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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묵지/책 더하기 · 리뷰

[너 혼자 올 수 있니] 호련의 소중한 기록, 눈들의 화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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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혼자 올 수 있니
국내도서>여행
저자 : 강성은
출판 : 미래인(미래M&B) 2010.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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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청년 사진가, 호련 이석주
2010년 4월, 채 서른도 안된 나이, 꿈을 다 꾸지도 못할 젊은 나이에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 2008년 말 간암 말기 시한부 3개월이라는 사형선고를 받고, 간의 90%를 잘라내고도 1년 6개월을 맑은 정신으로 버텨낸 그였다. 시한부 선고를 받는 순간 건강, 꿈, 희망 등 모든 것이 무가치해졌다고 느꼈던 호련. '눈'이 무언가를 찾는다는 것과 잘 들어맞는다고 생각했던 그는 지난 겨울 생의 마지막 여행을 준비했다. 비록 육신은 고통으로 만신창이였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맑았던 그는 서릿발처럼 추운 2월에 '러브레터'의 마을 훗카이도를 찾았다. 생애 마지막 소중한 기록으로 눈을 담기 위해서였다.

호련의 소중한 기록, 설국
호련은 여행에서 돌아와 블로그를 통해 그를 응원하던 이들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처절하게 외로웠다던 마지막 여행. 호련은 그 여행에서 꿈을 꾸었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꿈. 그 꿈이 처절하게 외로웠던 여행속의 추억으로만 간직해야한다는게 아프다고 했다. 그의 여행에서 호련은 사람을 담지 않았다. 호련의 고백을 따르자면 그곳에서 사람을 담으면 너무나 그리울 것 같아서 사람을 비우는 작업을 하기위해서 라고 했다. 그가 기록한 훗카이도의 설국은 강성은 시인의 섬세한 언어와 함께 다섯가지의 테마로 담아냈다. <#눈을 만나다, #사랑, #상실, #너 혼자 올 수 있니, #자장가>
나는 그런 그의 아름다운 시선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그 해 5월 즈음 책을 출판하려던 그의 계획은 조금 늦게 다시 겨울이 되서야 세상과 만나게 되었다. 이렇게 우리는 그를 만나고 그의 꿈을 만나게 되었다. 

눈들의 화술
서문에서 김경주 시인은 이 책에 실린 글과 사진의 대화를 상실의 고백이라 부를 것을 주저했다. 누군가에겐 비워내는 삶이 아닌 새로운 삶이 되어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었다. 또 호련 역시 김경주 시인에게 사진이 빛을 담아내는 것이 아닌 빛을 비워내는 작업임을 깨달아간다고 메모를 남겼다고 한다. 우리의 삶도 매일을 살아가며 내일을 오롯이 담아내기 위해 오늘을 비워내야 한다. 오늘 우리도 호련의 사진과 강성은 시인의 글이 빚어낸 결정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눈들의 화술'을 통해 담담히 오늘을 비워내보는건 어떨까.

그의 유고집을 받아든 그의 어머니는 호련의 나무와 함께 그의 책을 묻었다. 그리고 영원히 함께 할 호련을 가슴에 묻었다. 



눈을 만나다 #01 
사람들이 내게 말했다.

어쩌다 슬픈 이야기를 하려 하면 괜찮아 다들 슬픔은 있어
어쩌다 아픈 이야기를 하면 괜찮아 다 나을 수 있어
어쩌다 외로운 이야기를 하면 괜찮아 누구나 혼자야, 라고 말했지
그럼 난 그냥 웃었지

어쩌다 너에게 슬픔이 올 때
어쩌다 너에게 아픔이 올 때
어쩌다 너에게 외로움이 올 때
그 때 넌 정말 괜찮았니?


사랑 #05
아직 사랑해보지 않은 사람도
사랑하고 있는 사람도
사랑에서 소외된 사람도
사랑을 꿈꾸는 사람도

사랑을 모른다

모르는 채로 우리는 사랑을 하고, 또 하고
버림받게 되거나 떠나게 되거나
미쳐버리거나
늙어가거나
사랑에 대해 안다고 생각하거나

그 어느 날에 이르러 
사랑에 대한 긴 휴식의 날이 찾아오겠지

그때까지 우리는 ...


너 혼자 올 수 있니 #15
이야기들이 있어. 왕자와 공주가 만나는 이야기, 먼 나라의 가난한 소녀가 맞은 성탄절 이야기, 새가 물어다 준 마법반지 이야기,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아이 이야기, 성냥 하나로 세계를 태워버린 아이의 이야기, 기러기를 타고 먼 나라를 여행하는 이야기, 기억이 나지 않는 많은 이야기들. 누군가 들려준 이야기들이야. 들릴락 말락 포근하게 깃털로 귀를 간질이며 내가 잠들 때까지 자장가처럼.


<너 혼자 올 수 있니>
사진 이석주, 글 강성은
미래인,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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