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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무소유의 정신과 철학을 저서를 통해 알리던 법정 스님이 법랍 56세, 세수 79세의 삶을 마감했다. 그 후로 며칠 스님의 책 '무소유'를 꺼내들어 읽고 또 읽었다. 그러다 아쉬움에 목말라 스님의 저서들 몇 권을 주문해두고 몇 날 며칠을 흘리다 읽지 못하고 꽤 많은 날들이 흘렀다. 많은 책으로 둘러쌓인 2층 방 안에서, 당장 읽고 싶어 욕심이 나는 책들에 밀려 스님의 책은 그렇게 내 곁에 있었다. 무소유의 삶과 정신을 알리신 법정 스님의 철학과 글을 무진 좋아하면서도 책 욕심을 부리는 철없음이 부끄러웠다. 그렇게 한 해를 마무리 하려고 읽은책들을 돌이켜 생각하다 보니 읽지못해 아쉬운 책 몇 권들 가운데 단연 스님의 책이 떠올라 꺼내 읽기 시작했다.
"살 때는 삶에 철저해 그 전부를 살아야 하고, 죽을 때는 죽음에 철저해 그 전부가 죽어야 한다." 스님의 철학이 스며든 말씀이다. 이 책을 엮어낸 류시화 시인의 말처럼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요,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늙음이 아니라 녹스는 삶이다. 지금까지 내 삶은 어떠한 삶이었는가? 나는 순간순간 올곧이 내 삶을 살아내고 있는가. 스스로 수차례 반문해 보게되었다. 다른이의 운을 훔친것은 아닌지 의심이 될 만큼 넘치는 행운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주체할 수 없이 벅찬 감격에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때로는 숨이 밭아 오르는듯한 슬픔에 휩쌓여 삶을 내려놓고 싶던 순간도 있었고, 말을 아끼지 못하고 내뱉음에 후회하기도 많이 했다.
그 말씀처럼 무게있는 삶을 살아내기 위해, 오롯이 내 삶을 살기위해 반성을 해야한다면 단연 '말 아끼기' 이다. 지난 며칠간 만난 수많은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굳이 내뱉지 않았도 되었던 말이 80%는 족히 넘었다. '내 차가..', '지난번 소개팅에서..', '아침에 모닝콜인 전화영어가..' 등. 그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았을 나의 이야기가 척,척,척 -괜찮은 척, 외롭지 않은척, 심지어 잘난척(?)-으로 변모되어 무게없는 말, 소음뿐인 말로 전락하여 흘러 지나갔다.
말을 안 해서 후회되는 일보다도 말을 해버렸기 때문에 후회되는 일이 많다고 스님도 말씀하신다. 생각이 떠오른다고 해서 불쑥 말해 버리면 안에서 여무는 것이 없고 그렇기 때문에 내면은 비어버린다고. 그리하야 신년에는 안에서 말이 여물도록 인내함에 조금더 치중한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책은 생물이다.
정정한다. 나에게 책은 생물이다.
다시 한 번 정정한다. 내 삶에 가르침과 안락함을 주는 글들로 가득찬 이런 책이야 말로 생물이다.
# 그리운 사람 - 96p.
우리가 진정으로 만나야 할 사람은
그리운 사람이다.
곁에 있으나 떨어져 있으나
그리움의 물결이 출렁거리는
그런 사람과는 때때로 만나야 한다.
그리워하면서도 만날 수 없으면
삶에 그늘이 진다.
그리움이 따르지 않는 만남은
지극히 사무적인 마주침이나
일상적인 스치고 지나감이다.
마주침과 스치고 지나감에는
영혼의 울림이 없다.
영혼의 울림이 없으면
만나도 만난 것이 아니다.
# 존재 지향적인 삶 - 118~119p.
내일을 걱정하고 불안해 하는 것은
이미 오늘을 제대로 살고 있지 않다는 증거이다.
오늘을 마음껏 살고 있다면
내일의 걱정 근심을 가불해 쓸 이유가 어디 있는가.
죽음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것은
생에 집착하고 삶을 소유로 여기기 때문이다.
생에 대한 집착과 소유의 관념에서 놓여날 수 있다면
엄연한 우주 질서 앞에 조금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묵은 허물을 벗어 버리는 것이므로.
# 무학 - 129p.
무학(無學)이란 말이 있다.
전혀 배움이 없거나 배우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많이 배웠으면서도 배운 자취가 없음을 가리킴이다.
학문이나 지식을 코에 걸지 말고
지식 과잉에서 오는 관념을 경계하라는 뜻이다.
지식이나 정보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롭고 생기 넘치는 삶이 소중하다는 말이다.
지식이 인격과 단절될 때
그 지식인은 가짜요, 위선자이다.
우리는 인형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인간이다.
우리는 끌려가는 짐승이 아니라
신념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아야 할 인간이다.
# 단 한 번 만나는 인연 - 139p.
차(茶)의 세계에 일기일회(一期一會)란 말이 있다.
일생에 단 한 번 만나는 인연이란 뜻이다.
개인의 생애로 볼 때도
이 사람과 이 한때를 갖는 이것이
생애에서 단 한 번의 기회라고 여긴다면
순간순간을 뜻 깊게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몇 번이고 만날 수 있다면
범속해지기 쉽지만,
이것이 처음이면서 마지막이라고 생각할 때
아무렇게나 스치고 지나칠 수 없다.
기회란 늘 있는 것이 아니다.
한번 놓치면 다시 돌이키기 어렵다.
# 뒷모습 - 172p.
늘 가까이 있어도
눈 속의 눈으로 보이는,
눈을 감을수록 더욱 뚜렷이 나타나는 모습이
뒷모습이다.
이 모습이 아름다워야 한다.
그리고 이 뒷모습을 볼 줄 아는
눈을 길러야 한다.
앞모습은 허상이고
뒷모습이야말로 실상이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법정 잠언집, 류시화 엮음
조화로운삶,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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