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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묵지/추억의 책장 · 메모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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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떤 주장이나 학설을 내세우면서 옆사람을 겁주고 우쭐대는 일을 때때로 봅니다. 역사적으로도 빙공영사(憑公營私)의 방편으로 자기 의견과 다른 것을 모조리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아 왔으며,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는 게 아닌지요? 잘못된 전통이 잡초 씨만큼 끈질긴 것을 느낍니다. 그런데 그러한 것은 다 가짜 같아요. 그들은 누가 더 정확한 반사체인가를 다투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소화가 제대로 안 되면 먹은 것이 그대로 나옵니다. 먹은 것이 그대로 나오는 것이 정확한 반사체와 비슷한데, 그것이 병인지 모르고 자랑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지요. 사람이란 처음에야 딴 사람의 영향을 받게 마련이라 하더라도 좀 지나면 씹고 걸러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할 것 같은데요.

반사체는 아무리 커 봤자 생명이 없고 열이 없는 것 아닙니까? 우린 비록 작고 작을지라도 발광체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어디 갑자기 부닥치면 불이 번쩍 나는 걸 보면 확실히 빛이 우리 속에 있어요. 나름대로 빛과 열을 내어 세상을 덥히고 밝히는 발광체가 되어, 서로 어울려 세상도 밝히고 스스로와 세상 안에 있는 몹쓸 것들을 녹여 버렸으면 싶습니다.

매다 남은 율무밭과 콩밭 아이(처음) 돌림을 하러 밭으로 갑니더.
스님, 또 언제 한 번 불쑥 나타나이소.
안녕히 계십시오.

1990. 6. 7.



<고집쟁이 농사꾼의 세상사는 이야기.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전우익 지음
현암사,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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