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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사람들] 11명의 불완전한 주인공들의 리얼 인생 버라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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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사람들
국내도서>소설
저자 : 톰 래크먼(Tom Rachman) / 박찬원역
출판 : 시공사(단행본) 2011.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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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

문학계 코즈모폴리턴 '톰 크래먼'의 데뷔작 <불완전한 사람들>.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아마존 독자와 에디터가 뽑은 2010 베스트 북, 그리고 브래드 피트의 영화제작사 '플랜B' 영화화 예정된 매혹적인 이야기라는 타이틀이 붙어 독자들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한다. 

누구나 인생에 베스트극장 한 편씩은 있다고 하지 않는가. 파리 특파원 로이드 버코, 부고 담당 아서 고팔, 경제부 기자 하디 벤저민, 교정교열 편집장 허먼 코헨, 수석 편집장 캐슬린 솔슨, 카이로 통신원 윈스턴 청, 교정교열 편집자 루비 자가, 뉴스 편집장 크레이그 멘지스, 독자 오르넬라 데 몬테레키, 자금관리 이사 애비 피놀라, 발행인, 올리버 오트. 로마의 한 영자 신문사에 얽힌 11명의 불완전한 주인공들의 11개의 완전한 이야기. 그들만의 리얼 인생 버라이어티가 옴니버스 식 구성으로 묶여 펼쳐진다.

나이가 들어 더 이상 그의 기사를 찾지 않게 된 늙은 특파원의 소소한 삶의 재미에서 부터, 불륜으로 기인한 에피소드도 씁쓸한 웃음을 자아낸다. 런던에서 새 일자리를 찾은 경제부 기자와 그녀를 등쳐 먹고 살고 있다는 아일랜드인 남자친구 이야기에서 시트콤의 한 장면이 그려질 수 밖에. 그러나 우리의 삶이 어디 기쁘고 코믹한 일만 있을 소냐. 신문의 역사를 집필하기 위해 은퇴한 허먼에게는 비장함이 보였으며, 자금을 담당했던 애비와 신문사의 대표격이었던 올리버의 이야기에서는 지독한 경제 논리에 설 곳을 잃어가는 종이 신문의 아픔이 보인다. 

결국 신문사는 문을 닫았고, 11명의 주인공들도 새로운 삶 혹은 고요한 삶을 살아가는 떫은 마무리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우리의 인생도 절정의 희열을 맛볼 때가 있는가 하면 나락으로 떨어져 쓰디쓴 맛을 보일 때도 있다. 그리고 때론 소설의 결말처럼 잔잔하기도 혹은 견딤의 미학 속에 떫디 떫은 맛을 선사하기도 한다. 신문사를 터전으로 살아가던 많은 이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서 또 다른 삶 혹은 비슷한 삶을 찾아 나가는 모습에 취업난으로 얼룩진 21세기 대한민국이 크로스 오버 되는 것도 자연 수순이었다.

한편으론 신문사의 흥망성쇠와 어찌 보면 우리 인생의 축소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폐간을 다시 고려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던 열성적인 독자와 같은 사람이 우리 삶 속에 존재한다면 성공한 삶이었다고 말해도 좋지 않을까?

■ 본문 중에서

103p.
그녀는 넉넉하게, 그리고 전문가처럼 음식을 하지만 먹지는 않는다. 그녀는 버터 덩어리와 엄청난 설탕과 무지막지한 양의 더블 크림이 요리 재료에 섞이며 사라지는 것을, 그녀 엉덩이에 살로 나타날 준비를 하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그녀가 만든 음식들, 감자 피사의 사탑, 시애틀 소용돌이 쿠키, 레몬 타라곤 소소를 곁들인 참깨 크러스트 연어 케이크 등은 결국 신문사로 가 직원들을 위해 펼쳐지게 된다. 정신이 딴 데 팔려 있는 편집자들은 오가며 한 입씩 먹고, 카페에 흘리기도 한다. 그동안 그녀는 책상에 앉아 그 모습을 바라보며 그들의 칭찬만으로 식사를 대신한다.

116p.
나는? 난 주말이 두려워. 얼마나 비참한 일이니? 난 휴가가 없었으면 좋겠어. 휴가에 뭘 해야 할지를 몰라. 휴가는 내가 얼마나 별 볼일없는 여자인지 4주 내내 알려주는 장치 같아. 난 어디든 같이 갈 어느 누구도 없어. 날 봐. 난 이제 마흔이나 다름없는데 아직도 말괄량이 삐삐를 닮았잖아

204p.
"내가 늙고 꼬부라져서 의자에 앉아 있으면, 당신이 와서 내 손을 잡아줘. 알겠지? 그게 당신 할 이이야, 알았지?"
그가 그녀의 손을 잡고 손에 입을 맞춘다. "아니." 그가 말한다. "당신이 늙고 꼬부라졌을 땐 난 사라지고 없을 거야. 지금 당신 손을 잡아줄게. 나중에, 당신은 이걸 기억해야 할 거야."

213p.
"난 완전히 강박증 환자야. 내가 어떤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와중에 실수로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건다는 생각을 자꾸 하는 겅. 이거 꺼져 있는 거지, 그렇지?" 그가 다시 탁 하고 휴대폰을 닫는다.

357p.
탑승 게이트에 오자 애비는 그녀가 늘 겪는 여행 혼수상태에 빠진다. 긴 여행 동안은 무기력증이 초절임 물처럼 그녀 뇌에 스며든다. 이 상태가되면 그녀는 손에 잡히는 과자를 닥치는 대로 야금야금 먹고, 낯선 사람들의 신발에 최면상태가 되어가다, 철학적으로 변해 결국 울 것처럼 슬픈 상태가 된다.
...
비행기가 이륙하는 힘과 기울어짐 때문에 그녀가 잠을 깬다. 그녀는 꿈을 꾸고 있었다. 무슨 꿈이었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녀는 머리 위 짐칸에 있는 서류들이 필요하지만 안전벨트 사인이 아직 켜져 있다. 그녀는 다시 여행 혼수상태로 빠져들며 멍하니 창밖을 내다본다. 아래로 구름이 끝없는 매트리스가 되며 가라앉는다. 

422p.
그러다 마지막 날이 되었고, 끝이 났으며, 그들은 모두, 갑자기, 자유가 되었다.
일자리가 줄을 선 이들도 있었지만 많은 수는 그렇지 못했다. 몇몇은 좀 쉴 계획을 세웠다. 다른 이들은 아예 언론계를 벗어나겠다고도 했다. 어쩌면 이게 전화위복이 될지도 몰라, 그들은 그렇게 말했지만 어떻게 전화위복이 된다는 건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불완전한 사람들>
톰 래크먼(Tom Rachman) 지음, 박찬원 옮김
시공사,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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