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Rolf Harrer :

롤프 하러에게


I'm a person you don't know... a man you've never met.

넌 나를 모르겠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으니까


But you are someone who occupies my mind... and my heart... in this distant land where I have gone.

하지만 너는 내가 언제나 떠올리는 사람이란다. 멀리 떠나온 이곳에서 말야


If you can imagine a hidden place tucked safely away from the world...

concealed by walls of high, snowcapped mountains... 

a place rich with all the strange beauty of your nighttime dreams... 

then you know where I am.

이곳을 상상할 수 있겠니?

세상으로부터 멀어져 숨어 있는 곳

만년설이 쌓인 산으로 막혀 있는 곳

꿈에서나 볼 것 같은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곳

바로 그런 곳이란다


In the country where I am traveling, Tibet... people believe if they walk long distances to holy places... it purifies the bad deeds they've committed.

They believe the more difficult the journey... the greater the depth of purification.

내가 여행하고 있는 이곳 티벳은 사람들이 성지까지 걸어서 도착하면 죄가 사라진다고 믿는단다

그 과정이 고될수록 죄 사함도 더 크다고 믿지


I've been walking from one faraway place to the next for many years... as long as you have lived.

I have seen seasons change across the high plateaus.

I have seen wild kiangs migrate south in winter... and sweep back across the fields when spring appears.

In this place, where time stands still... it seems that everything is moving... including me.

난 오지에서 또 다른 오지로 돌아다닌 지 오래됐지. 네 나이만큼 오래됐지.

고원을 지나며 계절이 바뀌는 것도 보고, 

겨울이면 남쪽으로 내려갔다가 봄이면 돌아오는 티벳 당나귀 떼도 봤어

시간이 멈춘 이곳에서 모든 것은 계속 변해. 나 역시 그렇고


I can't say I know where I'm going... nor whether my bad deeds can be purified.

There are so many things I have done which I regret.

But when I come to a full stop,

I hope you will understand... that the distance between us is not as great as it seems.

내가 어디로 가는지, 내 죄가 정화될지는 알 수가 없구나

후회스런 일도 많이 했지만

이 여행을 마쳤을 때, 우리 사이의 거리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알아다오


With deep affection... your father, Heinrich Harrer.

사랑한다. 네 아버지 하인리히 하러로부터




Pema Lhaki : Still, walking up mountains is a fool's pleasure, Heinrich.
페마 : 그래도 산을 오르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에요

Heinrich Harrer : Not so foolish, really. Look at this.
     That's after I climbed the Eiger North Face.
     That's Olympics. Gold medal. Not important.
하인리히 : 바보가 하는 짓이 아니에요. 이거 봐요
     아이거 북벽에 올랐을 때 사진이죠
     그건 별거 아니에요, 올림픽 금메달 땄을 때죠

Pema Lhaki : Then this is another great difference between our civilization and yours.
     You admire the man who pushes his way to the top in any walk of life while we admire the man who abandons his ego.
     The average Tibetan wouldn't think to thrust himself forward this way.
페마 : 이게 바로 당신네 나라와 우리의 큰 차이점을 보여주는 거에요
     당신들은 자신의 분야를 극한까지 밀어붙인 사람을 존경하죠
     우리는 자존심을 버린 사람을 존경하고요
     티벳인은 극한까지 자신을 몰아붙이지 않아요




Dalai Lama : Tell me a story about climbing mountains.
달라이 라마 : 이야기를 해주시오. 당신이 산을 타던 이야기

Heinrich : That's one way to fall asleep. Those stories bore even me.
하인리히 : 듣자마자 잠이 올걸요? 재미없는 얘기에요

Dalai Lama : Then tell me what you love about it.
달라이 라마 : 그럼 산이 왜 좋은지 말해주시오

Heinrich : What… The absolute simplicity. That's what I love.
       When you're climbing, your mind is clear… freed of all confusions.
       You have focus. And suddenly the light becomes sharper... sounds are richer... 
       and you are filled with... the deep, powerful presence of life.
       I've only felt that way one other time.
하인리히 : 글쎄요. 절대적인 소박함이 마음에 드는 거죠
       산을 타면 마음이 맑아져요. 혼란은 사라지고 집중하게 되죠
       그러다가 갑자기 빛이 강렬해지고 소리가 풍부해져요
       그럼 마음속이 깊고 강력한 생명으로 가득 차게 되죠
       다른 곳에서는 딱 한 번 느껴봤어요

Dalai Lama : When?
달라이 라마 : 언제?

Heinrich : In your presence, Ku-Dun.
하인리히 : 성하가 계실 때요


One million Tibetans have died as a result of the Chinese occupation of Tibet.

Six thousand monasteries were destroyed.

중국의 점령 이후 백만의 티벳인이 죽었고 6천 여곳의 사원(Monasterles)이 파괴됐다.


In 199, the Dalai Lama was forced to flee to India. 

He still lives there today, trying to promote a peaceful resolution with the Chinese.

1959년 인도로 피신한 달라이 라마는 아직도 중국과의 평화적인 해결책을 찾고 있다.


In 1989, he was awarded the Nobel Peace Prize.

Heinrich Harrer and the Dalai Lama remain friends to this day.

달라이 라마는 1989년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고 지금도 하러와는 절친한 친구다.

 

 

<티베트에서의 7년: Seven Years in Tibet>

감독: 장 자크 아노

출연: 브래드 피트(하인리히 하러), 데이빗 듈리스 등

1997년

 

 



티베트에서의 7년(Seven Years In Tibet)은 하인리히 하러(Heinrich Harrer)가 1944년부터 1951년까지 7년 동안 티베트에서 있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오스트리아의 등산가였던 하인리히 하러는 1939년 히말라야 최고봉의 하나인 낭가파르바트 원정 도중 등정에 실패, 하산을 하였으나 마침 발생한 세계2차대전으로 영국군에 붙잡혀 포로가 된다. 이후 포로수용소를 탈출하여 티베트의 수도 라싸로 도망을 가는데,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쓰게 된다. 라싸에서 하인리히 하러는 제14대 달라이 라마와 서방 문물을 나누며 친분을 쌓게 된다. 


이 이야기는 1997년 장자크 아노 감독, 브래드 피트 주연의 동명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출처: 위키백과)






Dr. Karl : Perhaps one brother already weakened from the climb feel behind close to the summit.

          탈진한 동생은 정상을 눈앞에 두고 뒤쳐졌고

          The other stronger brother direct to himself down ...

          힘이 남아있던 형은 가까스로 피신했다고 합니다.


Reinhold : That's not true!

           사실이 아닙니다.

 

Dr. Karl : And thus saved his own life?

         자기 목숨만 보존한 걸까요?

         We will never find out.

         우린 진실을 알 수 없겠죠.

         It is not opt to meet to prove.

         진상을 밝히는 것은 제 임무가 아닙니다.

         How much guilty 

         얼마나 깊은 죄책감이..

         How much guilty ways on Reinhold Messner's soul.

         라인홀트 매스너의 영혼을 괴롭힐지 모르겠지만

         It is burden he will have to carry until the end of his days.

         그가 죽을 때까지 짊어져야 할 업보입니다.



Sponsor : What motivated you want to climb up to the highest mountain?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에 오르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You don't even know will get down again.

         다시 못 내려올 수도 있는데?

         Love of country?

         애국심 때문인가?

         Glory? Honor?

         영광, 아니면 명예 때문에?


Reinhold : Why does painters are painting?

         화가가 왜 그림을 그리죠?


Sponsor : You are saying a mountaineer is an artist?

         등반가도 예술가와 같다는 건가?

         And is behaves self-centered as an artist?

         아니면 예술가처럼 자기중심적이라는 건가?


Reinhold : Self-centered as a sponsor.

         후원자들만큼이나 자기밖에 모르죠.

         Because if it sells everybody benefits.

         팔리면 누이 좋고 매부 좋죠!




Reinhold : Neither Karl nor Felix attended a memorial service.

         칼과 펠릭스는 건터의 장례식에 안왔습니다.

         Karl's mountain destiny was always 'Nanga Parbat'.

         칼에게 운명의 산은 항상 '낭가파르밧' 이었죠.

         But it is superfluous mountain. Geological formation.

         하지만 낭가는 산이란 지형일 뿐입니다.

         We were that want to take emotions to mountains.

         우리가 산에 감정을 불어넣은 거죠.





Reinhold Messner couldn't let go of Nanga Parbat.

라인홀트 매스너는 낭가파르밧을 떨쳐내지 못했다.


In the following years he set off dozen of times to look for his brother.

수년간 동생을 찾으려고 12번도 넘게 낭가를 향했다.


In 1978 he conquered Nanga Parbat a second time.

1978년 그는 낭가파르밧 정상을 두 번째로 정복했고


Without the expedition. Without equipment. Alone.

원정대와 장비 없이 홀로 이뤄낸 성취였다.


Karl Herrligkoffer continued to lead expeditions in the Himalayas.

칼은 계속 히말라야 원정대를 이끌었고


Upon his death in 1991 there still was no reconciliation between him and Reinhold Messner.

1991년 사망할 때까지 라인홀트와 화해하지 않았다.


Shortly thereafter, Peter Sholtz, one of the finest German mountaineers, fell to his death on the Mont Blanc.

얼마 안 가 피터 숄츠는 몽블랑에서 등반 도중 사망했다.


Felix Kuen committed suicide a few years later.

펠리스 큐언은 몇 년 후 자살했다


In 2005, the ice released Gunther's mortal remains.

At an altitude of 4,300 meters, on the Diamir Glacier.

2005년에야 해발 4,300m 지점의 디아미르 빙하 위에서 건터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운명의 산 낭가파르밧>

Nanga Parbat, 2010

조셉 빌스마이어 감독

플로리안 슈테터(라인홀트), 안드레아스 





■ 낭가파르밧(Nanga Parbat)

 

낭가파르바트(Nanga Parbat)는 히말라야 산맥 끝, 파키스탄에 위치하고 있으며, 해발고도가 8,126미터로 세계에서 9번째로 높은 산이다. 이 지방 주민들은 '산 중의 왕'이란 뜻으로 '디아미르(Diamir)'라고 부르며 숭앙한다. 8,000미터 이상급 산 중에서는 가장 위험한 곳 중 하나로 손 꼽히는 곳.


'낭가파르바트'는 우르두어로 '벌거벗은 산'이란 뜻이다. 셰르파들 사이에서는 악마의 산으로 불리고 외국에서도 공공연히 'Killer Mountain'이란 명칭을 쓸 만큼, 난이도가 높고 사망자가 많이 나온 산으로 더더욱 유명하다. 산의 남동쪽 벽인 루팔 벽은 높이 4,500미터의 수직 암벽으로, 히말라야의 3대 난벽으로 꼽히는 곳이다. K2처럼 겨울 시즌에 등정된 바가 없는 산이었지만, 2016년 시모네 모로의 팀이 동계초등정에 성공하여 K2만이 동계등정이 안 된 유일한 산이 되었다. (출처: 나무위키)



■ 낭가파르밧(Nanga Parbat) 등정 역사 (출처: 나무위키)


1895년 영국의 알버트 프레데릭 머메리가 구르카 2명과 함께 처음으로 등반을 시도했다가 실종되었다. 그저 눈사태에 휘말려 죽었으리란 추정만 나올 뿐이다.


1932년 독일인 빌리 메르클, 빌로 벨첸바흐가 이끄는 독일 등산대가 도전했으나 1차는 실패했다. 

1934년에 2차 도전에 나섰으나 악천후로 하나둘 쓰러져 죽도 메르클과 빌란트ㆍ벨첸바흐 등 독일인 4명과 가이라이ㆍ다그시ㆍ니마노르부 등 현지인 포터 6명이 목숨을 잃었다. 포터인 앙체링이 극적으로 내려와서 마지막에 남은 메르클과 포터 가이라이를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눈보라 속에서 후발 등산대는 구경만 해야했고, 남은 이들은 끝내 스스로 내려오지 못했다.


1937년, 칼 비엔(Karl Wien) 대장이 이끄는 독일등산대가 재도전에 나선다. 그들은 6,180 m 지점에 제4캠프를 구축했다. 그리고 6월 14일 저녁 정상 공격을 위해 독일인 대원 7명과 셰르파 9명이 제4캠프에 모였고 그 자리에서 잠을 잤다. 그러나... 바로 그날 밤 거대한 눈사태가 제4캠프를 덮쳐 자고 있던 16명 모두 그 자리에서 숨을 거뒀다.


1938년 파울 파우어 대장이 이끄는 독일 등산대가 다시 도전했으나 악천후에 시달려 결국 라키오트 루트(북동쪽) 무어즈 헤드 부근에 있던 얼음굴에서 4년 전 조난당한 빌리 메르클 대장과 포터 가이라이의 시신을 발견하고 물러나야만 했다.이 과정에서 포터인 히야이룸과 독일인 등산대원 리하르트 발뢴코프가 목숨을 잃으면서 사망자는 31명으로 늘어났다.


1939년 페터 아우프취나이터가 이끄는 독일 등반대 4인이 낭가파르바트 디아미르(서쪽 벽) 머메리 립(rib) 좌측에 위치한 거대한 바위 스퍼의 6,100 m 지점까지 올라갔으나 역시 악천후로 물러났다. 히틀러도 연이은 실패에 노발대발했지만 곧 터진 2차 세계대전 여파로 등산은 흐지부지 밀려났다.


1953년 독일인 의사 카를 마리아 헤를리히코퍼(1916~1991)가 등반대를 조직했다. 바로 그는 1934년 조난당한 빌리 메르클의 이복아우로, 등반에 문외한이었지만 형이 못한 걸 이루겠다는 집념으로 도전에 성공했다. 하지만, 문제는 헤를리히코퍼가 등반에 문외한이고 독선적이며 고집이 세서 다른 등반대와 충돌했다는 것. 결국 다른 인원들이 그를 무시했고, 당시 29살 헤르만 불이 본부의 지시를 어기고 단독으로 등정을 시도, 41시간 만에 살아 돌아왔다.


결국 헤를리히코퍼는 스스로 오르고자 재도전에 나서 1961년 재등정에 나섰지만 루퍼트 뢰브와 한스 킨스호퍼가 추락사하면서 실패하고 만다. 그리고 우습게도 그 이듬해인 1962년, 독일인 토니 킨쇼퍼가 이끄는 등정대가 2번째 정상에 올라 헤를리코퍼에게 굴욕을 안겨줬다. 하지만 이 등정에서도 1명이 죽었으며 킨쇼퍼 또한 다른 산 등정 도중에 1964년 목숨을 잃었는데 헤르만 불과 똑같은 33살이었다.


그 뒤로도 3번이나 헤를리히코퍼는 재도전에 나섰지만 그 스스로 정상에 오르는 건 죄다 실패했다. 그 중 하나인 4차 도전 당시(이탈리아-독일 합작으로 등정 시도)인 1970년에 팀에 동생 건터 메스너와 함께 합류한 이탈리아의 라인홀트 메스너가 건터와 단둘이 최초로 루팔 벽을 통해 등정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서쪽의 디아미르 벽을 통해 하산하던 중 눈사태로 동생 건터를 잃고 혼자 내려왔다. 여담인데 이때도 대장인 헤를리히코퍼는 젊은 메스너가 영광을 차지하는 게 배가 아파서 메스너가 기록을 세우기에 급급해 정상에 오른 걸로 만족하지 못하고 고산병에 시달리는 동생을 강제로 더 위험한 루트로 내려보내다 죽인 것이라고까지 했다. 분노한 메스너는 "나는 내 동생을 죽이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히며 비로소 헤르만 불을 이해하겠다는 말로 그 역시 헤를리히코퍼를 공식적으로 비난했다. 참고로 이 등정을 그린 2010년작인 독일 영화 <운명의 산 낭가 파르밧/Nanga Parbat>(2013년 국내 개봉) 에서도 헤를리히코퍼는 찌질이 악역급으로 나왔다. 그뿐만 아니라 처음에는 메스너 형제가 정상에 오르기를 적극 지지했으나 실제로 이들 형제가 정상에 오르자 태도가 돌변했다고 그려졌다.


이렇게 헤를리히코퍼가 등정에 연이어 실패할 때 체코의 이반 갈피가 3번째 도전에(1969년에 1차 실패) 나선 1971년에 4번째 정상 등정에 성공하여 이전 3번의 등정이 모두 독일인 및 독일과 합작으로 이뤄진거랑 달리 비독일 나라가 홀로 등정에 성공하여 헤를리히코퍼를 좌절시켰다. 결국 그는 낭가파르바트에 직접 오르기를 포기했고 등산가로서 묻혔으며, 되려 헤르만 불이나 메스너를 질투한 찌질이로서 등산 역사에 추하게 남았을 뿐이다.


여성으로서는 1984년 프랑스의 릴리앙 베르나르(1948~1986)가 남편인 모리스 베르나르(1941~1986)와 같이 처음으로 등정에 성공했다. 생몰연도를 보면 알겠지만 이 내외는 1986년 6월, K2 등정 도중 같이 목숨을 잃었으며 나중에 그녀의 시체를 발견하여 묻어준 등정대가 바로 한국 등정대였다.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 7월 광주전남합동대가 등정을 시도했으나 실패, 7900미터 지점에서 정성백 대원이 실종, 아니 사망했다. 

이후 1992년 우암산악회가 첫 등정에 성공했다. 그리고 1999년에는 엄홍길 대장이 디아미르벽을 통해 등정하는 데 성공했다. 

2005년한국 루팔벽 원정대의 이현조, 김창호 대원이 라인홀트 메스너에 이어 35년 만에 루팔벽 재등에 성공하였다. 

2009년에는 고미영이 등정 후 하산하는 중에 실족하여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2016년 이탈리아 등산가 시모네 모로의 팀이 동계초등정에 성공했다.


[원문] 마운틴저널

- http://www.mountainjournal.kr/news/articleView.html?idxno=68



판대 아이스파크 100미터 인공빙벽 등반기


100미터를 이동하는데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까?


100미터 달리기에서 인간의 한계라는 10초의 벽이 1968년 짐 하인스(미국, 9초 95)에 의해 무너지고, 2009년 우사인 볼트(자메이카, 9초 58)가 현재의 세계 기록을 경신하기까지 인간의 도전과 100미터 달리기의 역사는 끊임없이 바뀌고 있다.
100미터. 누군가에게는 10초의 거리.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6시간 30분의 대서사시가 될 수도 있는 거리다.

지난 1월 중순, 한파가 절정으로 치닫던 날. 클라이머 유석재씨가 운영하는 더탑 클라이밍 클럽은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에 위치한 판대 아이스파크의 100미터 빙폭을 찾았다. 
원주 클라이머스에서 운영 중인 판대 아이스파크는 절벽에 물을 퍼올려 얼린 30, 40, 60, 70, 100미터 규모의 인공 얼음벽이 있어 주말이면 빙벽 등반을 즐기는 클라이머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그 중에서도 100미터 빙폭은 체력과 기술이 모두 요구되는 만큼, 초보자들이 쉽사리 도전할 수 없으며 사전예약제로 운영되고 있어 하루에 총 8팀 (4인 1팀, 08/10/12/14시 각 2팀)에게만 등반을 허가하고 있다.

판대아이스파크 100미터 빙폭을 선등으로 오르고 있는 등반자 ©이재석 사진작가

판대아이스파크 60미터 빙폭을 선등으로 오르고 있는 등반자 ©이재석 사진작가

판대아이스파크 30미터 빙폭에서 빙벽등반기술 교육을 받고 있는 더탑 클라이밍 클럽의 교육생들 ©이재석 사진작가


판대아이스파크 30미터 빙폭에서 톱로핑 등반을 즐기고 있는 등반자들 ©이재석 사진작가


얼음 위의 100미터

오후 2시. 더탑 클라이밍 클럽 멤버들은 마지막팀으로 100미터 빙폭에 올랐다. 

빙벽등반에 앞서 빙벽화와 크램폰을 신고 있는 기자 ©이재석 사진작가


선등으로 등반에 나선 유석재 씨는 교육생이 포함된 팀의 안전을 고려하여 100미터를 3피치로 나누어 오르는 것으로 계획을 세우고, 백조처럼 사뿐히 얼음 위를 올라 60미터 지점에 확보를 하고 완료를 외쳤다. 등반은 간결하고 빨랐으며 군더더기가 없었다. 감탄도 잠시, 기자의 차례가 되었다. 뒤이어 선등자가 설치한 아이스 스크루(Ice screw, 튜브 타입의 빙벽등반용 확보물)를 회수하며 로프를 따라 올랐다. 
며칠간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추운 날씨에 직벽의 얼음은 아이스 바일을 튕겨낼 정도로 강빙이었다. 힘을 잔뜩 주어 찍으면 얼음이 깨지고, 그렇다고 적당히 찍으면 아이스 바일이 튕겨져 나왔다. 얼음에 걸려있는 바일과 손을 믿지 못하니 자세는 불안정했고, 긴장감에 숨이 밭아 올랐다. 개미가 등짐 지고 이동하듯 시간이 꽤 오래 소요되었다. 예상보다 늦게 확보지점에 도착하고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이는데, 스승은 한 손으로 확보를 보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제자의 사진을 찍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판대아이스파크 100M 빙폭을 오르고 있는 기자 ©유석재


“선생님, 스크루가 3개밖에 없네요?”
“세컨이 회수하기 힘들까 봐” 하며 넉살 좋게 웃는다.
“세컨 걱정은 마시고, 다음부터는 안전하게 스크루 많이 쓰세요!”

판대아이스파크 100M 빙폭을 오르고 있는 기자 ©유석재


웃고 떠드는 시간도 잠시. 세 번째, 네 번째 등반자의 등반 시간도 예상보다 늦어진다. 마지막 피치를 오를 무렵 이미 어둑 어둑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아뿔싸! 이렇게 늦어질 것을 예상하지 못한 나머지 헤드랜턴을 챙긴 팀원이 한 명도 없었다. 휴대폰 라이트를 서로 비춰주며 안전하게 등반을 마치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마지막으로 오른 등반자는 더탑 클라이밍 클럽에 올해 합류한 교육생이었는데,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는 허공에 발길질을 하던 본인의 처지가 처량해서 담배 생각이 간절했단다.
100미터 빙벽을 4인 1조로 오후 2시에 시작한 등반은, 8시 30분이 되어서 전원 안전하게 하산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덕분에 앞으로 한동안 술자리에 오르내릴 무용담이 하나 늘었다. 
빙벽에서 내려와 얼큰한 닭 백숙으로 몸을 녹이며, 술 한잔씩 나누다 보니, 다들 그렇게 감사한 일들이 많아졌는지. 4계절이 있는 대한민국 날씨 덕에 겨울에 얼음이 얼어서 감사하고, 빙벽 등반을 즐길 수 있도록 서울에서 멀지 않은 원주에 인공 빙벽장이 조성된 환경이 감사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정 많은 멤버들이 있어서 감사하고, 기타 등등. 감사할 일이 많았던 그날 밤은 6시간 30분이 소요된 '100미터의 전설'을 이야기하느라 새벽녘까지 뜨끈한 술자리가 이어졌다. 

그래도 가는 겨울이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추운 겨울에 걸맞는 아웃도어 액티비티를 즐기고 싶다면 빙벽 등반을 즐기보시기를.
참! 랜턴은 필수다.

판대아이스파크 전경 좌측부터 30m, 60m, 70m, 100m, 40m 빙폭이 펼쳐져 있다 ©원주클라이머스

■ Information. 판대 아이스파크 
  - 주소: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판대리 194-1
  - 전화: 033-761-4177
  - 웹사이트: http://cafe.daum.net/wjalpine1
  - 판대아이스파크 빙벽장 등반 규정 (2018년 1월 20일자 시행)


 ■ Information. 더탑 클라이밍 클럽

 - 주소 : (송파점) 송파구 오금로 18길 5호 (대청점) 강남구 일원동 639
 - 전화 : 02-423-8848
 - 웹사이트 : http://cafe.daum.net/lovecli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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