. 한 번이라도 그것을 경험한 이들에게는 일상이 아닌 여행이 인생의 원점이 된다. 일상으로 돌아올 때가 아니라 여행을 시작할 때 마음이 더 편해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나와 같은 부류의 인간일 것이다. 이번 생은 떠돌면서 살 운명이라는 것. 귀환의 원점 같은 것은 없다는 것. 이제는 그걸 받아들이기로 한다.
< 여행의 이유 >
김영하
복복서가,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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