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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번이라도 뜨거웠을까?] 그들도 사람이고, 우리도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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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번이라도 뜨거웠을까?
국내도서>소설
저자 : 베벌리 나이두(Beverley Naidoo) / 고은옥역
출판 : 내인생의책 2011.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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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

영국의 식민지로 케냐의 1950, 60년대는 가슴아픈 핏빛으로 물들었다. 비상사태라는 명목하에 1만 2천여 명 이상에 달하는 케냐인들이 마우마우라는 이름을 달고 영국군인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강제 수용소에서 자행된 고문과 학대에 대해서도 뒤늦게 고발된 이야기는 내 눈과 귀를 의심할 만큼 잔인했다. 그들에겐 사람다운 삶이란 없었고 갈아치우면 그만인 일꾼에 불과했다. 과연 언제부터 사람이 사람을 지배한 것일까?

'비상사태'라 불리는 1950년대의 식민지 시대 케냐 은예리에서 영국소년 매슈와 매슈의 가족을 위해 일하는 일꾼 케냐소년 무고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두 소년의 이야기가 크로스오버 되면서 감정이 파도처럼 휘몰아치듯 격해지다가 이내 잠잠해지기를 반복한다. 친구가 될 수 없었던 지배계급 매슈와 피지배계급 무고의 우정은 오해와 불신으로 번져간다. 아버지의 땅을 빼앗긴 무고의 부족은 음준구('백인 한 사람'을 지칭하는 스와힐리어)에 대한 분노가 점점 더 거세졌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의 심장까지 삼켜버린 분노를 작가는 거대한 불길로 그려낸다.

매슈와 같은 음준구('백인 한 사람'을 지칭하는 스와힐리어)소년 랜스가 무고를 향해 내뱉는 말에서 나는 인간이 보일 수 있는 가장 밑바닥의 모습을 보았다. '감히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 이 검둥이 새끼야!'. 과연 누가 지배하는 사람과 지배받는 사람을 갈라놓았는가.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로 지배 받아야 한다는 논리를 만든 것은 다름아닌 인간이다. 

우리는 사람이 사람을 지배하던 1950년대 케냐의 아픈 현실을 손가락질 하고, 아픈 과거를 지탄한다. 그러나 휴머니즘을 부르짖는 요즘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여전히 KKK(Ku Klux Klan, 쿠 클럭스 클랜- 백인 우월주의 단체)같은 인종차별 단체가 존재하며 유색 인종에 대한 차별이 만연한다. 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경제 식민지가 존재하고 시장 자본 주의라는 명목하에 신종 지배 계급과 피지배계급이 존재한다. 

가솜속에 있는 말은 이야기를 통해 밖으로 드러난다.
오늘날 우리는 영화와 소설을 통해 이런 사실을 전해듣게 된다. 작가는 식민지 정책으로 자행된 잔인한 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전달함으로써 다시는 가슴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랬다. 인종차별이 사라질 수 있도록 매슈와 무고의 우정을 빌어 이야기를 전한다. 아프리카 케냐에도 따뜻한 희망의 햇살이 비추기를 바라면서...


■ 본문 중에서

하늘에는 달이 없었다. 키리냐가의 산꼭대기에서 떨어진 거대한 어둠의 망토가 산비탈 근처에 자리한 우리 집과 온 산을 뒤덮었다. 장작은 타닥타닥타고, 수풀에서는 수천 마리의 벌레들이 미친 듯이 울었다. 평소보다 벌레들의 울음소리가 더 미친 듯했다. 공기도 후텁지근했다. 아마도 오늘밤엔 비가 내릴 것이다. 대지는 이미 비를 맞이할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 50p.

하지만 지금 나는 그보다 훨씬 더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다. '오직 바보 멍청이만이 무엇이 타는지 보려고 불 속으로 머리를 들이밀지.' 라고 말하는 바바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퍼졌다. - 75p.

"난 전시에 정보 장교로 복무하는 동안 사람들을 덜 신뢰하는 법을 배웠다네. 덜 믿는 것이 더 안전한 법이지." - 81p.

바바에겐 꿈이 있었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고 와준구의 지식을 배워 오는 것. 그러면 자식들은 땅을 되찾는 방법을 배워 올것이라는 믿음! 또한 와준구도 우리들을 존중하는 법을 배울 것이라는 기대!
'그들도 사람이고, 우리도 사람이다.'
그런데 지금 바바의 꿈은 어디를 떠도는 걸까? - 205p.

"하지만 그 불이 네 심장을 집어삼키게 해서는 절대 안 된다. 알겠니?"
팔짱을 낀 채 팔을 가슴팍에 두었다. 어떻게 그 불을 멈추게 할 수 있을까? 이미 머리에서 배까지, 그 불은 온몸에서 활활 타올랐다. 고통이 심장 안에서 똬리를 틀고 있었다. 입 안이 말라 말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 206p.

온몸 깊은 곳에서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길에 몸을 떨었다. 그 불이 모든 사람들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그리고 내 심장 안에서 타는 불길을 막아 내는 법을 나는 알 수 없었다. - 209.


<나는 한번이라도 뜨거웠을까?>
베벌리 나이두 지음, 고은옥 옮김
내인생의책,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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