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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인문학] 현장의 인문학, 생활 속의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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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인문학
국내도서>인문
저자 : 구효서,최석기,김도연,박종기,신창호
출판 : 경향미디어 2011.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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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

멀게만 느껴졌던 인문학을 대중과의 친목을 꾀한다. 책의 서두에 신창호 선생이 쓰신 글 중 '인문학의 길이 아니라 길위의 인문학(人文學)이라니 얼마나 재미있는 표현'이냐는 감탄섞인 글이 있다. 실제로 대중들은 고매한 인문학의 영역에 쉽사리 접근하지 못했다. 학자들만 공부하는 영역이라 치부해버리기 일쑤였다. 독서를 좋아하고 인문학에 관심이 많은 나였지만 '인문(人文)'영역을 겉돌기만 했다. 우리 모두가 나름의 길을 걷듯 그 길위에 이제 인문학이 내려와 함께 걷는다. 현장의 인문학, 생활 속의 인문학 캠페인으로 <길 위의 인문학>은 인문학과 대중과의 접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것은 추사(秋史) 선생과의 가상 대담이었다. 성현으로의 추사가 아닌 인간 추사에 대한 면면을 볼 수 있었으며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글로 풀어썼다. 충청북도 예산의 추사 선생의 고택에서 펼쳐진 가상 대담은 한 폭의 수묵화 같았다. 추사 선생이 썼다는 봉은사(奉恩寺)의 판전(版殿), 조선 후기의 세도정치와 탄핵 정국등 그 동안 몰랐던 사실에 대해 소소한 지식들로 깨알같이 내려앉았다. 걸어서 10분이면 닿을 지척에 있는 봉은사에서도 추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니... 인문학의 길, 아니 길 위의 인문학의 미학에 대해 감동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퇴계(退溪)의 길에서 배우는 인문학은 비단 경상북도 안동의 도산서원(陶山書院)에서만 접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우리는 천원권 지폐에서 거의 매일 퇴계 선생을 만난다. 오만원 권에서는 신사임당, 만원권에서는 세종대왕, 오천원권에서는 율곡, 오백원 동전에서는 충무공의 얼굴을 만날 수 있다. 이 얼마나 재미있는 사실인가. 지리산에서 만난 본 남명(南冥)도, 전라남도 강진(康津)에서 만나 본 다산(茶山)도 우리의 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우리의 성현들은 늘 우리 곁에서 살아 숨쉬고 계셨다. 책의 2부에서는 역사의 흔적을 따라 서울의 성곽들과, 남한산성(南漢山城), 양동(良洞)마을과 향단(香壇)등 우리 생활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인문학을 따라 걸었다.

인문(人文)이란 무엇인가. 사전에는 '1) 인류의 문화, 2) 인물과 문물을 아울러 이르는 말, 3) 인륜의 질서'라고 명기되어 있다. 우리의 뿌리를 알고 문화의 부흥을 도모하려면 우리는 인문학에 대해 알아야 한다. 단순히 인문학을 공부하기 위한 인문학 알기가 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다.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기기를 만들 때도 IT와 디자인에 대해 접목할 때도 근본이 되는 것이 인문학의 지식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머리를 싸매고 인문학에 대해 공부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길 위에서도 인문학을 만날 수 있고, 독서를 통해서 함께 인문학의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니 얼마나 운이 좋은가. 조금만 사고(思考)하며 주위의 사물과 길을 바라보고, 독서를 통해 견식(見識)을 넓혀간다면 인문학의 지식이 각자의 맡은바 영역에서 빛을 발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 본문 중에서

# 프롤로그_ 길에서 느끼는 인문학의 재미와 감동
'노인(路人)'이라는 옛말이 있다. 그야말로 나와 관계없이 무심코 길 위를 스쳐지나가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 길은 사람을 소통시켜 주는 길이 아니라, 단순히 스쳐지나가는 의미 없는, 무관심과 무감동의 길인 통로에 불과하다. '노인'은 엤말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있는 말이다. '노인'은 지금 더 많이 존재할지 모른다. 바쁘고 쪼들린 일상생활, 그 속에서 일상화된 무관심과 무감동은 현대판 '노인'을 양산하고 있다.  - 4p.

# 인문학, 퇴계의 길을 따라 걷다 
책을 읽되 마음을 괴롭힐 정도로는 하지 마세요. 많이 읽는 것은 아주 좋지 않습니다. 마음 내키는 대로 그 맛을 즐기고, 이치를 탐구하는 것도 일상생활의 평이하고 명백한 곳에서 간파해 숙달해야 합니다. 이미 아는 것을 바탕으로 마음껏 음미하세요. 그리하여 염두에 두는 것도 아니요, 염두에 두지 않는 것도 아닌 상태에서 잊지 않도록 해야합니다. - 33p.

인간을 마주하고 있는 건, 다양한 스펙트럼의 스트레스성 질병이다. 무엇이 그리 급한가? 물론 빨리해야 할 일도 있다. 그것은 그 상황에 따라 적절히 하면 된다. 그런데 천천히 해야 할 일을 빨리하면 남는 것은 생명력의 상실일 뿐이다. 갓 태어난 어린아이가 빨리 자라지 않는다고 사지를 당겨서 늘리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런데 현대인은 바쁘다는 핑계로 상당수가 알묘조장의 삶을 살고 있다. - 39p.

# 추사 김정희 선생과의 가상 대담
천재들의 눈을 마주 보고 있으면, 내 눈동자가 뚫리는 것처럼 아리고 정수리와 가슴이 시리다. 천재들의 형형한 눈빛은 방사선이나 레이저 광선 같은 파장이고, 그 파장은 순식간에 내 몸과 마음 이 구석 저 구석을 속속들이 누비고 다니면서 아프게 탐색해버린다. 그들의 눈빛에 의해 누벼진 내 몸과 마음은 한겨울 숭숭 뚫린 창구멍처럼 황소 같은 찬바람을 들랑거리게 한다. 내가 만난 추사 김정희의 눈빛도 그러했다. - 78p.

"선생께서는 서얼 자식 상우를 두셨습니다. 과거시험도 치를 수 없고,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도 못하는 슬프고 천한식을 왜 두셨습니까? 당시 양반으로서 너무 잔인한 일 아니셨습니까?"
추사는 난처해하면서도 당당하게 말했다.
"한 여인을 사랑한 결과일세."
"부인을 두고 어찌 다른 여인을 또 사랑한다는 것입니까?"
"난초꽃을 사랑하는 마음은 수선화를 사랑할 수도 있네." - 102p.

# 은유와 상징의 집, 양동(良洞)마을과 향단(香壇)
작지만 좁지 않은 방, 그것이 우리 고가의 방 맛이다. - 259p.

# 에필로그_ 길 위의 인문학, 그 융합의 무지개를 위해
무지개를 잡으러 간 일이 있었다. 무지개는 나를 반기며 웃었고, 일곱 색깔 자태를 뽐내며 산 위에 걸려 있었다. 그렇게 무지개를 따라가다 무지개를 잃어버렸다. 돌아오는 길엔 온갖 사상(事象)이 나를 마중했다. 집에 왔을 때 무지개는 여전히 산 위에 걸려 있었다.
다시 조그만 단상 속으로 들어간다. 남들이 좋다고 말하는 번듯한 제도를 업은 일터에서도 허우적대는 사람이 있고, 아무도 돌아보지 않지만 묵묵히 일하는 가운데 만족하는 사람이 있다. 제도는 무지개를 잡으러 떠날지 모른다. 하지만, 만족하는 사람은 그냥 그 가운데 산다. 묘함과 가물거림을 벗 삼아. - 283p.


<길 위의 인문학>
구효서 외 지음
경향미디어,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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