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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예보] 꿈조차 꿀 수 없던 제자리 인생들의 기막힌 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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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예보 (양장)
국내도서>소설
저자 : 차인표
출판 : 해냄출판사 2011.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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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

이제는 작가라는 호칭이 어색하지 않은 차인표 작가의 두 번째 소설이 출간되었다. 대한민국 대표 배우로 15년이 넘도록 대중의 사랑 받던 그가 2009년 위안부 이야기를 다룬 첫 장편소설 <잘가요 언덕>을 출간했을 때, 뭇 독자들은 따뜻한 격려와 찬사를 보냈었다. 이번엔 인생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세 남자의 기막힌 이야기를 풀어냈다. 비록 지금 당장은 빛이 나지 않을지라도 '희망'을 품고 '오늘'을 충실히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에게 보내는 뜨거운 찬사이다. 대한민국 보통 사람들을 위한 격려사이다.

매사에 되는 일 하나 없고 사는 게 그저 고달픈 나고단. 인생 한방을 노리며 주식 투자에 손을 댔다가, 가산을 탕진하다 못해 빚 독촉에 까지 시달리는 이보출. 조직에서 벗어나려 가까스로 마련한 사업 자금을 이보출에 의해 고스란히 날리고, 희귀 병에 걸린 딸에게는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마음이 아픈 아빠 박대수. 각기 다른 이유로 삶의 막다른 골목에 선 세 주인공의 '오늘' 이야기는 어떻게 기막힌 반전을 이룰 것인가. 그들의 하루. 좌충우돌 펼쳐지는 이야기에 큭큭대고 웃음을 짓다가, 이내 눈시울이 붉어진다.

당초 영화 혹은 연극의 대본으로 준비되었다가 형태를 가다듬어 소설로 출간이 되었다고 한다. 웃음 가득 머금은 연극으로 나왔어도 좋았을 텐데. 물론 소설로도 후루룩 마시듯 읽고 나니 유쾌하게 위로 받고 한결 가벼워진 기분이 이었다. :-)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즐거움, 괴로움, 허탈함. 우리 사는 삶이란 게 다 그런 것 아니겠는가. 서로 부대끼며 어우러지는 중에 상처도 받게 되고, 서로 보듬고 격려하는 덕에 행복하고 감사한 삶을 영위할 수도 있으리라. 결국 부대끼며, 의지하고, 서로 토닥거리며 끝까지 살아야 하기에. 휴식은 할 수 있지만 절대로 중단해서는 안 되는 것. 그것이 인간의 삶이다.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누군가 힘들 때 뒤돌아 안아주고, 스스로 지쳐 꺾였을 땐 주위에서 손을 잡아 주기에 그 어떤 고난도 극복해내고 살아가지 않는가 말이다.

지금 주위를 둘러보고 힘들어 하는 이가 있다면 잠시 위로 한 마디, 따스한 미소를 한 번 건네보자. 그것 만으로도 한 사람의 인생이 다시 환하게 빛날 수 있을 테니까.



■ 본문 중에서

4전 5기. 네 번을 실패해도 다섯 번째에 성공한다. 가슴 뭉클한 말이다. 그런데 나에게 있어서 '사전오기'는 죽을 사에 앞 전. 거만할 오에 기운 기 자였다. 사전오기(死前傲氣), 즉 '죽기 전까지 오기를 부린다'는 뜻이다.
그렇다. 나는 그동안 안 되는 일을 되게 하기 위해 오기를 부리며 너무나 고단하게 살았다. - 37p

억울함. 인간이 가장 견디기 힘든 감정은 억울함이다. 아닌 것을 그렇다고 할 때, 인간은 억울해진다. - 58p.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누군가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결정권자는 얼마나 고독하겠는가... ... 그러나 결정권자에게 있어서 더 괴로운 상황은, 이성을 잃어버릴 만큼 더 고통스러운 때는, 잘못된 결정을 내렸을 때가 아니라는 것을 젊은 감독을 보면서 느낄 수 있다. 결정권자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때는 더 이상 결정을 내릴 수 없게 됐을 때다. - 143p.

쌔근쌔근 작은 숨을 몰아쉬며 잠들어 있는 갓 태어난 봉봉이의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구체적인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그것 어떤 현자가 친절하게 조목조목 가르쳐주거나 베스트셀러에서 읽은 내용이 아닌, 그야말로 순간적으로 떠오른 한 조각의 생각이었다. 마치 누군가 주사기에 그 생각을 담아 내 혈관에 주입한 것처럼, 별안간 느낀 깨달음이었던 것이다. 내 사랑하는 딸 봉봉이는 이 험난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짧지만 명확했다.
나처럼 살면 안 된다. - 156p.

사랑을 한다는 건, 밥을 먹는다, 잠을 잔다, 꿈을 꾼다, 누군가가 흘려놓은 밤하늘 은하수를 바라본다, 눈부신 햇살을 느낀다, 품어준다, 불쌍히 여긴다, 함께 울어준다, 오래 참으며 기다린다, 위로한다, 눈물을 닦아준다, 함께 기뻐한다, 손을 잡는다, 이야기를 들어준다, 짐을 나누어 진다, 같이 걷는다, 허리를 굽혀 안는다, 힘껏 안는다, 더 더 힘껏 온 힘을 다해 안아준다, 이 모든 것입니다.
사랑은 하는 겁니다. 내일이나 모레 할 거라고 얘기하거나 계획하는 게 아니고 그냥 지금 바로 하는 것, 그게 사랑입니다. - 225p.

바로 그 순간.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나는 보았다. 슬픔이 영혼을 꽉 채울 때, 인간이 어떤 표정을 짓는지를. 악을 쓰던 아저씨의 화난 두 눈에 순식간에 눈물이 스며들더니 이내 눈물은 방울되어 떨어지고, 그 눈물방울이 땅에 닿기도 전에 체념한 듯한 그의 눈동자는 마취제를 뿌린 것처럼 무표정하게 변했다. 이윽고 "허"하고 토해 낸 그의 작은 한숨은 신음 소리조차 낼 수 없는 고통이 영혼을 짓누르는 소리처럼 들렸다. 어쩌면 농담조로 내뱉은 반포대교로 가서 뛰라는 한 마디에 그는 세상을 다 잃은 것처럼 마음 깊이 아파했다. 그때 나는 주먹을 들어 직접 가격하지 않고도 상대방을 처절하게 아프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242p.

<오늘예보>
차인표 지음
해냄,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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