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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묵지/책 더하기 · 리뷰

[Room] 다섯 살 아이의 시선으로 그려진 범죄의 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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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 (양장)
국내도서>소설
저자 : 엠마 도노휴 / 유소영역
출판 : 21세기북스(북이십일) 2010.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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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om'은 오스트리아에서 실제 벌어진 Josef Fritzl 사건을 다룬 이야기이다. Fritzl은 본인의 딸을 24년 동안이나 성적 노예로 지하실에 감금했고, 지하실에 갇힌 소녀는 7명이나 되는 아버지의 아이를 낳았다. 엠마 도너휴는 이 끔찍한 얘기를 토대로 Room을 써냈다. 19살에 납치된 후 갖은 방법으로 탈출을 시도해보지만 끝내 좌절하고 7년간이나 감금된 소녀의 이야기로 각색했다. 소녀는 그 방안에서 두 아이를 낳았지만 첫째는 출산 후 곧 사망하고 둘째 아이인 '잭'만이 살아 남아 다섯번 째 생일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다섯살 생일이 지난뒤 얼마 후 아이와 엄마는 대 탈출극을 감행한다.

이런 끔찍한 범죄를 순수한 다섯 살 아이의 눈을 통해 감동적으로 그려낸 그녀의 천재성을 돋보였다. 이 책을 통해서 엠마 도너휴의 문체를 처음 접해 보았는데 시종일관 창의적인 전개와 상상력 넘치는 단어 배열에 읽는 내내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섯살 소년에게 갇힌 방안이 세상의 전부였고 천창을 통해 바라보는 바깥세상과 텔레비전 안의 것들은 진짜가 아니었다. 잭은 세상에 나온뒤 혼란스러운 몇 주를 보낸다. 잭의 엄마는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약을 먹고 자살을 기도하지만 방안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내 굳건히 잭을 지키러 돌아온다.

내 의지대로 힘이 닫지 않는 일에 대해 분노를 느끼는 건 당연하다. 비단 잭의 엄마처럼 방안에 갇혀있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그 어떤 이(절대자라고 표현할 순 없겠다. 절대자 행세를 하는 그 어떤 이라고 해두자.)로 인해 내 의지와 상관없이 결과가 좌지우지될 때의 모멸감과 허탈감이란... 인간으로서 그런 상황에 맞딱드렸을 때 누구라도 견딜 수 없는 괴로움을 느낄 것이다. 꿋꿋이 버텨내고 아이를 지켜낸 잭의 엄마가 굳건해보이고 그녀의 용기를 칭찬해주고 싶다. 그렇지만 그 꽃다운 시절을 흘려보낸 그녀가 가련하고 또 가련한 건 어쩔 수 없다.

우리에겐 가끔 혼자이고 싶은 순간도 있다. 그렇지만 아무리 세상이 음험하고 음험한 존재들이 많다고 하더라도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고 사는 삶이란 상상조차 해볼 수 없다. 옮긴이는 껍질을 벗고 성장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일이라고 한다. 그렇다. 그들이 방에서 나와 껍질을 벗고 성장하는 것처럼 우리도 삶의 매 순간 순간을 우리만의 방에서 나와 탈피하고 성장한다.

"안녕, 방아."


# 부서진 씨앗 - 328p.
"엄마?"
"왜?"
"우리 갇혔어?"
"아냐."
엄마는 퉁명스럽게 내뱉듯이 말했다.
"절대 아니지. 왜, 여기가 싫어?"
"그러니까 여기 꼭 있어야 하느냐고."
"아니, 우린 새처럼 자유야."

# 해먹이 있는 집 - 461p.
뭔가 웅웅 하는 소리가 들렸다. 꽃을 들여다보니 정말 놀라운 것이 있었다. 
노랗고 검은 부분이 있는 커다랗고 살아 있는 벌이었다. 벌은 꽃 안에서 춤추고 있었다.
"안녕."
벌을 쓰다듬으려고 손가락을 내밀었더니...... 
아야! 손에서 지금까지 느껴 본 것 중에 가장 지독한 아픔이 폭발했다.
"엄마."
나는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엄마는 뒷마당에도 없었고, 내 머리에도 없었고, 아무 데도 없었다. 
나는 혼자 아플 수 밖에 없다.

# 이사 - 525p.
"모든 사람은 각자 자기 방을 가져야 한다는 책을 대학에서 읽은 적이 있단다."
"왜?"
"그 안에서 생각을 하려고."
"난 엄마랑 같이 있는 방에서도 생각할 수 있어."
나는 기다렸다.
"엄마는 왜 나랑 같이 있는 방에서는 생각을 못 해?"
엄마는 얼굴을 찡그렸다.
"대부분의 시간은 할 수 있어. 하지만 가끔은 나만의 공간이 있는 것도 좋을 거야."


<Room>
Emma Donoghue 지음, 유소영 옮김
21세기북스,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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