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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희경 샘의 이야기를 참 좋아한다. 그녀의 드라마도 좋아한다. 시청률이 최악이다 했지만 '그들이 사는 세상(이하 그사세)'에서 나는 그녀의 마법에 빠져들었었다. 요즈음 시크릿가든의 현빈의 말투를 듣고 있자니 문득 몇년 전 현빈이 출연했던'그사세'가 떠올라 노희경 샘의 책을 꺼내들었다. 오래전 드라마로 볼 땐 몰랐는데 책으로 다시 읽으니 한마디 한마디가 주옥같다.
사랑의 시작. 그 설레임에서 부터 사랑의 끝. 화이트아웃까지 그녀의 대사를 읽고 있자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사랑에 처절하게 아파보았냐고 누군가 묻는다. 그게 사랑이라고 확신하냐고도 묻는다. 나도 모른다. 다만 그 아픔이 견딜 수 없었던 것 만은 확실하다. 너무 아파 삶을 내려놓고 싶은 미련한 생각도 잠시나마 가졌다고 부끄럽지만 고백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을 해맑게 살아낸다. 요즘 책 제목도 있지않은가. 아프니까 청춘이다. 그래. 사랑에 아파보지 않은 청춘이 어디있겠냐 말이다. 그 때문일까. 새로운 사랑에 설레이고 싶은 그 의지조차 망설여지고 뒷걸음질 쳐지는것 또한 어쩔수 없는 노릇이었다. 사랑의 설레임과 망설임이라는 모순 속에서 주춤하는 나를 나도 몰랐다. 그녀의 글 속에서 나는 나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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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이트 아웃 -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모든 게 하얗게 보이고 원근감이 없어지는 상태.
어디가 눈이고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세상인지 그 경계에 대한 분간이 불가능한 상태.
내가 가는 길이 길인지 낭떠러지인지 모르는 상태
우리는 가끔 이런 화이트 아웃 현상을 곳곳에서 만난다. 그렇게 화이트아웃을 인생에서 경험하게 될 때는, 다른 방법이 없다. 잠시 모든 하던 행동을 멈춰야만 한다.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그렇다면 지금 나도 이 울음을 멈춰야 한다. 근데 나는 멈출수가 없다. 그가 틀렸다. 나는 괜찮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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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글들이, 그사세의 지오와 준영의 대사들이 우리내 사랑의 아픔을 모조리 헤집고 송곳처럼 파고든다. 그리곤 이내 다시 담담히 보듬는다. 노래 가사마다 내 얘기인것만 같고 드라마에 감정이입 될 사춘기 소녀는 아니지 않느냐고? 내 얘기인 듯한게 아니라 그녀가 우리 하나하나 모든 사랑의 고뇌를 헤아리고 글로 옮겼기 때문이다. 그 모든 청춘의 사랑의 애잔함을 그녀가 섬세하게 대사로 담아냈다는게 옳다.
그래. 그녀의 다짐처럼 나도 되뇌인다. 시간이 흘러 언젠가 돌아보았을 때 '그래, 그럴 때도 있었지.' 하고 미소를 머금을 수 있으려면. 말로만 글로만 입으로만 사랑하고, 이해하고, 아름답다고 소리치지 말자.
#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 14~15p.
사랑은 내가 먼저 다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버리지 않으면 채워지지 않는 물잔과 같았다.
내가 아는 한 여자,
그 여잔 매번 사랑할 때마다 목숨을 걸었다.
처음엔 자신의 시간을 온통 그에게 내어주고,
그 다음엔 웃음을 미래를 몸을 정신을 주었다.
나는 무모하다 생각했다.
그녀가 그렇게 모든 걸 내어주고 어찌 버틸까, 염려스러웠다.
그런데, 그렇게 저를 다 주고도 그녀는 쓰러지지 않고,
오늘도 해맑게 웃으며 연애를 한다.
나보다 충만하게.
그리고 내게 하는 말.
나를 버리니, 그가 오더라.
그녀는 자신을 버리고 사랑을 얻었는데,
나는 나를 지키느라 나이만 먹었다.
# 그들이 사는 세상_ 그와 그녀의 이야기
50~51p. 설레임과 권력의 상관관계
미치게 설레이던 첫사랑이
마냥 맘을 아프게만 하고 끝이 났다.
그렇다면 이젠 설레임 같은 건 별것 아니라고,
그것도 한때라고 생각할 수 있을 만큼 철이 들 만도 한데,
나는 또다시 어리석게 가슴이 뛴다.
그래도 성급해선 안 된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일은,
지난 사랑에 대한 충분한 반성이다.
그리고 그렇게 반성의 시간이 끝나면,
한동안은 자신을 혼자 버려둘 일이다.
그게 한없이 지루하고 고단하더라도, 그래야만 한다.
그것이 지나간 사랑에 대한,
다시 시작할 사랑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지도 모른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노희경 에세이
헤르메스 미디어,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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