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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실루엣/해외 여행기

[중국, 북경] 13인의 황제가 잠든 명13릉(明十三陵, Ming Dynasty Tom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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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궁전으로 가는 길, 정릉(定陵)의 명루(明楼)



■ 13인의 황제가 잠든 명13릉(明十三陵, Ming Dynasty Tombs)


    - 주소 : 北京市 昌平区 明十三陵镇

    - 전화 : (+86) 010 6076 1422

    - 홈페이지 : http://www.mingtombs.com/

    - 운영시간 : (11月~3月) 08:30~16:30, (4月~10月)08:00~17:00

    - 입장료(괄호는 비수기 입장료) : 신도 35元(25元), 정릉 65元(45元), 장릉 50元(35元), 소릉 35元(25元)

    - 찾아가는 길 : 지하철 치엔먼(前门) 앞 베이징 관광버스터미널(北京旅游集散中心:북경여유집산중심)에서 투어버스 이용



베이징 외곽 북서부에 위치한 명13릉은 명나라의 황제 16명 중 13명(3대~16대)이 잠들어 있는 무덤이다. 중국의 문화보호지역으로 지정되어 지금은 13릉 중 3개의 릉(정릉, 장릉, 소릉)과 신도(神道)만을 개방하고 있다. 명(明)나라가 수도를 베이징으로 천도한 1420년부터 명나라가 멸망하는 1644년까지 약 200여 년 동안 조성된 무덤으로 현존하는 중국의 황릉 중 가장 오랜 기간 건설된 것으로 알려진다.


△ 명13릉 정릉(定陵) 매표소, 정릉 입장료 - 65元(비수기 45元)



■ 명(明)나라 멸망을 초래한 13대 황제, 신종(神宗) 만력제(萬曆帝, 1563~1620)


정릉(定陵)에 묻혀 있는 황제의 성명은 주익균(朱翊鈞), 묘호는 신종(神宗), 재위(在位) 시 연호는 만력제(萬曆帝)이다. 륭경제의 3남으로 태어나 1572년 10살의 나이로 황위에 올라 1620년까지 48년간 재위하여 명나라 황제 중 통치 기간이 가장 길지만 가장 무능한 왕으로 손꼽힌다다. 위로 형이 둘 있었지만 모두 일찍 죽고 6살의 어린 나이(1568년)에 황태자가 되었다. 즉위 초기 만력제는 스승인 장거정(張居正)에게 정무를 맡기고 개혁을 추진하였다. 개혁 정책은 만력중흥(萬曆中興)이라 불리는 사회, 경제, 문화적 발전을 가져왔고, 은(銀)의 유입이 크게 늘면서 명대 최고의 전성기를 이루기도 했다.


하지만 1582년 장거정(張居正)이 죽고난 후, 직접 정치에 나서는 친정(親政)이 시작되었는데, 반대파들이 입을 모아 장거정의 비리를 들추며 공격했고, 1584년 장거정 비리사건 이후 정치판에 환멸을 느꼈다는 핑계로 약 30여년 간 정사를 돌보지 않고 업무를 거부하여 나라 전체가 깊은 수렁에 빠졌다. 가뜩이나 기울어가는 나라의 운세에 민심까지 뒤숭숭해졌고, 만력제(萬曆帝)의 태정(怠政)으로 명은 더욱 빨리 몰락하였고, 그가 죽은 뒤 24년 후 완전히 멸망하고 만다. 명(明)나라 멸망의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만력제(萬曆帝)는 정치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21세 때부터 능을 조성하는데 힘을 기울였는데, 부친의 능인 소릉(昭陵)보다도 자신의 능을 더 크게 만들었으며, 능 조성을 위해 하루에 2~3만 명을 동원했다고 전해진다. 만력제(萬曆帝)는 1620년 죽은 뒤 정릉(定陵)에 안장되었으나, 1960년대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 시기에 홍위병들에게 파헤쳐져 유골이 소각되는 일을 겪었다.


△ 만력제(萬曆帝)의 신공성덕비(神功聖德碑). 

거북의 코를 만지면 자손 대대로 번영을 할 수 있다고 전해져 

많은 관광객들이 코를 만지며 기념 사진을 찍는 덕에 코 부분이 반질반질하다.



■ 비문(碑文)이 없는 무자비(無字碑), 만력제(萬曆帝)의 신공성덕비(神功聖德碑)


원래 비석에는 능의 주인의 공적을 기리는 비문이 가득 적히기 마련인데 신종 만력제(萬曆帝)의 성덕비(聖德碑)에는 비문(碑文)이 단 한 글자도 적혀있지 않은 것을 볼 수 있다.


명나라 태조 주원장은 신하들에게 비문을 찬할 것을 명하였는데, 유신(儒臣)들이 써 올린 비문의 내용은 듣기 좋게 써놓은 칭찬하는 말 뿐이었고, 후세 자손들에게 경계하는 말 한마디가 없으므로 비석만 세우고 비문을 새기지 말라는 어명을 내렸다. 이후 주원장은 친히 1,107자나 되는 비문을 찬하고, 새로이 명태조어제황능비(明太祖御製皇陵碑)라 불리는 비석을 세웠다. 이후 비문을 담당했던 한림원(翰林院)의 관리들이 비문을 쓰지 않게 되었고, 명나라 시대 제왕들의 글자 없는 비석이 이어졌다. 


비문 없는 비석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의혹을 갖고 있으나 비문이 새겨지지 아니한 이유를 뚜렷하게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명 중기 이후에는 정치가 타락하여 아무도 선황의 공덕을 논하려 들지 않아 비문이 없는 채로 남게 되었다고도 전해지고, 실제로 만력제는 태정(怠政)으로 인해 비문에 적어넣을 공적이 전혀 없기 때문에 적을 글이 없었다는 풍문도 전해진다.


△ 명13릉, 정릉(定陵)의 입구 능문


정릉(定陵) 입구에 들어서니 아직 겨울의 끝자락의 찬 바람이 불고, 비수기에 도착한 탓에 관광객이 많지 않았다. 방문하는 장소마다 대기나 줄서서 기다림 없이 바로바로 입장을 할 수 있었다. 탁 트인 전경에 명루를 바라보니 수 백년 전 명(明) 황제(皇帝)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하다.


△ 명13릉 정릉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저 멀리 눈에 들어오는 명루(明㥪)

명루는 명13릉 황릉이 갖고 있는 상징적인 건축물로 명루 내부에는 고인의 성호비(聖號碑)를 보관하기 위한 건물이다.


△ 정릉 안내 표지판 앞에서 명13릉과 정릉(定陵)의 유래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홍투어의 최미화 가이드



■ 명13릉(明十三陵, Ming Dynasty Tombs)에 피장된 황제들


명나라 황제

능 명칭

 묘호 

연호

재위 기간

부장 황후 수

공개 여부 

3대

장릉(長陵)

성조(成祖)

영락제(永樂帝)

1403 ~ 1424

1 명

공개 

4대

헌릉(獻陵)

 인종(仁宗)

 홍희제(洪熙帝)

 1424 ~ 1425 

1 명

 

5대

경릉(景陵)

 선종(宣宗)

 선덕제(宣德帝)

1426 ~ 1435

1 명

 

 6대

유릉(裕陵)

영종(英宗)

정통제(正統帝)

천순제(天順帝)

1436 ~ 1449

1457 ~ 1464

2 명

 

 8대

무릉(茂陵)

 헌종(憲宗)

 성화제(成化帝)

1465 ~ 1487

3 명

 

 9대

태릉(泰陵)

효종(孝宗)

홍치제(弘治帝)

1488 ~ 1505

1 명

 

10대

강릉(康陵)

무종(武宗)

정덕제(正德帝)

1506 ~ 1521

1 명

 

11대

영릉(永陵)

세종(世宗)

가정제(嘉靖帝)

1522 ~ 1566

3 명

 

12대

소릉(昭陵)

목종(穆宗)

융경제(隆慶帝)

1567 ~ 1572

3 명

공개 

13대

정릉(定陵)

신종(神宗)

만력제(萬曆帝)

1573 ~ 1620

2 명

공개 

14대

경릉(慶陵)

광종(光宗)

태창제(泰昌帝)

1620 

3 명

 

15대

덕릉(德陵)

희종(熹宗)

천계제(天啓帝)

1621 ~ 1627

1 명

 

16대

사릉(思陵)

의종(毅宗)

숭정제(崇禎帝)

1628 ~ 1644

1 명

 


△ 풍수지리 사상 최고의 입지에 자리하고 있다는 명13릉. 정릉(定陵)의 명루(明)에서 내려다본 전경



△ 지하궁전 현궁(玄宮)으로 향하는 길



■ 유일하게 발굴된 지하궁전, 정릉(定陵, Dingling)의 현궁(玄宮)


명의 13번째 황제인 신종, 만력제가 잠들어 있는 곳이다. 1956년 13릉의 한 곳인 정릉(定陵)의 발굴을 결정하였고, 지하궁전은 이렇게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발굴 초기 자료 부족으로 어림짐작으로 발굴 작업이 시작되었고, 발굴단은 근 1년 만에 입구를 발견하게 된다. 입구를 개방한 후, 현궁(玄宮)에 진입하니 엄청난 양의 보물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수백 년간 진공상타에 있던 보물들이 공기와의 접촉 때문에 상당 수 소실되고 말았다. 13릉 중 정릉(定陵) 하나만 발굴된 이유는 바로 유물 보존을 위한 기술에 대해 자신이 없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지하궁전 발굴이 끝나고 1959년 9월 드디어 정릉박물관이 정식으로 개관하게 되는데, 당시 박물관 주임은 손님 맞을 준비를 한는데 거슬린다는 이유로 황제와 황후의 시신이 들어 있던 관곽(棺槨)을 산등성이에 버리고 만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1966년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이 시작되고 홍위병들에 의해서 지하궁전의 유물이 정리되어 있는 건물이 화재로 소실된다. 홍위병들은 황제화 황후의 시신 3구와, 초상화, 발굴 사진 등을 모아놓고 모두 소각시켜 버렸고, 1966년 8월 24일 정릉 앞 광장은 불바다가 되고 만다. 일부 유물들은 정릉(定陵) 내에 있는 13릉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어 관람객들도 전시물을 관람할 수 있다.


무덤 입구를 들어서면 긴 복도를 따라 전전(前殿), 중전(中殿), 후전(後殿)이 이어져 있고, 중전의 양 쪽으로 좌우에 2개의 배전(配殿)이 자리잡고 있다. 후전은 현궁(玄宮)이 주실로 중앙에 황제의 재궁(梓宮)과 양쪽으로 두 황후의 재궁이 놓여있다.

△ 지하궁전 현궁(玄宮)의 투시도 (출처: 경인일보) 


△ 관광객들이 소원을 빌며 던져 놓은 돈에 묻혀버린 지하궁전의 금정(金井, Geomantic Hole)



■ 땅의 기운을 소통시켜주는 현궁(玄宮)의 환기구, 금정(金井, Geomantic Hole)


금정(金井, Geomantic Hole)의 원래 목적은 환기구로, 돌로 둘러싸인 채 지하에 위치한 지하궁전 현궁(玄宮)에 땅의 기운이 소통할 수 있도록 뚫어놓은 구멍이다. 현재는 관광객들이 소원을 빌며 돈을 던져 놓아 수북이 쌓인 돈으로 금정이 막히기 일쑤다. 이렇게 던져진 돈이 수북히 쌓여 있지만 이 돈은 아무도 손을 대지 않는다. 이 돈을 가져가면 다른 이의 나쁜 액운을 가져오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이 돈들은 명 13릉 곳곳을 수선하거나 관리하는데 쓰인다고 한다.


△ 빛이 스며든 지하궁전 현궁(玄宮)의 출구(出口)로 사람인(人)자 모양을 하고 있는 금강벽(金剛壁)


△ 명13릉, 정릉(定陵)의 출구(出口)



■ 홍투어(Hongtour)의 1일 북경외곽투어


    - 홍투어(Hongtour) : www.hongtour.com/ (북경외곽투어 ☞ 바로가기)

    - 포함사항 : 만리장성 왕복케이블카, 명13릉 정릉 입장료, 용경협(빙등제) 입장료, 전 일정 전용버스 및 가이드, 중식(현지식)


베이징 외곽은 지하철, 버스 등의 대중교통으로 이동이 쉽지 않고 중국내에서는 영어도 통하지 않기 때문에 홀홀단신으로 외곽지역 투어를 하기는 쉽지 않다. 이 때문에 현지 투어를 이용하는 것이 효율적이며, 베이징 시내부터 베이징 외곽 북서부 용경협으로 이동하는 길에 위치한 나란히 위치한 "명13릉의 정릉 → 만리장성(팔달령장성) → 용경협" 을 하루 코스로 다녀오는 투어를 이용하자. 홍투어의 1일 북경외곽투어는 위의 순서로 이동하며, 왕징시에서 출발하여 명13릉까지는 버스로 40분, 그리고 투어를 모두 마치고 용경협에서 다시 북경 시내까지는 약 2시간 정도의 이동 시간이 소요된다.



[중국, 북경] 13인의 황제가 잠든 명13릉(明十三陵, Ming Dynasty Tombs)

FEB 2014

Li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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